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 괴물이 되어버린 영화

쭈니-1 2013. 10. 16. 15:23

 

 

감독 : 장준환

주연 : 여진구, 김윤석, 조진웅, 장현성, 김성균, 박해준

개봉 : 2013년 10월 9일

관람 : 2013년 10월 1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준환 감독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2003년 우리는 신인감독의 깜짝 놀랄만한  재기발랄한 영화 한편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입니다. [지구를 지켜라]는 외계인으로 인해 지구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 믿는 병구(신하균)가 외계인이라 생각하는 강사장(백윤식)을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영화입니다.

[지구를 지켜라]는 개봉 당시 코미디 영화로 홍보를 했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분들이 신인 감독의 독특한 코미디를 기대하고 [지구를 지켜라]를 선택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지구를 지켜라]는 코미디와는 거리가 먼, 오히려 섬뜩한 스릴러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 펼쳐질 때에는 SF 영화의 외형마저 띄고 있는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영화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지구를 지켜라]는 관객의 외면을 받았고, 결국 저주받은 걸작의 반열에 오르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의 흥행 실패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영화의 장르를 코미디로 포장한 영화 홍보가 결정적인 패인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비록 [지구를 지켜라]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관객들에게 장준환이라는 이름을 강렬하게 각인시켰습니다.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의 흥행 실패 때문이었을까요? 장준환 감독의 차기작을 만나기까지는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물론 그 사이 장준환 감독은 다섯명의 감독의 참여한 '나와 통하는 다음검색 필름페스티벌' 두번째 작품인 [털]과 부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에 관한 한국, 태국, 일본 아시아 3개국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카멜리아] 등을 연출했지만, 그의 두번째 장편 상업영화는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야 성사된 것이죠.

[지구를 지켜라]와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괴물같은 세상에 맞서 싸우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는 결국 실패했고,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의 화이(여진구)는 성공했습니다. 그렇다면 장준환 감독은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좀 더 낙관적인 감독이 된 것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아닙니다. 영화의 결말은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가 [지구를 지켜라]보다 밝지만, 영화 자체만 놓고본다면 '장준환 감독에게 1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렇게까지 독해졌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섬뜩해졌습니다. [지구를 지켜라]가 초반에는 풍자적인 블랙코미디로 시작해서 영화의 잔인함을 점점 발전시킨다면,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처음부터 강하게 관객을 몰아부칩니다. 제목만큼 괴물같은 영화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그렇다면 왜 이 영화는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을까요?

 

 

괴물에게 키워진 아이.

 

영화는 1998년 어느 소년의 유괴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석태(김윤석)을 리더로 하고 있는 낮도깨비라고 불리우는 악명높은 범죄 집단. 그들은 지하철에서 유괴한 아이의 몸값을 받으려합니다.

하지만 경찰이 따라 붙었고, 할 수 없이 돈을 포기한 석태 일행은 유괴한 아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죽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석태는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합니다. 그 아이에게 화이라는 이름을 지어준채 말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14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건너뜁니다. 석태 일행은 어느 부패한 전직 검찰의 집 금고를 털게 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사람을 죽입니다. 맹인 안마사가 현장에 있었지만, 그를 살려주는 석태. 그렇게 그들은 한 몫 챙기고 또다시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갑니다.

영화의 초반,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석태 일행의 잔인함을 설명하기 위해 러닝타임을 할애합니다. 석태를 연기한 김윤석은 [황해]에서 보여줬던 극한의 잔인함을 고스란히 재현했고, [이웃사람]에서 연쇄살인범 류승혁을 연기했던 김성균은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능글맞게 웃는 동범을 연기하며 잔인함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유일하게 화이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말더듬이 기태(조진웅), 그리고 냉철한 진성(장현성)과 무뚝뚝한 범수(박해준). 그들은 부패한 형사 창호(박용우)의 비호를 받으며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철한 범죄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깁니다.

