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용의자] - 욕심에 먹힌 자가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우리를 이길 수 없기를...

쭈니-1 2013. 12. 31. 17:15

 

 

감독 : 원신연

주연 : 공유, 박희순, 조성하, 유다인, 김성균

개봉 : 2013년 12월 24일

관람 : 2013년 12월 30일

등급 : 15세 관람가

 

 

2013년 마지막 영화는 [용의자]로 정했다.

 

2013년도 이제 단 몇 시간 후면 지나가버립니다. 내일은 2014년. 물론 2013년에서 2014년으로 해만 바뀌었을 뿐, 내일은 같은 아침, 같은 하루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한 해가 바뀐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2013년의 마지막 날, 저희 가족은  유니버셜 아트센터에서 하는 유니버셜 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을 보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웅이는 물론 제게도 처음으로 발레와 만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영화와 비교해서 거의 10배가 넘는 비싼 관람료를 내고 보는 발레이니만큼 꼭 만족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3년을 보내며 영화를 빼놓으면 섭섭하겠죠? 최근 마지막으로본 영화가 [캐치미]인데, 하필 [캐치미]에 만족할 수 없었던 저는 [캐치미]로 2013년 마지막 영화를 장식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2014년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느라 야근하고 돌아온 월요일 밤, 저와 구피는 피곤에 쩔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2013년의 마지막 영화로 선택한 것은 [용의자]입니다. 한국영화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라는 소문이 이미 자자하고, 구피가 공유의 오래된(그가 스타덤에 오르기 전부터) 팬이라 [용의자]는 구피와 저의 2013년 마지막 영화로 딱 알맞은 선택이 되었습니다.

 

일단 [용의자]를 보고나서의 느낌은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입니다. 제가 [용의자]를 보기 시작한 시간은 밤 9시 55분. 영화가 끝나고 시계를 본 저는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깜짝 놀랬습니다. 기껏해봐야 11시 30분 정도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용의자]는 2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이 영화가 지루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가족의 원수를 찾아 헤매는 북한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가 살인 누명을 쓰고 쫓긴다는 설정은 상당히 단순합니다. 이러한 단순한 설정으로는 긴 러닝타임을 끌어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용의자]는 해냈습니다. 끊임없는 액션으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놓고, 공유와 박휘순, 그리고 조성하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관객들이 영화 속에 집중하게 만든 후, 죽은 아내와 얼굴조차 보지 못한 딸을 그리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감성적인 측면까지 끌어올린 것입니다. [용의자]는 이 모든 것을 2시간 17분이라는 러닝 타임을 채워 넣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저는 서글퍼졌습니다. 지동철의 독기어린 눈빛이 서글펐고, 김석호(조성하)의 능글맞은 웃음에 대항하지 못하고 이용당하는 북진회의 처절한 폭력이 서글펐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이 이렇게 악역에 어울리게 된 현실도 서글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의자]는 시원시원한 액션영화라기 보다는 제겐 서글픈 감성의 액션영화였습니다.

 

 

그들이 살아야할 이유

 

IMF 시절, 대학에 졸업했지만 취업은 하지 못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꿈도 희망도 없는 하루 하루를 살던 제게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후배가 물었습니다. "형은 왜 사세요?" 제 대답은 "죽을 용기가 없으니 살아야지."였습니다. 당시에는 별 생각없이 한 대답이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무심코했던 그날의 대답이 제 머릿속을 맴돕니다.

우리는 왜 사는 것일까요? 그저 죽지 못해, 살아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것은 너무 슬픈 일이 아닐까요? 삶의 의미.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삶에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릅니다.

지동철에게는 살아야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아내와 어린 딸을 죽인 리광조(김성균)를 찾아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복수를 끝내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에게 이 질긴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었습니다. 하지만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이상 그는 결코 죽을 수가 없습니다.

[용의자]는 지동철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습니다. 그가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던 박건호(송재호) 회장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박건호 회장의 살인 용의자로 지동철이 지목됩니다. 지동철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기무사의 민세훈(박희순) 대령은 지구 끝까지라도 지동철을 뒤쫓을 기세이고, 국정원의 김석호는 자신의 사조직인 북진회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지동철을 죽이려 시도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지동철은 수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총에 맞는 것은 다반사이고, 한강 다리에서 뛰어 내리고, 차량 추격전에서도 여러차례 죽음과 맞이합니다.

[용의자]의 액션은 바로 그러한 지동철의 상황에서 생겨납니다. [용의자]의 액션씬에 관객이 두 눈이 휘둥그래지면 질수록 지동철이 처한 상황은 더욱 극한으로 치닫습니다. 하지만 지동철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 지독한 삶을 살아가야하는 이유를 달성하기 전에는...

