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친구 2] - 주먹질에 추억따위는 없다.

쭈니-1 2013. 11. 20. 14:38

 

 

감독 : 곽경택

주연 : 유오성, 주진모, 김우빈, 정호빈, 장영남

개봉 : 2013년 11월 14일

관람 : 2013년 11월 18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2001년 [친구]의 추억이 내겐 없다.

 

2001년은 한국영화계에서 조폭 영화의 전성기로 손꼽히는 해였습니다. 서울관객 기준으로 당시 한국영화의 흥행 기록을 보면 1위가 [친구], 3위가 [신라의 달밤], 4위가 [조폭 마누라], 5위가 [달마야, 놀자], 6위가 [두사부일체]였습니다. 10편중 5편이 조폭 영화였고, 2위를 차지한 [엽기적인 그녀]를 제외하고는 조폭 영화가 상위권을 독차지했습니다.

이렇게 상위권을 차지한 조폭 영화 중에서 [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폭 코미디 장르의 영화입니다. 이후 한국영화계는 조폭 코미디의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조폭 마누라]는 2003년에는 2편을, 2006년에는 중국배우인 서기를 기용하여 3편을 내놓았고, [달마야, 놀자]는 2004년 [달마야, 서울가자]를 개봉시켰습니다. [두사부일체]의 경우는 2006년에 [투사부일체],  2007년에는 [상사부일체]가 개봉하며 조폭 코미디의 명맥을 이어나갔습니다.  

2001년에 불어닥친 조폭 코미디의 인기는 2002년 [가문의 영광]으로 이어졌습니다. [가문의 영광]은 2012년 5편을 개봉시키며, 이제는 희미해진 조폭 코미디의 인기를 마지막까지 이어나가고 있는 유일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조폭 영화의 전성기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먹질을 끔찍하게 싫어하기에 조폭을 미화하고, 조폭을 희화시키는 조폭 영화, 또는 조폭 코미디 장르의 영화가 싫었습니다.

그렇기에 2001년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친구]를 저는 극장에서 보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워낙 흥행 돌풍을 일으켜서 나중에 비디오로 출시된 이후 집에서 봤는데, 솔직히 커다란 감흥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친구]가 개봉한지 12년 만에 [친구 2]가 개봉했습니다. 사실 제가 [친구 2]를 보러갈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친구]를 재미있게 보지 못했고, 조폭 영화도 싫어하며, 12년만에 [친구 2]가 개봉한다는 소식에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고 싶은 곽경택 감독과 유오성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생각했기에 [친구 2]는 제 기대작 목록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친구 2]는 12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토르 : 다크 월드]를 밀어내고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습니다. 12년 전에는 [친구]가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켜도 저는 '내 취향의 영화가 아니야.'라며 [친구]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은 '[친구 2]가 흥행 중이야? 그럼 볼까?'라며 극장으로 향하고 말았네요.

 

 

조폭 영화를 싫어한다. 하지만 갱스터 영화는 좋아한다.

 

이렇게 저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친구 2]를 극장에서 봤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친구 2]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물론 그들의 주먹질이 여전히 불편했고, 조폭 주제에 멋있는척 폼을 잡는 것도 짜증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 2]가 재미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조폭 영화를 넘어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를 닮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친구 2]는 갱스터 무비의 걸작 [대부]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가 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무렵 [대부 3부작]의 비장미는 저를 흠뻑 빠지게했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대부]와 닮고 싶어하는 [친구 2]의 행보가 저는 흥미로웠습니다.

[대부 3부작] 중에서 [친구 2]가 닮으려 애쓴 영화는 [대부 2]입니다. [대부 2]는 젊은 시절의 비토 꼴레오네(로버트 드니로)가 조직을 창건하는 장면과 비토 꼴레오네의 아들인 돈 꼴레오네(알 파치노)가 조직을 물려 받고 새로운 도전에 맞서 싸우는 장면을 번갈아 보여줬었습니다.

런데 [친구 2]가 그러합니다. [친구 2]는 군사독재 시절인 60년대 부산의 주먹들을 통합하여 조직을 창건한 이철주(주진모)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철주의 아들인 이준석(유오성)이 자신이 감옥에 간 사이 조직을 장악한 은기(정호빈)에 맞서 조직을 되찾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친구 2]가 아버지 세대의 장면을 보여줬다고해서 [대부 2]가 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부 시리즈]가 안고 있는 주제일 것입니다.

 

[대부 3부작]은 미국 마피아의 대표적 가문인 꼴레오네 가문이 어떻게 조직을 만들었고, 어떻게 몰락했는지 그 역사를 보여주며 미국 마피아의 폭력의 역사를 재조명했습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대부 3부작]에서 꼴레오네 가문의 역사를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폭력을 통해 조직을 일으켜세웠던 꼴레오네 가문이 폭력으로 인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쓸쓸한 풍경을 담아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친구 2]도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미 곽경택 감독은 [친구]에서 부산을 배경으로 학창 시절 친한 친구 사이였던 동수와 준석이 어떻게 적이 되었고, 어쩌다가 동수가 죽음을 맞이했는지에 대한 비극적인 폭력의 역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그 속에는 준석을 멋지게 미화한 면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곽경택 감독은 폭력의 비극성을 잘 살려 놓은 것입니다.

[친구 2]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준석의 표정은 [대부 3]에서의 마이클 꼴레오네의 표정과 비슷했습니다. 그가 원했던대로 조직을 장악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들처럼 생각했던 성훈(김우빈)이 그에게 등을 돌리자 그는 더이상 갈 곳이 없게 된 것입니다. '어디로 모실까요?'라는 부하의 말에 '내가 갈 곳이 있긴 한가?'라며 허무하게 말하는 준석의 모습에서 폭력으로 이룬 것들의 허무함을 드러냅니다. 그런 면에서 분명 [친구 2]는 [대부 시리즈]의 분위기를 풍기는데 일단 성공한 셈입니다.

