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케네스 브래너
주연 : 크리스 파인, 키이라 나이틀리, 케빈 코스트너, 케네스 브래너
개봉 : 2014년 1월 16일
관람 : 2014년 1월 16일
등급 : 12세 관람가
잭 라이언이 돌아왔다.
어쩌면 요즘 젊은 분들에게 잭 라이언은 조금 낯선 캐릭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첩보원의 대명사가 된 007 제임스 본드, 그리고 톰 크루즈로 인하여 할리우드 블럭버스터 첩보원으로 급부상한 이단 헌트, 처음엔 제임스 본드의 아류로 시작했지만 이젠 어엿한 첩보원의 대세 제이슨 본까지... 쟁쟁한 첩보원인 그들 사이에서 잭 라이언은 잊혀진 인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잭 라이언은 2002년 [썸 오브 올 피어스]를 마지막으로 12년동안 우리의 곁을 떠나 있었고, 그 사이 이단 헌트와 제이슨 본이 새로운 첩보원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자연스럽게 잊혀진 이름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만 하더라도 잭 라이언은 제임스 본드를 잇는 차세대 첩보원으로 이름을 날렸었습니다.
제가 잭 라이언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 영화인 [붉은 10월]이었습니다. 냉전이 종막에 다다랐을 즈음에 소련의 핵잠수함인 '붉은 10월'호가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면서 영화가 시작됩니다. '붉은 10월'호의 함장인 라미우스(숀 코네리)의 망명 의사를 모르는 미국은 소련의 군사적 무력 도발을 의심하고, 소련은 '붉은 10월'의 망명을 막기 위해 격침시키려 합니다. 이 영화에서 잭 라이언(알렉 볼드윈)은 CIA의 정보분석가로 나오는데, 라미우스의 미국 망명을 돕는 결정적인 역활을 해냅니다.
[붉은 10월]은 여러모로 제게 인상깊은 영화였습니다. [다이하드]의 존 맥티아난 감독의 명품 연출력과 제임스 본드로 익숙한 숀 코네리의 카리스마 연기, 그리고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잠수함 액션씬까지... 이제 막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한 제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었습니다.
잭 라이언의 영화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붉은 10월]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일까요? 개인적으로 잭 라이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후의 영화들은 그다지 인상깊게 보지 못했습니다.
1992년 개봉한 [패트리어트 게임]에서는 [붉은 10월]의 알렉 볼드윈 대신 해리슨 포드가 잭 라이언을 연기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해리슨 포드는 [붉은 10월]에서 잭 라이언역을 제의받았지만, 잭 라이언보다 라미우스 함장의 비중이 더 높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고 합니다. 알렉 볼드윈보다 나이가 많은 해리슨 포드가 잭 라이언을 맡게 되면서 [패트리어트 게임]은 원작의 많은 것을 바꿔야했는데, [붉은 10월]의 이전 이야기인 [패트리어트 게임]이 영화 상으로는 [붉은 10월]의 한참 이후의 이야기로 변모하기도 했습니다.
CIA를 은퇴하고 해군사관학교의 교수로 부임한 잭 라이언(해리슨 포드)은 휴가를 겸하여 런던을 방문했다가 테러리스트에 의한 영국 왕가의 공격을 목격하게 됩니다. 잭 라이언의 활약으로 테러를 막아내지만 잭 라이언에게 앙심을 품은 테러리스트의 우두머리 숀 밀러(숀 빈)는 복수를 위해 잭 라이언의 가족들을 공격하고, 숀 밀러를 막기 위해 잭 라이언은 CIA로 복귀하게 됩니다.
[패트리어트 게임]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곧바로 1994년 잭 라이언의 세번째 영화인 [긴급명령]이 제작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잭 라이언(해리슨 포드)은 CIA부국장의 위치에 오릅니다. [긴급명령]의 내용은 현직 대통령의 절친한 사이인 한 남자가 요트에서 일가족과 함께 몰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친구를 죽인 조직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던 잭 라이언은 국가의 거대한 압력을 받게 됩니다.
회춘하는 잭 라이언
잭 라이언의 [붉은 10월], [패트리어트 게임], [긴급명령]은 흥행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긴급명령]을 끝으로 90년대 잭 라이언의 영화도 한동안 맥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벤 애플렉을 새로운 잭 라이언으로 설정한 [썸 오브 올 피어스]가 개봉합니다.
