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카운슬러] - 두 세상의 갈림길에 선 남자의 잘못된 선택

쭈니-1 2013. 11. 19. 15:41

 

 

감독 : 리들리 스콧

주연 : 마이클 패스벤더, 페넬로페 크루즈, 카메론 디아즈, 하비에르 바르뎀, 브래드 피트

개봉 : 2013년 11월 14일

관람 : 2013년 11월 18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바쁜 일이 끝난 기념으로 본 두 편의 영화

 

지난  토요일, 드디어 저희 회사에서 1년에 두번 실시하는 빅이벤트 재고조사가 끝이 났습니다. 이제 2013년 회사에서 남은 행사라고는 12월 20일에 뮤지컬 <고스트>를 보며 송년회를 하는 것 뿐입니다. 이렇게 2013년도 저물어 가고 있는 셈입니다.

바쁜 회사 일을 전부 끝내고나니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뒀던 영화가 마구 땡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쁜 일이 끝난 기념으로 두편의 영화를 연달아 봤습니다.

한편은 기대작이었던 [카운슬러]이고, 또 다른 한편은 애초에 볼 계획이 없었던 [친구 2]입니다. [카운슬러]를 보며 수 많은 캐릭터들이 잔인하게 죽어 나가는 꼴을 지켜봤는데, 연달아 본 [친구 2]에서는 영화 속의 캐릭터들이 사시미칼로 상대 캐릭터를 얼마나 많이 쑤셔대던지... 두편의 영화를 모두 보고나니 머리가 띵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보고 싶었던 [카운슬러]도 보고, 지난 주말 우리나라 박스오피스를 강타한 [친구 2]도 보고나니 마음 만큼은 홀가분했습니다. 이제 편한 마음으로 남은 2013년은 영화들로 제 일상을 가득 채워야 겠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조금 가볍고 밝은 영화들이 많이 개봉하기를...

 

[카운슬러]는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관람하기에 앞서서 가장 눈여겨 봐야할 이름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 아닌 각본을 맡은 코맥 맥카시입니다.

코맥 맥카시가 누구냐고요? 바로 2008년 아카데미를 휩쓴 코엔 형제의 문제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인간 문명의 종말을 너무나도 암울하게 다룬 [더 로드]의 원작자입니다.

특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게 크나큰 좌절을 안겨줬던 영화입니다. 저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렵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었는데,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이게 뮝니?'라며 멍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제 영화 이야기기 제목은 '나를 위한 영화제 수상작은 없다'였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카운슬러]를 보러 가면서 잔뜩 긴장을 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패배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에 영화 내내 정신을 바짝 차리며 영화 속의 대사 하나, 장면 하나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영화를 봤답니다. (이후 내용은 스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가급적 읽지 않으시기를 추천합니다.)

 

 

수 많은 수다들, 그런데 그 수다들은 의미있다.

 

제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충격 때문에 [카운슬러]는 바짝 긴장하며 영화에 집중해서인지, 다행스럽게도 [카운슬러]를 보면서는 영화의 내용과 속뜻이 이해가 되지 않아 멍때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굉장히 수다가 긴 영화입니다. 각본을 맡은 코맥 맥카시가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카운슬러]는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은, 소설 책에서나 나올 법은 기나긴 대화들로 영화를 가득 채웁니다. 그러한 의미없어 보이는 대화들은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으로 진행되면서 영화 속의 대화들이 후반의 비극을 암시하는 장면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식입니다. 웨스트레이(브래드 피트)는 돈을 벌기위해 마약밀매에 뛰어들으려하는 카운슬러(마이클 패스벤더)에게 수 많은 경고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목을 졸라 죽이는 강철 합금으로 만들어진 살인목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 웨스트레이는 바로 그 목줄로 인하여 최후를 맞이합니다.

 

영화의 중반부에 마약 운반업자들이 스너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저는 그러한 대화가 마약 업자들의 잔인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면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로라(페넬로페 크루즈)가 납치되고, 카운슬러에게 DVD가 배달되자 영화 중반의 스너프 영화에 대한 마약 업자들의 대화가 생각나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카운슬러]의 중반까지만해도 캐릭터들의 별 의미없어 보이는 대화가 너무 많아 중반까지는 쫓아가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대화들은 영화 후반부를 이루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그렇게 중반부에 단서를 깔아 놓았기에 영화는 후반부를 생략으로 넘어가기도합니다. 카운슬러는 DVD를 플레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DVD를 보지 않고서도 그 DVD에 담겨진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중반부에 DVD에 대한 단서가 이미 뿌려져 있었기 때문이죠.

