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승준
주연 : 설경구, 문소리, 다니엘 헤니, 고창석, 한예리
개봉 : 2013년 9월 5일
관람 : 2013년 9월 2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내가 [스파이] 시사회에 간 이유
사실 저는 시사회에 가지 않습니다. 한때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시사회에 참가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사회 참가는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시사회 장소가 집에서 먼 경우가 많고, 시사회 시간도 제 맘대로 정할 수 없는 노릇이니 시사회에 가려면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사회에 가지 않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영화는 제 스케쥴에 맞춰 제가 원하는 시간과 제가 좋아하는 극장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참가한 시사회인 [스토커]의 경우는 박찬욱 감독과 미아 바시코브스카의 레드 카펫이 시사회와 함께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박찬욱 감독과 미아 바시코브스카의 모습을 가까이서 본다는 것은 레드카펫 시사회가 아니면 불가능했기에 다른 일정들을 포기하고 [스토커] 시사회에 참가한 것이죠.
그렇다면 저는 왜 [스파이] 시사회에 가게된 것일까요? 설경구, 문소리, 다니엘 헤니의 레드카펫 행사도 없었고, 무대인사도 없었는데, 무엇 때문에 월요일에 웅이와 노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피곤하다며 투덜거리는 구피를 데리고 [스파이] 시사회에 간 것일까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스파이] 시사회 참가를 결정한 이유는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분들을 위한 작은 이벤트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파워 블로거가 아닙니다. 거대 포털사이트인 NAVER, DAUM의 메인 화면에 노출될 일도 없기에 제 블로그에 방문하는 것은 관심이 없다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2천명이라는 방문 숫자를 꼬박꼬박 채워주니 저로서는 듣보잡 블로그에 방문해주시는 분들에게 뭔가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때맞춰 [스파이] 시사회 이벤트를 주관해달라는 영화 홍보사의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시사회 이벤트를 주관하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귀찮은 일입니다. [러브 & 드럭스], [이민자], [원데이]등 몇 번의 시사회 이벤트를 주관했던 저는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라고 몇번이고 다짐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제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스파이] 시사회 초대권이라는 작은 선물을 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또다시 시사회 이벤트 주관을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25명의 시사회 참가 인원을 뽑아야 하는데 제 블로그의 방문자 수가 워낙 미미하다보니 시사회에 참가하겠다는 분들이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게다가 어떤 분들은 시사회 이벤트 신청만 해놓고 연락처를 메일로 안주셔서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시켜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안타까운 일까지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시사회 이벤트 신청 마감이 되었지만 신청 인원은 미달. 결국 저희 회사의 부하 여직원들과 저와 구피까지 당첨자 명단에 올린 후에야 겨우 25명의 당첨자 인원을 확보할 수가 있었습니다. 본의아니게 자신이 주관한 시사회에 담청되었으니 시사회 참가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시사회 이벤트를 신청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할 약속이니까요.
이런 것이 바로 시사회의 묘미!
많은 분들이 신청했다면 굳이 제가 [스파이] 시사회에 가지 않아도 될 일이었지만, 시사회 신청 인원 미달이라는 죄가 있기에 군말없이 시사회에 참가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역시 난 시사회 이벤트를 주관해도 될 정도의 유명 블로거가 아님을... (주제넘게 시사회 이벤트를 주관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스파이] 시사회에 참가했지만 그래도 [스파이] 시사회와 함께한 월요일 밤은 제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있는 하루였습니다. CGV 용산을 가득 메운 시사회 인파의 놀라움 (그날 CGV 용산의 전관 시사회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사회표를 나눠주는 곳에서 발견한 제 닉네임 '쭈니' (구피가 기념이라며 사진 찍어줬습니다.) 그리고 영화 너무 재미있었다며 귀요미 미소를 보내던 회사 부하 여직원들과 (그 부분은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주신 [스파이] 관계자들에게 고마워할 일입니다.) 오랜만에 구피와의 오붓한 데이트 (물론 구피는 피곤하다며 투덜거렸지만...)
다행히도 [스파이]는 너무 재미있기까지 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렇게 속 시원하게 웃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할만큼 박장대소를 터트렸습니다. 특히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제로인 상태에서 영화를 보니 영화의 재미가 더욱 쉽게 제 마음 속에 와닿았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매력이 있기에 많은 분들이 시사회에 참가하려고 하시는 것이겠죠?
