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노브레싱] - 젊음의 풋풋함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쭈니-1 2013. 11. 7. 15:58

 

 

감독 : 조용선

주연 : 서인국, 이종석, 유리, 박철민

개봉 : 2013년 10월 30일

관람 : 2013년 11월 6일

등급 : 15세 관람가

 

 

여성을 위한 영화?

 

지난 주에 개봉한 영화 중에서 독보적인 기대작이었던 [토르 : 다크 월드]를 일찌감치 본 저는 [노브레싱]과 [응징자] 중에서 한편을 더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제가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기에 마음은 [응징자]로 기울었지만, 풋풋한 청춘의 기운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 결국 선택한 영화는 [노브레싱]이 되었습니다.

수요일 밤 9시 30분. 혼자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평일 밤에 영화를 보는 것을 힘들어가는 구피를 위한 배려(?)인 셈입니다. 하지만 극장에 도착한 저는 [노브레싱]을 보기 위해 혼자 극장을 찾은 제 선택을 후회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노브레싱]이 상영하는 상영관 안에는 남성 관객이라고는 저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온 여성 관객부터 시작해서 여러명이 함께온 여성 관객들까지. 극장에 가면 흔히 보는 남녀 커플 관객은 물론이고, 아무리 상영관 안을 둘러봐도 저를 제외하고는 남성 관객은 전혀 보이지 않더군요. 아마 상영관 안의 여성 관객들은 중년 남성이 혼자 상영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지 않았을까요?

 

[노브레싱]이 상영하는 상영관 안에 남성 관객은 저 혼자일 정도로 여성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아마도 그만큼 [노브레싱]이 여성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영화라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그 반대로는 남성 관객의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못한 영화임을 뜻하기도합니다.)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어느 체고의 남자 수영부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노브레싱]은 여성 관객에게 인기가 많은 서인국과 이종석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수영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수영복만 착용한채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고, 그 덕분에 서인국, 이종석의 탄탄한 초콜릿 복근이 화면을 가득 채우기도 합니다.

[노브레싱]을 보면서 조용선 감독이 서인국과 이종석을 캐스팅하여 아주 제대로된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한 상업 영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주인공들을 잔뜩 내세워 남성 관객을 노리는 영화처럼, [노브레싱] 역시 여성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풋풋한 꽃남들이 복근을 자랑하며 영화 속에 등장하니까요. 하지만 과연 [노브레싱]은 여성 관객만을 위한 영화일까요? 

 

 

젊음의 풋풋함, 그것으로 나는 만족이다. 

 

사실 제가 애초부터 [노브레싱]을 보러간 이유는 풋풋한 젊음의 에너지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수영을 소재로한 스포츠 영화와 젊은 배우들로 채워진 주인공들, 그리고 그들의 우정과 사랑이라는 스토리 라인 자체가 젊음을 느끼기에 충분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특히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보지 않은 저로서는 서인국을 단지 <슈퍼스타 K> 출신의 가수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노브레싱]을 보니 그의 연기는 분명 기대이상이었습니다. 

서인국이 연기한 원일은 겉보기엔 매우 밝아보이지만 내면에는 아픔을 간직한 복합적인 캐릭터입니다. 영화의 첫 시작부터 그러합니다. 교내에서 술을 마시다 걸린 원일과 친구들. 하지만 술은 마시지 않고 망을 본 원일만이 퇴학조치가 내려집니다. 원일을 퇴학조치하던 선생은 원일에게 "누구나 기댈 언덕이 필요한 법이다."라며 고아인 원일이 모든 것을 뒤집어 써야 하는 불공정한 처사를 뻔뻔스럽게 설명합니다. "제발 고등학교만 졸업해라."라는 재석(박철민)의 한마디로 유추해본다면 고아인 원일이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원일은 웃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기를 게걸스럽게 해치웁니다. 마치 겨우 이딴 일로는 날 절망에 빠뜨릴 수 없다며 세상에 소리라도 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원일의 겪었을 과거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영화는 원일의 순진한 웃음과 낙천적인 표정이 가면에 불과했음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아픔을 숨기기 위한 가면. 서인국은 그러한 원일의 캐릭터를 기대이상으로 연기한 것입니다. 

