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더 파이브] - 그녀, 지옥에서 벗어나다.

쭈니-1 2013. 11. 15. 11:50

 

 

감독 : 정연식

주연 : 김선아, 마동석, 신정근, 정인기, 이청아, 박효주, 온주완

개봉 : 2013년 11월 14일

관람 : 2013년 11월 14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이렇게 단숨에 읽은 웹툰은 오랜만이다.

 

지난 월요일이었습니다. 주말에 <제15회 부천국제학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본 [극장판 요술공주 밍키 : 꿈속의 윤무]의 영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작 글은 쓰지 못하고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버렸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쓰는 것을 잊을 만큼 단숨에 저를 빠져들게 만든 것은 바로 정연식 작가의 웹툰 <더 파이브>였습니다. 

김선아 주연의 스릴러 영화 [더 파이브]가 개봉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솔직히 저는 [더 파이브]에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한 여성의 복수극이라는 영화의 소재가 너무 어두웠고 섬뜩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서 유난히 어두운 한국 영화가 많이 개봉했고, 또 그러한 영화들을 저는 극장에서 많이 봤습니다. 그렇기에 제 정신 건강을 위해서 [더 파이브]만큼은 극장에서 보기를 포기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더 파이브]가 웹툰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호기심에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가 그만 마지막회까지 단숨에 읽어버린 것입니다. 사실 그림체는 강풀 작가의 그림체와 닮아 있기에 정교한 편이 아니었지만, 스토리 자체가 워낙 탄탄하고, 가족을 잃은 은아의 심리가 너무나도 잘 표현되어 있어서 웹툰 읽기를 중간에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웹툰인 <더 파이브>를 읽고나니 영화 [더 파이브]가 너무나도 기대되었습니다. 웹툰 자체가 워낙 영화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웹툰을 읽는 내내 웹툰의 장면들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제 머리 속에 그려지더군요. 그러한 웹툰을 영화에 고스란히 옮겨만 놓아도 정말 멋진 스릴러 영화 한편이 탄생할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웹툰의 원작자인 정연식이 영화의 감독까지 맡았다는 사실은 제 기대감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아무래도 웹툰의 원작자인 만큼 웹툰이 가지고 있는 재미를 잘 파악해서 영화에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구피에게 웹툰 <더 파이브>의 내용을 설명해줬습니다. 잔인한 스릴러 영화를 싫어하는 구피는 가만히 <더 파이브>의 내용을 듣더니 영화 [더 파이브]가 개봉하면 함께 보러가자고 하더군요. 구피 역시도 웹툰의 내용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장기를 내거는 은아. 그러한 은아의 처절한 복수는 스릴러 영화를 싫어하는 구피의 마음도 움직인 것이죠.

결국 저희 부부는 [더 파이브]의 개봉날 밤에 극장을 찾았습니다. 요즘 저는 갑자기 찾아온 강추위로 인하여 감기기운이 있고, 1년에 두번하는 회사 재고 조사로 인하여 매일 야근 중이라서 몸의 컨디션은 최악이었지만, 그래도 [더 파이브]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더 파이브]가 개봉하자마자 최대한 빨리 극장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김선아의 연기 변신... 일단 성공이다.

 

웹툰 <더 파이브>가 영화 [더 파이브]로 옮겨지면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캐스팅입니다. 어떤 배우들을 캐스팅했느냐는 웹툰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에게 영화도 만족할 수 있게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더 파이브]는 분명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 몇몇 캐릭터들은 최상의 캐스팅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웹툰에서 조폭 출신이지만 은아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어준 대호 역에 마동석을 캐스팅한 것은 매우 적절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은아 역에 김선아를 선택한 것은 굉장한 모험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선아는 2005년에 방영되었던 16부작 TV 미니시리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배우입니다. 분명 <내 이름은 김삼순>은 김선아를 스타덤에 올려 놓았지만 반대로 연기 족쇄가 되고 말았습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후 김선아는 비슷비슷한 코믹 캐릭터에 묶여 버렸습니다. 그나마도 최근 그녀가 주연을 맡은 영화들 [걸스카우트], [투혼]은 흥행에 참패하며 김선아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습니다.

