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잡스] - 스티브 잡스가 꿈꾸던 꿈결같은 세상

쭈니-1 2013. 9. 10. 14:10

 

 

감독 : 조슈아 마이클 스턴

주연 : 애쉬튼 커쳐, 더모트 멀로니, 조시 게드, 매튜 모딘, 제임스 우드

개봉 : 2013년 8월 29일

관람 : 2013년 9월 7일

등급 : 12세 관람가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

 

지난 토요일, 웅이가 컵스카우트에서 워터파크로 놀라간 덕분에 예상하지 못한 여유 시간이 생겼습니다. 제게 여유 시간이 생긴다면 당연히 1순위로 영화보는데 아낌없이 투자해야죠. 

구피는 다음날 예정되어 있는 저희 아버지의 성묘 준비 때문에 바쁘지만, 이 날라리 남편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탈출해버렸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오전에 한편만 보고 일찍 들어와서 오후엔 성묘 준비를 도왔습니다.)

[바람이 분다]와 [잡스] 중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제가 선택한 영화는 [잡스]였습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면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인 [바람이 분다]를 포기하고 [잡스]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람이 분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전투기를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를  미화했다는 논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 저 역시 어쩔수없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으로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미화는 불편할 수 밖에 없죠.

그러한 [바람이 분다]의 머리 아픈 논란을 피해 선택한 [잡스]. 이 영화는 애플 컴퓨터를 창업한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담은 전기 영화입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IT업계에 큰 관심이 없기에 스티브 잡스 역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기 전에 스티브 잡스가 어떤 인물인지 대충이라도 알아야만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 그는 1955년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에게 버림을 받고 양부모에게 입양되었습니다.

1976년 워즈니악과 함께 컴퓨터 회로기판을 제조하는 애플을 창립하였고, 이는 퍼스널컴퓨터 시장의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러한 애플 컴퓨터의 성공을 바탕으로 1980년에는 주식이 상장되었고, 스티브 잡스는 미국에서 최고 부자 대열에 합류합니다. 1984년 IBM에 대항하여 매킨토시 컴퓨터를 선보였지만 이듬해인 1985년 무리한 개발비 지출로 회사를 도탄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받으며 애플 컴퓨터의 경영 일선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1996년 다시 애플에 복귀하여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덕분에 스티브 잡스는 IT업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되며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2011년 10월 5일 향년 56세의 나이로 지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비록 스티브 잡스의 일생을 단 몇 줄로 요약했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제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꽤 컸습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은 저와 구피가 최소한 한번쯤은 사용했던 IT기기였으니까요. 특히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사이에 인수한 회사가 바로 3D 애니메이션의 명가 픽사입니다. 제가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환호할 수 있었던 것도 스티브 잡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새삼 그가 존경스러워졌습니다. 

 

 

꿈결같은 세상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전기 영화가 그러하듯이 [잡스]에서의 스티브 잡스 역시 그다지 평탄한 인생을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잡스]를 보며 사춘기 시절 즐겨 듣던 송시현의 노래 <꿈결같은 세상>이 떠오르더군요. <꿈결같은 세상>의 가사는 이러합니다. 

사람들은 말하지. 인생은 슬픔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 세상은 무서운 것이라고. 난 믿지 않았지. 슬픔의 인생을. 난 마냥 행복했지. 마치 꿈결같이. 세월이 날 철들게 해. 시간이 날 물들게 해. 안돼 안돼 안돼. 난 변치 않을래. 힘없는 어른들처럼. 난믿고 살테야. 꿈결같은 세상.

영화의 초반, 스티브 잡스(애쉬튼 커처)는 자신만의 꿈결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행복한 아이와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리드 대학교에 입학하였지만,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 캠퍼스를 자유롭게 거닙니다. 그를 발견한 교수는 자퇴했어도 상관없으니 수업을 들어보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교수의 말에 스티브 잡스는 반문합니다. '그깟 안정된 직장을 위해서 수업을 들어야 하나요?'

