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프레데릭 베그베데
주연 : 개스파드 프로스트, 루이즈 보르고앙
개봉 : 2014년 2월 13일
관람 : 2014년 2월 4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쭈니는 5분 지각생
회사에 연차 휴가를 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조선미녀삼총사]를 봤습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석관동의 어머니 집에 도착. 어머니와 함께 은행에 가서 공인인증서를 만든 후, 점심식사를 하고나니 어느새 시간은 오후 1시 10분이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그 다음 일정은 충무로의 대한극장에 오후 2시까지 도착해서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 시사회를 보는 것. 그런데 석계역에서 충무로역까지는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도저히 제 시간에 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께 "약속있으니까 식사 빨리 하세요."라고 재촉할 수도 없고... 시간은 자꾸 가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머니께서 식사 끝나기를 기다린 이후 지하철로 죽어라 뛰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 시사회는 연차 휴가를 낸 이후 갑자기 정해진 일정이었습니다. 평소라면 평일 오후 2시 시사회에 절대로 참석할 수가 없었지만,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은 때마침 제가 연차 휴가를 낸 날 시사회 초대 제안이 메일로 온 것이죠. 부담없는 로맨틱 코미디인데다가 프랑스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도 오랜만이라 저는 애초에 [위험한 패밀리]나 [인사이드 르윈]을 보겠다는 계획을 변경하고 덥썩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의 시사회 초대에 응했습니다.
시사회장으로 가는 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제가 아무리 뛰어도 2시까지 도착하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의 시사회를 포기하고 애초의 계획대로 [위험한 패밀리]나 [인사이드 르윈]을 보면 될 일이지만 약속을 어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실례인줄 알면서도 제게 시사회 초대 메일을 보내주신 영화 홍보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흔쾌히 제 시사회 좌석을 따로 보관해서 제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시네요. 너무 고마워서 감동의 눈물이... 1호선을 타고 4호선을 갈아탄 후, 충무로역에 도착해서 대한극장에 들어서니 정확히 시간은 오후 2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정말 거의 날아가다시피 했습니다.)
숨을 헐떡거리며 대한극장에 들어서니 저를 기다려주신 홍보사 직원분께서 밝은 미소로 티켓을 전해주시네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곧장 극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영화는 이미 시작을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 시사회에 도착하고나니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같은 뿌듯함이...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신솔민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찌질남 마크는 어떻게 여신 알리스의 사랑을 쟁취했는가?
5분 지각하는 바람에 저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의 앞부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숨을 헐떡거리며 좌석에 앉았을 땐 이미 마크(개스파드 프로스트)는 믿었던 아내과의 이혼 때문에 찌질남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클럽에서 술을 진탕 마신후 집에 돌아와 침대에서 토사물과 함께 일어난 마크. 뭐 이 정도의 찌질은 저도 경험해본 것이죠.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별 후 마크와 같은 진상을 부리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곧바로 이상한 일이 발생합니다. 진상을 부리고 있는 마크의 집에 여신이 들어섭니다. 그녀의 이름은 알리스(루이스 보르고앙). 그리고 화면은 곧바로 마크가 알리스를 처음 만났을 때로 넘어갑니다.
이러한 초반의 장면에서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영화의 처음 5분 정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의 초반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마크는 이미 아내와의 이혼 이전에 알리스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알리스는 마크의 사촌인 앙트완의 아내. 우리나라의 정서대로라면 마크는 비난받아 마땅한 놈입니다.
결국 마크의 찌질함은 이혼한 아내가 아닌 알리스를 향해 있습니다. "난 당신 사촌의 아내란 말이야."라며 마크와의 관계를 친구 사이로 막으려는 알리스에게 마크는 "내가 사촌에겐 그다지 애정이 없어서..."라며 끈질기게 구애합니다. 그리고 결국 알리스의 사랑을 쟁취해낸 이후에는 "나야? 아니면 앙트완이야? 빨리 선택해."라며 이혼을 재촉합니다.
솔직히 마크는 같은 남자가 봐도 그다지 애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마크를 연기한 개스파드 프로스트가 프랑스의 국민 코미디언이라고는 하지만 배우로써 매력적이지도 않고, 사촌의 아내인 알리스에게 끈질긴 구애를 펼쳐 이혼하게 만들어 놓고, "내가 알리스를 이혼하게 만들었어."라며 자랑하는 장면에서는 찌질을 넘어 너무 뻔뻔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배우가, 그리고 캐릭터가 매력이 없다면 그 영화 또한 재미가 없을 수 밖에 없는데,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은 개스파드 프로스트와 그가 연기한 마크라는 캐릭터가 매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재미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 영화의 재미는 바로 루이즈 보르고앙에게서 비롯됩니다.
지금까지 제게 프랑스 여배우중 여신은 소피 마르소에서 줄리엣 비노쉬, 이자벨 아자니, 모니카 벨루치로 이어지다가 현재는 그 명맥이 끊긴 상황입니다. 그런데 루이즈 보르고앙이라는 새로운 여신이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너무 아름답고, 눈부시게 섹시하며, 보고있으면 같이 기분이 좋아질만큼 밝고, 자신감 넘치게 자유분방한 알리스. 그 어떤 남자라도 그녀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저 역시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을 보면서 루이즈 보르고앙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으니까요.
루이즈 보르고앙의 매력에 흠뻑...
