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롤러코스터] - 가벼운 잽만 날리다가 끝나더라.

쭈니-1 2013. 10. 23. 11:47

 

 

감독 : 하정우

주연 : 정경호, 김기천, 김병옥, 최규환

개봉 : 2013년 10월 17일

관람 : 2013년 10월 22일

등급 : 15세 관람가

 

 

그래, 이제 코미디 영화를 볼 차례이다.

 

몇 주전부터 저는 '생각없이 웃기는 코미디가 보고 싶어!'를 간절하게 외쳤었습니다. 몇 년전만해도 코미디는 우리나라 영화의 주류 장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누가 누가 더 잔인한가? 내기라도 하듯이 잔인한 설정의 스릴러 영화가 우리나라 영화의 주류 장르가 되어 버렸습니다.

[스파이]를 보며 아무 생각없이 속 시원하게 웃었던 저는 제2의 [스파이]를 기다렸지만 좀처럼 극장에서 볼만한 우리나라의 코미디 영화가 제 눈에는 띄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롤러코스터]와 [밤의 여왕]이 새롭게 개봉하며 코미디 영화에 대한 제 갈증을 해소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일요일에 [러브레이스]를, 월요일에 [그래비티]를 연속으로 봤지만 아직 코미디 영화를 보지 못한 저는 화요일에 [롤러코스터]와 [밤의 여왕] 중 한편을 고르기로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선택한 영화는 [롤러코스터]입니다. 일단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롤러코스터]가 [밤의 여왕]보다 약간 많은 관객을 동원했고, 배우 하정우의 감독 데뷔작이라는 화제성이 있으며, 영화를 본 네티즌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설레이는 마음으로 극장으로 향한 저는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코미디 영화에 대한 갈증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롤러코스터]가 그다지 웃기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웃겼습니다. 특히 바비 항공의 승무원들이 주고 받는 말장난은 [롤러코스터]가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영화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육두문자맨>으로 한류 스타에 오른 마준규(정경호)가 비행기에서 만나는 인간 군상들도 캐릭터 자체가 매우 독특했습니다. 마준규에게 사인을 요구하는 중년여성(황정민)부터 진상 고객 포스를 풀풀 날리는 신문 기자(최규환), 그리고 닭살돋는 신혼 부부(이상원, 이수인)와, 스님(김병옥), 게다가 대기업 허승복(김기천) 회장과 그의 비서(손화령)가 뒤늦게 비행기에 탑승하며 독특함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 군단이 완성됩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마쳤습니다. 마준규가 탄 바비 항공의 비행기에는 승무원에서부터 탑승객까지 모두 독특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포복절도할 에피소드만 완성한다면 [롤러코스터]는 제가 기대했던 웃음을 안겨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카운터 펀치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롤러코스터]를 보며 저는 웃었습니다. 코미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웃음임을 감안한다면 제가 웃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제는 웃음의 강도입니다.

저는 끊임없이 '킥킥'거리며 웃었습니다. 영화 속의 독특한 캐릭터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저를 '킥킥'거리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러나 결코 저는 큰소리로 '하하' 웃지는 못했습니다.

[롤러코스터]는 한류 스타 마준규가 비행기를 타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를 한류 스타로 만든 <육두문자맨>의 캐릭터 때문에 마준규는 욕설을 입에 담고 삽니다. 비행기에서 어린 꼬마가 마준규에게 '욕해봐'라며 요구했을 때, 마준규가 꼬마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하던 욕이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웃음 중의 하나입니다.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캐릭터들로 영화를 진행해야되다보니 영화에서 펼칠 수 있는 에피소드 역시 한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막무가내로 사인을 요구하는 닭살 신혼부부, 마준규와 악연이 있는 승무원(나혜진), 그리고 마준규가 한눈에 반해버린 일본인 승무원(고성희)까지. 영화는 독특한 캐릭터와 한정된 에피소드로 쉴새없이 잽을 날립니다.

 

권투에서 기본은 잽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잽만 날리면 경기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다운시킬 강력한 카운터 펀치가 있어야 합니다. [롤러코스터]에서는 바로 그러한 카운터 펀치가 기상악화로 김포공항 착륙에 실패하면서 펼쳐집니다.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추락할지도 모를 위기 상황. 이미 김포공항에서 두번의 착륙이 실패하고, 인천공항에서조차 착륙에 실패하자, 비행기의 연료는 부족하게 됩니다. 이제 남은 기회는 단 한번뿐, 한기범(한성천)기장은 제주 공항으로 마지막 착륙을 결정합니다.

제주 공항으로의 마지막 착륙이 실패한다면 연료가 부족한 비행기는 추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승객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고 그러한 가운데 자신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바로 그러한 비행기 안의 아비규환 상태가 [롤러코스터]가 준비한 카운터 펀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독특한 캐릭터로 성공적인 잽을 날리던 [롤러코스터]가 정작 중요한 카운터 펀치를 날릴 때에는 주저하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잽을 날리던 다른 독특한 캐릭터들은 오히려 숨을 죽이고, 마준규 혼자 웃기겠다며 고군분투하기 시작합니다. [롤러코스터]의 그러한 상황이 저는 조금 당황스럽더군요.