 

화이의 다섯 아빠는 바로 낮도깨비라 불리우는 잔인한 범죄자인 그들입니다. 괴물같은 아빠들에게 자란 화이. 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서도 교복 입는 것을 좋아하는 화이의 모습에서는 순수함이 묻어났습니다.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괴물같은 아빠들과 너무나도 순수한 화이를 비교하며 보여줍니다. 화이의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춘기 소년다운 유경(남지현)과의 풋사랑도 담아냅니다. 사실 화이와 유경의 관계는 영화의 전개상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지만 화이의 순수함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꽤 효과적인 장치입니다.

진성은 말합니다. '화이는 우리와 달라.' 하지만 석태는 화이 역시 자신과 같은 괴물로 만들려합니다. '아버지들이 전부 괴물인데 너도 괴물이 돼야지.' 석태는 범죄 현장에 화이를 자꾸 끌어들임으로서 그를 괴물로 만들으려합니다.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순수했던 화이가 괴물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범죄 현장을 본 맹인 안마사를 죽이기 위해 화이에게 방아쇠를 당기라고 시키는 석태. 하지만 화이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합니다. 화이는 괴물이 될 수는 없다며 치열하게 몸부림을 치는 것이죠. 하지만 잔인한 운명은 그를 괴물이 되게끔 이끕니다.

 

 

괴물을 삼킨 아이? 아니,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

 

이 영화의 부재는 '괴물을 삼킨 아이'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화이가 끝까지 석태와 같은 괴물이 되지 않고 끝까지 순수함을 간직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괴물을 삼킨'이라는 의미를 '괴물이 되지 않은'으로  받아들인 것이죠.

하지만 영화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진행됩니다. 화이를 괴물로 만들기 위한 석태의 잔인한 계획은 급기야 15년전 화이를 유괴당했던 화이의 친아버지인 임형택(이경영)을 화이가 스스로 죽이게끔 만듬으로서 극으로 치닫습니다. 이제 화이는 괴물이 되어야 합니다. 석태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화이가 괴물이 되는 순간 갑자기 [아저씨]가 연상되는 잔인한 복수극으로 바뀌게 됩니다. 자신을 둘러싼 비밀을 알게된 순간 그동안 화이를 괴롭혔던 괴물의 환상이 사라집니다. 화이가 그러한 괴물을 삼킨 것이 아니라, 제가 보기엔 화이가 괴물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괴물이 된 아이 화이. 그는 이제 거칠 것이 없습니다. 석태 일행이 그랬던 것처럼...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극단적으로 잔인할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화이가 미성년자라는 점입니다. 화이를 연기한 여진구는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가 개봉한 후에도 이 영화의 등급이 미성년자 관람불가라서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를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화이라는 미성년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미성년자의 손에 완성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지켜봐야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순수함을 간직했던 아이 화이가 섬뜩한 괴물이 되는 과정을 보며 극단적인 잔인함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가 극단적으로 잔인할 수 밖에 없는 두번째 이유는 부성애 때문입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석태는 고백합니다. 나도 괴물이 보였다라고... 그런데 스스로 괴물이 되고나니 괴물이 다시는 보이지 않더라고. 결국 석태가 화이를 자꾸만 괴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은 괴물의 환영 때문에 괴로워하는 화이를 향한 석태 나름대로의 부성애였던 셈이죠.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기본적으로 복수극입니다. 복수극은 복수의 대상이 악할수록 복수의 쾌감은 큽니다. 그리고 석태 일행은 다른 영화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만큼 충분히 악합니다. 하지만 화이가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의 쾌감은 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수의 대상이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화이는 자신의 친아버지인 임형택을 죽인데 이어 진성을 시작으로  다섯 아버지까지 죽음에 몰아 넣습니다. 특히 화이에게 자상하게 대해줬던 기태의 죽음에서는 쾌감대신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괴물인 석태마저 화이에 대한 부성애를 드러내며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복수극의 쾌감을 포기하고, 자신을 낳아준, 그리고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들을 죽여야 하는 잔인한 운명을 타고난 괴물 화이의 슬픈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이죠.  

