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난 2013년 여름 애니메이션 삼국지라는 제목으로 픽사, 드림웍스, 블루 스카이의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면서 마음 한켠에서는 씁쓸함이 남았었습니다. 왜냐하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빅3에 디즈니를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처럼 나이에 맞지 않게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이유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덕분이었기에 저는 마음 속으로 디즈니가 부활하기만을 간절히 바랬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제가 그토록 바랬던 디즈니가 2014년 부활했습니다. 바로 [겨울왕국] 덕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깊숙히 묻어뒀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디즈니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2007년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제목하여 제왕의 부활... 참 마음에 드는 제목이네요. ^^
디즈니 변화의 시작은 셀 애니메이션의 항복 선언이었다. [로빈슨 가족]
제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기준점을 [로빈슨 가족]으로 잡은 이유는 이 영화가 디즈니와 픽사가 합병한 이후 만들어진 첫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의 배급망을 타고 전세계에 개봉되었습니다. 하지만 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부진을 면치 못했고, 결국 디즈니는 픽사를 인수함으로서 간접적으로 항복 선언을 한 셈입니다. 픽사를 합병한 디즈니의 첫 애니메이션 [로빈슨 가족]은 그러한 디즈니의 항복 선언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고전 동화, 셀 애니메이션,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 오랜 세월동안 구축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특징들입니다. 하지만 [로빈슨 가족]에서는 그러한 디즈니의 특징들이 무엇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로빈슨 가족]이 셀 애니메이션이 아닌 3D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픽사의 3D 애니메이션이 빅히트를 기록하고,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이 너나할 것 없이 3D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할때에도 디즈니는 [다이너소어], [치킨 리틀]을 제외하고는 셀 애니메이션을 고집했습니다. 하지만 픽사를 인수하며 디즈니도 애니메이션의 대세가 3D임을 인정했고, 디즈니마저 [로빈슨 가족]을 통해 3D 애니메이션에 뛰어든 것입니다.
이제 3D에서도 디즈니다움을 찾기 시작했다... [볼트]
[로빈슨 가족]은 북미에서 1억 달러가 채되지 않는 부진한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그러한 흥행 부진은 디즈니답지 못한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객의 대답과도 같았습니다. [로빈슨 가족]의 흥행 부진 때문일까요? 2008년에 개봉한 [볼트]는 디즈니다움을 어느 정도 회복한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볼트]는 북미 흥행 1억1천4백만 달러로 [로빈슨 가족]보다는 나은 흥행 성적을 기록하였습니다.
[볼트]가 [로빈슨 가족]과 비교해서 디즈니답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실사 영화에서도 동심을 자극할 수 있는 귀여운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볼트]는 그러한 디즈니다움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3D 애니메이션입니다.
하지만 [볼트]가 [로빈슨 가족]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아직 디즈니다움을 완벽하게 되찾은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캐릭터와 스토리 라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볼트]는 TV 스타인 강아지 볼트가 우연히 할리우드 촬영장을 떠나 머나먼 뉴욕에 오면서 벌어지는 모험담입니다. 자신을 슈퍼 강아지라고 믿는 볼트는 [토이 스토리]에서 자신을 우주 전사라 믿는 버즈를 연상시키는 캐릭터이며, 할리우드로 돌아가려는 볼트의 모험은 레이싱 스타이지만 우연히 래디에이터 스프링스라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가게된 [카]의 라이트닝 맥퀸과 비슷합니다. 다시말해 [볼트]는 디즈니다운 동물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뿐, 픽사의 흥행 성공작을 교묘하게 짜집기한 영화였던 셈입니다.
셀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부활??? [공주와 개구리]
하지만 디즈니는 역시 디즈니입니다.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왕국을 건설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죠. 비록 [로빈슨 가족]과 [볼트]로 픽사를 따라가려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애니메이션의 제왕은 곧 자존심을 되찾고 위험한 모험을 시도합니다. 그것은 바로 셀 애니메이션의 부활입니다.
[공주와 개구리]는 디즈니가 2004년 [카우 삼총사]를 제작한 이후 무려 5년만에 내놓은 셀애니메이션입니다. [공주의 개구리]가 디즈니의 자존심을 내건 영화라는 점은 셀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외에도 많습니다. 이 영화는 그림형제의 동화 '개구리 왕자'를 원작하고 있다는 점과 흥겨운 노래가 함께 한다는 점까지...
[공주와 개구리]의 북미 흥행 성적은 1억4백만 달러입니다. 분명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디즈니가 자존심을 구겨가며 만든 [로빈슨 가족]보다는 나은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셀 애니메이션의 시대는 갔지만 아직 많은 애니메이션 팬들이 셀 애니메이션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애니메이션 제국 부활의 시발점은 바로... [라푼젤]
[로빈슨 가족]과 [볼트]는 디즈니다움에서 약간 부족했습니다. [공주와 개구리]는 완벽하게 디즈니다움을 획복했지만 유행이 지난 셀 애니메이션이었기에 흥행 부분이 약간 아쉬웠습니다. 그렇다면 그 절충안은 없는 것일까요? 아뇨, 있습니다. 그 해답은 바로 2010년에 개봉한 [라푼젤]입니다.
[라푼젤]은 [공주와 개구리]와 마찬가지로 그림형제의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오래된 전통인 감미로우면서도 흥겨운 뮤지컬 형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지만 디즈니는 더이상 셀 애니메이션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라푼젤]은 [공주와 개구리]와는 달리 3D 애니메이션이었던 것입니다.