 

 

결국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롤러코스터]의 클라이맥스에서 주목할 것은 마준규의 변화입니다. 영화의 초반 마준규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매니저(고규필)에게 막말을 하며 무시합니다.

그는 사귀는 애인이 있지만 매번 문란한 사생활로 인하여 스캔들 기사가 터지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급히 귀국하는 것 역시 스캔들 기사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안하무인 톱스타. 그것이 마준규의 진짜 모습입니다.

비행기 안에서도 마준규는 본성을 버리지 못합니다. 일본인 승무원 미나미토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한 것이죠. 그녀를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며 치근덕거립니다. 이미 비바 항공의 정찬미 승무원에게 치근덕거렸고, 그로인하여 그녀의 원한을 샀던 마준규가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미나미토에게 또다시 치근덕거리는 것입니다.

그랬던 마준규가 비행기가 김포공항 착륙에 실패하자 하늘에 기도를 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칩니다. 자신이 애인에게 잘못했던 것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그녀에게 잘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애원합니다. 

 

비행기가 김포공항, 인천공항 착륙에 연달아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제주공항으로 항로를 바꿉니다. 이 장면에서 마준규는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더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승무원을 폭행하고, 마구 욕설을 날리다가 결국 전기총에 맞아 기절합니다.

자! 이것이 [롤러코스터]가 준비한 클라이맥스입니다. 분명 상황에 따라 변하는 마준규의 모습은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웃기지 않았습니다. 마준규가 폭주하는 그 장면조차 '바지 실례' 장면을 제외하고는 영화 초반의 자잘하게 잽을 날리는 장면들보다 전혀 웃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정우 감독은 마준규의 폭주로 웃음보다는 다른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고, 마준규는 또다시 안하무인의 톱스타로 돌아갑니다. 만약 하정우 감독이 '인간은 결국 변하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면 그러한 마준규의 변화는 꽤 의미심장합니다. 하지만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면 [롤러코스터]는 저를 웃기는데 실패한 코미디 영화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감독 초보 하정우. 앞으로도 그의 영화를 기대해도 될까?

 

여러분은 혹시 생애 처음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아마도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어린이 대공원으로 소풍을 가서 '롤러코스터'를 처음 탔었습니다.

사실 처음엔 무서웠습니다. 아무리 안전 장치를 했다고 하지만 무시무시한 속도로 360도를 회전하는 '롤러코스터'는 밑에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제게 충분히 공포심을 안겨줬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롤러코스터'를 타고 난 다음에는 그러한 공포심은 사라지고 짜릿함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친구들에게 나의 남자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롤러코스터'만 수차례 탔었습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면 탈수록 '롤러코스터'의 짜릿함은 점차 사라지고 허리아픔만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어린이 대공원의 '롤러코스터'를 시시하다며 타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롤러코스터'입니다. 아마도 하정우 감독은 '롤러코스터'처럼 짜릿한 재미가 있는 영화라는 뜻에서 그러한 제목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정우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의 초반은 독특한 캐릭터들로 인하여 짜릿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타면 탈수록 짜릿함이 사라지고 허리아픔만을 느껴야 했던 제 기억 속의 '롤러코스터'처럼, 영화 [롤러코스터]는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독특한 캐릭터로 인한 짜릿함이 사라지고, 마준규의 웃기지 않는 원맨쇼만 남으며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초보 감독의 미숙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정우 감독은 배우로서는 많은 영화들을 통해 이미 대세 배우로 자리매김을 했지만 영화 연출은 [롤러코스터]가 처음에 불과하니까요.

초보 감독들이 자주 그러하듯이 [롤러코스터]는 의욕만 앞설 뿐, 의욕을 충족시킬만한 영화적 재미는 획득하지 못합니다. 마치 기본기에 충실한 초보 권투 선수가 자신의 기본기를 토대로 열심히 잽을 날리지만 결국 경험 미숙으로 카운터 펀치를 날리지 못하고 경기에서 패배하는 것처럼, [롤러코스터]는 클라이맥스에 접어들자마자 급속도로 영화적 재미를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감독 하정우는 이제 시작이니 아직 실망은 금물이겠죠. 그가 [용서받지 못한 자], [구미호 가족] 등 작은 영화에서부터 차곡차곡 자신의 배우 경력을 쌓아갔듯이 감독으로서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코미디 영화는 웃겨야 한다.

작은 웃음이 아닌 큰 웃음을 안겨줄수록 그 재미가 점점 커진다.

이번엔 작은 웃음만을 안겨줬으니

다음 영화에서는 큰 웃음을 안겨줄 수있는 경험이 쌓이기를...

하정우 감독에게 기대해 본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