 

이종석은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 TV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그리고 영화 [관상]에서 보여줬던 까칠한 이미지를 이번 [노브레싱]에서도 재현합니다.

그가 연기한 우상은 한국 수영계의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1등만을 외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에 그의 얼굴에는 젊음의 풋풋함 대신 1등이 아니면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냉정한 표정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원일과 같은 체고에 다니면서 점차 변해갑니다. 친구라고는 사귀어 본 적이 없던 그가 원일을 비롯한 정동(심민철), 대찬(김재영)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며 비로서 고등학생다운 풋풋함을 되찾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노브레싱]은 원일과 우상의 풋풋함 되찾기 프로젝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거의 상처를 통해 거짓된 풋풋함으로 자기 자신을 감추었던 원일은 우상의 도움으로 죽은 아버지의 진심을 깨닫고 진정한 풋풋함을 되찾게 됩니다. 언제나 1등만을 외치던 아버지 밑에서 젊음의 풋풋함을 잃은채 살던 우상 역시 원일과 함께 하며 젊음의 풋풋함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원일과 우상이 함께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제가 [노브레싱]에서 원했던 젊음의 풋풋함을 제대로 충전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사실 그것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애초부터 [노브레싱]에 이야기의 짜임새, 완성도 등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저 20년전 저 역시도 가졌을 풋풋함을 만끽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이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 있었다.

 

어쩌면 제가 [노브레싱]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애초부터 이 영화에 젊음의 풋풋함만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영화에 대한 제대로된 기대감은 그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원일과 우상이 가지고 있는 상처, 트라우마는 모두 아버지에 의한 것입니다. 원일은 2류  수영 선수였던 아버지가 은퇴 경기에서 사망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단지 아버지와 함께 야구장에 가고 싶었는데, 언제나 수영 연습에 몰두하던 아버지는 그러한 아들의 소박한 꿈을 이뤄주지 못한채 죽은 것입니다.

그러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수영 천재였던 원일이 수영을 그만 두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기 위해 억지로 체고에 편입하지만 원일에게 수영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내면적인 공포와 상처가 도사리는 공간인 것입니다. 

결국 원일이 그러한 과거의 상처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아들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은퇴 전에 멋진 경기를 펼치고 싶었던 원일의 아버지. 결국 그의 은퇴 경기는 의도하지 않은 죽음으로 원일에게 상처로 남았지만, 원일은 자신과 수영 밖에 모른다고 오해했던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됨으로서 상처를 딛고 수영 선수로 재기할 수 있게 됩니다.

 

원일이 아버지의 진심을 깨닫게 되면서 상처를 딛고 재기하게 된다면, 우상은 그 반대로 아버지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함으로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수영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영화의 초반, 어린 원일과 우상은 주니어 수영 경기에서 맞대결을 펼칩니다. 그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원일과 은메달을 딴 우상. 우상은 자신이 2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은메달을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비록 이제는 국내 수영계의 독보적인 존재가된 우상이지만 "좀 즐기면서 해라."라는 원일의 충고에 우상은 "1등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며 냉정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상의 일등주의는 우상의 아버지가 심어준 트라우마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가 되면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부상 사실을 숨겼던 우상의 진심을 알게된 그의 아버지는 2등이된 우상을 진심으로 안아줍니다. 1등이 되었어도 웃지 않던 우상이 2등이 되었는데도 웃을 수 있게된 것이죠. 그는 더이상 "1등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라고 냉정하게 말하던 예전의 우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러한 원일과 우상의 장면에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것이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인 것 마냥. 하지만 원일은 아버지의 납골당에서 울면서 말합니다. "누가 금메달 따달래? 그저 아빠와 함께 야구장에 가고 싶었을 뿐이잖아." 맞습니다. 돈을 벌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아버지의 의무는 자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요? 우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자식이 1등이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욕심 때문에 우리의 자식들을 1등 트라우마에 가둬놓고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할 것 같습니다.