당시 스티브 잡스는 히피 문화에 흠뻑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그의 모습은 절친인 다니엘과 함께한 인도 여행 장면에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리화나에 취해 다니엘과 오랜 연인인 크리스 앤과 함께 벌판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장면등을 통해 스티브 잡스가 빠져 있던 꿈결같은 세상이 관객 앞에 펼쳐집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빠져 있는 꿈결같은 세상은 그의 세상을 이해못하는 이들에겐 곤욕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잠시 일했던 전자게임 회사인 아타리에서의 일화가 대표적입니다.

고리타분한 게임을 만드는 동료에게 '제대로 해보라'며 윽박지르는 장면에서 회사의 대표는 스티브 잡스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의 안하무인격의 성격을 지적합니다. 그때 그가 단 며칠 만에 개발한 게임이 바로 저도 어렸을 적에 재미있게 했던 벽돌깨기 게임입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자신과 같은 꿈결같은 세상을 공유하던 워즈니악(조시 게드)과 함께 애플을 창립합니다. 비록  아버지의 창고를 개조해서 작업실로 썼고,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수십명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구걸을 해야 했지만, 아마도 그 시절이 스티브 잡스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나날이 아니었을까요?

먼 훗날 워즈니악은 애플을 떠나며 말합니다. 내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너와 함께 했던 것은 좋은 사람들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스티브 잡스와 함께 꿈결같은 세상을 공유했던 워즈니악은 그렇게 '넌 변했어.'라며 스티브 잡스의 곁은 떠납니다.

영화의 초반이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스티브 잡스 만의 꿈곁같은 세상이 펼쳐진다면 영화의 중반부터 스티브 잡스는 거대 기업인 애플을 이끌어 나가며 자신의 꿈결같은 세상을 무너뜨립니다. 세월이 그를 철들게 하고, 시간이 그를 물들게 한 것이죠.

 

 

천재는 어떻게 세상을 변하게 했는가?

 

애플이 마이크 마쿨라(더모트 멀로니)의 투자금을 토대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을 때 그의 오랜 연인이던 크리스 앤은 임신 사실을 스티브 잡스에게 알립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초반 크리스의 품에 안겨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하며 눈물을 흘렸던 스티브 잡스. 그런데 그러한 그가 자신이 그토록 원망하던 친부모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말합니다. '지금은 안돼.' 그는 크리스 앤의 임신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 막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꿈결같은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지자 그는 그러한 꿈결같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도 냉혹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애플이 상장을 한 후에 친구였던 다니엘을 차갑게 외면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입니다. 마이크마저 '그에게 약간이라도 주식을 나눠줘야 하지 않겠냐?'고 묻지만 스티브 잡스는 차갑게 말합니다. '그는 애플에 기여한 것이 없어요.'

어쩌면 그러한 스티브 잡스의 냉철한 사업가적 기질이 있었기에 애플은 승승장구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스티브 잡스의 모습은 영화 초반에 행복해 보이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그가 꿈꿨던 꿈결같은 세상은 애플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스티브 잡스는 그 안에서 꿈결같은 세상을 잃고 오히려 힘없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리사 컴퓨터 개발에 너무 많은 개발비를 쏟아붓는 바람에 이사회로부터 점점 회사를 도탄에 빠뜨린 인사로 낙인 찍힙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티브 잡스가 친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친자확인 소송에서 패했던 크리스 앤의 딸 이름이 바로 리사라는 점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성공을 위해 리사를 외면했던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새롭게 개발하는 컴퓨터의 이름을 리사로 지으며 딸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과연 그다운 방식이죠.