우선 [스파이]에 대해서 짧막하게 소개하자면 심각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영화입니다. 말 그대로 영화를 보는 내내 실컷 웃다가 나오면 되는 그런 영화인 셈입니다.
물론 영화의 내용 자체는 심각합니다. 남과 북의 통일을 방해하는 테러리스트에 맞서 대한민국 최고의 스파이 김철수(설경구)의 종횡무진 대활약이 펼쳐지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심각한 상황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코믹 연기로 포장되어 있고, 영화 자체로서도 '정말 저러면 어쩌지?'라는 리얼한 설정이 아닌, 그저 편안하게 웃으며 즐기기만하면 되는 코믹한 설정으로 영화를 이끕니다.
그렇기에 냉정하게 보자면 영화의 스토리 전개 자체가 헛점이 많습니다. 왜 굳이 라이언(다니엘 헤니)은 안영희(문소리)에게 접근하였는지, 안영희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그의 정보력과 능력이라면 충분히 김철수를 제거하고 백설희(한예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라이언이 마지막 후반에 김철수에게 '친구'라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 것에서 과거 김철수와 라이언은 어떠한 인연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영화를 그러한 부분을 전혀 설명하지 않습니다. (김철수 역시 라이언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라이언의 행동은 꼼꼼하게 따지고 들어간다면 첩보 영화에서 있어서는 곤란한 헛점이 여러군데 눈에 보입니다.
하지만 [스파이]에 그렇게 깐깐한 시선을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애초에 [스파이]는 세밀한 스토리 구성이 돋보이는 첩보 액션이 아닌, 관객들을 웃기겠다고 나선 코믹 첩보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스파이]는 굉장히 잘 만든 코믹 첩보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박장대소는 배우의 힘.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스파이]는 요근래 봤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제 웃음보를 터트려준 영화입니다. [스파이]가 이렇게 제게 박장대소를 안겨줄 수 있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배우들의 힘이 절대적입니다.
[공공의 적]에서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대한민국 열혈 형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선보였던 설경구. [공공의 적]이 흥행에 성공하고 시리즈화될 수 있었던 것은 강철중이라는 캐릭터의 매력과 강철중을 연기한 설경구의 연기력 덕분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공공의 적] 시리즈의 세번째 영화인 [강철중 : 공공의 적 1-1]의 경우 주인공이 형사에서 검사로 직업 자체가 변하였습니다. 이쯤되면 새로운 캐릭터를 내세우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강우석 감독은 강철중과 설경구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것은 강철중과 설경구가 [공공의 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컸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죠.
[스파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서 불철주야 몸을 사리지 않고 맹활약하는 김철수. 하지만 그는 집에서는 아내 앞에서 한없이 약하디 약한 우리 시대의 가장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김철수는 열혈 형사이지만 영화 내내 웃겼던 [공공의 적]의 강철중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설경구는 마치 자신에게 딱 맞춘 옷을 입은 듯이 김철수가 되어 관객의 웃음보를 쥐락펴락합니다.
하지만 설경구의 원맨쇼로 영화를 이끌어나갈 수는 없는 법입니다. [공공의 적]에서는 그것이 가능했지만 [스파이]에서는 김철수의 가정사가 영화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기에 설경구와 함께 영화를 이끌어나갈 여배우의 존재가 절실했습니다.
사실 설경구는 여배우의 무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워낙 연기력이 뛰어나다보니 그와 함께 주연을 맡은 배우들은 설경구의 연기력에 묻히기 쉽습니다. [싸움]의 김태희, [용서는 없다]의 한혜진 등이 대표적 사례이며, 그러한 영화들은 어김없이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문소리의 캐스팅은 정말 완벽했습니다. 이미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에서 설경구와 호흡을 맞췄던 문소리는 결코 설경구의 연기력에 뒤지지 않는 코믹 연기력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장악합니다. 비록 김태희, 한헤진과 같은 미모는 없었지만, 걸죽한 사투리로 설경구와 함께 영화의 재미를 이끌어 나갑니다.
