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캐치미] - 사랑으로 감싸안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다.

쭈니-1 2013. 12. 27. 13:09

 

 

감독 : 이현종

주연 : 주원, 김아중, 백도빈

개봉 : 2013년 12월 18일

관람 : 2013년 12월 26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난생 처음 위 내시경을 받다.

 

만 40세가 되면 국민건강보험으로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이라는 것을 받게됩니다. 이전에는 사무직은 1년에 한번, 비사무직은 2년에 한번 피검사, 소변검사, X선촬영 등 기본적인 검사만 받으면 되었지만 만 40세가 넘어가면 위암, 대장암, 간암 등 검사 항목이 좀 더 다양화되는 것입니다.

저는 2013년 만 40세가 되어 위암 검사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다시말해 위 내시경 검사를 국민건강보험에서 무료(소정의 진료비는 내야합니다.)로 해준다는 것이죠. 위 내시경이라...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제 입에 무엇인가를 삽입해서 위를 촬영한다니... 생각만해도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2013년이 가기전에 위 내시경을 받아야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두기만 했습니다.

이제 2013년도 며칠 남지 않은 상황. 그런데 아직 위 내시경을 받지 않은 사실을 구피한테 딱 걸리고 말았습니다. 빨리 종합병원에 예약해서 2013년이 가기 전에 위 내시경을 받으라고 닥달하는 구피. 결국 저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집 근처 종합병원에 위 내시경 검사를 예약했습니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위 내시경을 받을 자신이 없어서 6만6천원의 추가 비용을 지불해서 수면 내시경을 받았습니다. 수면 내시경을 받으러가면서도 바짝 긴장을 했는데, 언제 받았는지도 모르게 후다닥 끝나버리더군요. 그리고 다행히 제 위는 아주 깨끗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흔한 위궤양도 없다며 의사가 아주 흡족해하던...

 

최소한 제 위는 아주 튼튼하다는 사실을 의사에게 듣고나니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위 내시경을 받기 위해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낸 만큼 이 좋은 기분을 이어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아직 [집으로 가는 길]과 [캐치미], [용의자]를 보지 못한 상황. 하지만 좋은 기분을 잇기 위해 밝은 분위기의 영화를 보고 싶었고, 결국 제 선택은 [캐치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저는 제 선택을 후회하고 말았습니다. 회사 송년회로 본 뮤지컬 <고스트>에서 매력을 뽐냈던 주원과  [미녀는 괴로워], [나의 PS 파트너]를 통해 결코 평범하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진가를 발휘했던 김아중이 주연을 맡은 [캐치미]. 그러나 이 영화는 제 기대와는 달라 저를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물론 [캐치미]를 볼 당시 극장의 분위기 때문에 제가 영화에 더욱 집중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평일 낮에 찾은 극장이기에 한가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고등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왔는지 극장 안은 남녀 고등학생들로 가득 찼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영화를 보며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던지... 특히 건너편 좌석의 한 남학생은 주원과 김아중의 키스 장면에 환호를 보내는 등 감정이입을 해야하는 중요한 장면마다 판을 깨버렸고, 제 옆의 여학생은 코를 골며 자기까지했습니다. 

뭐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영화를 보며 푸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들로 인하여 쌓인 내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렇지않아도 [캐치미]가 기대와는 달리 실망스러웠는데, 극장안 고등학생들 때문에 좋았던 기분이 더욱 나빠지고 말았습니다.

 

 

무면허 뺑소니가 그렇게 가벼운 죄였어?

 

