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그래비티] - 아름다운 우주, 그리고 더 아름다운 인간의 의지

쭈니-1 2013. 10. 22. 13:18

 

 

감독 : 알폰소 쿠아론

주연 :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개봉 : 2013년 10월 17일

관람 : 2013년 10월 21일

등급 : 12세 관람가

 

 

[그래비티]를 3D로 관람하다.

 

지난 일요일에 [러브레이스]를 봤습니다. 사실 [러브레이스]는 지난 주에 개봉한 기대작 중에서 기대도 순위로만 따진다면 6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먼저 [러브레이스]를 본 이유는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에 1박2일로 회사 야유회를 다녀왔기에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기대도가 낮은 영화를 먼저 골랐던 것이죠.

그렇다면 지난 주에 개봉한 영화 중에서 기대도 1위인 [그래비티]는? 어느 정도 몸의 컨디션을 회복한 지난 월요일에 보고 왔습니다. 사실 몸의 컨디션이 완벽하게 회복하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했지만, (40대가 되는 몸의 회복 속도가 더딥니다. -_-;) 더 이상 [그래비티]의 관람을 미루기에는 [그래비티]를 보고 싶은 제 마음이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래비티]를 저는 오랜만에 3D로 봤습니다. [아바타] 이후 3D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그다지 크지 않았기에 왠만하면 3D 관람을 기피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구피가 "영화를 본 직장 동료들이 그러는데, [그래비티]는 3D로 봐야한대."라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정말 오랜만에 3D로 영화를 예매한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 어지러웠습니다. 제 어지러움의 원인은 1박 2일 동안 망가진 몸의 컨디션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비티]가 재현한 3D의 영향도 컸습니다.

[그래비티]는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를 탐사하던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 박사가 인공위성의 잔해와 부딪히며 우주에 홀로 남겨지게 되는 상황을 그린 재난 영화입니다.  등장 인물은 스톤 박사와 매트(조지 클루니) 단 둘 뿐이고, 영화가 중반부로 넘어가면 아예 스톤 박사 홀로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이렇게 특별한 스토리 라인없이 제한된 캐릭터와 제한된 공간 속에서 영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 영화의 3D는 우주라는 광활하지만 인간에게 꼭 필요한 산소가 없는 악몽의 공간을 현실적으로 잡아내는데 집중합니다.

그 결과 산소가 부족하여 괴로워하는 스톤 박사의 심정이 영화를 보는 제게도 고스란히 느껴졌으며, 인공위성의 잔해가 스톤 박사를 향해 날라오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피해야 했습니다. 너무 생생한 3D로 인한 어지러움은 동굴에서의 재난을 그린 [생텀]에서도 느꼈었습니다. 결국 [그래비티]는 우주라는 공간을 3D로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서 오히려 제게 어지러움을 안겨준 영화인 셈입니다.

 

 

매트가 전해주는 아름다운 우주

 

호기심이 많은 우리 인간들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영역을 끊임없이 도전해서 결국 정복합니다.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는 인간이 완벽하게 정복하기엔 너무 광할하지만 그래도 불가능의 영역으로 보였던 우주를 인간은 조금씩 정복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비티]는 바로 그러한 우주를 그린 영화입니다. 물론 우주라는 공간은 SF 영화에서 단골로 써먹는 소재입니다. 그러한 SF 영화들은 인간에겐 미지의 공간인 우주를 토대로 새로운 상상력을 생산해왔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비티]는 다릅니다. 이 영화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의 장르가 SF가 아닌 재난 영화로 보는 편이 맞습니다. [그래비티]가 만들어낸 우주라는 공간은 새로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SF가 아닌, 우리 인간이 지금 현재 경험할지도 모를 가능한 재난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가 그러하듯이 [그래비티] 역시 평화로운 장면으로 시작을 합니다. 허블 망원경을 고치는 스톤. 그러한 가운데 매트는 우주에서 유유히 유영을 즐기며 휴스턴 본부와 시덥지 않은 농담을 합니다. 그러한 초반부에서 3D로 재현된 우주는 아름다웠고, 우주에서 바라본 초록별 지구는 더더욱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평화로움은 곧 들이닥칠 무시무시한 재난의 시작입니다. 인공위성의 잔해가 스톤 일행을 덮칩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것은 스톤과 매트 뿐. 산소가 얼마남지 않은 스톤은 매트와 끈으로 연결된채 우주 정거장으로 가야합니다.

스톤의 산소는 점점 줄어듭니다. 그럴때마다 불안한 목소리로 매트에게 자신에게 남겨진 산소의 량을 보고하는 스톤. 하지만 매트는 침착하게 스톤을 안심시킵니다. 그렇게 매트가 스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보여주는 광경이 바로 역설적이게도 우주에서 바라보는 해돋이의 경이로움과 같은 우주의 아름다움입니다. 

우주라는 공간은 스톤에게 두려움의 공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두려움은 인간을 흥분하게 만들고, 흥분하게 되면 숨을 가쁘게 내쉬게 됩니다. 가뜩이나 산소가 부족한 스톤에게 있어서 흥분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죠. 매트는 그러한 스톤을 진정시키기 끊임없이 수다를 떨며, 우주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우주라는 공간이 두려움의 공간이기보다 아름다움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한 노력이죠.

그러한 매트의 존재는 스톤에게도,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그래비티]는 비록 산드라 블록의 원우먼쇼이기도 하지만, 매트를 연기한 조지 클루니가 있었기에 영화의 완성도가 더욱 빛났습니다.