그러한 배우적 한계 상황에서 김선아는 연기 변신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고, [더 파이브]는 그러한 김선아에게 최적의 영화인 셈입니다. 이미 임창정이 김선아와 비슷한 처지에서 [공모자들]로 연기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그러한 임창정의 성공 사례는 김선아에게 롤모델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김선아의 입장에서입니다. 김선아의 입장에서 [더 파이브]는 연기 변신을 통해 배우적 입지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겠지만, [더 파이브]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위험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만약 김선아가 은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김선아는 다음 영화를 통해 기회를 엿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파이브]는 그것으로 끝입니다. 다음 기회라는 것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김선아의 연기는 만족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영화의 초반, 은아가 행복했던 시절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아직 여전히 삼순이의 모습이 비춰지기도 했지만, 살인마 재욱(온주완)으로 인하여 가족을 잃은 후, 짧게 커트한 헝크러진 헤어 스타일로 나오면서부터는 확실히 삼순이가 아닌 은아가 되어 열연을 펼쳤습니다.

[더 파이브]를 보기 전에 김선아의 연기가 가장 걱정스러웠는데, 막상 영화를 확인해보니 그녀의 연기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살인마 재욱을 연기한 온주완도 나름 연기 변신에 성공한 것 같아 [더 파이브]의 모험은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철민을 연기한 정인기가 원작과는 달리 조금 방정맞은 캐릭터라서 적응하기 힘들었고, 이청아가 연기한 정하가 원작에 비교해서 캐릭터가 많이 변화되었고, 비중이 늘어나 의아했지만, 그 정도가 크지 않아 [더 파이브]를 감상하는데 큰 방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원작 웹툰에서 바뀐 것들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원작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습니다. [더 파이브] 역시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원작자와 감독이 동일 인물이라 할지라도 시간적 제한이 없는 웹툰을 2시간이라는 한정된 러닝타임의 영화로 옮기면서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고, 또 많은 부분이 영화적으로 재설정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살인마 재욱이 은아의 가족을 살해하는 동기입니다. 웹툰에서는 새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내놓은 은아의 집에 들른 재욱이 우연히 자신과 마주친 적이 있는 은아를 없애기 위해 은아 가족을 상대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은아의 딸이 재욱을 알아보는 바람에 은아 가족이 봉변을 당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아마도 은아의 가족이 이사를 준비중이라는 상황 설명을 줄이기 위한 작은 변화로 보입니다.

은아가 자신의 장기를 미끼로 자신을 동료를 구하는 장면 역시 웹툰과 차이가 있습니다. 웹툰에서는 이미 오래 전 은아는 그러한 계획을 세웠고, 재욱의 흔적을 발견하자마자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은아씨는 건강한 신체를 가졌잖아요.'라는 혜진(박효주)의 말에 비로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나옵니다.

 

캐릭터에서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정하의 직업이 카드사 텔레마케터에서 흥신소 직원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큽니다. 웹툰에서 정하는 재욱의 카드 사용 내역을 통해 그의 위치를 파악하지만 흥신소 직원인 영화 속의 정하는 인터넷 아이피 주소와 CCTV를 통해 재욱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그러한 정하의 캐릭터 변화는 정하가 재욱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흥신소 사장에게 몸을 바치는 장면으로 연결되는데, 웹툰에서 '더 파이브' 멤버 중에서 가장 비중이 적었던 정하의 캐릭터가 덕분에 비중이 대폭 늘어나고 말았습니다.