만약 알리스의 매력이 고만고만했다면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의 영화적 재미도 폭삭 반감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알리스의 매력이 워낙 출중하니 나도 모르게 마크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제 스스로가 알리스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찌질남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새 마크를 배신한 아내의 존재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마크에게 알리스를 잃은 앙트완의 분노는 감안할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세상의 중심은 알리스이고, 모든 것은 알리스를 위해 펼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알리스를 향한 마크의 사랑에도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바로 알리스가 "쓰레기 같은, 형편없는 책"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한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 마크 자신이 쓴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내와의 이혼 후 자신의 찌질한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 써내려간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 그런데 이 책이 출판이 되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작가상까지 받게 되며 마크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를 맞이합니다. 이제 마크는 선택해야합니다. 작가적 명성을 얻을 것이냐, 아니면 알리스와의 사랑을 선택할 것이냐?
그런데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의 중심이 알리스인 마크에게 알리스의 사랑을 잃게 된다면 작가적 명성 따위는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쓰레기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죠. 사랑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마크의 말대로라면 유효기간은 고작 3년이라고 하지만 그러한 3년 동안은 모든 선택에서 우선시되는 것은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솔직히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고, 결국 다시 만나는 해피엔딩의 과정을 고스란히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 영화가 다른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와 다른 점이라고는 마크라는 캐릭터의 현실성입니다. 만약 제가 [사랑은 유효기간은 3년]의 시나리오를 쓴다면 마크의 캐릭터를 좀 더 도덕적으로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마크와 알리스가 처음 만난 것은 마크가 아내와의 이별 후 괴로워하던 와중으로 고칠 것이며, 알리스 역시 사촌의 아내가 아닌 미혼여성으로 바꿀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관객이 처음엔 마크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마크가 알리스를 만날때 진심으로 응원하게끔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은 프레데릭 베그베데 감독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러한 프레데릭 베그베데의 경험이 마크를 도덕적으로 완벽한 캐릭터가 아닌, 현실적으로 찌질하고 뻔뻔한 캐릭터가 되어 버린 것이죠. 하지만 마크가 그렇게 현실적인 캐릭터인 덕분에 제3자의 입장에서 마크와 알리스의 사랑을 응원하는 것이 아닌, 마크와 감정이입이 되어 직접 알리스의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의 최대 강점은 바로 그것입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미화하지 않은 현실적인 마크라는 캐릭터와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 매력적인 캐릭터 알리스. 이 둘의 조화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 영화가 뻔한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라면 평생을 3년처럼 살면 된다.
자! 그러면 이쯤에서 여러분은 이 영화의 제목이자, 마크와 알리스의 사랑의 장애물이 되는 책의 제목인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고 명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 명제는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라합니다. 어차피 사랑이라는 것이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에 따른 감정인데 이러한 호르몬은 18개월에서 30개월 사이에 분배된다고 합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사랑의 두근거림은 사라지고 익숙함만이 남아 버리게 되죠.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1년째엔 가구를 사고, 2년째엔 가구를 재배치하고, 3년째엔 가구를 나눈다." 결코 길지 않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감정 변화를 가구에 비유한 것이죠. 한 커플이 처음 시작할때 가구를 사며 평생을 함께 살 것처럼 행복해하지만, 2년째가 되면 가구를 재배치하며 권태기를 벗어나려 애쓰고, 결국 3년째엔 가구를 나누며 헤어지게 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몇 십년을 함께 사는 부부들은 사랑의 감정없이 그저 자식 때문에, 혹은 익숙함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일까요? 만약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 뿐이라면 결혼을 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 명제에 의한다면 2002년에 개봉한 유하 감독, 엄정화, 감우성 주연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유효기간이 3년 뿐인 그깟 사랑 때문에 미친 짓이라 할 수 있는 결혼을 하는 걸까요?
지금 현재 결혼 11년차인 제 생각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이기 보다는 둘이 함께가 훨씬 행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고 하지만, 혼자라는 외로움은 평생의 괴로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 혼자 긴긴 밤을 보내신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이해하실 듯.
그렇다면 유효기간이 3년인 사랑을 극복하고 평생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제 경험으로는 분명 있습니다. 몇 십년을 함께 사는 부부들이 모두 자식 때문에, 혹은 익숙함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은 분명 아입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바로 평생을 3년처럼 사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구피를 보면 구피와 처음 만났을 때의 설래임을 기억해냅니다. 물론 구피에게 화가 날 때도 있고, 솔직히 결혼을 후회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구피와 연애를 시작하며 겪었던 수 많은 추억,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떠오르면 화가, 후회가 스르륵 녹아 버립니다. 그렇게 제 뇌에서 분비되는 사랑의 호르몬은 이미 멈춰버렸지만, 제 기억 속에 깊숙히 박혀 있는 우리의 행복한 추억들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추억들이 사랑의 호르몬이 되고, 그러한 사랑의 힘으로 또다른 추억을 쌓으며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겠죠.
영화의 후반, 알리스는 자신의 허벅지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리는 앙트완의 손이 마치 고무장갑처럼 느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알리스는 마크에게 달려갑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마크의 손 역시 고무장갑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지 않을까요? 진정한 사랑이란 바로 고무장갑같은 그의(그녀의) 손조차 아름답게 느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3년 후 마크와 알리스의 사랑이 아직도 유효한지, 영화를 보고나서 궁금해졌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뇌에서 분비되는 사랑의 호르몬, 그 이상의 무엇이 아닐까?
그러니 연인들이여, 결혼을 두려워말라.
3년이라는 유효기간은 우리가 충분히 뛰어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일 뿐이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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