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레고 무비] - 내가 바로 창의력을 방해하는 악당이었구나.

쭈니-1 2014. 2. 10. 18:00

 

 

감독 : 필 로드, 크리스 밀러

더빙 : 크리스 프랫(김승준), 윌 페렐(설영범), 엘리자베스 뱅크스(소연), 모건 프리먼(김병관), 리암 니슨(박지훈, 전광주)

개봉 : 2014년 2월 6일

관람 : 2014년 2월 9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요즘 레고에 빠진 웅이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로 웅이가 원했던 것은 '레고 어벤져스'였습니다. 국내에 시판되지 않은 상품이었기에 구피는 구매대행까지해서 어렵게 웅이가 원했던 '레고 어벤져스'를 웅이 품에 안겼었습니다.

요즘 웅이는 레고에 푹 빠져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포켓 몬스터'에 푹 빠져서 구피한테 혼나면서 '포켓 몬스터' 피규어를 사주느라 바빴는데,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고 '포켓 몬스터'에 대한 관심을 접고 레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웅이가 이렇게 레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피터 잭슨 감독의 [호빗 : 뜻밖의 여정] 때문이었습니다. 웅이와 [호빗 : 뜻밖의 여정]을 함께 보기 이전에 웅이에게 제가 소장하고 있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을 DVD로 보여줬었습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재미있게 본 웅이는 '레고 반지의 제왕'을 갖고 싶어했습니다. 저는 '포켓 몬스터'때도 그랬듯이 구피 몰래 '레고 반지의 제왕 : 간달프 출동'을 사줬고, 그것이 웅이의 첫 '레고 시리즈'였습니다.

이후 웅이에게 '레고 반지의 제왕 : 모리아 광산'까지 사줬습니다.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웅이가 레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닌 '반지의 제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크리스마스에 '레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아닌 '레고 어벤져스 시리즈'를 사달라고 하고, 지난 설날 특선으로 EBS에서 해준 [스타워즈 시리즈]를 열심히 시청하더니 '레고 스타워즈'를 구경하겠다며 토이저러스에 가자고 조릅니다. 결국 저는 웅이가 레고에 푹 빠져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 작은 플라스틱 장난감이 무지 비싸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웅이에게 사준 '레고 반지의 제왕 : 간달프 출동'의 경우는 간달프와 프로도, 그리고 간달프의 마차가 들어있는 '레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 중에서 저가에 해당하지만 가격은 3만원대입니다.

'레고 반지의 제왕 : 모리아 광산'의 경우는 15만원대, 지난 크리스마스에 웅이에게 사준 '레고 어벤져스 : 퀸젯 공중전투'의 경우도 10만원대가 훌쩍 넘는 고가입니다. 무슨 플라스틱 블록이 이렇게 비싼지... 서민 아빠인 저는 그저 허리가 휘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비록 웅이가 토이저러스에만 가면 두 눈을 반짝거리며 구경하는 레고를 맘껏 사줄수는 없지만, 대신 최근 개봉한 [레고 무비]만큼은 보여주겠다는 일념하나로 지난 일요일 웅이와 그것도 3D로 [레고 무비]를 보고 왔습니다. 처음 [레고 무비]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에는 웅이가 보기엔 너무 유치한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막상 [레고 무비]를 보고나니 무비라이징의 '제2의 [토이 스토리]'라는 극찬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문제는 역시 그 다음이겠죠. [레고 무비]를 보고나서 웅이는 토이 저러스에서 [레고 무비]에 등장했던 '레고 무비 시리즈'를 굉장히 갖고 싶다는 표정으로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구피가 "영화보여주고나서 장난감 사주면 가만 안놔두겠어."라고 선포한 상황이고,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아서 웅이에게 사즐 수가 없었습니다. "미안하다, 웅이야. 주머니가 가벼운 아빠를 이해해다오."

 

 

평범한 에밋의 영웅담?

 

우선 [레고 무비]의 줄거리를 소개하겠습니다. [레고 무비]는 모든 레고 세계가 정해진 룰에 따라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로드 비지니스(윌 페렐)가 비트루비우스(모건 프리먼)를 공격하여 레고 세계를 장악하게 됩니다. 하지만 비트루비우스는 레고 세계를 구할 영웅을 예언하는데...

그로부터 8년 후. 레고 시티의 평범한 공사장 인부인 에밋(크리스 프랫)은 우연히 저항의 피스를 찾는 와일드스타일(엘리자베스 뱅크스)을 만나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항의 피스를 찾음으로써 로드 비지니스에 대항하여 레고 세계에 자유를 안겨줄 영웅의 운명을 떠안게 됩니다.