여기에 코믹 영화에 없으면 서운한 코믹 감초 배우들의 맹활약도 한 몫을 해냅니다. 고창석의 코믹 연기는 언제봐도 좋습니다. 저렇게 우락부락하게 생긴 배우가 귀엽게 코믹 연기를 해대니 정말 웃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코믹 감초 배우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바로 라미란이었습니다. 라이언을 바라 볼때 라미란의 엄마 미소. 영화를 보며 제 옆에 앉은 구피를 살짝 쳐다봤는데, 구피도 라미란과 똑같은 엄마 미소를 띄고 있더군요. 그래서일까요? 구피는 영화를 보고 나오며 '야쿠르트 아줌마가 제일 웃겼어.'라며 만족해했습니다.
박장대소와 엄마 미소의 사이에서...
[스파이]의 묘미는 바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모아 놓고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 끊임없이 관객들을 웃기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사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스파이]는 새로운 영화는 아닙니다. 비슷한 내용으로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 아놀드 슈워제네거, 제이미 리 커티스 주연의 [트루 라이즈]가 있고, 우리나라의 코믹한 첩보물로는 신태라 감독, 강지환, 김하늘 주연의 [7급 공무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설경구와 문소리의 코믹 연기 앙상블과 고창석, 라미란이 펼쳐는 코믹 조연 배우들의 맹활약 속에 어느덧 [트루 라이즈], [7급 공무원]을 싸그리 잊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 [스파이]의 영화적 재미를 한단계, 아니 두 세단계는 끌어올린 신의 캐스팅이 있으니 바로 의문의 테러리스트 라이언을 연기한 다니엘 헤니입니다.
[스파이]의 영화적 재미는 안영희가 너무 잘생긴 라이언과 자꾸 엮이고, 그러한 상황을 목격한 김철수가 전전긍긍하면서 발생합니다. 북한의 핵물리학자 백설희를 대한민국으로 무사히 데려오는 중대한 임무를 맡았으면서 라이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내가 신경쓰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김철수. 특히 세계 각국의 스파이들이 모여 있는 식당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영희를 구하는 철수의 장면은 너무 웃겨서 배가 아팠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웃음을 만드는 역할은 역시 라이언이 만들어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솔직히 라이언이 안영희를 이용하는 장면은 그렇게 치밀하지 못합니다. 굳이 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김철수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안영희에게 접근했을까? 라고 물으신다면 그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영화는 더욱 웃기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 라미란이 지었던 엄마 미소. 사실 그것만으로도 다니엘 헤니는 충분히 존재 가치가 있었습니다. 다니엘 헤니의 핸섬한 모습은 안영희가 가정이 있으면서도 라이언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이해가 되었고, 국가를 위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라이언에게 열등의식을 느끼는 김철수의 모습에서 웃음을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다니엘 헤니의 캐스팅이 절묘했던 것은 다니엘 헤니 자체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발생합니다.
다니엘 헤니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미국인이라 할 수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인기를 얻은 이후 [Mr. 로빈 꼬시기], [마이 파더] 등 한국영화로 인기를 모았고, 그러한 인기를 기반으로 [엑스맨 탄생 : 울버린], [라스트 스탠드] 등 미국 영화에 출연하였습니다.
[스파이]의 라이언은 북한 스파이였지만, 북한에 버림을 받고 남한에 외면당합니다. 결국 그는 엘리트 미국인이지만 조국이라 생각했던 북한과 남한에 버림을 받은 이방인이기도 합니다. 다니엘 헤니의 잘생겼지만 이국적인 외모는 그러한 라이언의 캐릭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고, 라이언의 캐릭터가 대부분 생략된 와중에도 다니엘 헤니의 모습 만으로도 그가 겪었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이 이해가 되었을 정도로 절묘했습니다.
[스파이]를 보며 한바탕 신나게 웃고 극장을 나섰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여운이 남고, 감동적인 영화도 좋고, 영화를 보며 뭔가 생각할 수 있는 그러한 심각한 영화도 좋지만, 이렇게 가끔은 아무 생각없이 엄마 미소를 지으며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영화도 좋다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머나먼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스토리 라인의 짜임새? 영화의 완성도?
그런거 전부 무시하고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과감히 외쳐본다.
올 추석엔 스파이~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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