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3년 아짧평

[일루셔니스트] - 마법사는 없어!

쭈니-1 2013. 9. 11. 14:24

 

 

감독 : 실뱅 쇼메

더빙 : 장 끌로드 돈다, 에일리 란킨

 

 

마술사를 소재로한 영화?

 

며칠 전, [나우 유 씨 미 : 마술사기단]을 본 저는 지금까지 제가 재미있게 본 마술 소재의 영화들을 주루룩 정리해보았습니다. [프레스티지]부터 시작하여 [일루셔니스트], [데스 디파잉] 등. 그렇게 마술을 소재로한 영화들을 정리하다보니 에드워드 노튼, 제시카 비엘 주연의 [일루셔니스트]와 같은 제목의 프랑스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가 툭 하고 튀어 나오더군요.

마술을 소재로한 영화들의 경우는 대부분 마술이라는 특징 때문에 판타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일루셔니스트]는 포스터, 스틸, 그리고 스토리 라인을 유심히 살펴보니 다른 마술 소재의 영화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조금은 현실적이고 슬픈 감동적인 영화로 보였습니다.

게다가 제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시는 산타페님께서 추천까지 해주셨으니,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영화에 급호감이 생기는 기현상이... 결국 저는 나른한 월요일 밤, [일류셔니스트]를 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유럽 애니메이션에 대한 거부감.

 

저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할리우드의 블럭버스터 애니메이션과 일본의 장인 정신이 깃든 애니메이션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가끔 독특한 유럽의 애니메이션도 보기는 하지만 아직은 제게 유럽의 애니메이션은 조금 거부감이 듭니다.

제가 유럽 애니메이션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2004년에 보았던 [판타스틱 플래닛]이라는 SF 애니메이션 때문입니다. [판타스틱 플래닛]은 푸른 거인들이 지배하는 이얌 행성에서 작은 인간들은 애완동물 취급을 당하는 상황을 그렸습니다. 독특한 그림체와 멋진 상상력이 결합이된, 미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하지만 [판타스틱 플래닛]을 보는 내내 저는 머리가 아팠습니다. 영화 자체에서는 결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새롭고 대단한 애니메이션임이 분명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가 아팠고, 불편했기에 저는 [판타스틱 플래닛]이 싫었습니다.

그러한 [판타스틱 플래닛]에 대한 기억은 꽤 오랫동안 유럽 애니메이션에 대하여 제게 편견을 심어줬습니다. 아마도 [일루셔니스트]가 개봉했던 2011년도 그러한 편견 때문에 기대작 순위에서 밀려났을테지요.

 

   

 

[일루셔니스트]는 유럽 애니메이션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깼을까?

 

그렇다면 [일루셔니스트]는 어땠을까요? 확실히 [판타스틱 플래닛]을 보면서 느꼈던 불편함, 머리 아픔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약간 지루했습니다.

[일루셔니스트]는 더이상 마술사가 관객의 흥미를 끌지 못하던 시절을 담았습니다. 늙은 마술사(장 클로드 돈다)는 스코틀랜드의 한 선술집에서 앨리스(에일리 란킨)라는 이름의 순수한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앨리스는 자신에게 빨간 구두를 선물해준 마술사를 무작정 따라 나서고, 마술사는 그녀를 위해 갖은 노력을 합니다.

이 영화는 일단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앨리스는 스코틀랜드 소녀이고, 늙은 마술사는 프랑스인입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언어 소통 자체가 잘 안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마술사와 앨리스는 대화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 역시도 자막 읽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캐릭터의 표정, 상황, 몸짓으로 모든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라며 가끔 영화 속의 상황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이 영화를 집중력이 높은 극장에서 본다면 그러한 일이 덜 할테지만, 제 경우는 늦은 밤, 침대에 뒹굴며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다보니 집중력이 흐트러졌고, 영화 속의 상황을 놓치는 일이 몇번 반복되기도 했습니다.

 

 

 

늙은 마술사의 슬픈 노력

 

분명 제게 [일루셔니스트]는 약간은 지루했던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판타스틱 플래닛]처럼 이 영화가 싫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늙은 마술사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죠.

한 평생을 마술만 하던 늙은 마술사. 그가 할줄 아는 일이라고는 마술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이상 그의 마술에 환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락 음악에 환호를 보내죠. TV를 통해 마술사의 트릭이 낱낱이 공개된 상황에서 어린 관객은 늙은 마술사의 트릭을 눈치채는 수모까지 당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늙은 마술사는 앨리스를 만납니다. 자신의 마술을 좋아하고, 믿고 따르는... 어쩌면 그는 앨리스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마술 밖에 하지 못하던 그가 앨리스의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서 늦은 밤 세차장에서 일을 하면서까지... 그는 앨리스의 환상을 지켜주고, 이뤄주고 싶었겠죠. 자신의 마술을 믿어주는 그녀를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앨리스가 다른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늙은 마술사는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그의 노력으로는 앨리스의 환상을 지켜줄 수가 없죠. 그녀는 더이상 순수한 소녀가 아닐테니까요. 결국 늙은 마술사는 앨리스의 곁을 떠납니다. '마법사는 없어!'라는 메모를 남긴채.

 

 

 

마법사는 없어!

 

늙은 마술사와 앨리스가 묶던 호텔. 그곳에는 피에로, 손인형사 등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마술사와 마찬가지로 한물간 존재들이죠. 피에로는 자살을 결심하고, 손인형사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손인형을 팔아버립니다. 그들 역시 한계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늙은 마술사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토끼를 숲에 풀어주고 앨리스의 곁을 떠나는 장면은 꽤 쓸쓸했습니다.

늙은 마술사가 떠났어도 앨리스는 어쩌면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서 새로운 환상을 품으며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런 앨리스에게 늙은 마법사가 남긴 '마법사는 없어!'라는 메모는 중요한 충고가 됩니다. 

마술은 마법이 아닙니다. 마술을 통해 앨리스의 환상을 며칠간 지켜줄 수는 있어도, 영원히 지켜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앨리스는 환상이 아닌 현실에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마술은 마법이 아니기에 앨리스의 환상을 영원히 지켜줄 수 없었던 늙은 마술사는 떠납니다. 하지만 앨리스가 언젠가 사랑이라는 마법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갈 날에 대한 걱정은 남겨둔 셈이죠. '마법사는 없어!'라는 메모로 말입니다.

기차 안에서 어린 아이에게 작은 마술을 선보이는 마술사. 그는 그렇게 또다시 행복한 속임수를 써가며 하루 하루를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기에 떠나는 늙은 마술사의 모습보다 여전히 사랑의 환상에 매달리는 앨리스의 모습에서 더욱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세상에 마법사가 없듯이 영원한 마법 또한 없기에...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