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드니 빌뇌브
주연 : 휴 잭맨, 제이크 질렌할, 테렌스 하워드, 폴 다노, 멜리사 레오
개봉 : 2013년 10월 2일
관람 : 2013년 10월 1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세상이 너무 험해~
지난 10월 15일, 저는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를 봤습니다.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영화의 설정 자체가 너무 잔인해서 보기 꺼려졌지만 지난 41주차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기록했기에 꼭 봐야겠다고 결심했던 영화입니다.
기왕 시간을 내서 평일에 영화를 보기로한만큼 저는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를 본 후 영화 한편을 더 보기로 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40주차 박스오피스 1위작인 [소원]이 유력했습니다. 하지만 40주차 기대작 1순위였던 [프리즈너스] 역시 극장에서 놓치기에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40주차 박스오피스 1위작인 [소원]과 40주차 기대작 1순위였던 [프리즈너스] 사이에서 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제 고민은 제 블로그의 단골 이웃인 오퀸님의 댓글 하나로 쉽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프리즈너스]를 보고 정리해달라는 오퀸님의 짧은 댓글을 보는 그 순간 저는 스릴러 영화에 대한 도전 정신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또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한가지 감안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와 [프리즈너스]는 둘다 아동 유괴를 소재로하고 있는 영화라는 점입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유괴를 소재로한 영화는 영화의 만듦새와는 별도로 불쾌하고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영화를 한편도 아닌 연달아 두편을 보다니... 하긴 [소원]도 아동 성폭행 사건이 소재인만큼 불편하긴 마찬가지였겠지만...
제가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와 [프리즈너스]를 본 곳은 CGV 김포공항이었습니다. 회사 끝나고 곧장 극장으로 달려갔지만, 영화 두편이 끝난 시간은 밤 11시 30분. 문제는 제가 주차를 이마트 김포공항에 했다는 것입니다.
CGV 김포공항과 가까운 김포공항 국제선 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했지만 5시간이 넘게 주차를 해야 하기에 주차비를 아낀다는 생각에 무료 주차인 이마트에 주차를 한 것입니다. CGV에서 이마트까지 지하 통로로 10여분을 걸어야 합니다.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통로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극강으로 잔인했던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와 아동 유괴 사건을 아버지의 심정을 2시간 30분동안 리얼하게 그린 [프리즈너스]를 연달아 본 후 한적한 지하 통로를 걸으려니 무섭더군요. 결국 무서운 마음에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구피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고, 일부러 콧노래를 부리기도 하며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을 향해 뛰다시피 걸었습니다.
어느 자동차 광고에서 TV 예능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8살 윤후가 지아에게 '세상이 너무 험해~'라고 말합니다. 그날 저는 CGV에서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 윤후의 그 한마디가 떠올랐습니다. 게다가 잔인한 영화 두편을 연달아 봤으니 누군가 뒤에서 저를 덮칠 것 같은 무서운 생각까지...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와 [프리즈너스]를 연달아보고 한적한 지하 통로를 걷기에 제게 세상은 너무나도 험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객기를 부리지 않으렵니다.
딸이 사라졌다. 그런데 범인이 풀려났다.
자! 그날의 무서웠던 기억은 이제 그만 잊고, [프리즈너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리즈너스]는 한가로운 휴일, 평화로운 마을에서 애나와 조이가 사라지면서 시작됩니다.
애나의 아버지인 켈러 도버(휴 잭맨)와 조이의 아버지인 프랭클린 버치(테렌스 하워드)가 애타게 사라진 딸을 찾는 사이, 담당 경찰인 로키(제이크 질렌할)는 유력한 용의자인 알렉스(폴 다노)를 체포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알렉스는 10살 지능을 가진 저능아. 알렉스가 아이들을 납치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은 가운데 알렉스는 풀려납니다. 하지만 도버는 알렉스가 범인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게다가 알렉스는 도버에게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깁니다. '내가 갈때까지 아이들은 울지 않았어요.' 과연 범인은 알렉스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누구일까요?
