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피터 레페니오티스
더빙 : 윌 아넷(엄상현), 캐서린 헤이글(박지윤), 리암 니슨(유해무), 브렌든 프레이저(변영희)
개봉 : 2014년 1월 29일
관람 : 2014년 2월 9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영화 두편을 보기 위해 식사를 포기해야 했던 웅이.
지난 2월 2일 설날 연휴의 마지막날, 저는 웅이와 하루에 두편의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점찍은 영화는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과 [넛잡 : 땅콩 도둑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모님의 처갓집 방문으로 [넛잡 : 땅콩 도둑들]의 예매는 취소하고, [디노타샤 : 공룡대탐험]만 본 후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캐나다의 합작 애니메이션인 [넛잡 : 땅콩 도둑들]이 북미에서 좋은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저는 [넛잡 : 땅콩 도둑들]의 관람을 이대로 허무하게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레고 무비]를 웅이와 보러 가기로했던 지난 일요일, 이번엔 [레고 무비]와 [넛잡 : 땅콩 도둑들]로 웅이와 하루에 두편의 영화보기를 도전했습니다.
물론 구피의 반대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구피는 아직 어린 웅이에게 하루에 두편의 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교욱적으로 안좋다며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매주 두편의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은 괜찮다는 저와 [넛잡 : 땅콩 도둑들]이 보고 싶다는 웅이의 아우성 덕분에 어렵사리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습니다.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애초 웅이와의 일정은 [레고 무비]를 본 후, 토이 저러스에서 레고를 구경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레고 무비]는 극장 부율 문제로 메가박스에서만 상영을 하고, 토이 저러스는 롯데 시네마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로인하여 [레고 무비]와 [넛잡 : 땅콩 도둑들]을 보기 위해서는 메가박스 목동과 롯데시네마 김포공항을 오고가는 긴 여정이 필요했습니다.
항상 이렇게 무리한 일정을 소화할 때는 식사를 할 시간이 사라집니다. 사실 저는 괜찮습니다.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성격이지만,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굶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여러차례 그랬고요. 하지만 웅이에겐 영화를 보기 위해 굶는 것이 첫 경험이죠.
결국 [레고 무비]를 보고, 김포공항으로 향하기 이전에 배가 고프다는 웅이를 위해서 거리 포장마차의 핫도그 하나를 사먹었습니다. 부랴 부랴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넛잡 : 땅콩 도둑들]을 본 후에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구피와 함께였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불량식품으로 그날의 끼니를 떼운 것이죠. 하지만 뭔가를 무리해서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뭔가를 포기해야하는 법. 웅이는 그날 [레고 무비]와 [넛잡 : 땅콩 도둑들]을 보고, 토이 저러스에서 레고를 맘껏 구경하는 댓가로 제대로된 식사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다람쥐 설리의 땅콩 찾기 대모험
도심 속 공원. 그곳엔 수 많은 동물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구리 라쿤(리암 니슨)을 우두머리로 다람쥐, 두더지 등이 힘을 합쳐 겨울을 나기 위한 식량 비축에 나섭니다.
하지만 설리(윌 아넷)만은 예외입니다. 그는 단독으로 식량 확보에 나섭니다. 땅콩 수레에서 땅콩을 훔쳐서 공원의 동물들과 나누자는 앤디(캐서린 헤이글)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설리는 "내가 왜 그래야만 하는데?"라고 되묻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한 설리의 이기심은 결국 공원 동물들의 겨울나기 식량 창고인 떡갈나무가 홀라당 타버리는 사고로 이어지고, 설리는 공원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넛잡 : 땅콩 도둑들]은 처음부터 많은 것을 생략하고 시작합니다. 설리가 왜 라쿤에게 반항심을 가지고 있는지, 앤디는 다른 공원의 동물들과는 달리 설리를 감싸고 도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되지 않은채 그저 공원 동물들과의 상부상조를 거부하는 이기적인 설리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 영화의 과감한 생략법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전개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넛잡 : 땅콩 도둑들]은 중반까지는 공원에서 쫓겨난 설리가 결국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는 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조금 뻔한 전개라고 해도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에선 아주 딱 알맞은 교훈인 것이죠.
물론 설리가 외톨이인 것은 아닙니다. 그에겐 마음 착한 생쥐 친구 버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설리는 버디를 친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를 자신이 시키는대로만 하는 부하쯤으로만 여길 뿐입니다.
그러한 설리가 땅콩가게를 터는 일생일대의 계획들을 통해 친구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설리가 버디의 소중함을 느끼는 장면은 영화를 보는 어린이들에게 큰 감동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 어른들도 항상 함께 해주는 사람의 소중함은 곧잘 잊곤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산소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산소가 없으면 죽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산소는 존재했고, 그렇기에 우리는 산소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대기 오염이 지금보다 더 심각해지면 그제서야 산소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겠죠.
우리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 친구, 동료들... 지금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고, 힘들때, 기쁠때 항상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고 그(그녀)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설리에게 버디가 바로 그러한 존재이고, 버디를 잃은 후 설리의 변화를 통해 [넛잡 : 땅콩 도둑들]은 어린이를 위한 교훈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라쿤은 어른을 위한 풍자?
