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 - 명품 다큐는 어떻게 어린이용 공룡영화가 되었는가?

쭈니-1 2014. 2. 5. 11:26

 

 

감독 : 데이빗 크렌츠, 에릭 넬슨

더빙 : 베르너 헤어조크(박지윤, 곽윤상)

개봉 : 2014년 1월 29일

관람 : 2014년 2월 2일

등급 : 전체관람가

 

 

설날 연휴의 마지막은 웅이와의 '무비데이'가 계획이었다.

 

올해 설날 연휴는 주말까지 합쳐서 나흘간이었습니다. 물론 따지고보면 설날 연휴가 주말과 겹치며 주말 하루를 손해본 것이기도 했지만, 3일간의 설날 연휴를 보내고 일요일을 맞이하니 마치 보너스 휴일을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설날 연휴 기간 동안 바쁜 일정을 보냈던 저는 마지막날인 일요일은 웅이와 단둘이 여유롭게 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설날 연휴동안 고생한 구피에게 집에서 혼자 뒹굴 수 있는 휴식을 줌과 동시에 웅이와 영화를 즐기며 설날 연휴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나름 멋진 계획이었습니다.

그러한 계획을 위해 오전에는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을 예매했고, 오후에는 [넛잡 : 땅콩 도둑들]을 예매했습니다. 이제 웅이와 함께 영화도 보고, 함께 맛난 외식도 하고, 남는 시간엔 '토이저러스'에 가서 장난감 구경도 실컷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제 계획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구피의 이모님과 외사촌 부부가 처갓집에 방문한다고 연락이 와서, 저와 웅이도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만 보고 부랴부랴 처갓집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아쉬웠습니다. 만약 제게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과 [넛잡 : 땅콩 도둑들] 중의 한편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넛잡 : 땅콩 도둑들]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합작 애니메이션으로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넛잡 : 땅콩 도둑들]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구피 이모님의 처갓집 방문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오전에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이 아닌 [넛잡 : 땅콩 도둑들]을 예매했을 것입니다. 구피 이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시고 구피는 '이제 영화 보라 가도 되.'라고 했지만, 이미 [넛잡 : 땅콩 도둑들]의 좌석은 매진 상태. 결국 이렇게 또다시 아쉬움만 남긴채 설날 연휴는 끝이 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 공룡 영화?

 

누차 이야기했지만 웅이의 장래 희망은 고생물학자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공룡 박사인 셈입니다. 그렇기에 저희 부부는 웅이와 함께 국내의 공룡 박물관은 거의 방문했고, 공룡을 소재로한 영화가 개봉하면 어김없이 웅이와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웅이는 이미 지난 2013년 12월에 개봉한 [다이노소어 어드벤쳐]도 극장에서 본 상황이죠.(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해서 저는 못봤습니다. 아쉽~) 그렇기에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은 어쩌면 웅이의 필수 극장 관람 영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를 예매하며 '웅이에게 너무 유치한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제 걱정의 근원은 영화의 포스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맞춰져 있는 유치찬란한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의 포스터가 국내 개봉한 공룡 영화는 물론 공룡 다큐멘터리도 섭렵한 초등학교 5학년 진학을 앞둔 웅이에게 '나는 네가 보기엔 너무 유치한 영화란다.'라고 속삭이는 듯 했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러닝타임은 고작 74분. 혹시 TV용으로 만든 유치한 공룡 영화를 극장용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을 예매한 이유는 베르너 헤어조크의 나래이션 때문입니다. 베르너 헤어조크는 지난 2013년 1월, 웅이를 위해서 집에서 먼 아트하우스 모모까지 찾아가 관람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잊혀진 꿈의 동굴]의 감독입니다.

[잊혀진 꿈의 동굴]의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나래이션에 참여했다면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이 마냥 유치한 어린이 영화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국내 상영 극장을 아무리 뒤져도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더빙을 들을 수 있는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의 자막버전을 찾을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베르너 헤어조크에 대한 믿음 하나로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을 보러 갔습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고 화면 가득 디스커버리 로고가 뜰때까지만 해도 제 믿음이 맞은 듯 했습니다.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인 디스커버리가 제작한 영화에,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나래이션으로 참가한 공룡 다큐멘터리 영화. 어쩌면 저는 제 2의 [잊혀진 꿈의 동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기대는 채 몇초가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아! 더빙.. 으악! 더빙

 

