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박제현
주연 : 하지원, 강예원, 손가인, 고창석, 주상욱, 최성민, 송새벽
개봉 : 2014년 1월 29일
관람 : 2014년 2월 4일
등급 : 12세 관람가
2014년 첫 휴가의 영화는 바로 이 영화들이다.
연말정산 서류를 위한 어머니의 공인인증서를 만들기 위해 하루 연차휴가계를 냈습니다. 구피에겐 "어머니 혼자 공인인증서를 만들지 못하시니 내가 같이 가서 만들어줘야해."라며 연차휴가를 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사실 제 꿍꿍이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밀린 영화 보기이죠.
그날의 제 일정은 이러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목동에서 8시 50분에 [조선미녀삼총사]를 관람하고, 곧바로 석관동으로 가서 어머니와 공인인증서를 만든 후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충무로로 이동해서 오후 2시에 시작하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의 시사회에 참가합니다. 그런후 같은 극장에서 오후 4시 10분에 [폴리스 스토리 2014]를 보고나면 놓친 영화보기 일정은 일단 끝납니다.
하지만 모든 일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죠. [폴리스 스토리 2014]의 관람이 끝나면 이번엔 미아역으로 자리를 옮겨 혼자 저녁식사를 하고, 밤 8시에 성신여대 운정캠퍼스에서 하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쇼케이스까지 참가해야 그날의 모든 일정이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날 저는 하루종일 뛰어 다녔습니다. 목동에서 석관동, 석관동에서 충무로, 충무로에서 미아역, 그리고 다시 신월동으로 돌아오는 서울을 한바퀴도는 일정이기에 열심히 뛰지 않으면 시간내에 모든 일정을 마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휴가를 내면 회사에 출근하는 것보다 몸이 더 힘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고싶은 영화를 맘껏 보니 마음만은 천국입니다.
몸은 지옥이지만, 마음만큼은 천국이었던 2014년의 첫 휴가날. 제가 처음으로 고른 영화는 [조선미녀삼총사]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기대작이었지만 주변사람들이 한사코 "재미없을 것 같아."라며 외면해서 저 역시 아직까지 보지 못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밀린 영화를 보겠다고 다짐한 날, 저는 주저없이 [조선미녀삼총사]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해서 총 3명의 관람객이 있는 텅빈 극장에서 [조선미녀삼총사]를 관람했습니다. 아무리 평일 아침 시간대이지만 CGV 목동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것도 처음인 듯합니다.
일단 저는 최대한 관대하게 [조선미녀삼총사]를 관람하려 애썼습니다. 이미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의 악평을 충분히 봤기에 기대치를 상당히 낮춘 상황. 저는 [7광구]와 비슷한 수준의 영화라면 [조선미녀삼총사]를 실컷 즐겨줄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조선미녀삼총사]의 스토리가 전개되면 될수록 관대하던 제 마음은 점차 지루함으로 바꿔어 나갔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조선미녀삼총사]는 장점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운 영화입니다. 코믹퓨전사극이라고는 하지만 저는 영화를 보며 전혀 웃지 못했고, 하지원, 강예원, 손가인의 연기는 어색하게만 느껴졌으며, 영화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진옥(하지원)의 과거사 역시 전혀 감동스럽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며 하품을 수십번은 한 듯하네요. 그렇다면 [조선미녀삼총사]의 그 어떤 부분이 저를 그토록 지루하게 했는지 하나하나 조목조목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코미디는 절대 쉬운 장르가 아니다.
우선 제가 [조선미녀삼총사]에 가장 크게 실망한 것은 이 영화의 코미디 부분입니다. 사실 코미디는 많은 분들이 쉽게 생각하는 장르이지만 관객 입장에서 보면 절대 만만하게 보면 안되는 장르입니다. 영화에서는 웃기겠다고 나선 장면이 관객의 웃음보를 터트리지 못하면 그것만큼 썰렁하고 민망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조선미녀삼총사]의 코미디가 딱 그러합니다.