하지만 [넛잡 : 땅콩 도둑들]의 후반부가 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것은 바로 영화의 초반에 생략되었던 설리가 왜 라쿤에게 반항심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라쿤은 어른들을 위한 캐릭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도심속 공원의 작은 세계. 하지만 공원 동물들에게는 그곳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공원을 벗어나면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들이 동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공간이 됩니다. 자신만만하던 설리도 공원을 벗어나고나서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을 정도니까요. 그렇기에 공원에서의 삶은 동물들에겐 생의 전부와도 같습니다.
라쿤은 그러한 공원의 지도자입니다. 다시말하면 공원의 통치를 거머쥔 권력자인 셈입니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공원 동물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설리는 눈에 가시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영화의 초반, 관객들은 설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라쿤의 명령에 따라 다른 공원의 동물들과 협력을 하면 공원에서 함께 잘 살아나갈 수 있을텐데, 도대체 설리는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영화의 후반, 라쿤이 본심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공원 속의 동물들과도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그저 겨울을 나기 위해 열심히 먹이 모으기에만 열중하는 공원의 동물들은 마치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우리 서민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들에겐 자신들을 이끌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고, 위안이 될 멋진 영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가짜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영웅의 활약을 믿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한 공원 동물들의 바램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라쿤과 그레이슨(브랜든 프레이저)입니다. 그레이슨은 공원 동물들이 영웅이라 떠받들지만, 영화의 초반에 이미 그가 허당임을 밝혀집니다. 하지만 설리조차 그러한 그레이슨의 진짜 모습을 다른 동물들에게 밝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영웅이 필요해."라며...
하지만 라쿤은 다릅니다. 지도자라는 것,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의무가 따르는 직책입니다. 하지만 라쿤은 그러한 의무보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것을 우선시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고, 방해꾼인 설리를 없애려합니다. 하지만 당장 겨울나기를 위한 먹이 모으기에 급급한 동물들은 그러한 라쿤의 진짜 모습을 볼 여유가 없습니다. 단지 설리만이 처음부터 라쿤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라쿤의 모습을 보며 저는 [넛잡 : 땅콩 도둑들]이 우리 인간 사회를 풍자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주라는 공간에 비교한다면 지구라는 아주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우리 인간들은 그 속에서 누구는 먹고 살기 위해, 또 누구는 그러한 서민들을 이용해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는 것이죠.
갱스터 무비와 애니메이션의 매력적인 만남
사실 제가 [넛잡 : 땅콩 도둑들]을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본 이유는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선전하고 있는 우리 애니메이션(엄밀히 따진다면 순수 국산이 아닌 합작이지만...)의 위용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는 [넛잡 : 땅콩 도둑들]이 철저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고, 그렇기때문에 제가 이 영화를 보며 영화적 재미를 느낄 것이라는 기대는 그다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상 외로 [넛잡 : 땅콩 도둑들]은 꽤 다양한 재미를 가지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우정의 소중함을 깨닫는 설리를 통해 어린이를 위한 교훈을 안겨주고, 도심 속 작은 공원 동물들의 생태를 통해 어른들을 위한 풍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매력적인 할리우드 갱스터 무비의 분위기는 덤입니다.
설리와 공원의 동물들이 털기로한 땅콩 가게는 은행털이 강도범들의 은신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계획은 지하 땅굴을 파서 은행의 금고를 털고 그 대신 땅콩 자루를 가져다 놓는 것. 하지만 설리와 공원 동물들이 땅콩 자루를 노리니 그들의 한판 대결은 불가피한 선택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은행털이범들이 키우는 불독인 쭈글이까지 설리의 편에 서면서 동물들과 은행털이 강도범들의 대결은 마치 [나홀로 집에]와 같은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이렇게 중반까지는 약간 코믹에 치우친 감이 있긴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가 되면 제대로된 갱스터 무비의 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넛잡 : 땅콩 도둑들]에서 가장 큰 재미를 느꼈던 부분은 바로 후반부의 추격씬입니다. 라쿤과 설리의 추격전과 은행털이범과 경찰의 추격전이 교묘하게 맞물리는 장면은 어린이를 위한 교훈과 어른을 위한 풍자를 아우르는 매력적인 장면의 향연입니다.
물론 결론은 해피엔딩입니다. 모두 제자리를 찾아 돌아간 것이죠. 특히 공원의 동물들은 시내에서의 대모험을 뒤로 하고 다시 공원으로 돌아가 제자리를 지킵니다. 그들의 작은 세상은 또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흘러갈 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의 그림체와 스토리 라인이 펼쳐져서 마치 디즈니나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에서 싸이의 전세계 히트곡 <강남스타일>이 나오고 나서야... '아! 맞아. 이 영화가 우리 애니메이션이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넛잡 : 땅콩 도둑들]은 한국적 특색은 없어도 전세계 흥행에 제대로 초점을 맞춘,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새 장을 열만한 그런 영화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시장이 작다고 투덜거리지 마라.
[넛잡 : 땅콩 도둑들]처럼 얼마든지 전세계 흥행을 목표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으니...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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