사실 잭 라이언을 창조해낸 원작자인 톰 클랜시는 해리슨 포드의 나이가 너무 많아 잭 라이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때맞침 해리슨 포드가 [썸 오브 올 피어스]의 캐스팅을 거절하자, 젊은 잭 라이언을 요구하는 톰 클랜시의 의견은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게해서 벤 애플렉은 알렉 볼드윈, 해리슨 포드에 이어 제4대 잭 라이언으로 발탁된 것입니다.
[썸 오브 올 피어스]에서 잭 라이언은 CIA국장과 함께 핵사찰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합니다. 러시아의 핵사찰을 진행하며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잭 라이언. 한편 우크라이나에서 핵폭탄이 암시장에 나왔다는 첩보가 들어오고 네오 나치가 이를 입수하여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전쟁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잭 라이언이 나서지만 이미 핵폭탄은 슈퍼볼 개막식이 열리는 볼티모어로 향합니다.
톰 클랜시는 벤 애플렉이 잭 라이언을 연기한 배우 중 최고라고 인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2013년 10월 1일, 66세의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인 잭 라이언의 다섯번째 영화인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의 개봉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는 잭 라이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톰 클랜시의 원작을 영화화한 영화는 아닙니다.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는 '두바이'라는 제목으로 에릭 바나가 주연할 액션영화로 예정되었지만 제작사의 파라마운트의 요청으로 주인공 캐릭터가 잭 라이언으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역시 에릭 바나보다 훨씬 젊은 크리스 파인이 맡게 된 것이죠.
모두가 잭 라이언으로 해리슨 포드가 최고라고 말할때, 홀로 젊은 벤 애플렉이 잭 라이언으로 제격이라고 주장했던 톰 클랜시. 그가 벤 애플렉보다 젊은 크리스 파인의 잭 라이언을 봤다면 뭐라 했을지 궁금해집니다.
제가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가 개봉하던 날, 곧바로 극장으로 달려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처음 [붉은 10월]을 본 이후 잭 라이언을 오랫동안 기다렸던 저로서는 잭 라이언의 복귀를 온몸으로 반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가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냉전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경제 전쟁이라는 소재 자체도 흥미로웠고, '잭 라이언 비기닝'이라 할만한 잭 라이언의 탄생기도 재미있었지만, 첩보영화의 가장 중요한 영화적 재미라 할 수있는 긴장감이 그다지 느껴지지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다시 돌아온 잭 라이언은 반가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가 불만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경제 전쟁이다.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는 미국의 911 테러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로 인하여 무너진 911테러. 3천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911 테러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911 테러를 TV로 목격한 잭 라이언은 곧바로 경제학도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조국을 위해 일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해병대에 자원입대합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폭격으로 큰 부상을 당하고 하반신 마비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CIA의 월리엄 하퍼(케빈 코스트너)가 CIA 분석관으로 일하자는 제의를 합니다.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는 처음부터 잭 라이언이라는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쉴새없이 달립니다. 그 결과 잭 라이언은 911 테러를 계기로 경제학도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할만큼 애국심이 투철한 미국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CIA의 월리엄 하퍼의 눈에 띄게 되고, 재활병원에서 만난 캐시(키이라 나이틀리)와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한 가운데 경제학도였다는 잭 라이언의 특기는 미국 경제 붕괴를 계획하는 빅터 체레빈(케네스 브래너)의 음모에 맞설 적임자로 선택되어 집니다. 이렇듯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는 영화 전체를 통해 잭 라이언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보다는 영화의 초반에 잭 라이언을 완성시키고 곧바로 본론으로 뛰어드는 꽤 과감한 선택을 합니다.
경제 테러라는 소재도 꽤 신선했습니다. 911 테러이후 헐리우드 영화는 '테러와의 전쟁'을 주요 소재로 삼았었습니다. 도시를 폭파시켜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려는 테러리스트의 음모 속에 주인공이 테러를 막으며 영웅으로 등극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진짜 테러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테러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 테러의 경우는 자본주의 사회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는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잭 라이언은 빅터 체레빈의 음모에 대해 제2의 대공항이 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1929년 미국을 휩쓴 대공황은 미국 경제를 파탄으로 이끌었습니다. 그 결과 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경제적 빈곤 상태로 빠져들었습니다. 단순 테러의 경우는 911테러처럼 수천명의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킬 수 있지만, 제2의 대공항과 같은 경제 테러가 닥치면 수천만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경제적 빈곤으로 희생될 수 있습니다.
