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서극
주연 : 조우정, 안젤라 베이비, 풍소봉, 유가령, 임경신, 김범
개봉 : 2013년 10월 2일
관람 : 2013년 10월 8일
등급 : 12세 관람가
2주만에 내게 선택된 영화
[섀도우 헌터스 : 뼈의 도시]를 본 것은 9월 25일. 무려 12일 동안 저는 극장 나들이를 가지 못했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제가 극장에 가지 못하는 사이 [히든카드], [블루 재스민], [프리즈너스],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 [깡철이], [소원] 등이 개봉했고, 이들 영화 모두 제겐 준기대작이었으니까요.
10월 3일부터 6일까지 이어진 4일간의 연휴 기간 동안에 최소한 영화 두편정도는 봤어야 했지만 가족여행과 회사 동호회여행이 겹쳐서 바쁜 연휴를 보내고나니 기진맥진. 결국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기대작들의 극장 상영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4일간의 연휴 기간동안 두번의 1박2일 여행을 보내고, 남은 1박2일 동안 침대에 누워 원기 회복을 해야 했던 저는 10월 8일이 되어서야 '영화가 너무 보고 싶다.'라는 충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히든카드]와 [블루 재스민]을 상영하는 극장은 찾기 어려웠고, [프리즈너스]와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 역시 교차 상영 등으로 저와 시간대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냥 [깡철이]와 [소원] 둘 중의 한편을 선택할까, 생각도 했지만 [깡철이]와 [소원]은 오늘이 아니어도 볼 기회가 있지만 [프리즈너스]와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오늘이 아니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영영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프리즈너스]와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 둘 중에서 2주만에 볼 영화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프리즈너스]보다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을 선택한 첫번째 이유는 [프리즈너스]는 10월 8일 이후에도 일부 극장에서 교차 상영을 하지만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10월 8일 이후에는 극장 상영이 거의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2010년 10월에 봤던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이 제겐 너무나도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2년전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을 보았을 때도 저는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시사회로 [그랑프리]를 본 것이 2010년 9월 14일. 이후 저는 무려 한달 가량이나 극장에 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겹쳐서 제 몸과 마음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상태.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저는 극장에서 [시라노 : 연애조작단]과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 [무적자]를 보며 몸과 마음을 달랬었죠.
당시 저는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에 상당히 만족했었습니다. 중국 무협영화 특유의 스케일과 과장된 액션, 그리고 거기에 미스터리 수사기법을 동원하여 펼쳐지는 액션의 향연은 한달동안 잊고 있었던 영화에 대한 제 갈망을 해소해줬습니다. 그러한 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을 보러 가는 제 마음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비록 전편의 주인공인 유덕화가 빠지고 조우정이라는 낯선 배우가 주연을 맡았지만 그것은 제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속편? 아니 1편의 프리퀼!
사실 저는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를 보러 가기전까지 영화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었습니다. 단지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의 속편이고, 주연 배우가 유덕화에서 조우정으로 바뀌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나니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의 속편이 아닌 프리퀼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의 이야기보다 훨씬 이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에서 중국 역사상 여성의 몸으로 유일하게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측천무후(유가령)는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에서는 아직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황후의 자리에 있었고, 적인걸(조우정) 역시 천재 수사관의 명성을 얻기 이전, 대리시(죄수를 관장하는 관서)에 갓 파견된 신출내기에 불과합니다. 결국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적인걸이 어떻게 명성을 얻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인 셈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부여국과의 전쟁을 위해서 거대한 황실의 함대가 항구를 떠나기 직전, 바다 속에서 정체불명의 괴물이 나타나 함대를 전멸시킵니다. 백성들은 바다 용의 저주 때문이라며 불안해하고, 결국 명기 은예희(안젤라 베이비)를 제물로 바치려 합니다. 이에 측천무후는 대리시의 관리 위지진금(풍소봉)에게 10일 안에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목을 베겠다는 명을 내리는데...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이 측천무후의 즉위식을 앞두고 벌어진 자연발화 사건이라면,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바다 용의 저주에 얽힌 비밀을 풀어야 합니다.
이 두사건의 유사점은 바로 초자연적인 재앙으로 꾸며져 있지만 사실은 조정에 대한 반란을 꿈꾸는 자들의 역모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에서는 여황제 즉위에 반감을 품은 반대파와의 대립과 그러한 반대파를 잠재우고 자신의 권위를 세상에 알리려는 측천무후의 야심작인 거대한 불상이 사건의 원흉이 됩니다.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부여국과의 무리한 전쟁이 원흉이 되는데, 적인걸은 하늘의 분노(1편), 바다용의 저주(2편)와 같은 초자연적인 재앙으로 포장되었지만 역모를 꿈꾸는 누군가에 의해 치밀하게 조작된 사건의 진실을 파해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고전 수사물과 중국 무협의 적당한 조화가 이시리즈의 매력입니다. 이러한 매력은 중국영화이기에 가능한 굉장히 희소한 매력이라는 점에서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영화적 재미를 획득합니다.