[캐치미]의 주인공은 검거율 100% 미제사건 제로를 자랑하는 전문프로파일러 이호태(주원)입니다. 그는 범죄자를 대할때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범죄자들은 인간이 아닌 괴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그가 20대 여성들을 살해한 연쇄살인마의 정체를 밝혀내고 검거 직전까지 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차량 한대가 연쇄살인마를 치고 뺑소니칩니다. 연쇄살인마 검거 실적을 뺑소니범에게 빼앗긴 것이죠. 자존심이 상한 이호태는 뺑소니범 검거에 나섭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간단히 뺑소니범인 윤진숙(김아중) 검거에 성공합니다. 그런데 아뿔사... 윤진숙은 바로 10년전 헤어졌던 이호태의 첫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자! [캐치미]의 문제는 처음부터 발생합니다. 왜 윤진숙은 뺑소니범이 되어 이호태의 앞에 나타나야만 했을까요? 사실 저는 영화를 보며 윤진숙이 우연히 연쇄살인마를 차로 친 것이 아닌,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호태와 윤진숙이 처음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이호태는 깜짝 놀라지만 윤진숙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담담하게 행동합니다. 그래서 저는 뺑소니 사건은 윤진숙이 이호태에게 접근하기 위한 계획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연쇄살인범 뺑소니 사건은 그냥 우연이었고, 그렇게 지나친 우연으로 다시만난 이호태와 윤진숙은 얼떨결에 동거를 시작하고 경찰과 범죄자라는 신분을 넘어 알콩달콩 사랑을 시작합니다.

 

[캐치미]의 첫번째 문제는 바로 이러한 우연입니다. 물론 우연이라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호태가 검거하려고 했던 연쇄살인마가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도 기가 막힌 우연인데, 그 뺑소니범이 이호태의 10년전 첫사랑이라는 점은 너무 지나친 우연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뺑소니범이 윤진숙임을 확인한 이호태는 갑자기 태도를 바꿉니다. 그는 윤진숙에게 '사실 네가 큰 일을 해낸거야. 그 녀석은 연쇄살인마거든.'이라며 오히려 윤진숙을 추켜세웁니다. 그리고 감기에 걸린 윤진숙을 경찰서가 아닌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배려까지 해줍니다.

연쇄살인범... 당연히 큰 죄입니다. 하지만 뺑소니범도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윤진숙은 무면허이기까지했습니다. 아무리 피해자가 연쇄살인범이라할지라도 윤진숙은 엄연한 중범죄자입니다. 그런데 이호태는 윤진숙이 자신의 첫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죄를 가볍게 여깁니다.

[캐치미]는 영화의 초반, 뺑소니 사건으로 많은 것을 잃고 시작합니다. 너무 지나친 우연에 기댄 설정으로 영화의 현실감을 떨어뜨렸고, 아무리 예뻐다고해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무면허 뺑소니라는 죄를 윤진숙에게 씌웠으며, 그러한 윤진숙을 감싸도는 이호태의 선택은 도저히 영화 속의 이호태와 감정이입을 할 수 없게끔 막아섭니다. 도대체 왜 이현종 감독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뺑소니 사건을 영화의 오프닝에 삽입한 것일까요?

 

 

정말 프로 맞아?

 

차라리 이호태가 미술품 절도 사건을 수사하다가 윤진숙과 마주친 것이라면 조금 평범해도 억지스러운 우연도 없고, 무면허 뺑소니를 저지르지 않은 윤진숙에 매력을 느끼며 영화를 감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캐치미]는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진 것입니다.

이렇게 첫 단추부터 잘 못 채워지니 제 눈에는 [캐치미] 의 허술한 부분만 자꾸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파일러라는 이호태는 전혀 프로파일러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영화의 초반 다른 경찰들은 미궁에 빠진 연쇄살인사건을 이호태는 정확하게 범인을 꿰뚫어 해결합니다. 그렇다면 이호태가 최고의 프로파일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캐치미]는 그가 이 사건의 진범을 추리해내는 과정을 관객 앞에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설명 따위는 없습니다.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호태가 최고의 프로파일러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저 이호태는 최고의 프로파일러이고, 관객은 그 사실을 의심없이 믿어야만합니다.

사정은 윤진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전설적인 대도라고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그녀의 훔치는 솜씨는 잠긴 문을 따내고 남의 주머니 지갑을 쏜살같이 훔치는 것 뿐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보안을 자랑한다는 건물에 침입하는 장면에서조차 윤진숙의 실력은 좀도둑의 자잘한 기술 뿐입니다.