이념이 사라진 지구촌에서 이제 모든 경쟁은 경제로 통합니다. 미국이 유럽에 천연가스관을 독점 수주하자 러시아는 크게 반발합니다. 석유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정책이 러시아 경제를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러시아의 반격 또한 미국의 경제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평범한 소시민인 우리들은 알지 못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 테러.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는 다른 첩보 영화와는 달리 그러한 경제 테러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플러스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 영화가 내게 심심했던 이유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잭 라이언이 복귀해서 반가웠고, 잭 라이언 CIA의 분석관이 되는 과정을 보여줘서 흥미로웠으며, 경제 테러라는 소재가 신선했지만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는 딱 거기까지입니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이후 심심하게 진행될 뿐입니다.
잭 라이언이 천재적 분석관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잭 라이언이 어떻게 빅터 체레빈의 음모를 눈치챘는지에 대해서는 별 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그저 월리엄 하퍼가 '난 당신처럼 박사가 아니니 쉽게 설명해줘.'라고 외치는 것처럼 관객들 역시 잭 라이언이 '제 2의 대공황이 올갑니다.'라는 경고에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막아야지.'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어려운 경제 용어를 관객에게 들이대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최소한 잭 라이언의 천재적 분석 능력을 관객이 인정할 수 있게끔 치밀한 구성을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그저 잭 라이언이 '위험해.'라고 외친다고해서 '위험하구나.'라며 이해하고 영화를 보는 수동적인 관객은 요즘 드뭅니다.
게다가 잭 라이언이 빅터 체레빈의 사무실로 몰래 잠입하는 장면은 너무 고전적입니다. 소매치기로 빅터 체레빈의 지갑을 훔치고, 캐시를 이용한 미인계로 빅터 체레빈을 잡아두고, 건너편 건물에서는 월리엄 하퍼가 망원경으로 잭 라이언에게 지시를 하고, 잭 라이언은 훔친 카드키로 유유히 건물에 잠입하여 USB로 빅터 체레빈의 정보를 빼내는... 이건 뭐 너무 고전적이어서 고전 첩보영화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경제 테러가 소재라는 것도 신선함과는 별도로 밋밋한 긴장감을 안겨주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경제 테러라는 것이 사실 눈에 보이지 않고, 그로인한 참상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빅터 체레빈이 미국 경제를 무너뜨리는 계획을 세운다고는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설정에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빅터 체레빈의 경제 테러와 동시에 미국의 경제 일번지인 맨하탄에 대한 폭탄 테러가 선행되어집니다. 잭 라이언의 활약은 결국 경제 테러가 이뤄지기 전에 선행되는 폭탄 테러를 막는 것인데, 그러한 설정으로 인하여 오히려 다른 영화들과의 차별성을 잃게 됩니다. 경제 테러라는 소재를 선택했다면 그러한 소재 안에서 관객에게 긴장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기껏 경제 테러라는 소재안에 케케묵은 폭탄 테러를 집어 넣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전개만 되어 버렸습니다.
빅터 체레빈의 캐릭터도 불분명했습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라고 외치지만, 그것이 이 캐릭터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미국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적대심은 마치 냉전 시대의 유물처럼 보였는데, 그것조차 불분명해서 캐릭터의 매력이 반감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케네스 브래너를 감독으로도, 배우로도 좋아하지만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에서 그는 감독으로도, 배우로도 실망스러웠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한다.
[트루 라이즈]의 헬렌 테커스(제이미 리 커티스), 혹은 우리 영화인 [스파이]의 영희(문소리)를 연상시키는 캐릭터인 캐시도 너무 진부해서 실망스러웠고, 캐시를 연기한 키이라 나이틀리도 배우적 매력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의 문제점은 잭 라이언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경제 테러라는 신선한 소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아쉬운 연출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붉은 10월]이 만들어질 때만해도 첩보 영화라고는 '007 시리즈'가 거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007 시리즈'가 건재하고, 새롭게 등장한 강자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본 시리즈'도 계속해서 속편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 영화는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의 치밀한 이야기 구성, 그리고 배우들의 매력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12년만에 돌아온 잭 라이언은 이러한 변화한 첩보 영화 시장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액션은 부실했고, 치밀한 이야기 구성도 보이지 않았으며, 배우와 캐릭터의 매력 또한 크게 부각시키지 못했습니다. 그저 잭 라이언이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수 밖에 없는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추억의 캐릭터를 만났다고 만족하기엔
이 영화에 대한 내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기왕 우리의 곁에 복귀한 잭 라이언, 부디 더 멋진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길...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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