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3년 아짧평

[피치 퍼펙트] -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

쭈니-1 2013. 8. 20. 13:31

 

 

감독 : 제이슨 무어

주연 : 안나 켄드릭, 스카이라 애스턴, 안나 캠프, 레벨 윌슨

 

 

대학 시절 동아리의 추억

 

저는 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하기 보다는 빨리 사회인이 되어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맞이한 사회는 고졸에게 그렇게 녹록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고졸 누나가 갓 입사한 대졸 누나보다 적은 연봉을 받는 것을 목격한 저는 뒤늦게 대학을 가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당시는 <우리들의 천국>, <내일은 사랑> 등 대학 캠퍼스를 무대로한 청춘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들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대학 생활은 제겐 꿈과 낭만이 가득 넘치는 멋진 곳으로 보였고, 결국 저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1년간 공부를 한 끝에 2년제 대학에 특별 전형으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대학을 가게된 저는 제가 꿈꿨던 것들을 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과대표로 선출되었고, 영화 동아리에도 가입하였습니다. 여름방학에는 농촌 활동에도 참가했고, 시험 기간이면 가까운 집을 놔두고 대학 도서관에서 밤샘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원했던 캠퍼스 커플은 끝내 이루지 못했습니다. ^^

특히 영화 동아리에 가입했던 것은 잊혀지지 않네요. 청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멋진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결국 동기보다 나이가 2살 많다는 이유로 왕따가 되고(선배들보다 1살 많았습니다.) 쓸쓸히 영화 동아리에서 쫓겨나야 했던...

 

   

 

베카의 동아리 생활

 

[피치 퍼펙트]를 봤습니다. 지난 3월에 국내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흥행 성적을 낸 것과는 달리 국내 박스오피스에서는 조용히 사라진 흥행 실패작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 아카펠라 동아리 멤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만으로 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음악과 청춘은 언제나 제게 활력을 안겨주거든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베카(안나 켄드릭)입니다. 그녀는 음악 DJ가 꿈이지만 교수인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학에 입학합니다. 친구도 없고, 의욕도 없는 베카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동아리에도 가입하라며 재촉합니다. 결국 베카는 대충 여성 아카펠라 동아리 벨라스에 가입하게 됩니다.

이렇듯 베카는 상당히 폐쇄적인 캐릭터입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자신 주변의 친구들을 밀어내려 하는지 영화는 별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하지만 [피치 퍼펙트]는 폐쇄적인 베카가 벨라스의 동아리 동료들과의 우정, 그리고 라이벌 아카펠라 동아리 멤버인 제시(스카이라 애스틴)와의 사랑을 통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영화의 재미를 완성해 나갑니다.

 

 

 

헛점이 너무 많긴 하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피치 페펙트]는 객관적으로 볼 때 헛점이 굉장이 많은 영화입니다. 가장 중요한 주인공 베카의 캐릭터가 생략된 탓에 그녀가 왜 그토록 폐쇄적인지도 이해되지 않고, 마지막 그녀의 변화 부분도 뜸금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베카와 옛 것을 고수하려는 벨라스의 리더 오브리(안나 캠프)의 갈등이 마지막에 해소되는 장면은 마치 얽킨 실타래를 가위로 싹득 잘라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팻 에이미(레벨 윌슨) 등 개성강한 캐릭터들이 수두룩 하지만 그들 캐릭터를 그다지 잘 부각시키지도 못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피치 퍼펙트]는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내려 욕심을 부립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베카와 제시의 금지된 사랑, 저음이 불가능한 탓에 아카펠라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여성 아카펠라 그룹의 한계 극복기, 베카의 성장, 새로운 것과 옛 것의 격돌 등등. 캐릭터들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담아내려 하니 아무래도 영화는 시종 내내 삐거덕거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과 귀가 즐겁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에 합격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우선 제가 이 영화에 기대한 청춘의 풋풋함과 음악의 흥겨움에 의한 재미는 확실히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캐릭터들이 제대로 구축되지는 않았지만 베카를 비롯한 영화 속 캐릭터들은 젊음으로 단단하게 무장한채 영화를 보는 저를 흐뭇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20년 전, 너무 부푼 꿈을 안고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가 청춘 드라마와는 다른 현실에 좌절감을 느껴야 했던 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젊다는 것은 이렇게 약간 부족해도 용서가 되는 법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카펠라 음악이 전해주는 흥겨움이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이다... 라고 누군가 이야기했습니다. [피치 페펙트]는 그러한 아름다움을 영화적 재미로 십분 활용합니다.

가끔 오브리의 구토에 의한 화장실 코미디 코드가 '앗 더러워'라며 눈쌀을 찌푸리게도 했지만, 젊은 청춘 남녀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에 귀 기울이다보면 2시간이라는 영화의 러닝 타임이 금방 지나가 버렸습니다. 영화의 완성도가 조금 엉성하면 또 어떻습니까?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웠다면 그것 역시 제겐 좋은 영화인 것을...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