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3년 아짧평

[톱스타] - 가식, 그것은 본질이 아니잖아!!!

쭈니-1 2013. 11. 27. 14:45

 

 

감독 : 박중훈

주연 : 엄태웅, 김민준, 소이현

 

 

이제 배우 박중훈이 아닌 감독 박중훈이다.

 

최근들어서 우리나라 배우들의 감독 데뷔가 유행인 듯합니다. 이미 2012년에 구혜선이 [요술]에 이은 두번째 장편영화 연출작 [복숭아 나무]를 내놓았고, 올해에는 유지태의 [마이 라띠마], 하정우의 [롤러코스터]가 잇달아 개봉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명의 이름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중훈 역시 [톱스타]를 통해 감독에 데뷔했기 때문이죠.

박중훈은 80년대 [깜보],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로 청춘스타에 오른 이후, 90년대에는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돈을 갖고 튀어라]를 통해 독보적인 코미디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특히 그는 1998년 [아메리칸 드래곤]을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한 국내 배우 1호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투가이즈], [천군], [체포왕] 등 그의 장기라고 할 수있는 코미디영화들이 잇달아 흥행에 실패하며 배우로서의 한계 지점에 도달한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박중훈은 그러한 배우로서의 한계를 감독 데뷔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넘어서려 하고 있네요.

 

 

 

톱스타가 되기를 갈망했던 어느 남자의 이야기

 

박중훈의 감독 데뷔작인 [톱스타]는 제목 그대로 '톱스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 원준(김민준)의 매니저인 태식(엄태웅)은 '언젠가는 스타가 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 청년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원준의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뒤집어쓰는 댓가로 배우로서의 기회를 얻습니다. 그리고 악착같이 그 기회를 움켜쥡니다.

[톱스타]는 태식이 평범한 매니저에서 어떻게 최고의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으며, 최고의 '톱스타' 자리에서 어쩌다가 추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영화입니다. 박중훈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고, 30여년간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박중훈이기에 그의 말에는 자신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톱스타]는 30년간 영화계의 빛과 어둠을 경험한 박중훈의 진솔한 이야기이기 이전에 초보 감독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실제 [톱스타]는 캐릭터 구축, 이야기 전개에서 초보 감독의 미숙함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지난 10월 극장 개봉 당시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습니다.

 

 

 

태식의 캐릭터 설정에 무리수가 보인다.

 

[톱스타]에서 초보 감독의 미숙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태식이라는 캐릭터 때문입니다. 영화의 초반에 태식은 넉살좋은 우직한 매니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회를 잡았고, 그 기회를 움켜 쥐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2년이라는 시간을 흘러보냅니다.

순박하고 우직하던 태식. 하지만 2년이라는 세월 동안 거만한 톱스타가 되어 있었습니다. 2년... 결코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게다가 영화 자체가 의도적으로 2년을 건너뛰었으니 태식의 캐릭터 변화가 관객에게 쉽게 받아들여질리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무리한 설정이 튀어나옵니다. 첫번째 무리한 설정은 태식이 원준의 애인인 미나(소이현)를 짝사랑한다는 설정입니다. 2년전 태식에게 미나는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톱스타가되었어도 미나는 여전히 원준의 여자입니다. 원준과 미나의 사랑은 2년 전에 비해 식은 것처럼 보이지만 태식에겐 미나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두번째 무리한 설정은 태식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입니다. 어린 시절 그를 버렸던 아버지. 언론에는 태식이 고아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태식은 성인이된 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버렸습니다. 그러한 비밀을 캐낸 기자의 입을 막기 위해 태식은 자신과 미나 사이를 가로막은 원준을 팔아넘깁니다.

 

 

 

에너지가 과하게 넘쳐흐른다.

 

태식의 변화에 순정만화식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열망과 과거에 대한 억지스러운 비밀이라는 무리수를 택하고나니 그로인한 원준의 죽음, 그리고 태식의 추락 역시 과하게 흘러갑니다. 

태식은 원준의 죽음 이후 그가 찍으려했던 제작비 100억원의 대작 영화를 자신의 사비를 털어 직접 제작하고, 원준의 빈자리를 자신이 대신 메꾸려합니다.  원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원준이 죽었어도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미나에 대한 원망이 함축된 행동인 셈입니다.

영화에선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데, 박중훈 감독은 태식의 심리를 세세하게 묘사하는 대신 '엄포스'라는 별명을 가진 엄태웅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력으로 태식의 폭주를 표현하려합니다. 영화에서 원로 배우인 김경민(안성기)은 태식에게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네. 자네는 에너지가 너무 과하게 넘치는군.'이라며 충고해줍니다. 그런데 그러한 충고는 제가 박중훈 감독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톱스타]는 태식의 죄책감에 의한 폭주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너무 과한 에너지를 방출시킵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태식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며, 결국 추락의 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태식에게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지만, 박중훈 감독은 이 모든 것을 건너뛰고 과한 에너지를 방출하며 폭주하는 태식의 모습에만 카메라를 비춥니다. 그러다보니 태식의 폭주에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가식, 그것은 본질이 아니잖아!!!

 

[톱스타]에서 가장 뜬금없는 캐릭터는 최강철(김수로)입니다. 그는 툭하면 '본질'을 찾는 괴짜 연기자로 표현됩니다. 박중훈 감독은 그러한 최강철의 캐릭터를 실제 어떤 배우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강철의 캐릭터는 그가 그토록 외쳤던 것처럼 가식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톱스타] 자체가 그러합니다. 우리는 영화계의 일을 잘 모릅니다. 그렇다면 [톱스타]를 보며 '정말 저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해야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이 안듭니다. 태식의 성공과 추락이라는 너무 흔한 기본 틀 안에서 영화는 가식적인 설정으로 뻔한 길을 갈 뿐입니다.

태식의 미나에 대한 삐뚤어진 사랑도 가식적으로 느껴졌고, 그의 과거에 대한 설정도 가식처럼 느껴졌으며, 그의 갑작스러운 몰락도 가식처럼 느껴졌습니다. 뭔가 태식이라는 캐릭터를 동정하면서 영화를 봐야하는데, 전혀 그러질 못하니 이 모든 상황이 진짜가 아닌 가식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실패하는 것은 신인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비록 영화 배우로서는 경력이 화려한 박중훈이지만 그가 감독으로서는 신인임을 [톱스타]는 잘 드러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초보 시절은 있는 법이고, 그러한 미숙한 시절을 견뎌내고 실력을 갈고 닦아서 노련한 감독이 되는 것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박중훈 감독의 다음 영화는 가식적이지 않은 진솔한 재미와 감동이 있을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