정하의 캐릭터 비중이 늘어난 대신 남철(신정근)과 혜진의 캐릭터는 축소되었습니다. 웹툰에서 남철은 불법체류자인 여성과의 아련한 중년의 사랑을 나눴습니다. 그가 두 눈이 실명되기 전에 은아에게 안구를 이식받아야했던 절박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사랑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철의 캐릭터가 축소되며 남철의 사랑 역시 생략되었습니다. 그로인하여 가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은아의 계획에 참가한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남철은 겨우 안구 이식을 위해 목숨을 거는 위험한 계획에 참여한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웹툰에서 은아의 유일한 친구이자 역시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던 혜진은 은아에게 자신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는 장면이 삭제되었는데, 영화에서는 직접적인 혜진의 과거에 대한 언급이 없어 관객의 상상력에 맡기고 있습니다. 웹툰에서 혜진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장면을 좋아했던 저로서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녀, 지옥에서 벗어나다. (이후 스포 포함)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캐릭터가 축소된 남철과 혜진은 웹툰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중간에 재욱에게 죽음을 당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남철과 혜진의 축소된 비중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미처 하지 못한 관객들은 그들의 죽음에 의한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웹툰에서 남철과 혜진의 죽음에 많은 독자들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며 정연식 작가에게 '꼭 그래야만 했냐?'라고 성토했었습니다. 어쩌면 영화에서 남철과 혜진의 비중 축소는 웹툰에서의 독자들의 성토를 받아야 했던 정연식 감독의 학습효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 [더 파이브]가 웹툰과 비교해서 가장 많이 바꾼 것은 영화의 후반부입니다. 재욱과 은아의 마지막 대결의 무대가 웹툰에서는 은아의 집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재욱의 작업실입니다. 저는 그러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만큼은 영화가 웹툰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영화의 스펙타클함을 잘 살려낸 설정이기 때문입니다.

재욱은 인형 제작 작가입니다. 그는 자신이 창조주라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거리에서 몸을 파는 젊은 여자를 집으로 유인, 살해하여 인형으로 재탄생시킴으로서 더러운 영혼을 순결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재욱. 은아는 그런 재욱을 상대로 그의 피조물을 부쉬는 것으로 대항합니다. 재욱에게 가족을 잃은 은아가 재욱의 가족과도 같은 인형을 부수며 복수를 완성하는 장면은 상당히 극적입니다. 특히 재욱의 마지막 죽음 장면은 웹툰의 설정이 약간 무리가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적절한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정연식 감독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웹툰의 결말이 영화에서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점입니다.

웹툰을 읽으며 은아가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부모님을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저는 조용히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5살, 시장에서 부모님을 잃은 이후 고아원에서 자란 그녀. 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행복이었던 남편과 딸은 재욱에게 죽음을 당합니다. 혼자 살아남은 은아는 '바로 이 곳이 지옥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웹툰은 기본적으로 은아가 지옥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녀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 재욱을 사투 끝에 물리친 은아. 그런 은아에게 웹툰은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가족을 돌려주며 지옥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이제 그녀는 혼자가 아닙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딸의 복수를 했던 그녀는 이제 딸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상처를 치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도 당연히 은아가 지옥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웹툰과 완전히 딴판입니다. 은아는 죽음을 선택하며 대호, 철민, 정하의 가족들에게 새생명을 줌으로서 지옥에서 벗어납니다. 마지막까지 은아의 행복을 빌며 영화를 봤던 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영화의 선택에 충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정연식 감독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은아를 통해 새생명을 얻은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다독거립니다. 어쩌면 은아에게는 재욱을 죽였다고해도 살아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선택을 하는 은아의 모습은 평온해보였습니다.

객관적으로 영화를 평가한다면 웹툰에 비해서 몰입도는 떨어졌습니다. 웹툰을 읽었기에 영화 속 상황,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지만, 웹툰을 읽지 않은 분들이라면 영화의 전개가 조금 끊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웹툰과 다른 결말을 선택한 정연식 감독의 용기와 마지막 은아의 표정 만큼은 인상 깊었던 영화였습니다.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간절히 기도한다.

내게는 저런 지옥이 찾아오지 않기를...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