웨스트레이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웨스트레이를 죽인 것은 총이나 칼이 아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목줄입니다. 하지만 그 목줄이 웨스트레이의 목을 파고들때 저는 이미 웨스트레이의 최후를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거리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지?'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웨스트레이를 지켜보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모두 손으로 눈을 가립니다. 이미 살인 목줄에 대한 설명을 영화의 중반에 들었기 때문이죠.   

 

 

카운슬러는 어떻게 음모에 빠졌는가?

 

그러한 수 많은 대사들은 [카운슬러]의 진실에 접근하는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특히 라이너(하비에르 바르뎀)가 카운슬러에게 자신의 여자 친구인 말키나(카메론 디아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영화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 중에서 눈여겨 볼 것은 자신조차 모르는 사실까지 말키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며 라이너가 카운슬러에게 넋두리처럼 늘어놓는 장면입니다. 라이너의 그러한 넋두리는 음모의 실체가 말키나임이 밝혀지는 영화의 중반부 이후 말키나에 대한 섬뜩함을 안겨줍니다.(나의 귀여운 카메론 디아즈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말키나는 마약을 빼돌리기 위해 이미 라이너의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했으며(영화의 중반 자신의 사무실이 도청되고 있음을 의심하는 라이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라이너는 물론, 카운슬러와 웨스트레이의 뒷조사까지 철저하게 해 놓은 것이죠.

그러한 사실을 토대로 영화의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로라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는 카운슬러는 라이너의 소개로 웨스트레이를 소개받고 마약 밀매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말키나가 마약을 빼돌리고, 결국 그로 인하여 카운슬러, 라이너, 웨스트레이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말키나 역시 빼돌린 마약을 다시 마약 업자들에게 빼앗기고, 결국 마약 대신 웨스트레이가 해외 계좌로 빼돌린 돈을 차지하기 위해 웨스트레이를 죽인 것입니다.

 

하지만 카운슬러는 물론, 라이너와 웨스트레이는 사건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당장 자신의 앞에 닥쳐온 위기를 피하기에 급급합니다.

특히 웨스트레이는 이미 오래 전에 마약 밀매업에서 손을 털어야할 때를 대비했다는 자만심에 잠시 방심하다가 죽음을 당합니다. 라이너는 마약 업자들에게 도망치려다가 총격전 끝에 죽음을 당합니다. 하지만 라이너를 잡으려한 마약 업자의 하수인들이 라이너를 산채로 잡으려 했음을 감안한다면 이미 마약 업자들은 라이너가 마약을 빼돌린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가장 큰 비극을 맞이하는 것은 카운슬러입니다. 그는 죽음보다도 가혹한 사랑하는 약혼녀 로라를 잃습니다. 마약 업자들이 카운슬러를 죽이는 대신 로라만을 죽인 것 역시 카운슬러가 마약을 빼돌린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음을 알고 카운슬러는 살려주는 대신 로라를 죽여 카운슬러에게 경고만 주려던 것으로 보입니다.(카운슬러가 로라와 만나기로한 호텔에는 이미 마약 업자들의 하수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결국 말키나의 음모로 인하여 카운슬러는 물론 라이너와 웨스트레이, 그리고 로라까지 비극을 맞이합니다. 과연 말키나는 겨우 돈 때문에 그러한 계획을 세웠을까요? 혹시 그녀의 어린 시절 죽은 부모와 관련된 복수는 아닐까요? 글쎄요. 그것은 영화에서 아무런 언급이 없으니 그저 상상에 맡길 수 밖에요. 