디스커버리의 로고가 지나고 나면 곧바로 한국 성우들의 더빙이 나옵니다. 베르너 헤어조크가 나래이션을 맡은 자막 버전을 어떨지 모르지만, 국내 성우진이 더빙을 맡은 더빙 버전의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은 준(박지윤)이라는 이름의 소년과 아버지(곽윤상)가 2억 5천만년전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이 박지윤과 곽윤상의 더빙이 굉장히 오버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한 만화영화를 보는 것처럼 성우들의 목소리는 오버를 넘어 영화 감상을 방해하는 지경에까지 도달합니다. 특히 영화 중간 중간에 튀어 나오는 성우들의 낯간지러운 대사들은 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인정합니다. 극장을 가득 채운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에게는 오히려 그러한 오버하는 더빙과 낯간지러운 대사들이 영화에 집중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빙이 너무 귀에 거슬려 74분이라는 시간이 곤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은 저를 위해 극장을 찾은 것이 아닌, 웅이를 위해 극장을 찾은 것이기에 웅이만 만족했다면 저 역시 군말 없이 이 영화를 추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자 웅이도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이 유치했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군요. 제게 "준이와 아빠는 시간여행이 아닌 그냥 상상을 한거죠?"라고 묻습니다. 하긴 영화의 설정은 준이와 아빠의 시간여행이라고 하지만 이는 국내 수입사가 억지로 설정한 것이기에, 웅이 입장에서는 시간 여행이 아닌 준이와 아빠의 상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만약 베르너 헤어조크의 묵직한 나래이션으로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을 감상했다면... 아니 꼭 베르너 헤어조크의 나래이션이 아니더라도, 준이와 아빠의 시간여행이라는 억지 설정을 빼고 국내 성우의 나래이션으로 영화가 진행되었다면, 저와 웅이에게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은 좀 더 뜻깊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양한 공룡들의 삶의 현장

 

준이와 아빠의 오버하는 목소리와 낯간지러운 대사들로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의 감상이 상당 부분 방해받았지만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더빙을 완전히 뺀, 순수하게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만으로 다시금 이 영화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실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은 원래 디스커버리가 제작한 12시간 분량의 TV용 다큐멘터리를 편집한 극장판이라고 합니다. 12시간짜리 TV용 다큐멘터리가 74분짜리 극장용 다큐멘터리라 탈바꿈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TV용 다큐멘터리의 알짜배기 내용만 골라 편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 펼쳐지는 다양한 공룡들의 삶의 현장은 꽤 흥미진진했습니다. 어렸을 적 거대한 초식 공룡  딘헤이오사우르스의 공격으로 턱뼈가 부러지고 엄마 공룡에게 버림을 받은 삐죽이 알로사우르스가 성인이 되어 딘헤이오사우르스에게 복수를 하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입니다. 단 몇분에 불과한 짧은 에피소드이지만 삐죽이 알로라는 캐릭터를 꽤 매력적으로 구축했습니다.

 

그 외에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새끼를 부화시키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티라노사우르스 부부의 모습과 익룡 안항구에라가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떠밀어 목숨을 걸고 삶의 현장 체험하게 하는 장면.

날쌘 도둑 벨로키랍토르의 공격을 받은 어린 프로토케라톱스가 죽음을 앞둔 늙은 프로토케라톱스의 도움으로 살아남는 장면과 독버섯을 먹은 초식 공룡 슈토사우르스가 우여곡절 끝에 육식 공룡의 공격에서 살아남는 장면 등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여러 매력적인 공룡 캐릭터를 완성해 놓습니다.

물론 소행성의 충돌과 그로인한 기후 변화로 영화 속 공룡들이 멸종하는 장면도 함께 보여주며 수억년의 여정을 단 74분으로 마감하여 시간적 아쉬움도 있습니다. 최고 90분 정도로 러닝타임을 늘렸더라면 더 다양한 공룡의 모습을 소개하는 더 재미있는 공룡 다큐멘터리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은 디스커버리의 명품 다큐와 준이와 아빠의 공룡 시대로의 시간여행이라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공룡 영화가 결합된 매우 이상한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그런 이상한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일이겠죠? 그래서 더욱 아쉬웠습니다.

 

국내 포스터와 해외 포스터만 비교해봐도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공룡이 초등학교 저학년의 전유물은 아닐텐데...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은 어쩌다가 저렇게 변형되었는가?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