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봉만대] - 에로 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것.

 

 

감독 : 봉만대

주연 : 봉만대, 곽현화, 성은, 여현수, 임필성, 이파니

 

 

2013년 한국시리즈 6차전의 아픔은 코미디 영화로...

 

2013년 10월 31일. 저는 부들부들 떨며 TV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TV에서는 2013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이 중계되고 있었습니다. 4차전까지 3승1패로 앞서며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단 1승만 남겨놓은 두산 베어스. 하지만 5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덜미를 잡히며 3승2패가 되었습니다. 6차전마저 지면 3승3패가 되며 분위기는 삼성으로 넘어가는 위기의 상황.

두산이 홈런 두방을 앞세워 2대1로 앞서고 있었지만 6회와 7회 두 방의 홈런을 맞이며 결국 6대2로 두산이 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82년부터 두산 베어스를 응원한 제 가슴에는 열불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6회 투런 홈런은 그렇다 치더라도 7회 쓰리런 홈런을 맞을 때까지 투수를 바꾸지 않은 두산 감독에게 화도 났고...

당장 밖에 나가 시원한 맥주로 열불을 누그러뜨리고 싶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열받는 날에는 술은 도움보다는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결국 제가 생각한 것은 영화였고, 기왕이면 아무 생각없이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아티스트 봉만대]를 선택했습니다.

 

 

 

에로 거장 봉만대

 

[아티스트 봉만대]는 참 독특한 영화입니다. 일단 감독이 봉만대이고, 주연도 붕만대이며, 제목도 봉만대입니다. 결국 이 영화의 키포인트는 바로 봉만대인 셈입니다.

사실 봉만대 감독의 이력은 참 독특합니다. 그는 에로 비디오 감독 출신입니다. 별다른 내용없이 성애정면만 무차별적으로 토해내는 흔한 에로 영화와는 달리 감각적 영상, 짜임새있는 구성으로 고정적인 매니아층까지 거느린 에로 영화의 거장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충무로에 진입했습니다. 에로 비디오 감독에서 충무로의 상업영화 감독이 된, 좀처럼 보기드문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봉만대 감독의 이력이 있기에 그의 충무로 데뷔작인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야한 영화를 기다린 관객들의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김서형, 김성수가 주연을 맡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에로 비디오 감독 출신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노골적인 야함은 없는 영화였습니다.

에로 비디오 감독 출신. 그것은 결국 봉만대 감독의 족쇄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공포영화 [신데렐라]를 연출하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결국 <TV 방자전>을 통해 케이블 TV에 자리를 옮깁니다. [아티스트 봉만대]는 이렇게 케이블 TV로의 외도를 마친 봉만대 감독의 충무로 복귀작인 셈입니다.

 

 

 

에로 비디오 감독이라는 족쇄를 풀 수 없다면 차라리 이용하라!!!

 

에로 비디오 감독에서 충무로 감독으로 데뷔, 하지만 편견을 깨지 못한 탓에 흥행 실패후 케이블 TV 드라마 감독으로 자리를 영화계를 떠나 있어야 했던 봉만대 감독은 자신의 복귀작 [아티스트 봉만대]에서 아예 자신의 이야기를 패러디합니다.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빌어서...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자신의 실제 이름으로 실제 상황을 연기합니다. 곽현화는 여전히 개그우먼 출신의 섹시한 배우이고, 성은은 에로 비디오 배우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벗기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배우입니다.

[남극일기]를 찍었던 임필성 감독과 [번지점프를 하다]로 데뷔, 봉만대 감독과는 <TV 방자전>을 함께 했던 여현수도 실명으로 출연합니다. 물론 그 중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봉만대 감독의 출연입니다. 봉만대 감독은 [아티스트 봉만대]를 통해 에로 비디오 출신 감독이 충무로 시스템에서 영화를 찍는 것이 얼마나 많은 편견과 싸워야 하는 일인지는 코믹한 상황으로 표현해냅니다.

 

 

 

에로 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것.

 

[아티스트 봉만대]의 사연은 이러합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올로케중인 [해변의 광기]라는 에로 공포 영화를 찍던 임필성 감독. 그런데 영화 제작사 대표는 에로 부분이 약하다며 배우들을 더 벗길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임필성 감독은 '그럴 수 없다'고 맞섭니다. 결국 제작사는 에로 영화계의 거장 봉만대 감독을 긴급 투입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임필성 감독만 믿고 영화에 합류한 여배우들은 에로 비디오 출신 감독의 등장에 불만이 쌓여 가고, 임필성 감독은 노골적으로 봉만대 감독의 작업을 방해하기에 이릅니다. 배우들 설득하랴, 예술적인 에로 장면을 만들랴 바쁘기만한 봉만대 감독. 하지만 제작사 대표는 더욱 더 노골적인 에로만을 요구하고, 제작비 충당을 위해 급기야 배우들을 이용하여 섹시화보를 찍습니다.

이 모든 난관을 해치고 영화를 완성한 봉만대 감독. 하지만 흥행을 위해서는 영화의 관람 등급을 15세로 맞춰달라는 투자자의 요구에 결국 봉만대 감독의 노력은 물거품이 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자시닝 찍은 장면들이 있는 노트북을 낭떠러지에 던져버리는 봉만대 감독의 모습에서 그의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에로 비디오 감독이라도 그들은 최선을 다한다.

 

처음에 봉만대 감독은 3개월치 쌀값을 벌었다며 룰루랄라 촬영장에 합류합니다. 마치 그는 대강 제작사 대표가 원하는 야한 장면만 찍고 돈만 받으면 된다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더 노골적인 장면을 요구하는 제작사 대표에게 단호하게 '에로는 그럴게 찍는 것이 아니다.'라며 거절하는 그의 모습에서 에로에 대한 철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자신이 찍은 장면들이 영화에서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을 때의 그의 모습은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에로 감독이라고 그의 열정을 우습게 볼 수 없는 것이 그는 최선을 다했고, 그렇기에 자신이 최선을 다한 결과물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그들은 가벼운 에로 장면이지만, 에로 감독들에겐 최선을 다한 결과물인 것이죠.

결국 봉만대 감독도, 봉만대 감독의 설득에 어렵게 노출 연기를 시도한 성은도,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작사 대표만은 실리를 얻었다는 것이죠. 임필성 감독을 통해 <해변의 광기>를 얻었고, 여배우들을 통해 섹시 화보를 얻었으며, 봉만대 감독을 통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일타삼피라며 히히덕거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봉만대 감독의 쓸쓸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티스트 봉만대]는 영화 촬영 현장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웃음을 안겨주지만, 결국 마지막엔 에로 감독이 얼마나 어렵게 충무로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지 현실을 보여주며 끝을 냅니다. 그들의 그러한 노력을 보며 아무리 에로 비디오 감독이라도 우습게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