 

 

과거의 폭력이 그의 발목을 잡다.

 

[친구 2]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준석과 성훈의 관계입니다. [친구]에서 준석과 동수의 관계가 중요했다면 동수의 죽음 이후 동수의 숨겨진 아들인 성훈이 동수의 자리를 대신하는 셈입니다.

준석이 동수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지시했는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러한 사실 관계를 중요시하지만, 제가 보기엔 지시했건, 안했건, 그건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는 동수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죽음을 묵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준석의 과거 과오는 17년이 지난 후에 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아버지가 만든 조직은 은기에게 빼앗기고 그를 따르던 동료들은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준석은 조직을 되찾기 위해 은밀한 계획을 세우고 결국 조직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준석이 미처 알지 못했던 과거의 과오에 의한 괴물은 은기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괴물은 바로 성훈입니다.

성훈이라는 캐릭터는 참 독특합니다. 처음에 저는 그를 전형적인 반항아 캐릭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의 반항은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인 동수의 죽음 이후 그의 어머니(장영남)가 만난 남자들은 모두 양아치들었고, 그 속에서 고스란히 폭력에 노출되었던 성훈은 자연스럽게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을 가진 괴물이 됩니다.

 

만약 동수가 죽지 않았다면... 그래서 성훈에게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었다면... 어쩌면 그는 기성 세대에 반항하는 괴물이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17년전 동수의 죽음은 성훈을 괴물로 만들었고, 동수의 죽음을 묵인했던 준석은 17년 후, 그 괴물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곽경택 감독은 성훈이라는 괴물을 표현하기 위해 그의 과거를 끊임없이 뒤쫓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은기를 잔인하게 살인하는 모습을 통해 성훈이라는 괴물을 완성해냅니다.

이제 준석은 조직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동수가 죽음으로서 뿌려진 성훈이라는 괴물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준석은 그 괴물을 죽일 수도 없습니다. 은기처럼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성훈은 분명 준석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오겠지만, 준석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준석의 표정은 자신의 비극을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입니다. 17년 전의 과거, 자신이 저지른 과오로 인하여 생겨난 괴물. 준석은 언젠가 은기가 그러했듯이 자신 역시 과거의 과오로 키워진 괴물에게 먹혀 버릴 것임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더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주먹질에 추억 따위는 없다.

 

제게 [친구 2]가 예상 외로 재미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부분입니다. 영화가 끝나고나면 준석은 더이상 멋진 조폭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폭력이 만들어낸 거대한 운명의 장난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기다려야 하는 초라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만약 [친구 3]가 만들어진다면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완성하기 위한 성훈의 마지막 칼부림과 준석의 비참한 죽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 2]는 완벽히 한국의 [대부 시리즈]가 되지는 못합니다. 바로 그러한 점이 제가 예상 외로 [친구 2]를 재미있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구 2]가 불편한 이유입니다. 

[친구 2]는 [대부 2]와 비슷한 구성을 위해 60년대 부산을 장악한 철주의 활약담을 영화 중간 중간에 삽입시킵니다. 그런데 그러한 철주의 활약담은 마치 일제시대 조선 최고의 주먹인 김두한의 활약상을 담은 영화 [장군의 아들]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어찌보면 김두한은 깡패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제 시대라는 특수한 배경은 김두한을 일제의 만행을 주먹으로 대항한 영웅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당시에는 일본이라는 공공의 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철주의 활약담이 [장군의 아들]을 연상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입니다. 군사 독재 시절, 부산의 상업권을 장악하려는 일본 야쿠자에 맞서 싸운 이철주. [친구 2]는 이철주를 김두한과 같은 영웅으로 회상합니다. 마치 이철주가 아니었다면 부산의 상권은 일본 야쿠자에게 넘어갔을 것이라며 그의 영웅담을 한껏 미화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친구 2]에 왜 이철주의 영웅담이 필요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부 2]의 경우는 비토 꼴레오네가 만들어 놓은 폭력의 역사가 아들인 마이클 꼴레오네에게 전달되고, 결국 마이클 꼴레오네는 그러한 폭력의 역사로 인하여 몰락합니다. 그렇기에 비토 꼴레오네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렇다면 [친구 2]는? 17년전 폭력의 과오로 인하여 만들어진 괴물 성훈에 의해 폭력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준석의 이야기와 철주의 영웅담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혹시 곽경택 감독은 60년대 폭력은 저렇게 멋있었는데, 요즘 폭력은 비열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뇨, 폭력은 폭력일 뿐입니다. 아무리 멋진 폼을 잡아도 철주는 폭력 조직을 만들어 부산의 이권을 독차지한 조직폭력배일 뿐입니다. 그러한 철주가 있었기에 준석 역시 폭력의 역사 속에 자라났고, 친구인 동수의 죽음을 묵인하는 과오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리고 준석이 그러한 폭력의 과오를 저질렀기에 성훈이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친구 2]는 3대에 걸친 폭력의 비극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철주의 폭력을 멋있게 그려내는 바람에 그러한 폭력의 비극성이 느슨해져 버렸습니다. 결국 폭력에 추억 따위는 없거늘, 곽경택 감독의 쓸데없는 과거 폭력의 미화가 [친구 2]를 조폭의 미화와 폭력의 허무함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는 영화로 만든 셈입니다. 

 

폭력은 전염된다.

철주의 폭력은 준석에게 전염되고, 준석의 폭력은 성훈에게 전염된다.

그런 전염성 강한 폭력에 과연 멋진 추억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 내겐 그런 추억 따윈 필요없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