[용의자]에 나오는 수 많은 캐릭터들은 모두 삶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동철을 도와주는 최경희(유다인)는 진실을 밝혀 명예 회복을 하고 기자로 복직하는 것이 삶의 이유이고, 끝까지 지동철을 뒤쫓는 민세훈은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삶의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굴욕적인 패배감을 안겨준 지동철에게 짓밟힌 자존심을 되찾기위해 무지막지하다고 할 정도로 지동철을 추격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김석호와 타협하지 않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리광조을 비롯한 북진회의 일원들에게도 살아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그들은 김석호의 명령에 의해 잔혹한 살인마가 되어 지동철을 죽이려 달려들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들 역시 지동철처럼 처절합니다. 지동철을 죽이라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리광조와 저격수인 SA2(송재림)의 마지막 절망적인 표정은 그들의 가족이 김석호에 의해 앞으로 처할 상황을 암시하기도합니다.

 

 

돈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스포 포함)

 

그렇다면 이 영화의 악역인 김석호가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처음 그가 박건호 회장을 죽이고 지동철을 쫓으면서 내세운 것은 국가안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내세운 국가안보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한...

제가 만약 여러분들에게 '여러분이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어쩌면 몇몇 분들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과연 돈은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바로 김석호에게 있습니다.

김석호는 국정원에게 요직을 맡은 권력자입니다. 그는 이미 온갖 부정부패와 검은 뒷거래로 셀수 없이 많은 돈을 감춰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돈이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돈을 삶의 이유로 내세운 김석호는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도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을 살 뿐입니다. 그것은 삶의 이유가 아닌 집착일 뿐입니다.

그러한 김석호의 집착은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끕니다. 그것은 예정된 수순입니다. 만족할 수 없는 삶은 더 큰 욕심을 불러 일으키고, 그러한 욕심은 스스로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며, 몇 번은 그 위험에서 운좋게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더 큰 욕심으로인해 스스로 판 함정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욕심에 먹힌 자들의 숙명입니다.

 

결국 [용의자]는 욕심에 먹힌 자가 자신의 더 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자들에게 파멸을 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지동철은 리광조의 죽음 이후 또 다른 살아야할 이유를 찾았고, 민세훈은 지동철에게 짓밟힌 자존심도 회복하고, 정의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으며, 최경희는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진실을 밝혀내고, 자신의 명예를 되찾았습니다. 살아야할 이유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앞으로 전진했던 그들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댓가를 이뤄낸 것이죠.

만약 김석호가 이 대결에서 이겼다면... 아마 김석호는 또 다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음모를 꾸몄을 것이며 지동철, 민세훈, 최경희와 또다시 맞붙게 되었을 것입니다. 몇 번은 김석호가 이길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는 지게 될 것입니다. 욕심은 끝이 없지만 모든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15년 전 제게 '형은 왜 사세요?'라고 묻던 후배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용의자]의 많은 캐릭터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저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나의 행복을 위해 저는 열심히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이 행복에는 나의 가족들과 새로운 영화들도 있습니다. 15년 전과는 달리 저는 살아야할 이유를 가지게된 것입니다. 

 

 

조성하가 진심으로 얄미웠다.

 

[용의자]를 보며 진심으로 김석호가 미웠습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는 미명아래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그가 미웠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독재자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이 되면서 채워도 채워도 채우지 못하는 돈의 욕심에 먹힌 그가 조금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돈을 움켜죈다면 그는 만족할 수 있었을까요? 아뇨. 욕심이라는 놈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평생 삶에 만족하지 못하며 또 다른 욕심을 위해 발버둥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김석호를 완벽하게 연기한 조성하의 연기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너의 가족을 지키고 싶으면 지동철을 죽여.'라고 시키는 김석호의 모습. 지동철에게 '너흰 절대 나를 이길 수 없어.'라며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이던 그를 진정 죽이고 싶을 정도로 조성하의 연기는 완벽했습니다.

구피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맷 데이먼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공유의 액션 연기도 좋았습니다. 특히 저는 그가 북한에서 밧줄에 목이 매달린 장면에서 그의 연기에 탄성을 보냈는데, 팔을 뒤로 꺾어 목을 감고 있는 밧줄을 푸는 장면과 그의 실핏줄이 터질 듯한 눈빛을 보며 내 몸이 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와는 달리 리광조를 연기한 김성균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김성균은 요즘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통해 인기 몰이 중입니다. 그래서인지 [용의자]에서 키포인트가 될 리광조의 첫 등장에서 몇몇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응답하라 1994>가 아니었다면 리광조의 등장이 영화를 더욱 긴장하게 했을텐데... 그것은 [용의자]의 잘못도, 김성균의 잘못도 당연히 아니지만, 아쉬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네요.

최경희를 연기한 유다인의 연기는 모랄까 조금 미지근했습니다. 진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열혈 여기자의 카리스마를 느끼기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생각됩니다. 그 외에 [용의자]에서 유일한 코믹 캐릭터 조대위 역의 조재윤과 지동철과 카리스마 맞대결을 펼친 박희순은 딱 알맞은 캐스팅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2013년의 마지막날 새벽... 집으로 돌아오는 길. 2시간 17분동안 폭풍처럼 내달린 [용의자]의 지동철을 생각하니 가슴이 조금 아려옵니다. 2014년에는 정당한 삶의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욕심에 막힌 자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2014년에는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이 더이상 악역이 아닌 대한민국의 국민을 지켜줄 수 있는 기관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당연한 것을 바라는데, 왜 전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또 다시 서글퍼집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부디 국가가 국민의 당연한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나는 꿈꾼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