 

 

두 세상의 갈림길에 선 카운슬러

 

하지만 [카운슬러]에서 중요한 것은 흥미롭게도 사건의 진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영화는 말키나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장면이 통째로 생략됨으로서 이 영화가 그저 단순한 범죄스릴러 영화가 아님을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각본가인 코맥 맥코시와 감독인 리들리 스콧 감독이 [카운슬러]를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을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인간의 탐욕과 그로인한 죄의 댓가가 이 영화의 주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의 후반부 로라가 마약 업자들에게 납치당하자 카운슬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카운슬러에게 로라를 포기하라며 충고합니다. 아내의 죽음 이후 위대한 시인이 되었던 어느 시인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말이죠. 그의 충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카운슬러가 서로 다른 갈림길에 서있었으며, 스스로 지금의 길을 선택했음을 상기하는 부분입니다.

사실 그러합니다. 카운슬러는 굳이 마약 밀매에 손을 대지 않더라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비록 그는 재정난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자신의 생활을 조금 더 검소하게 꾸리고 변호사로서 일을 충실히 한다면 로라와 행복한 일생을 보낼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로라는 값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실제 로라는 카운슬러에게 약혼 반지를 받지만 그것이 얼마짜리 다이아몬드인지 관심조차 없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카운슬러의 과욕이었고, 그러한 과욕을 위해 그는 더 많은, 그리고 손쉽게 돈을 얻기 위해 마약 밀매라는 범죄의 길을 선택합니다.

 

라이너는 물론, 웨스트레이도 카운슬러에게 경고합니다. 하지만 카운슬러는 탐욕에 눈이 멀어 그들의 경고를 무시합니다. 그는 젊은 변호사로서의 상류층의 안정적인 삶과 마약 밀매라는 거칠고 위험한 범죄자의 삶이라는 두 세상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탐욕에 눈이 멀어 거칠고 위험한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죄의 댓가를 톡톡히 치룹니다. 그의 이전 세상은 무너졌습니다. 실제로 영화 초반 카운슬러의 환경과 말키나의 음모로 마약 업자들에게 쫓기기 시작한 후의 환경은 도저히 같은 세상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과 극입니다.

늦은 시간대 거리를 나갔다가 언제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빈민가, 거리에선 무고하게 희생당한 소녀들을 위한 시민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카운슬러가 마약 밀매라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곳의 풍경은 카운슬러와는 상관이 없는 다른 세상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갖기위해 욕심을 부린 카운슬러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끔찍한 빈민가 풍경의 일원이 되어 버립니다.

어쩌면 코맥 맥코시와 리들리 스콧 감독은 카운슬러가 처한 이 끔찍한 상황을 통해 탐욕에 눈이 먼 현대인들의 몰락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질적 욕심과 섹스와 쾌락에 대한 탐닉에 빠진 타락한 현대인들에게 내려진 끔찍한 형벌. 그렇기에 마지막 카운슬러의 울부짖음은 자기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 그리고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사실 [카운슬러]는 카운슬러라는 주인공만 뒤쫓는다면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는 영화입니다. 아름다운 약혼녀를 둔 성공한 변호사 카운슬러. 우리는 그저 그러한 카운슬러의 몰락만 뒤쫓으면 타락한 현대인들의 탐욕에 대한 몰락이라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카운슬러]는 범죄 스릴러의 외형을 띄며 영화 중간 중간에 마약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는 복잡한 과정을 보여줍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카운슬러]는 범죄 스릴러에 관심이 없는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말키나의 치밀한 계획과 범죄 장면은 생략됩니다.

그렇게 생략된 범죄 장면에 집중해서 영화에 몰입하니 당연히 영화는 복잡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사라진 마약의 행방은 이 영화에서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카운슬러]는 관객으로 하여금 마약의 행방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영화 속의 카운슬러가 처한 상황과도 같습니다. 카운슬러가 빠져나올 수 없는 위기에 빠진 것은 사라진 마약 때문이 아닙니다. (실제로 마약은 다시 마약 업자의 손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탐욕에 의한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재미를 위하여 젊은 여성들을 납치해서 스너프 영화를 찍는 이들과 함께 일을 하기로 선택한 그 순간 그의 비극은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마약의 현대인들의 탐욕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카운슬러도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마약이라는 탐욕에 의해 영화의 진실을 보지 못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카운슬러]는 관객들마저 혼란에 빠뜨린 참 오묘한 재미를 지닌 영화였습니다.

 

당신이 두개의 갈림길에 서있다면 과연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과연 우리는 탐욕을 비껴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명심하자,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