[프리즈너스]는 영화의 초반만 하더라도 스릴러 영화의 전형적인 전개를 따르는 듯 했습니다. 두 아이가 사라졌고, 범인은 바로 앞에 있지만 무능한 경찰은 범인에게 농락당합니다. 이제 남은 희망은 주인공 스스로 범인의 흉악한 계획을 만천하에 알리고 아이들을 구출해 내는 것입니다. 저는 '알렉스가 범인인가? 아닌가?만 맞추면 되겠군.'이라는 생각으로 영화에 편안하게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프리즈너스]는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만만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알렉스가 범인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 로키는 다각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파헤칩니다.
그러한 가운데 로키는 성범죄 경력이 있는 늙은 신부의 집에서 신원 불명의 시체를 발견하기도 하고, 애나와 조이가 무사히 집에 돌아오길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촛불 행사에서 수상스러운 한 남자를 뒤쫓기도 합니다.
도버는 알렉스를 납치, 감금하여 잔인한 고문을 가하며 딸의 행방을 찾으려 하고, 로키는 새로운 단서와 용의자들 사이에서 사건의 진실에 점차 다가갑니다. [프리즈너스]는 이렇게 도버와 로키라는 두 주인공을 내세워 사건을 두 갈레 방향으로 나눠 놓습니다. 도버가 맞다면 알렉스는 저능아 행세를 하는 흉악한 유괴범이고, 로키가 맞다면 알렉스는 그저 운이 없게 현장에 있었을 뿐, 범인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알렉스가 범인이다'에 쏠려 있는 제 의심이 로키의 치밀한 수사와 그로인한 새로운 단서들로 인하여 점점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만약 알렉스가 범인이 아니라면...' 버치는 도버에게 묻습니다. 도버는 '그릴리가 없어'라고 확신하지만 알렉스가 범인이 아니라면 알렉스를 향한 도버의 행동은 또다른 범죄가 됩니다. 영화 초반 알렉스를 의심하고 도버를 응원했던 저 역시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맹목적인 믿음이 불러온 비극 (스포 포함)
딸이 실종되며 이성을 잃은 도버, 그러한 가운데 차분하게 진실에 접근하는 로키. 바로 이 시점에서 [프리즈너스]는 맹목적인 믿음이 무너지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이야기합니다.
다시 영화를 앞으로 돌려보면, 오프닝씬에서 도버는 아들과 사슴 사냥을 함께하며 주기도문을 외웁니다. 그리고 울리는 한발의 총성, 가여운 사슴은 힘없이 고꾸라집니다. 사냥이라는 폭력적 행위와 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여주는 도버의 목소리는 이후 알렉스를 감금하여 잔혹한 고문을 할 때에도 다시 보여줍니다.
사실 도버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자살로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입니다. 똑같이 딸이 실종되었지만 버치와 도버의 행동이 극단적으로 달랐던 것은 도버에겐 그러한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 그렇기에 도버는 가족들을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도버는 알렉스를 가둡니다. 경찰이 아닌 도버로서는 딸을 되찾기 위해서 할 수있는 유일한 일은 알렉스를 납치해서 딸을 숨겨둔 장소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만약 알렉스가 범인이 아니라면? 그러한 의심 자체가 도버에겐 사치입니다. 알렉스가 범인이 아니라면 도버로서는 할 수있는 일이 없기에 도버는 알렉스가 범인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자기 자신을 지탱합니다.
로키는 치밀한 수사를 벌이며 새로운 단서들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도버는 로키의 새로운 단서들을 외면합니다. 그의 머릿 속에는 이미 '알렉스가 범인이다.'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영화의 후반 새로운 용의자인 밥 테일러의 집에서 조이의 양말이 발견되었을 때 도버는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알렉스가 범인이다.'라는 믿음이 깨진 도버는 진범의 정체를 깨닫게 됩니다. 만약 그가 '알렉스가 범인이다.'라는 맹목적인 믿음에 사로 잡히지 않았다면 좀 더 빨리 진실에 접근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왜 어린 아이들을 납치한 것일까요? 그에 대한 답 역시 맹목적인 믿음이 가져온 비극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처음 홀리 존스(멜리사 레오)와 그녀의 남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주말이면 아들과 함께 캠핑카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암으로 죽자 그들은 믿음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홀리는 말합니다. '이건 신에 대한 도전이다.'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신에 대한 믿음으로 봉사했건만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들의 죽음 뿐입니다. 결국 홀리와 그녀의 남편은 그들이 그토록 믿었던 신에게 도전하기로 결심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납치함으로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도록한 것입니다. 그러한 홀리의 범죄 행위는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맹목적인 믿음은 이렇게 비극을 불러 옵니다. '알렉스가 범인이다.'라고 굳건히 믿었던 도버의 맹목적인 믿음은 진실에 접근하는데 방해가 되었으며, 알렉스를 납치해서 잔인한 고문을 벌인 도버를 또다른 범죄자로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존스 부부의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오히려 신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로 바뀝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암으로, 혹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소중한 자식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존스 부부는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자신의 가족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고, 그러한 믿음이 깨어졌을 때 아동 유괴범이라는 잔인한 범죄자가 되고 맙니다.