 

 

스톤... 이제는 그녀 스스로 해내야한다.   

 

하지만 그렇게 믿음직한 매트는 영화의 중반 이후 사라집니다. 스톤과 연결된 줄을 끊으려는 매트. 그런 매트에게 스톤을 애원합니다. '제발 그러지 말아요.'

스톤에게도, 그리고 영화를 보던 제게도 든든한 힘이 되어준 매트가 그렇게 우주 속으로 사라지며 [그래비티]는 본격적인 스톤의 생존기에 접어듭니다. 이제 아무도 스톤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휴스턴 본부와는 통신이 끊겼습니다. 오로지 스톤 혼자의 힘으로 우주라는 재난의 공간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죠.

사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지만 스톤이라는 캐릭터 자체는 꽤나 복잡합니다. 그녀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딸은 죽음을 당합니다. 어린 딸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 그것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알 수 없을 크나큰 아픔일 것입니다. 그러한 스톤의 심정은 스톤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한 매트와의 대화에서 드러납니다.

집에서 저녁 8시가 되면 무엇을 하냐?고 묻는 매트. 스톤은 대답합니다. 멘트가 없는 라디오를 틀고 정처없이 운전을 한다고... 자동차라는 타인과 단절된 공간, 목적지가 없는 정처없는 운전. 딸을 잃은 스톤의 닫힌 마음이 적절하게 표현된 대사인 셈입니다. 그리고 스톤에게 우주라는 공간은 딸을 잃은 지구에 대한 도피처였을 것입니다.

 

가까스로 우주 정거장에 들어와 1차적인 위험을 넘긴 스톤. 하지만 위험은 끊임없이 스톤을 위협합니다. 우주 정거장의 화재, 연료가 없는 소유즈, 지구의 궤도를 돌아 다시금 스톤을 위협하는 인공위성의 잔해. [그래비티]는 스톤에게 새로운 형태의 재난을 끊임없이 안깁니다.

그러한 가운데 스톤은 이 모든 난관을 헤치며 오랜 세월동안 안고 있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의지를 보입니다. [그래비티]에서 제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던 것은 '엄마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라던 스톤의 한마디였습니다.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희망이었던 소유즈에 가까스로 올라탔지만 연료가 없음을 안 스톤. 그녀는 모든 희망을 접고 삶을 포기하려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포기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절대 포기하지않아.'라며 어쩌면 하늘나라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딸을 향해 나즈막히 말합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딸을 잃고 마음의 문을 닫은 스톤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다를 떨던 매트로 인하여 마음의 문을 엽니다. 그녀는 혼자 남은 이후에도 '당신의 수다가 그리워요.'라며 고개를 떨굽니다. 지구에 대한 도피처였던 우주에서 최악의 재난을 맞이한 스톤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로 모든 재난을 헤쳐나갑니다. 우주라는 공간은 그렇게 스톤에게 재난의 공간이자, 삶에 대한 의지를 심어준 공간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

 

[그래비티]는 명백하게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우주에서 재난을 당하는 심정을 생생하게 느끼게끔 이끄는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어지럼증은 어쩌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의도했던 바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서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스톤을 통해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섬뜩하지만 아름다운 우주. 그러나 그러한 우주보다 더 강인하고 아름다운 스톤의 의지는 영화를 보는 제 마음을 찡하게 만듭니다.

영화의 후반부, 모든 희망을 잃은 스톤이 마지막으로 휴스턴 본부와의 교신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교신을 하게 된 것은 휴스턴 본부가 아닌 그린란드의 어느 일반인입니다.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고,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리며 스톤과 교신을 하던 남자는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이 두사람은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톤은 그 남자의 자장가를 들으며 자신의 마지막을 조용히 준비합니다.

스톤에게 지구는 딸을 잃은 슬픔의 공간입니다. 비록 영화를 그러한 스톤의 마음을 상세하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스톤의 무미건조한 표정만으로도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딸을 잃은 마음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우주에서 재난을 맞이하고 홀로 남겨진 스톤에게 지구의 평화로운 일상의 소리는 그리움의 대상이 됩니다. 떠나고나서야 지구에서의 소중한 일상을 깨달은 것이죠.

 

그리고 스톤은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딸을 잃은 아픔도, 우주에서 당하는 재난의 두려움도,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포기의 마음도... 그녀가 '엄마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라고 나즈막히 다짐하는 것은 그렇기에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비티]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긴장감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수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재난 영화도 아니고, 스펙타클한 재난이 연속적으로 몰아치는 영화도 아닙니다. 그저 섬뜩하지만 고요하고 아름다운 우주에서 이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진 스톤의 외로운 싸움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어떤 재난 영화보다도 [그래비티]는 감동적입니다. 스톤이 이 모든 것을 이기고 드디어 스스로 발을 딛고 일어서는 그 순간 밀려오는 안도와 감동의 울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비로서 깊게 숨을 내쉬며 공기의 소중함을 느꼈고, 내가 사는 지구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비티]는 그런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주에서의 재난을 실제로 겪는 것처럼 어지럼증을 느끼다가도, 아름다운 우주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풍경에 감탄을 내뱉게 되고, 스톤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지구로 귀환했을 때, 마치 내가 다시 지구로 돌아온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는... 분명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그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한 재난 영화를 만든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우주.

하지만 우주라는 공간은 우리 인간이 살아갈 수 없기에

아직 내겐 내가 사는 지구가 더욱 아름답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