영화 초반 진옥이 자신들의 본거지가 외부의 침입을 받을 경우를 대비하여 완벽한 방어막을 만듭니다. 하지만 방어막을 여는 장치를 아직 만들지 못해서 진옥과 홍단(강예원), 가비(손가인), 그리고 무명(고창석)은 갇히고 맙니다. 사실 이 장면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빵하고 터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박제헌 감독이 웃기겠다고 작정하고 나선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장면이 전혀 웃기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하지원은 귀여운척 하며 관객을 웃기려하고, 강예원은 오버하며 관객을 웃기려 합니다. 가비 역시 쎈척하며 관객을 웃기려 하지만 그들 모두 저를 웃기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뭐 좋습니다. 주연배우가 웃기지 못한다면 조연배우들이 웃기면 되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 [조선미녀삼총사]는 고창석과 송새벽이라는 코믹 연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명품 코믹조연를 캐스팅합니다. 고창석과 송새벽은 출연하는 영화마다 맛깔스러운 코믹 연기로 영화의 코믹한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배우들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일까요? 고창석과 송새벽마저 아무런 힘이 되지 않습니다. 고창석은 진옥, 홍단, 가비의 사부이지만 현상금을 뒤로 빼돌리는 얌체같은 면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커다란 덩치에서 그러한 얌체같은 면모를 발휘하면 제법 웃길법도 한데 역시나 웃기지 않습니다.
송새벽의 경우는 첫 등장 장면이 그나마 조금 신선했지만 그의 어늘한 말투와 가비와의 로맨스만으로는 [조선미녀삼총사]의 코믹 양념역활을 하기에 부족해 보였습니다.
저도 그다지 유머감각은 없지만 타인을 웃기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뜻밖의 장면이 펼쳐지면 관객들은 웃게 됩니다. 그러나 [조선미녀삼총사]는 그러한 의외성에서 실패를 거둡니다. 이 영화에서 웃기려고 덤벼드는 장면은 모두가 예상 가능한 장면들 뿐입니다. 진옥이 완벽한 방어막을 만들었을 때, 저는 방어막을 해제하는 장치는 안만들었을 것이라 예상했고, 진옥이 홍단의 시어머니를 찾아왔을 때 저는 어떤 방법으로 진옥이 홍단을 시집살이에서 구해줄지 예상이 되었습니다.
장면 뿐만이 아닙니다. 고창석과 송새벽이라는 코믹연기에 잔뼈가 굵은 조연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웃기지 않는 것은 [조선미녀삼총사]에서 그들의 캐릭터가 이전 영화의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익숙함만 있을 뿐, 의외성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선미녀삼총사]에서 가장 기대했던 그러한 코믹한 부분이 사라지고 나니 [조선미녀삼총사]의 영화적 재미는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과도 같았습니다.
개연성이 부족한 액션씬들
자! 코미디가 부족하다면 다른 요소들로 저를 만족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선미녀삼총사]는 코미디만 내세운 영화가 아닌, 퓨전 사극에, 액션 장르까지 곁들인 영화이기 때문이죠.
우선 액션을 먼저 보죠. 영화의 오프닝씬에서 진옥은 5백냥의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 검거에 나섭니다. 그런데 진옥에게 잡힌 범죄자는 순순히 진옥을 따라 나섭니다. 뭔가 대항하여 맞서 싸우거나, 도망칠 법도 한데 그러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선 "뭐지?"라고 고개를 한번 갸우뚱.
그런데 순순히 현상금을 타나 싶었는데 이번엔 다른 현상금 사냥꾼들이 떼거지로 몰려 옵니다. 그래서 진옥은 그 수많은 현상금 사냥꾼들과 맞서 싸웁니다. 그때 진옥이 꺼내든 무기는 칼이 아닌 요요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재미있게 봤던 TV 만화 시리즈 <이상한 나라의 폴>에서 폴은 삐삐의 요술방망이로 강화된 요요로 적들을 무찌릅니다. 뭐 진옥이 요요를 꺼내들었을 때 잠시 <이상한 나라의 폴>에 대한 추억에 잠기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진옥의 요요는 요술방망이로 강화된 무기가 아닙니다. 그러한 단순한 요요로 수십명의 적들이 나가 떨어지니 이걸 독특한 액션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말도 안되는 액션이라고 해야 하나 잠시 헷갈리더군요.
그런데 [조선미녀삼총사]의 액션은 계속 이런 식입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을 열심히 싸우는데, 영화를 보는 저는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 아닌 서로 장난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폭발씬도 그러합니다. 진옥이 지하에 내려갔음을 알면서도 건물 전체를 폭발시키는 가비의 무모함. 그냥 헛웃음만 났습니다.
이 영화의 악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현은 진옥을 충분히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살려둡니다. 그리고는 진옥이 다시 나타났을 때, "목숨이 끊질기구나."라는 쓸데없는 한마디를 날려줍니다.(이런, 네가 살려줬잖아!)
