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성시흡
주연 : 정재영, 한지민, 차예련, 장광
개봉 : 2014년 1월 9일
관람 : 2014년 1월 12일
등급 : 15세 관람가
2014년, 쭈니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2013년이 시작되면서 저는 몇가지 작은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그것은 1년에 120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과 한달에 한권 이상의 책을 읽는 것입니다. 하지만 2013년이 후다닥 지나가고 2014년을 맞이하며 뒤돌아보니 계획대로 지켜진 것이 하나도 없네요.
특히 1년에 120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겠다는 당찬 계획은 결국 109편의 영화만을 극장에서 보며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120편의 영화를 보겠다는 계획을 지키기 위해 한달에 10편 이상을 극장에서 보려고 꽤 노력했었습니다. 실제로 1월에 10편, 2월에 11편, 3월에 10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등 나름 계획대로 실현해 나갔지만, 극장가의 비수기인 4월에 7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며 제 계획은 서서히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4월에 못채운 10편을 위해 5월에는 연차 휴가까지 내서 하루 종일 영화 보기에 돌입하며 다시 10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봤지만, 6월에 또다시 6편의 영화만을 극장에서 보며 120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계획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120편의 영화를 보겠다며 안간힘을 썼던 제 자신이 너무나도 우습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냥 마음 편안하게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그때마다 보면 극장에 가면 될것을 굳이 극장에서 보는 영화의 편수를 정해서 그 편수에 맞춰 영화를 보기 위해 노력을 했던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그래서 2014년에는 그따위 이상한 계획은 세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편수가 중요한 것이 아닌,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놓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요.
이미 2013년의 개봉작 중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인 [집으로 가는 길]을 극장에서 놓친 저는, 놓친 영화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새로 개봉한 신작 영화들을 맘껏 즐기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뜻밖의 자유를 맞이한 지난 일요일, 신작인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와 [플랜맨]을 선택한 것이죠.
사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너무 강렬한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3시간 내내 영화에서 보여줬던 중독성 강한 돈의 맛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기분이 멍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보고나서 본 [플랜맨]은 그러한 멍한 기분을 단숨에 풀어줬습니다.
[플랜맨]은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는 제목 그대로 '플랜맨'의 이야기입니다. 한정석(정재영)은 마치 알람 시계처럼 모든 일을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실행합니다. 그는 예측불가능하고 무질서한 것을 싫어합니다. 특히 더러운 것은 절대 만지지 못하고, 어떤 물건이든 가지런히 정리정돈되지 않은 것을 보면 거의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입니다. 이쯤되면 결벽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과 비슷한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이지원(차예련)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하지만 지원은 선언합니다. 자신은 변하겠다고.... 그러니 비슷한 한정석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지원의 선언에 정석도 얼떨결에 "나도 변하겠습니다."라고 말해버립니다. 그리고 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유소정(한지민)과 밴드를 결성하여 오디션에 나가게 됩니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살린 것은 한지민의 귀여운 매력이다.
사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만 놓고본다면 [플랜맨]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는 영화입니다. 모든 것에 계획을 세우는 한 남자가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한 여자를 만나 서로 티격태격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영화의 마지막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남자 주인공이 결벽증이라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로맨틱 코미디의 기본 공식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영화인 셈입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기본 공식을 충실히 따라 가는 [플랜맨]은 특별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재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주연배우의 매력으로 영화적 재미를 완성하는 장르임을 감안한다면 이 영화에서 한지민의 매력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 한지민의 등장 장면은 그다지 인상깊지 못했습니다. 지원 대신 편의점을 봐주고 있던 소정을 정석은 착각하고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때 편의점 계산대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소정. 그러한 소정의 첫 등장을 보며 '너무 식상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편의점 계산대에 있는 사람이 지원이 아닌 소정임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 클럽에서 소정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에서 하트가 '뿅뿅'하고 나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녀가 정석의 이야기를 가사로 쓴 '플랜맨'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과 포털 사이트에서 뮤직 비디오가 공개된 '개나 줘버려'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고양이 분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한지민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마음속으로 맘껏 '브라보'를 외쳤습니다.
물론 [내가 살인범이다], [열한시] 등에서 개성강한 연기를 펼쳐 보였던 정재영의 코믹 연기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개성강한 얼굴을 가진 정재영이 개성강한 한정석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니 웃기긴 했지만 매력적이라 할 수는 없었습니다.
[플랜맨]의 음악은 개그맨으로도 잘 알려진 유세윤과 뮤지가 결성인 UV가 맡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플랜맨]에서 소정이 부르는 노래는 기존 음악과는 약간 다른 코믹한 가사와 신나는 선율로 제 귀를 사로 잡았습니다.
'플랜맨'과 '개나 줘버려'외에도 소정과 정석이 오디션에서 부른 '유부남'. 그리고 소정이 클럽에서 처음 부른 곡인 '삼각김밥'과 경쾌한 '플랜맨'을 슬픈 발라드로 편곡한 곡까지... [플랜맨]은 2012년저의 첫 영화였던 [원더풀 라디오] 이후 OST로 제 마음을 사로 잡은 한국영화입니다. 작곡에 참여한 유세윤은 [원스]의 OST를 능가하는 음원이 나왔다며 자신감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결코 농담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플랜맨] OST의 매력을 한지민은 잘 표현한 것입니다. 정재영 역시 매력적인 OST에서 한 몫을 하는데, 오디션장에서 건반을 치며 '유부남'을 부르는 장면과 영화의 마지막 엔딩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한지민과 함께 '플랜맨'을 부르는 장면들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로 묵직했던 제 마음을 풀어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만큼 좋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물론 러닝타임이 1시간 55분인 [플랜맨]은 소정과 정석의 사랑, 그리고 OST로만 영화를 채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중간 중간에 소정과 정석의 사연이 소개됩니다.