하지만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에밋. 다른 창의적인 마스터 빌더와는 달리 창의력이라고는 눈을 뜨고 찾아봐도 없는 에밋에게 마스터 빌더들은 실망하게 됩니다. 게다가 로드 비지니스의 부하인 나쁜경찰(리암 니슨)의 습격으로 마스터 빌더들이 잡히게 됩니다. 이제 마스터 빌더들을 구하고, 레고 세계에 자유를 안겨줄 유일한 희망은 에밋 뿐입니다. 이에 에밋은 로드 비지니스에 맞서 레고 세계를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레고 무비]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계를 위협하는 절대악에 맞서 평범한 주인공이 영웅으로 거듭나는 뻔한 전개는 수 많은 영화에서 써먹은 케케묵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고 무비]는 다른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레고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특별한 영화로 탈바꿈시킵니다.

 

[레고 무비]가 평범한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영화로 될 수 있었던 것은 레고가 보유중인 매력적인 캐릭터들 덕분입니다. [레고 무비]의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에밋과 와일드스타일, 그리고 비트루비우스이지만, 영화 속에는 배트맨, 슈퍼맨, 그린 랜턴 등 수 많은 레고 캐릭터들이 관객의 눈을 사로 잡습니다.

여기에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과 [21 점프 스트리트]를 공동 연출했던 필 로드와 크리스 밀러 감독의 이력도 한 몫을 톡톡히 해냅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으로 애니메이션을, [21 점프 스트리트]로 코미디 영화를 히트시킨 이 명콤비 감독은 [레고 무비]에서는 애니메이션과 코미디를 절묘하게 혼합시킵니다.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와 '해리 포터'의 덤블도어를 헷갈리는 장면이라던가, '슈퍼맨'이 '그린랜턴'을 피하는 장면 등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줍니다. 특히 '슈퍼맨'과 '그린랜턴'의 관계가 재미있는데, '슈퍼맨'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는 채닝 테이텀이고, '그린랜턴'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는 조나 힐입니다. 이 두 배우는 [21 점프 스트리트]에서 호흡을 맞췄었습니다.

게다가 '슈퍼맨'과 '그린랜턴'은 DC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고, 흥행에서도 성공하여 DC코믹스의 대표 슈퍼 히어로가 된 '슈퍼맨'과는 달리 '그린랜턴'은 2011년 라이언 레이놀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영화화했다가 망신만 톡톡히 당한 흥행 실패작입니다. [레고 무비]를 보면 '그린랜턴'은 '슈퍼맨'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지만, '슈퍼맨'은 마치 '그린랜턴'이 부끄럽다는 듯이 피하기만 합니다. [레고 무비]는 이렇게 레고의 수 많은 캐릭터들을 활용하여 소소한 재미와 함께 특별함을 안겨줍니다.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레고 무비]가 평범한 스토리 라인에 레고의 여러 캐릭터를 활용한 특별함만을 가지고 있다면 이 영화를 '제 2의 [토이 스토리]'라 부르는 것은 과장된 칭찬이 됩니다. [토이 스토리]는 애니메이션의 혁명적인 영화로 단순한 영화적 재미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레고 무비]의 진정한 재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후반이 되면 될수록 점점 예상을 벗어나는 창의적인 스토리 라인과 결코 오글거리지 않는 영화의 교훈입니다. 우선 창의적인 스토리 라인부터 이야기하죠.

처음 제가 [레고 무비]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소개하면서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레고 무비]는 전체적인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흔하디 흔한 영웅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레고 무비]의 줄거리를 세세하게 파고 들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가 튀어 나옵니다.

특히 마스터 빌더들이 로드 비지니스에게 잡히고, 본격적으로 에밋이 영웅으로 탈바꿈하는 순간부터는 스토리 라인이 제 예상을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에밋이 그 동안 숨겨왔던 영웅으로서의 잠재력을 폭발시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에밋은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평범함을 무기로 내세웁니다.

그러한 에밋의 반격은 이 영화를 이분법적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다시말해 초반만 해도 창의력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이 규칙대로만 살아가려고 하는 로드 비지니스가 악이고, 창의력으로 레고 세상을 다양한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마스터 빌더들이 선입니다. 그렇다면 에밋은? 그의 캐릭터만 놓고본다면 솔직히 선보다는 악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에밋은 그러한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는 로드 비지니스와 마찬가지로 창의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그가 창의력을 발휘해서 만든 것이라고는 2층 쇼파라는 바보같은 물건 뿐입니다.