처음에 사현이 진옥을 살려준 것을 저는 반전을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옥과 사현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진옥은 굉장히 오버(!)하며 사현과의 과거 관계를 암시했고, 사현은 진옥을 기억 못하는 듯 했지만 그녀를 살려줌으로써 후반부의 반전을 위해 뭔가를 암시하는 듯한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더군요. 왜냐하면 죽일 수 있는데 적을 살려줘서 불씨를 남겨두는 것은 [조선미녀삼총사]에 나오는 악당들의 전체적 특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절대악이라 할 수 있는 김자헌(최성민)이 그러합니다. 진옥의 과거 장면에서 김자헌은 진옥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린 진옥을 죽였어야 했습니다. 아니 죽이지 않을 것이라면 가둬서 감시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멀쩡히 살아서 현상금 사냥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제가 액션영화를 볼 때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악당들이 주인공을 바로 죽이지 않고 폭발 예정인 건물에 묶어둔채 떠나는 장면들입니다. 악당이면서 왜 주인공을 없앨 때는 그렇게 주저하는 것일까요? 그래놓고 항상 결국에는 주인공에게 당합니다. [조선미녀삼총사]의 김자헌처럼 말입니다.
신파로 넘어가자 나 역시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초반 웃기지 않은 코믹, 중반 개연성이 떨어지는 액션. 더이상 나를 실망시킬 요소는 없겠지 라고 잠시 방심한 사이, [조선미녀삼총사]는 '이건 몰랐지?'라며 강력한 한방을 내리 찍어 버립니다. 그것은 바로 갑작스러운 신파입니다.
사실 진옥이 사현을 처음 만나고 오버하며 무너지는 장면에서부터 불안했습니다. 저는 하지원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녀의 카리스마 연기는 국내 여배우 중에서도 거의 TOP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하지원도 가끔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허술한 연기를 합니다. [조선미녀삼총사]에서 딱 그러했습니다. 어쩜 저렇게 '마지막은 신파가 될거야.'라며 후반부를 대놓고 암시하는 허술한 연기를 해대는지...
그 덕분에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후반부의 장면들이 저는 너무 뻔하게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조선미녀삼총사]는 그러한 신파를 결국 뻔하게 펼쳐 보입니다. [조선미녀삼총사]가 재미있는 영화가 되려면 후반부의 신파에서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시울 정도는 뜨거워졌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진옥과 사현의 신파를 예고하는 하지원의 허술한 연기, 그리고 막장 드라마에서나 쓸법한 기억상실증이라는 환장하게 짜증나는 장치가 끼어들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긴 커녕 점점 차가워져만 갔습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을 나서는 제겐 허무함이 밀려 왔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휴가 아침의 달콤한 늦잠도 포기하고, 극장으로 향하는 버스가 늦게 도착해서 극장까지 숨을 헐떡거리며 뛰었는데, [조선미녀삼총사]는 제가 기대했던 모든 요소들 그 무엇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선미녀삼총사]를 원망하지 않으렵니다. 영화에서도 진옥은 사현에게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분명 그녀는 사현이 죽도록 미웠을 것입니다. 사현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니까요. 하지만 진옥은 사현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사현이 그렇게 행동하게끔 만든 김자헌을 원망할 뿐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조선미녀삼총사]를 선택한 것은 제 자신입니다. 제가 선택한 영화가 재미없다고해서 영화를 원망하면 안되죠. 저는 이 영화가 재미없었지만, 다른 어떤 분은 이 영화가 재미있으셨을 수도 있으니, 영화를 잘못 선택한 제 자신의 안목을 원망해야할 것입니다.
외세의 침략으로 세자가 청나라의 볼모로 끌려갔던 치욕의 역사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녀삼총사]의 교묘한 만남. 분명 [조선미녀삼총사]의 기획은 나름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재미가 없었으니 어쩌면 박제현 감독의 연출이 제 취향과는 잘 맞지 않은 듯하네요.
그러고보니 박제현 감독이 연출한 영화 중에서 [은행나무침대 2 : 단적비연수]와 [울랄라 씨스터즈] 역시 재미가 없었으니 박제현 감독의 영화는 아무래도 제 취향과는 거리가 먼 듯합니다. 다음부터는 박제현 감독의 신작이 나오면 좀 더 신중하게 영화를 선택해야할것 같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하지원 주연의 영화라서
기왕이면 [조선미녀삼총사]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는데
도저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좋은 점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나는 이 영화를 원망하기보다는 안쓰러웠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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