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양우석
주연 :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곽도원, 임시완
개봉 : 2013년 12월 18일
관람 : 2013년 12월 19일
등급 : 15세 관람가
송강호라는 배우에 대한 믿음.
연말이 되니 정말 약속이 많네요. 회사 송년회에, 부서 송년회, 회사 동호모임 송년회는 물론이고, 친구들과의 송년회와 친척의 결혼식까지 12월에 모두 몰려 있어서 하루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이 12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보고 싶은 영화는 꼬박 꼬박 개봉하니 제 마음은 급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날 회식으로 인한 숙취 때문에 근무 중에서도 눈꺼플이 자꾸만 감기던 목요일 저녁. 집에 얼른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언제 또 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무리해서라도 영화 한편을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피곤한 것으로 치면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구피이기에 당연히 영화를 보러가자고 하면 '오늘 난 피곤하니 혼자 봐!'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별 기대없이 '오늘 영화 한편볼까?'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뭘 볼건데?'라는 긍정적인 답장이 왔습니다. 저는 [집으로 가는 길], [변호인], [캐치미] 이렇게 세편의 영화를 제시했고, 구피는 그 중 [변호인]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구피가 묻습니다. "[변호인]은 어떤 영화야?" 아니, 어떻게 영화를 고르는데 있어서 어떤 영화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변호인]을 선택했냐고 물으니 그냥 송강호가 출연하다고 해서 [변호인]을 고른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하긴 생각해보니 송강호가 출연한 영화 중에서 재미없었던 영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제 송강호는 그의 존재만으로 믿고 보는 브랜드가 된 것이죠.
2013년 한해동안에 [설국열차], [관상]에 출연한 송강호. 이 두 영화는 각각 934만, 913만 관객을 동원하며 [7번방의 선물]에 이어 2013년 박스오피스 2, 3위를 차지했습니다. 한마디로 송강호는 흥행의 보증 수표인 셈이죠.
하지만 저는 [변호인]을 그다지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변호인]은 80년대 군사정권시절, 우리나라의 우울한 자화상이라는 어두운 소재와 故노무현 前대통령을 모티브로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없는 연말을 보내고 있는 저는 가벼운 분위기의 영화 [캐치미]가 [변호인]보다 더 끌렸습니다.
하지만 송강호는 아무리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라고 할지라도 영화에 서민적인 웃음을 담아낼줄 아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임찬상 감독의 [효자동 이발사]에서 70년대 청와대 이발사가 된 성한모라는 소시민을 연기하며 암울한 시대, 암울한 분위기의 영화에서도 서민적인 웃음을 담아낸 적이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2013년 초히트작 [설국열차], [관상]도 그다지 가볍고 밝은 분위기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설국열차]는 빙하기의 지구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인 '설국열차'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 SF영화입니다. [관상]은 어린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와 그로인한 피바람 속에서 아들을 지키기위해 고군분투하는 관상쟁이의 비극을 담은 영화입니다. 그러고보니 이들 영화 모두 독재자에 항거하는 소시민들 다룬 영화들이네요. 송강호에 대한 믿음은 바로 그런 그의 전작들에서 시작되었고, 저와 구피가 [변호인]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빽없고, 돈없고, 가방끈 짧은 변호사, 돈독에 오르다.
1963년 12월부터 16년 동안 정권을 장악했던 독재자 박정희가 1979년 10월에 암살되자, 전두환은 12.12 군사정변을 일으켰습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강제로 진압하여 정권을 장악한 그는 1980년 9월부터 1988년 2월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최고 권력을 누렸습니다.
[변호인]은 바로 그러한 군부독재의 절정기인19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한 영화입니다. 고졸 출신으로 빽없고, 돈없고, 가방끈 짧은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은 판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 부산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립니다. 그의 아이템은 부동산 등기 전문 변호사. 다른 변호사들은 그러한 송우석에게 '변호사 얼굴에 먹칠한다'며 손가락질 하지만 송우석은 부동산 광풍이 불던 당시 분위기에 편승하여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부산의 변호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송우석을 따라 부동산 등기 사업에 뛰어들자 이번엔 세무 전문 변호사로 새로운 변신을 합니다. 그는 상업계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잇점을 이용해서 세무회계사에 버금가는 실력으로 역시 큰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변호인]은 송우석의 성공의 포커스를 맞추지 않습니다. 분명 그는 명문대 출신이 판을 치는 법조계에서 지방의 상업계 고등학교 출신으로 동료들의 멸시와 따돌림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가 어렵게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면서도 판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온 이유입니다. 그런 그가 다른 변호사들은 꺼리는 일을 하며 큰 성공을 거둡니다.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호인]은 송우석이 변호사로 성공을 거둔 그 이후를 이야기합니다.
세무 전문 변호사로 부산 지역에서 제일 잘나가는 변호사가된 송우석. 때맞침 대기업에서 스카웃 제의까지 받습니다. 이제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인 셈입니다.
영화의 초반 동창 회장이 된 그는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자수성가 성공기를 자랑스럽게 떠듭니다. 다른 친구들은 그런 그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지만 오직 한 사람 신문사 기자인 이윤택(이성민)만은 그를 삐딱하게 쳐다봅니다.
성공에 눈이 멀어 지금 대한민국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송우석. 그는 데모를 하는 대학생들을 보며 "저거 공부하기 싫어서 저 지랄을 하는거야."라며 혀를 찹니다. "데모로 세상이 바뀔 것 같아? 내가 아는 세상은 그렇게 말랑말랑한 곳이 아냐." 맞습니다. 송우석, 그는 자수성가한 변호사이지만 그가 성공하기까지 만만치 않은 세상에 수도 없이 부딪히며 버티고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공을 하고나면 보수적이 된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부산 지역에서 제일 잘 나가는 변호사가된 송우석이 바로 그러한 시기에 접어든 것입니다. 밥 값이 없어서 국밥을 먹다가 몰래 도망쳐야 했고,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던 그는 이제 세상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보수적인 인간이 된 것입니다.