그런 면에서 도버와 존스 부부는 서로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진정 [프리즈너스]가 섬뜩했던 것은 내가 감정이입을 하며 응원했던 도버가 잔인한 유괴범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느꼈을 때였습니다. 맹목적인 믿음은 그렇게 두 사람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잔인한 범죄자가 되게끔 이끌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갇힌 사람들이다.
영화의 제목인 '프리즈너스'는 죄수, 포로, 혹은 갇힌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목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땅 밑에 갇히는 도버의 처지를 뜻하기도 하고, 유괴당한 아이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프리즈너스]를 보다보면 이들에게 진정 심각한 것은 단순한 육체적 감금이 아닌 정신적 감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을 지키겠다는 강박에 갇힌 도버, 신에 대한 복수에 갇힌 홀리, 그 외에도 알렉스와 밥 테일러 역시 갇혀 있었습니다.
알렉스와 밥 테일러의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들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자유롭게 풀려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린 시절 자신을 납치한 존스 부부에 의해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알렉스는 성인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10살의 지능에 갇혀 있고, 밥 테일러는 성인이 되어서도 유아복과 뱀 (홀리는 남편이 뱀을 키웠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미로 (홀리 남편의 목걸이 무늬) 강박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진실이 밝혀졌을 때의 섬뜩함. 이러한 섬뜩함이 있기에 겁많은 저는 스릴러 영화를 포기하지 못하나봅니다.
[프리즈너스]는 무려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입니다. 하지만 도버에 감정이입을 하고, 로키의 치밀한 수사에 집중하다보면 2시간 3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영화에 대한 몰입도는 상당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좋았고, 영화의 마지막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의 섬뜩함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영화 속에 뿌려진 수 많은 단서들을 이해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는 신부의 집에서 발견된 신원불명의 시체가 홀리 존스의 사라진 남편이라는 점은 일찌감치 눈치챘지만, 밥 테일러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스릴러 영화에서 진범을 감추기 위해 그럴듯한 가짜 범인으로 관객을 혼동시킵니다. 사실 저는 밥 테일러가 진범을 감추기 위한 영화의 트릭일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밥 테일러가 알 수 없는 미로를 그리고 자살하는 장면에서 그가 단순한 미끼가 아닌 영화의 진실과 관련이 있는 중요 인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죠.
그렇게 밥 테일러를 처음부터 눈여겨 보지 않다보니 영화의 마지막 진실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그런데 밥 테일러는 뭐야?'라는 혼란을 느껴야 했던 것입니다. 진정 [프리즈너스]는 영화 속 모든 캐릭터가 영화의 마지막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소중한 단서임을 영화를 보고나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프리즈너스]는 보스톤 여아 실종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보스톤에서 실종된 여아가 십수년이 흐른 이후 한 남자의 집에서 발견된 사건이라고 합니다. 영화 속의 밥 테일러와 알렉스 존스는 보스톤 여아 실종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실제 사건의 피해자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고보니 결국 [프리즈너스]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 시절 유괴되어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밥 테일러와 알렉스 존스가 아니었을까요? 영화 초중반, 유력한 용의자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되는 순간의 충격. [프리즈너스]는 그렇기에 근래 보기 드문 스릴러 수작이라 평가를 받을만합니다.
우리는 어떤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그러한 맹목적인 믿음이 우리를 파멸시키기 전에,
우리 모두 한발자국 뒤에서 냉철하게 진실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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