복수의 쾌감 대신 복수의 슬픈 운명을 안겨주는 영화, 그리고 그러한 감당하기 힘든 슬픈 운명을 떠안아야 하는 주인공이 순수한 아이라는 점에서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는 근래 보기 드문 극강의 잔인함을 보유하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잔인할 수 밖에 없었을까?

 

[깡철이]에서 강철이(유아인)은 말합니다. 세상이 깡패같다고... 그는 깡패같은 세상에 맞서 모든 희망을 버린채 깡패처럼 싸우지만 결국 어머니의 희생으로 희망을 되찾습니다.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 화이는 괴물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괴물이 되지 않으려 발버둥쳐도 그를 키워준 다섯 아버지가 괴물이기에 그 역시 잔인한 운명 속에 괴물의 길로 접어듭니다.

석태는 화이를 괴물의 길에서 구원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을 제거하려합니다. 화이의 친어머니, 그리고 화이를 길러준 영주(임지은)까지... 어쩌면 그는 그것이 화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괴물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화이가 괴물이 되어야 하기에 화이의 마음을 약하게 하는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잔인합니다. [깡철이]와는 달리 이 영화는 화이에게 희망의 마지막 한움큼도 빼앗아가버립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자신을 괴물로 만든 이들을 향한 화이의 여전한 복수극입니다. 복수라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화이가 복수를 멈추지 않는 한 복수라는 괴물 역시 화이를 절대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붓을 잡아야할 화이는 이제 총을 잡고, 세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깁니다. 낮도깨비라 불리웠던 아버지들이 그러했듯이...

영화 저널리스트인 오동진은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적 극단주의,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한 386 세대 즉 아버지 세대와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못합니다. 붓대신 총을 잡은 화이. 그가 아버지 세대와 다른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화이의 폭력은 구세대의 유물과 단절하기 위한 복수극이기 때문에? 아니, 폭력은 폭력일 뿐입니다. 결국 화이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괴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이토록 잔인해야 할 이유로 두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지구를 지켜라]의 흥행 실패이후 10년만에 장편 영화 메가폰을 잡은 장준환 감독의 흥행에 대한 강박이 그 첫번째입니다.

최근 한국 영화의 추세는 잔인함입니다. 장준환 감독이 [지구를 지켜라]를 연출할 당시만해도 코미디 영화가 한국영화의 대세 장르였습니다. 그래서 [지구를 지켜라] 또한 코미디로 포장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이웃사람], [공모자들], [신세계] 등 흥행에 한계가 있다고 알려진 웃음끼를 쏙 뺀 스릴러 영화들이 좋은 흥행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장준환 감독 또한 [지구를 지켜라]의 흥행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극단적인 잔인함으로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를 포장한 것은 아닐까요? [지구를 지켜라]이후 10년에 연출한 영화.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장준환 감독은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의 흥행 성공을 간절히 원했는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장준환 감독의 흥행 전략은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로 성공한 셈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세상을 바라보는 장준환 감독의 시선이 변한 것은 아닐까요? 사실 [지구를 지켜라]에서부터 장준환 감독은 자본주의에 찌든 우리 사회를 부정적인 눈으로 쳐다봤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고, 장준환 감독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지구를 지켜라] 때보다 더욱 괴물처럼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잔인한 설정의 영화가 태어날 수 없었을테니까요.

물론 저는 장준환 감독과 친분이 없기에 직접 물어보지 못한, 그저 제 생각일 뿐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나서 가슴 한쪽이 답답했습니다. 마치 2시간 동안 지옥도를 감상한 느낌. 그래도 장준환 감독은 관객을 위한 마지막 선물을 남겨두었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이후 나오는 히든 영상. 화이에겐 아직 괴물의 길에서 빼져나올 수 있는 희망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히든 영상 덕분에 조금은 홀가분하게 극장 밖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날 히든 영상을 확인한 것은 저 뿐이었습니다.)

 

세상이 괴물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모두 괴물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괴물같은 세상의 마지막 희망은 괴물 삼키기가 아니라,

괴물이 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기가 아닐까?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