서극 감독은 프리퀼을 통해 적인걸 캐릭터를 완성하고,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에서 양가휘가 연기한 사타충이라는 캐릭터를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에서도 등장시킴으로서 1편과 연결짓게 만듭니다. 이에 멈추지 않고 위지진금이라는 적인걸과는 필생의 라이벌을 등장시킴으로서 [적인걸] 시리즈가 장기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틀을 완성지은 것이죠.
판타지적 무협? 혹은 중국식 과학수사대?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두가지 사건을 축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당나라의 함대를 전멸시킨 바다 용의 정체를 밝히는 것과 또다른 하나는 바다 용의 제물로 간택된 은예희를 노리는 용왕신의 습격입니다.
우연히 은예희를 노리는 자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적인걸은 두번째 사건인 용왕신의 습격에 관여하게 됩니다. 적인걸이 은예희의 몸값을 노리고 그녀를 납치하려는 납치단의 음모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괴물 용왕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적인걸은 자연스럽게 용왕신의 습격이라는 사건에 끼어들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측천무후로부터 바다 용의 정체를 10일 안에 밝히라는 명령을 받은 위지진금마저 두번째 사건에 매달리며 영화를 이루고 있는 두가지 사건의 축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기울어지기 시작합니다. 서극 감독은 이러한 설정을 위해서 은예희의 미모를 부각시키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결국 위지진금은 은예희의 미모에 현혹되어 바다 용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는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정체불명의 괴물로부터 은예희를 지켜야 한다는 두번째 사건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 두가지 사건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두번째 사건을 해결하면 할수록 첫번째 사건인 바다 용의 정체 역시 자연스럽게 밝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대부분이 두번째 사건으로 집중되면서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했던 바다 용의 정체가 뒤로 묻혀 버린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입니다.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의 문제는 바로 이 시점에서 발생됩니다. 애초에 시작은 바다 용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다 용의 정체는 갑작스롭게 등장한 은예희를 노리는 괴물의 등장으로 뒤로 묻혀 버립니다.
그런데 바다 용의 정체를 뒤로 묻을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두번째 사건의 진실은 은예희와 원진(김범)의 사랑, 당나라 황실을 멸망시키려는 역모자들의 음모 등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조금 무리있는 설정도 눈에 띄었지만, 어치피 이 영화가 전통 수사극이 아닌 중국 무협과 고전 수사극을 적당히 섞은 영화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바다 용의 정체입니다. 거대한 당나라의 함선을 전멸시킬 정도로 굉장한 위력을 가진 바다 용.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그러한 바다 용의 정체를 밝히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왜냐하면 바다 용의 정체는 판타지적 요소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죠.
결국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고전 수사물과 중국 무협을 적당히 잘 조합하였던 1편과는 달리 바다 용의 정체라는 무리수 때문에 오히려 [캐리비안의 해적]과 같은 판타지에 더욱 가까워지고 말았습니다. 서극 감독이 바다 용의 정체를 밝히는 첫번째 사건을 뒤로 묻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그러한 약점을 파악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시리즈가 앞으로도 이어지는 전제조건
서극 감독은 중국의 무술인이자 항일운동가인 '황비홍'을 영화 [황비홍]으로 스크린에 되살려 놓음으로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황비홍]은 중국 무술 영화의 대명사가 되었고 6편의 시리즈가 제작되었습니다.
'적인걸'은 그러한 서극 감독의 야심작입니다. 중국 측천무후 시절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적인걸'. 서극 감독은 그러한 그를 천재적 수사관으로 부활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흔히 중국의 3대 악녀로 여태후, 서태후, 그리고 측천무후를 손꼽습니다.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은 바로 그러한 측천무후와 '적인걸'이라는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을 내세웠습니다. 그 결과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은 역사적 사실과 중국의 과장된 무협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황비홍]에 비견할만한 오락 영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그러한 전편과 비교해서 약간은 실망스러운 영화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과장된 무협 액션의 조화를 이루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실패는 바다 용의 정체가 드러나는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는 좀 더 실현 가능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어야 했습니다. 비록 주인공들은 와이어 액션을 통해 하늘을 날아다니더라도, 마지막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에는 그것이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것 마냥 느껴졌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바다 용의 정체는 한계를 벗어나버렸습니다. 바다 용 자체가 판타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버리니 [적인걸 2 : 신도해왕의 비밀]은 고전 수사극이라기 보다는 판타지 무협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만약 서극 감독이 '적인걸' 시리즈를 [황비홍]처럼 오랫동안 끌고나가고 싶다면 좀 더 현실적인 사건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처음에는 초자연적 사건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영화가 끝날 때에는 초자연적 사건을 현실적 사건으로 끌어들일 치밀함을 먼저 획득해야 할 것입니다.
'적인걸'의 활약상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은 관객의 입장에서 바다 용의 정체는 상당히 실망스러웠지만, 서극 감독이라면 이 시리즈를 지탱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이미 파악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서극 감독의 능력을 믿으니까요.
P.S. 영화의 만듦새가 어찌되었건... 안젤라 베이비는 굉장히 예뻤습니다. ^^
판타지 무협과 고전 수사극의 균형이 알맞게 이루어지는 순간,
'적인걸'의 위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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