 

무면호 뺑소니를 저질러놓고도 '나 잡아가세요.'라며 자신의 차를 집 앞에 떡하니 주차를 해놓고, 경찰들이 추적 가능하게 신용카드를 남발하거나, 호프집에서는 자신의 신분이 발각났음에도 불구하고 태연스럽게 맥주를 마시다가 경찰이 출동하자 그제서야 빠져나가는 등. 그녀는 전설적인 대도라기 보다는 얼치기 좀도둑에 가까웠고, 그러한 그녀를 체포하지 못하는 경찰은 더욱 얼간이 같았습니다.

[캐치미]는 로맨틱 코미디이기도 하지만 범죄 스릴러 영화이기도 합니다. 범죄 스릴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 탄성을 지를만한 주인공의 귀신같은 범죄 실력입니다. 그런데 [캐치미]는 범죄 스릴러의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정작 범죄 스릴러가 가지고 있어야할 영화적 재미에는 관심(능력)이 없어보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모든 것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우연으로 끝이 납니다. 영화의 후반부 경찰내 이호태의 라이벌인 오경위(백도빈)가 윤진숙의 소재지를 알아내는 장면만해도 그렇습니다. 그저 중국음식을 먹으며 TV로 프로야구를 시청하다가 관중석에 앉은 윤진숙을 발견하는 것으로 처리됩니다. 이 무슨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란 말입니까? 그저 저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났습니다.

 

 

사랑으로 감싸안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다.

 

물론 [캐치미]가 전혀 재미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10년전 순진했던 미술학도인 이호태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윤진숙의 사연 장면은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윤진숙이 도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도 어린 그녀의 절박한 심정이 느껴졌었습니다. 

이호태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윤진숙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좋았는데, 진정 사랑한다면 쪽팔림을 참고 견뎌내는, 사랑하는 사람만을 위한 용기가 필요한 법이죠.

하지만 그러한 이호태와 윤진숙의 사랑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공감하게 하려면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켰어야 했습니다. 특히 범죄자를 주인공으로한 사랑이라면 더욱더 관객이 주인공의 범죄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서할 수 있는 범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캐치미]는 처음부터 그러한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어쩌면 이현종 감독은 무면허 뺑소니가 그렇게 큰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피해자는 연쇄살인범이니 관객이 윤진숙의 무면허 뺑소니를 용서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소한 저는 무면허 뺑소니를 쳐놓고 태연스러운 윤진숙을 이해하지도, 용서할 수도 없었습니다.

윤진숙이 옆집 남자(우정출연 배우의 정체도 큰 재미입니다.)의 집을 자기 집처럼 맘대로 오고가는 장면, 윤진숙이 훔친 도자기를 제자리에 가져다놓고 이호태가 피해자를 '보험 사기'로 윽박질러 엄연히 있던 죄를 없던 죄로 만드는 장면 등은 사랑으로 감싸안을 수 있는 죄의 범위를 넘어서 마구 폭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캐치미]는 신인 이현종 감독의 영화입니다. 그는 자신의 데뷔작을 안전하게 선택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배우의 매력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장르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주연을 맡은 배우는 주원과 김아중입니다. 이 정도면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입니다. 저 역시 아무런 정보없이 [캐치미]를 기대했을 정도니까요. 이현종 감독은 이 빛나는 배우들을 알콩달콩 잘 버무려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로는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이현종 감독의 최대 실수는 범죄 스릴러에 대한 능력이 전혀 없으면서 어정쩡하게 범죄 스릴러를 흉내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주원과 김아중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에 걸맞는 배우를 캐스팅했음에도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재미마저 송두리째 날려 버렸습니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은 좋았습니다. 매우 건전하게 끝이 났으니까요. 하지만 끝이 좋다고해도 그 과정마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리 사랑한다고해도 저래도 되나?'라는 심정으로 영화를 봤더니 영화가 끝나도 그 뒷맛이 영 개운하지 못했습니다. [캐치미]는 기대와는 달리 흥행 성적이 신통치 못하다고 합니다. 이현종 감독은 왜 관객들이 이 영화의 사랑을 응원하지 못하는지 잘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나, 웬만하면 로맨틱 코미디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영화를 즐긴다.

하지만 윤진숙의 범죄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만큼

이 영화의 사랑을 응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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