유명 작곡가와 사랑에 빠졌던 소정. 하지만 그는 유부남이었고, 나중에 소정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그녀의 동료들은 소정을 '나쁜년'이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밝은 표정뒤에 감춰졌던 소정의 그러한 아픔은 그러나 소정이 오디션장에서 '유부남'을 부르며 어느정도 해소됩니다. 여기까지는 무난했습니다. 소정의 사연은 소정이 정석에게 밴드하자고 제안하고, '유부남'이라는 곡을 부를때 충분히 예견되었던 사연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정의 사연은 남녀간의 사랑 문제이기 때문에 소정이 오디션장에서 공개적으로 '유부남'을 불렀다고 해서 당사자인 유부남 작곡가가 처벌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정의 마음에서 그를 완전히 지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속시원하게 해결된 사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정의 사연이 해소될 때쯤, 정석의 사연이 드러납니다.
영화의 초반, 한때 국민MC였지만 이젠 한물가서 지방 축제 MC로 전전하는 구상윤(장광)이 나옵니다. 사실 저는 구상윤이라는 캐릭터가 [플랜맨]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은 조금 뜬금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구상윤의 진가는 후반부에 발휘됩니다. 그는 처음부터 정석의 사연을 위해 준비되었던 캐릭터였고, 정석의 사연이 드러날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정석의 사연 역시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중간 중간, 정석의 사연에 대해서 [플랜맨]은 힌트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특별하지 않은 사연이 결국 제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영화의 후반부를 이루는 정석이 다니는 정신 병원의 발표회. 그러한 발표회에서 모든 갈등이 마무리되는 것은 [음치 클리닉]에서 썼었던 매우 촌스러운 방식입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저는 제가 극장에서 남모르게 눈물을 닦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석이 무대 위로 올라가고 그동안 감췄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그가 '플랜맨'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소개하자 제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저는 슬픈 코미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코미디 영화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웃겨야 할텐데... 초반엔 관객을 웃겼다가 후반에서 관객을 울리려하는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플랜맨]은 예외로 해야할 것 같습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구상윤을 비롯하여 정석의 사연에 대한 힌트를 충분히 깔아 놓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이 정석의 사연을 어렴풋하게나마 예상하게 만들어 놓고, 정재영의 연기력에 기대어 그날의 진실을 이야기하니 아무리 슬픈 코미디를 싫어한다며 삐딱한 자세로 영화를 보던 저도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계획은 안녕하신가요?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학교에서도 계획을 세워 그에 맞게 실천하는 삶을 바람직한 삶이라 배웠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회사일을 하는데 있어서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라고 직장 상사의 잔소리를 자주 듣게 됩니다.
계획... 분명 우리의 삶에서 미리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계획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제겐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넌 왜 결혼을 하지 않냐고 물으면 어느 정도 사회적 기반을 이뤄놓고 결혼을 생각한다며 나름의 결혼 계획을 말합니다. 그것이 그 친구의 10년전 대답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세상 사는 것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자신의 결혼 계획을 위해 열심히 일하느라 결혼 상대를 만날 시기를 놓쳤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채 혼자 쓸쓸히 지내고 있습니다.
한정석의 사연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인 정석을 위해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 속에는 정석의 의견은 배재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본인이 싫다면 그 계획은 결코 좋은 계획이 아닙니다. 그녀는 그러한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고, 그것은 곧바로 정석에게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영화의 초반 결벽증에 걸린 정석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습니다. [플랜맨] 역시 그러한 정석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코믹하게 표현해내며 영화의 재미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정석이 사연을 알게 된 이후에는 그의 행동이 슬퍼 보였습니다. 그 오랜 시간동안 그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미워했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영화의 초반 그를 보며 웃었던 내 자신이 미안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한줄기 굵은 눈물을 쏟아내고 나면 그 뒤에는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이상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결백증에 가까운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 그리고 더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제가 뻔해보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로맨틱 코미디를 즐겨 보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해피엔딩 때문일 것입니다.
2014년 저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까짓거 뭐 어떻습니까? 아무런 계획 없이 오늘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플랜맨]을 보고 집으로 향하며 1년에 120편을 보겠다는 계획을 맞추기 위해 아둥바둥거리며 극장으로 달려갔던 제 모습이 떠올라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래, 2014년은 아무런 계획없이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자!'는 것이 바로 제 계획입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10년도 넘은 저희 집의 낡은 TV를 스마트 TV로 바꾸자는 구피의 말에 저희 부부는 TV 바꿀 돈을 모을 계획을 세워야 했습니다. ^^)
2014년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나의 1년은 무사할까?
자꾸 뭔가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나 역시 '플랜맨' 기질이 다분하기 때문은 아닐까?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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