하지만 리사 컴퓨터 개발은 실패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매킨토시 개발 마저 적자를 안겨줍니다. 애플의 이사회는 회사 수익의 70%를 차지하는 애플 컴퓨터를 놔두고 새로운 컴퓨터 개발로 회사의 자금을 물쓰듯이 써버린 스티브 잡스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모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가 영입했던 전문 경영인 존 스컬리(매튜 모딘)에 의해 애플의 경영일선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자신의 딸과 절친한 친구까지 외면하며 그가 이루고자 했던 꿈결같은 세상인 애플에서 그는 밀려난 것입니다. 힘 없는 어른들처럼...

하지만 그 덕분에 그는 진정한 꿈결같은 세상을 찾았습니다. 소녀가 된 리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여유롭게 집 앞의 텃밭은 가꾸며 보낸 그는 애플에 복귀한 이후 자신이 꿈꾸던 꿈결같은 세상을 비로서 완성합니다.

 

 

약간은 불친절한 전기 영화

 

[잡스]는 스티브 잡스의 일생을 담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대학 생활을 시작으로하여 애플에 복귀한 시점에서 끝을 맺습니다. 그렇기 때문이 이 영화는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어느 정도는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진행됩니다.

스티브 잡스가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양부모 밑에서 컸다는 사실을 모르는채 갑자기 연인의 품에 안겨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조금 뜬금없게 느껴집니다. [잡스]는 그런 식입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라며 영화는  스티브 잡스의 일생을 심도깊게 그려나가는 것이 아닌 띄엄띄엄 보여줄 뿐입니다.

그렇기에 [잡스]는 무미건조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경영 일선에서 밀려난 것을 제외하고는 영화 자체가 굴곡없이 묵묵히 스티브 잡스의 일상을 따라가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신의 딸인 리사와 절친한 친구였던 다니엘을 외면 한 후에 그에 따른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줄 법도 한데 [잡스]는 그러한 감성적인 부분을 애써 무시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경영 일선에서 밀려나는 장면에서 극적이라기 보다는 조금 밋밋하게 처리됩니다. 자신이 영입한 존 스컬리와 오랜 기간 애플의 동반자였던 마이크 마쿨라에게 배신을 당하지만 그러한 극적 상황을 위한 영화적 장치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커버됩니다. 특히 애쉬튼 커처는 [잡스]를 통해 배우로서 한단계, 아니 몇단계는 성장한 느낌입니다. 사실 애쉬튼 커처는 연상인 데미 무어와의 결혼으로 우리에게 더욱 유명한 배우입니다. (지금은 이혼했습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 게스 후?], [라스베가스에서만 생길 수 있는 일], [S러버], [킬러스], [친구와 연인 사이] 등 가벼운 영화들이 주를 이룹니다. 물론 그 사이에는 [나비효과]와 같은 영화도 있긴 하지만, 애쉬튼 커처하면 아무래도 가벼운 영화의 주인공 인식이 강합니다.

그런 그가 스티브 잡스가 되어 완벽하게 연기 변신을 했습니다. 구부정하게 걷는 모습과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남과 타협을 하려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모습까지... 이전에 알던 애쉬튼 커처가 맞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그외에도 더모트 멀로니와 매튜 모딘도 좋았습니다. 특히 제 기억 속의 매튜 모딘은 [멤피스 벨], [컷스로트 아일랜드]의 핸섬 가이였습니다. 그런데 [잡스]에서의 매튜 모딘은 어느덧 제프 브리지스와 비슷한 중후한 매력이 물씬 풍기는 중년의 배우가 되어 있더군요. 영화를 본 후 나중에서야 존 스컬리를 연기한 배우가 매튜 모딘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럴수가... 믿을 수 없어.'를 연발하기도 했습니다.

분명 [잡스]는 영화적 재미로 가득한 전기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꿈곁같은 세상에서 살고 싶었던 어느 이상가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괴짜라 부르는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변하게 했는지 담담하게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진정 위대한 이유는

인생은 슬픔이고 세상은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체험한 후에도

당당하게 일어서 모두를 위한 꿈결같은 세상을 이루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