소재와 형식은 디즈니다움을 완벽하게 회복했지만 관객들이 좋아하는 3D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됨으로써 [라푼젤]은 2억 달러라는 높은 흥행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라푼젤]의 그러한 흥행 성공은 비록 2010년 흥행 TOP을 기록한 픽사의 [토이 스토리 3]에 가려졌지만 그래도 2010년 흥행 10위를 기록하며 오랜만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관계자를 흐뭇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라푼젤]의 흥행 성공은 디즈니 부활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라푼젤]을 통해 디즈니는 디즈니다움을 3D 애니메이션으로 구축하는 것이 가장 시너지 효과가 높음을 깨달았고, 그러한 깨달음은 [겨울왕국]에서 달콤한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셀 애니메이션에 대한 추억에 작별은 고하다... [곰돌이 푸]
물론 [라푼젤]의 흥행 성공이 곧바로 [겨울왕국]으로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2011년 디즈니는 [공주와 개구리]에 이은 또 한편의 셀 애니메이션을 내놓는데 그것이 바로 [곰돌이 푸]입니다. [곰돌이 푸]는 '미키 마우스'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디즈니의 대표 캐릭터입니다. 디즈니는 [곰돌이 푸]를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며 디즈니의 유구한 역사와 그러한 역사 속에 형성된 팬층을 공략한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곰돌이 푸]의 흥행 성적은 처참했습니다. 2천6백만 달러. 해외 성적까지 합쳐도 제작비인 3천만 달러가 조금 넘는 3천3백만 달러의 월드와이드 흥행을 기록한 것입니다. 결국 [곰돌이 푸]의 흥행 실패는 아직 관객들이 셀 애니메이션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반증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전 동화가 안된다면 고전 게임으로... [주먹왕 랄프]
[곰돌이 푸]의 흥행 실패로 디즈니는 다시 3D의 세계에 안겼습니다. 2012년 개봉한 3D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가 그 주인공입니다. 사실 [주먹왕 랄프]는 디즈니다움에서 살짝 벗어난 영화입니다. 동화를 원작으로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흥겨운 노래가 가득한 뮤지컬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먹왕 랄프]는 북미에서 1억8천9백만 달러라는 좋은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비록 디즈니다움이 없어도 독특하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관객들은 얼마든지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주먹왕 랄프]는 8비트 게임 '다고쳐 펠릭스'의 악당 캐릭터 '주먹왕 랄프'가 모두에게 인정받는 영웅이 되고 싶어서 자신의 게임을 이탈하여 다른 게임에 들어가며 벌어지는 모험을 담고 있습니다.
8비트 게임이라는 고전 게임의 형식에서 튀어나온 캐릭터가 슈팅게임 '히어로즈 듀티', 레이싱게임 '슈가 러시'에서 모험을 하는 이 독특한 아이디어는 [볼트]를 볼 당시 '이제 남은 것은 상상력의 재충전이다'라며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평가했던 제게, 상상력이 재충전 되었음을 선언하는 영화였습니다.
제왕의 귀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겨울왕국]
[라푼젤]을 통해 디즈니는 디즈니다움을 획복했습니다. [주먹왕 랄프]를 통해 디즈니는 새로운 상상력을 재충전하였습니다. 이렇게 차근 차근 제왕의 부활을 준비했던 디즈니. 그리고 결국 2013년 [겨울왕국]으로 완벽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겨울왕국]의 북미 흥행 성적은 현재 3억3천8백만 달러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박스오피스 5위를 차지히고 있어서 북미 흥행 성적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2013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중에서 흥행 TOP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일루미네이션의 [슈퍼 배드 2]입니다. 3억6천8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슈퍼 배드 2]. 하지만 [겨울왕국]은 [슈퍼 배드 2]를 바짝 뒤쫒고 있습니다. 충분히 [슈퍼 배드 2]를 앞지를만한 흥행세를 과시중입니다.
게다가 [겨울왕국]은 골든 글로브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고, 타임지 선정 2013년 최고의 영화 BEST10에도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오는 아카데미에서도 강력한 애니메이션상 수상 후보작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겨울왕국]은 흥행 뿐만 아니라 작품성마저 인정받고 있는 셈입니다.
[겨울왕국]이 대단한 것은 안데르센의 동화인 '눈의 여왕'을 소재로 택했고, 아름답고 흥겨운 뮤지컬 곡들로 영화를 가득 채우는 전통적인 디즈니다움을 고수하면서도 '눈의 여왕'과는 전혀 다른 스토리 라인을 구축하며 새로운 상상력을 맘껏 발휘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기존의 빅3인 픽사, 드림웍스, 블루 스카이는 제왕의 부활에 바짝 긴장을 해야할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행보입니다. [겨울왕국]으로 제왕의 부활을 알린 디즈니는 [겨울왕국]의 성공에 도취되지 말고 앞으로도 더욱 디즈니다움과 새로운 상상력을 잘 조화시킨 영화들로 애니메이션팬의 마음을 더욱 움켜잡아야 할 것입니다.
일단 그 시작은 2014년 11월 개봉 예정인 [빅 히어로 6]가 될 것입니다. [빅 히어로 6]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처음으로 마블의 슈퍼 히어로 캐릭터를 애니메이션화하는 새로운 시도의 영화입니다. 만약 [빅 히어로 6]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우리는 마블의 슈퍼 히어로를 실사 영화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도 더 자주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외에 아직 제목이 확정되지 않은 4개의 프로젝트가 2016년과 2018년 각각 두편씩 개봉 예정입니다. [빅 히어로 6]가 새로운 상상력을 앞세운 애니메이션이라면 그 외의 프로젝트들은 디즈니다움을 내세운 영화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디즈니는 [겨울왕국]이후에도 여전히 애니메이션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요? 제왕의 부활은 반갑지만, 그 부활이 일회성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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