돈, 성공보다 더 소중한 것
[변호인]은 바로 그러한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대기업이 스카웃 제의를 받은 송우석. 그는 이제 편안하고 안락한 상위층 삶을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옛 정을 거절하지 못하고 재판을 앞둔 국밥집 아줌마(김영애)의 아들 진우(임시완)의 구치소 면회를 도와주게 되고 그것이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됩니다.
온갖 고문으로 만신창이가된 진우의 모습을 본 송우석은 충격에 빠집니다. 엄연한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 어떤 법의 구속도 받지 않고 저렇게 폭력을 휘두룰 수 있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에 그는 치를 떱니다. 사무장인 박동호(오달수)는 송우석이 진우 사건을 맡으려하자 절대 안된다며 말리지만 결국 송우석은 그 누구도 맡기를 꺼려하던 진우의 변호사로 나섭니다.
[변호인]에서 송우석이 진정으로 멋진 것은 빽 없고, 돈 없고, 가방끈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텃새를 이겨내고 세무 변호사로 자수성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앞에 편하게 살수 있는 탄탄대로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포기하고 온갖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을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요?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위해 눈을 감고, 귀를 막기만 하면 됩니다. 그저 모르는 척, 관심없는 척하면 됩니다. 대학생들의 데모를 보며 '공부하기 싫어서 저 지랄을 떠는거야!'라며 외면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송우석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결국 편안한 성공의 길을 포기하고 자신의 양심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변호인]은 송우석의 변화를 천천히 잡아냅니다. 만약 그의 성공 스토리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그가 법조계에서 멸시와 따돌림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했어야 마땅하지만, 이 영화는 송우석이 변호사로 성공하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송우석의 변화를 잡아냅니다. 그의 성공이 아닌 그의 변화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죠.
그러면서 이 영화는 관객에게 말합니다. 이건 고작 30여년전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고... 수 많은 사람들이 군사정권의 유지를 위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리며 온갖 고문과 죽음을 당했지만, 사람들은 귀를 닫고 입을 막으며 진실을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언론이 떠들어대는 죄 없는 대학생들을 빨갱이라며 욕하고 자신의 안락한 삶을 지키려 했을 뿐입니다.
송우석은 말합니다. 국가란 곧 국민이라고... 당신들은 애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자신의 폭력을 포장하지만 그것은 애국이 아니라고... 진정한 애국은 국민을 위한 행동이지, 대통령을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이지, 국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송우석이 고문 경찰인 차동영(곽도원)에게 '국가는 곧 국민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우리는 잊고 살았습니다. 너무 오랜 기간동안 국왕을 하늘처럼 모셨고, 조선이 무너지며 일본 제국주의에 몸을 움추렸고, 그 이후엔 군사 독재에 익숙해져 있었던 우리는 국민이 곧 국가라는 자유 민주주의의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돈, 성공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바로 우리 국민들이 자신의 가치, 권리, 그리고 그로 인한 의무를 깨닫는 것입니다.
바위에 계란치기
영화의 초반 송우석은 이야기합니다. 바위로 계란치기라고... 권력과 무기를 가진 군사 독재에 맞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바위에 계란을 쳐봤자 계란이 깨질 뿐, 바위에는 그 어떤 상처도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서 진우는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강해도 바위는 죽은 것이고, 아무리 약해도 계란은 산 것이라고... 계란에서 태어난 닭이 언젠가는 바위를 뛰어 넘을 것이라고...
사실 그랬습니다. 강력한 군부독재 정권을 펼쳤던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견디다 못해 결국 수용하였고, 대통령 단임제를 실천했습니다. 물러난 뒤에는 광주민주화운동과 5공비리문제로 책임 추궁을 당하다가 1988년 11월부터 1990년 말까지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했으며, 1996년 사법처리되었습니다. 계란에서 태어난 닭이 바위를 넘은 것입니다.
[변호인]은 계란에서 태어난 닭이 바위를 넘는 과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수 많은 계란이 바위에 부딪쳐 깨졌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러한 계란에서 태어난 닭이 바위를 넘은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나라엔 아직 넘어야할 바위가 많이 남아 있으며, 바위를 넘었다고해도 그 바위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송우석은 최선을 다하지만 결코 진우를 빨갱이라는 올가미에서 구해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권 변호사로 변한 송우석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계란은 아무리 깨져도 결코 바위에 지지 않을 것임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변호인]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故노무현 前대통령을 모델로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분명 영화 시작 전에 영화 자체가 허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변호인]은 정치적 논란에서 완전히 비켜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며 특정 인물을 미화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영화 자체가 송우석의 성공이 아닌, 변화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송우석의 행동,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오며 구피는 걱정을 합니다. [변호인]에 대한 영화 이야기를 좋게 썼다가 혹시 빨갱이로 몰리는 것이 아니냐며... 분명 농담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빨갱이라는 한 마디로 죄없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 수 있는 국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차동영은 말합니다. 우리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우린 휴전 국가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맞습니다. 우린 휴전 국가이고 우리의 바로 앞에는 북한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거짓 선동을 일삼는 대한민국 내부의 적일 것입니다. 아직 우린 약한 계란에 불과하고 넘어야할 바위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식들은 좀더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지 않을까요? 송우석이 그러한 마음으로 진우의 변호를 맡았듯, 우리 역시 그러한 마음으로 바위에 지지 말아야할 것 같습니다.
계란에서 닭이 태어나고, 닭이 바위를 뛰어 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낸다면
어쩌면 우리는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우리의 아이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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