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3년 아짧평

[블링 링] - 화려함이라는 불에 뛰어든 너무 어린 불나방

쭈니-1 2013. 9. 11. 16:36

 

 

감독 : 소피아 코폴라

주연 : 케이티 장, 이스라엘 브루사드, 엠마 왓슨, 테이사 파미가

 

 

나도 한때 과분한 화려함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저는 타고난 몸치이기에 춤을 못춥니다. 아니, 아예 춤 추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런 제가 한때 나이트 클럽에 흠뻑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연은 이러합니다.

1996년 방위소집해제 이후 학교에 복학을 하였습니다. 다른 군대보다 복무 기간이 짧은 방위였기에 대학 동기들보다 1년 일찍 복학한 저는 2년 후배들과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가 상업계 고등학교 진학 후 1년간 직장을 다녔고, 대학 진학을 위해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했기에 2년 후배라고는 하지만 나이로 따지면 4년 어린 녀석들과 어울린 셈입니다.

그 중 한명은 모피를 수입 판매하는 중소기업 사장의 아들로 돈이 꽤 많은 녀석이었습니다. 녀석들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나이트 클럽에서 노는데 온 신경을 썼습니다. 복학생 신분에 동기들 없이 홀로 대학 생활을 해야했던 저는 녀석들과 친해졌고, 자연스럽게 나이트 클럽에서 함께 어울렸습니다.

솔직히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나이트 클럽에는 절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춤도 못 추고, 한번 갈때마다 제 용돈의 상당 량을 지출해야 했으며, 밤새 놀았기에 몸도 많이 망가졌고, 공부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녀석들과 어울렸고, 나이트 클럽의 시끄러운 음악과 번쩍이는 조명에 매료되었습니다. 마치 불에 끌리는 불나방같이...

 

 

 

나는 마크의 심정이 이해가더라.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블링 링]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사실 나의 영원한 헤르미온느 엠마 왓슨이 주연을 맡은 영화라고 해서 영화에 대한 별다른 정보 없이 본 영화입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엠마 왓슨이 연기한 니키라는 캐릭터보다 마크(이스라엘 브루사드)에게서 17년 전의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블링 링]의 시작은 문제아들만 모인다는 고등학교에 마크가 전학을 오면서부터입니다. 친구도 없는 그곳에서 마크는 굉장히 뻘쭘해합니다. 그런 그에게 레베카(케이티 장)가 먼저 말을 걸어줍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레베카에게는 도벽이 있습니다. 주인의 실수로 잠기지 않은 차 문을 열고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집을 비운 할리우드 스타의 집을 무단으로 침입해 집 주인의 물건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가지고 나옵니다. 분명 마크는 그러한 레베카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남의 집에 무단 침입했으면서도 여유만만한 레베카와는 달리 마크는 '어서 빨리 나가자.'며 레베카를 재촉했으니까요.

하지만 마크는 결코 그만두지 못합니다. 레베카와 함께 함으로서 니키(엠마 왓슨), 샘(테이사 파미가) 등과 어울리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할리우드 스타들의 화려한 명품의 세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흠뻑 빠지고 말았으니까요. 

 

 

 

화려함이라는 불에 뛰어든 너무 어린 불나방

 

[블링 링]은 실화를 바탕으로한 영화라고 합니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8월까지 '블링 링'이라 불리는 7명의 10대들이 패리스 힐튼, 올랜도 블룸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집을 턴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 속 레베카 일행은 스타들의 집을 털고 나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급기야는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기도 합니다. 만약 그들에게 죄책감이라는 것이 있다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죠.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할리우드 스타의 집에서 명품 몇개 가지고 나온다고 해도 돈이 넘쳐나는 그들에겐 그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결국 꼬리가 잡히고 맙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범죄 행각이 드러낫지만 오히려 그들은 스타가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니키는 토크쇼에 나가기도 하는 등 마치 자신의 범죄 행각이 스타로 가는 지름길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며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행각이 어이없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딸의 범죄 행각에 대한 별다른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니키 어머니의 모습, 명품이 넘쳐나게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은 '블링 링'의 범죄 행각이 그저 스타를 향한 관심 정도로 받아들여 졌을 것이며, 그들의 범죄에 환호하는 또래 아이들에 의해 스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나는 마치 [사랑도 통역되나요?]를 보는 듯했다.

 

사실 [블링 링]은 약간 지루한 면이 있는 영화입니다. 할리우드 스타의 집을 터는 10대 도둑들이라는 설정에서 영화는 충분히 화려하고 자극적일 수도 있었지만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일부러 화려함과 자극적인 것을 멀리 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이 보입니다.

스타의 집에서 발견되는 명품들로 인한 화려함이 잠깐 잠깐 보이지만, 그것도 잠시. 소피아 코폴라는 마치 멀찌감치에서 그들의 범죄를 훔쳐보는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실제 그들이 할리우드 스타의 집을 터는 장면 중에서 멀리서 롱테이크로 찍은 장면도 선보일 정도입니다. 결국 화려함을 기대하고 봤지만 영화는 오히려 잔잔하기만 했습니다. 이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사랑도 통역되나요?]에서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사랑도 통역되나요?]는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로맨스 영화입니다. 도쿄에서 만난 밥 해리스(빌 머레이)아 샬롯(스칼렛 요한슨)의 짧은 사랑을 무척이나 잔잔하게 담아낸 이 영화는 코미디 배우로 유명한 빌 머레이가 주연을 맡았데다가 국내 수입사의 원망스러운 작명 센스로 인하여 저는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며 봤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밥 해리스와 샬롯이 낯선 도쿄에서 느꼈을 외로움에 전염되어 봤던 기억이 납니다.

[블링 링]도 마찬가지입니다. 10대 소년, 소녀의 화려한 범죄를 기대하며 영화를 봤지만, 정작 제가 느낀 것은 그것이 불길임을 알면서도 화려함에 매료되어 뛰어들 수 밖에 없었던 너무 어린 불나방들의 철없는 방황이었습니다. 특히 레베카를 따라 불길 한가운데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마크의 모습은 안타깝기까지 했습니다.

 

 

 

너무 건조한 시선, 그래서 지루할 수 밖에 없는 영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블링 링]은 연출하며 자극적인 것들을 전부 빼버렸습니다. '블링 링'의 범죄를 좀 더 화려하고 자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고, 그들의 범죄 행각이 발각된 이후 역설적이게도 비난보다는 스타가 되는 과정 역시 최소한으로 생략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강조한 것은 그들이 화려함을 쫓는 불나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입니다. 친구가 필요했던 마크, 부모님의 무관심을 도벽으로 채우는 레베카, 그리고 어머니의 허영심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니키. 그들 앞에 할리우드 스타들의 화려함은 동경의 대상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집에 무단 침입하여 명품을 훔치는 것은 그러한 동경의 대상과 한뼘 가까워지는 행위일 뿐인 셈이죠.

오늘도 TV를 켜면 수 많은 스타들이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스타가 되고 싶어.'라며 꿈을 키우는 아이들. '블링 링'은 그러한 수준에서 한발 더 나아가 범죄 행각으로 이어졌지만 그들의 철없는 행동 역시 스타를 향한 무조건적인 동경이기에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건조한 시선을 통해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보다, 그런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한 어른들을 탓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상습 절도로 감옥을 오고가는 할리우드 스타 린제이 로한. 그러한 린제이 로한을 보며 '블링 링'의 아이들은 절도에 대한 죄책감이 무감각해진 것일지도...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