하지만 에밋은 다른 창의적인 마스터 빌더들을 이끕니다. 그는 비록 사용 설명서에 나온대로 밖에 레고를 조립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무기로 로드 비지니스의 본부에 잠입하는데 성공하고 로드 비지니스의 계획을 막아섭니다. 그리고는 로드 비지니스에게 말합니다. "굳이 당신은 악당이 될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습니다. [레고 무비]의 교훈은 바로 그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레고 무비]는 어린이 관객들에게 말했었습니다. 사용 설명서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해서 레고를 조립하여 놀으라고... 하지만 에밋은 말합니다. 사용 설명서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그것 또한 나쁜 것이 아니라고... 결국 레고를 가지고 노는데 있어서 로드 비지니스처럼 사용 설명서대로만 조립하던, 다른 마스터 빌더들처럼 창의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것을 조립하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레고를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게 가지고 놀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레고의 진가인 것입니다.

영화의 후반부, [레고 무비]는 갑자기 실사 영화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아주 직접적으로 영화의 교훈을 관객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교훈은 어린이 관객을 위함이 아닌, 어른 관객에게 향해 있습니다. 어쩌면 어린이 관객은 실사 영화로 전환되기 이전에 이 영화의 교훈을 알아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레고 무비]를 어린이 애니메이션이라며 무시하고, 자녀와 함께 어쩔 수 없이 극장을 찾았지만 무심히 앉아 졸면서 영화를 관람했을 어른 관객에게 후반부의 실사 전환은 효과적인 충격요법이 됩니다.

 

 

내가 바로 악당이었구나.

 

저희 집에는 제가 주로 사용하는 방이 있습니다. 그 방에는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사용하는 컴퓨터가 놓여져 있고, 제가 열심히 모은 DVD와 비디오 테잎, 그리고 로봇 프라모델과 피규어들등 보물들이 가지런히 장식되어 있습니다.

웅이가 어렸을 적에 제가 방에 멋진 포즈로 장식해 놓은 건담 프라모델을 가지고 놀다가 제게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왠만하면 웅이를 혼내지 않는데, 웅이가 제 보물들을 가지고 놀 땐 제게 호되게 혼을 냅니다. 저는 웅이에게 "이건 네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냐."라고 경고했지만, 웅이는 "아빠는 왜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고 구경만 해요?"라며 항변하고는 했습니다.

결국 웅이는 제가 집에 없을 때에만 몰래 몰래 제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았고, 제가 집에 오기 전에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놓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웅이가 제 보물들에 손대었음을 단번에 눈치챌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웅이가 가지고 놀면 항상 제 로봇 프라모델, 피규어들의 위치와 포즈가 미묘하게 바뀌어 있었거든요.

그리고 결국 제가 아끼던 건담 피규어의 팔 한쪽이 사라지는 대형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리기 쉬운 검담 피규어들을  본드로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또다시 건담의 팔 한쪽이 사라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웅이는 더이상 제 보물들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하지만 [레고 무비]는 그런 제게 "당신은 로드 비지니스야."라고 소리칩니다. 그리고는 "당신이 굳이 악당이 될 필요는 없잖아요."라며 말해줍니다. 진심으로 [레고 무비]를 보며 마지막 실사 장면에서 뒷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저 편안하게 에밋의 영웅담을 감상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레고 무비]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으로 아이들의 창의력을 방해하지 말라는 어른들을 위한 교훈을 던져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고 무비]는 어린 아이들만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아이었습니다. 초반과 중반까지는 신나는 레고 어드벤처를 보며, 필 로드와 크리스 밀러 감독의 유쾌한 유머 감각을 즐기면 되지만, 영화의 후반부는 아이들을 위한, 그리고 어른들을 위한 교훈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웅이는 비싼 거액을 주고 산 레고들을 뒤죽박죽 섞어서 가지고 놉니다. 저는 '레고 반지의 제왕 : 모리아 광산'을 고정할 수 있는 박스를 만들어줘서 겉포장지 그대로 레고들을 배치해 놓았었는데, 어느사이 웅이는 그것들을 뒤죽박죽 섞어 놓습니다.

'레고 어벤져스 : 퀸젯 공중전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레고 캐릭터들의 머리 모양을 바꾸기도 하고, 각자의 슈퍼 히어로들의 무기들을 웅이 마음대로 바뀌놓았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웅이에게 "이 비싼 레고를 왜 이렇게 뒤죽박죽 가지고 노니?'라고 한마디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모습은 웅이의 창의력을 빼앗으려는 로드 비지니스의 모습이었습니다. 웅이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멘토라고 자부했던 제가 웅이의 창의력을 해치려는 악당이었다니... [레고 무비]의 교훈에 고개숙여 반성하는 바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자녀를 둔 어른들이여!

부디 로드 비지니스가 되지는 말자.

비록 우리들의 보물이 아이들의 손에 망가지더라도,

아이들의 창의력을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웅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벤져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