 

 

영화의 완성도는 미달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니 구피가 "영화는 어땠어?"라고 묻습니다. 저는 "괜찮았어."라고 대답해줬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라며 "의외네. 모두 재미없다고 그러던데..."라고 말하더군요.

솔직히 객관적으로 본다면 [노브레싱]은 완성도가 상당히 낮은 영화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용선 감독은 분명 여성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들을 버무려 풋풋함이 묻어나는 청춘 스포츠 영화를 만들었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풋풋함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죠.

재석의 딸이자, 원일과 우상이 동시에 좋아하게되는 여성 캐릭터 정은(유리)이 그 대표적입니다. [노브레싱]에서 정은의 존재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청춘 스포츠 영화에서 풋풋한 사랑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고, 남성에게 인기가 많은 걸그룹 '소녀시대'의 유리를 캐스팅 함으로서 여성 관객은 물론 남성 관객도 잡겠다는 전략이었을 것입니다. 나쁘지 않은 전략입니다.

하지만 [노브레싱]에서 유리의 역할을 보면 전략은 좋았지만 그녀를 활용하는 감독의 능력은 부족했습니다. 정은은 원일에게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이지만 남녀로서의 감정이 서서히 싹트는 '사랑과 우정사이'의 존재입니다. 우상에게도 정은은 어린 시절부터 남몰래 짝사랑하던 첫사랑의 설램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결국 정은의 존재는 원일에게도, 우상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작 영화에서는 정은이 노래하는 장면들을 통해 매력을 발산시키려합니다. 정은의 캐릭터적 매력대신, '소녀시대' 유리의 의한 매력으로 관객에게 어필하려한 것이죠. 그렇기에 정은이 원일과 우상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채 <슈퍼스타 K>를 연상하게 하는 극중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장면을 비춰주는 것은 '삼천포로 빠지다.'라는 옛말이 연상되는 대목입니다.   

 

장면 전환도 촌스러웠습니다. 예를 들어서 의사인 우상의 사촌 누나가 "너무 수영에만 매달리지 말고 다른 것도 해봐라."라고 충고하는 장면이 나오자 곧바로 우상이 꽃다발을 들고 정은의 집을 찾는 장면으로 다짜고짜 넘어갑니다. 

영화 내내 수영밖에 모르던 우상의 차가운 면을 부각시켰던 영화가 사촌 누나의 한마디로 갑자기 성격이 확 바뀐 것이죠. 그 중간에 우상이 정은에게 갈까 말까 고민하는 장면 정도는 넣어줬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한 장면은 또 있습니다. 학교의 전국체전 대표로 뽑힌 2학년 정동. 그러나 3학년 선배들은 정동에게 민폐끼치지 말고 자퇴하라며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은 정동이 학교를 자퇴하고 짐을 싸는 장면입니다. [노브레싱]의 러닝터임은 2시간입니다. 그런데 마치 이 영화는 1시간 30분짜리 영화를 찍으며 시간에 쫓기듯 장면 전환이 느닷없이 진행됩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수영 장면에서도 기술적 부족함이 드러납니다. 영화는 수영의 역동적인 스피드를 잡아냄과 동시에 중요한 순간에는 슬로우 비디오를 통해 극적인 장면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슬로우 비디오 장면이 자꾸 연출되다보니 오히려 수영의 역동적인 스피드 장면이 어색해져버렸습니다. 저는 국가대표 선발전인 영화의 마지막 수영 장면에서 원일과 우상의 스피드한 수영 장면이 마치 필름을 빨리 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마 정말 그러지는 않았겠죠?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스포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관객이 스포츠 현장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국가대표]가 그랬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노브레싱]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저는 가장 아쉬웠습니다.

결국 [노브레싱]은 젊음의 풋풋함이 느껴지는 영화이기는 했지만 영화적 완성도는 제 기대에 못미칠 정도의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음의 풋풋함이라도 있기에 저는 이 영화를 보러간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나도 저렇게 풋풋할 때가 있었다.

영화의 완성도가 그들의 풋풋함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젊음의 풋풋함을 만끽한 것만으로 만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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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