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것을 여러번 밝혔습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삼국지'라는 제목으로 픽사, 드림웍스, 블루 스카이의 애니메이션을 소개했고,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은 지금 춘추전국시대'라는 제목으로 일루미네이션, 디즈니, 소니 픽쳐스의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총 6개 스튜디어의 애니메이션을 소개했지만 마음 속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네요.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을 아직 소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꽤 깁니다. 하지만 그다지 활성화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통해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죠. 그래서 이번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어디까지 왔니?'라는 제목으로 90년대 이전의 애니메이션과 2000년~2010년까지의 애니메이션, 그리고 2011년 이후의 애니메이션, 이렇게 세편으로 나눠 우리나라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의 제작년도는 국내 극장 개봉연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제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전부를 소개할 능력이 안되는 만큼 제가 본 영화, 혹은 안봤지만 제가 관심을 가졌던 영화 위주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976년... 내 기억 속의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로보트 태권 V]이다.
우리나라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1976년에 개봉한 [로보트 태권 V]로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물론 [로보트 태권 V]가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은 아닙니다. 기록으로 보면 1967년 개봉해서 약 1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영화 흥행 2위에 오른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이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1967년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며, 당연히 저는 [홍길동]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보트 태권 V]는 어린 시절 제가 몇번이고 본 기억이 나며, 2007에는 디지털 복원판으로 재개봉해서 웅이와 즐겁게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로보트 태권 V]의 내용은 거대로봇을 개발하여 지구를 정복하려는 카프 박사와 붉은별 군단에 한국의 훈이가 '로보트 태권V'로 맞서 싸운다는 내용입니다. [로보트 태권 V]를 연출한 김청기 감독은 이후 초창기 우리나라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이끌며 [로보트 태권 V] 시리즈와 [똘이 장군], [황금 날개 123] 등 70, 80년대를 거쳐 수십편의 어린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연출했습니다.
1994년... 최초의 성인 애니메이션 [블루 시걸]
1994년 한편의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블루 시걸]이라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영화는 화제성이 풍부했습니다. 우선 한국 최초의 성인 애니메이션이라는 타이틀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시켰고, 서울정도 600년 기념 타임캡슐에 현재의 서울 모습 담기 사업 수장 품목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최민수, 김혜수, 엄정화, 조형기 등 배우들이 더빙을 맡았으며 서울에서만 20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영화 흥행 5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도굴꾼들에 의해 외국으로 밀반출된 조선왕조의 보검을 되찾기 위한 하일의 활약담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스토리 라인과 과장된 그림 등으로 당시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에게는 '블루 18'이라는 애칭(?)으로 더 통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 애니메이션의 인기에 찬 물을 끼엊다. [돌아온 영웅 홍길동], [헝그리 베스트 5]
[블루 시걸]의 흥행 성공은 곧바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활발한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1995년과 1996년에 무려 네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개봉하는 쾌거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돌아온 영웅 홍길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인 [홍길동]을 리메이크한 영화입니다. [홍길동]을 연출했던 신동헌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고, [블루 시걸]과 마찬가지로 김민종, 채시라, 신현준, 윤석화, 노영심 등 스타들을 기용하여 더빙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에 개봉한 또 한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인 [헝그리 베스트 5]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어른들은 몰라요], [난 깜짝 놀랄 짓을 할거야], [공룡 선생]을 연출하며 당시 신세대 감독으로 각광받았던 이규형 감독의 영화입니다. 고교 농구부의 우정과 승부를 다뤘습니다.
하지만 이 두 영화는 모두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일본 자본과 기술력에 기댄 제작으로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블루 시걸]의 흥행 성공으로 별다른 준비 없이 뛰어든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실패는 1996년에도 이어졌습니다.
1996년...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긴 잠을 청하다. [아마게돈],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소동]
[돌아온 영웅 홍길동], [헝그리 베스트 5]의 흥행 실패는 1996년 1월에 개봉한 [아마게돈]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아마게돈]은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만화가로 명성을 떨처던 이현세가 자신의 만화를 원작으로 직접 메가폰까지 잡은 영화입니다.
[아마게돈]의 설정은 당시로서는 꽤 신선했습니다. 먼 옛날, 은하계로부터 60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성운에는 상상 할 수 조차 없는 고도의 문명이 완성되고, 그들은 또 다른 우주 생명체를 찾아 우주를 헤매지만 오직 몇 개의 원시 혹성만을 찾아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명을 창조하기로 결심한다. 어찌보면 최근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영화의 내용은 [터미네이터]를 떠올립니다. 서기 2157년, 고도의 과학력을 자랑하는 외계 조직 '이드'가 지구를 침입하고, 이에 맞서 남극 바다 밑에 숨어 있던 아틀란티스의 후예 '엘카'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인물로 1996년의 오혜성을 선택합니다. 엘카 특수요원 마리는 그를 미래로 데려갈 임무를 띠고 혜성을 찾아온다. 혜성의 존재를 알게 된 '이드' 역시 킬러를 보냅니다.
[아마게돈]의 경우는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영화 한편에 억지로 구겨 넣은 결과물입니다. 이렇게 실패작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해 선보인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소동]은 TV판을 자연스럽에 연결시킨 스토리 라인으로 어린이 관객의 호응을 얻으며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희망의 불꽃을 살려냅니다. 하지만 [헝그리 베스트 5], [아마게돈]의 실패와 [아이공룡 둘리 : 얼음별 대소동]의 성공은 이후 우니라나 애니메이션의 주관객층을 어린이로 고정하게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만약 90년대에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활성화되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마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이 빈약함 속에 어렵게 생명을 이어나가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질보다는 홍보에 힘을 쏟았던 [블루 시걸]과 치밀한 계획없이 [블루 시걸]의 흥행 성공에 자극을 받아 마구 찍어내듯이 만들었던 이후 애니메이션들. 결국 1996년 이후 우리나라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기나긴 잠을 청하게 됩니다. 하지만 2000년에 들어서며 새로운 희망이 다가옵니다.
커밍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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