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임상수
주연 : 백윤식, 한석규
개봉 : 2005년 2월 3일
관람 : 2005년 1월 31일
새로 개관한 종로3가 단성사에서 요즘 한창 정치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때 그 사람들]의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일단 영화에 대한 이야기보다 새로 개관한 단성사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한때 종로의 극장들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혼자 놀기를 즐겼던 저는 서울극장, 피카디리극장, 단성사에 꽤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단성사에 대한 기억은 좋은 추억보다는 안좋은 추억이 많습니다. 오래된 극장이어서인지 시설이 상당히 낙후했던 단성사에서 [다이하드 2]를 보며 앞사람의 머리에 영화가 가려져서 좌석에서 거의 서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그 중에서 가장 오래 남습니다. 영화를 보시던 많은 분들이 저와 함께 서서 영화를 보셨답니다. 콘서트장도 아니고 극장에서 영화를 서서 관람하다니... 아마 관람석이 U자형의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단성사였기에 가능했던 풍경일겁니다.
그런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피카디리 극장과 함께 재개관을 위한 공사에 들어갔을때 저는 꽤 기대를 했답니다. 이제 단성사도 현대적인 멀티플렉스가 되겠구나하고... 하지만 새로 개관한 단성사는 기대감에 대한 만족보다는 걱정을 먼저 안겨주었습니다. 분명 멋있어진 외관과 7개관에 달하는 스크린은 예전과는 달라진 멀티플렉스의 위용을 갖추었지만 여전히 단성사는 다른 극장들과 비교해서 불편했습니다.
영화를 보기전 대기하는 곳은 너무 좁아서 앉아 있을 곳조차 변변치못했고,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에 들어섰을때는 그 좁은 입구를 보며 깜짝 놀랬습니다. 하지만 역시 하이라이트는 영화를 본후 나오는 출구입니다. 한줄로 내려가게 되어있는 에스컬레이터도 가관이었지만 각 층의 출구가 서로 연결되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다른 층의 관객들때문에 하마터면 넘어져 밟힐뻔한 기억은 아마도 평생 남을 것만 같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보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멀티플렉스도 좋고, 멋진 외관도 좋지만, 제 생각에는 지금 당장 단성사에 필요한 것은 넓은 입구와 출구입니다. 만약 영화를 보다가 화재가 발생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럴 경우 좁은 입구와 출구에선 대형 사고로 번질 위험이 많습니다. 단성사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많지만 앞으로 단성사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많들어가고 싶기에 단성사의 이번 개관이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이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때 그 사람들]은 영화적인 완성도보다는 정치적인 논란으로 인하여 더욱 유명해진 영화입니다. 그러한 이유때문에 저는 이 영화를 보기전에 '과연 그 무엇이 이 영화에게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일까?'하는 호기심이 먼저 생겼습니다. 하지만 시사회 시작전 무대인사를 나온 백윤식의 한마디가 제 호기심을 분노로 바꾸었습니다. 이 영화가 법원의 판결로 인하여 세 장면이 삭제되어 상영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높으신 분들은 우매한 국민들에게 봐도 될것과 봐서는 안될것들은 분리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검열이죠. 높으신 분들의 그러한 고마운 관심덕분에 우리 우매한 국민들은 스스로의 생각이 차단된채 위에서 봐도 된다고 허락한 것들만 봐왔습니다. 그 결과 북한의 공산주의를 강도높게 비판하며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라고 외쳤던 우리 남한은 수십년동안 군사정권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물론 인정할것은 인정합니다. 박정희의 그 군사독재가 가난했던 우리나라를 어느정도 부유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 속에서 희생당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단지 진정한 자유를 원했던 이유만으로 억울한 누명속에서 희생당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볼 권리가 있었다면 그러한 희생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을거라고...
이번 [그때 그 사람들]의 논란은 정치권에 의한 탄압이라기 보다는 박지만의 소송에 의한 것입니다. 물론 그의 마음도 이해가 되긴 합니다. 그토록 잊고 싶었던 그때 그날의 악몽이 영화속에서 블랙코미디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이 불쾌했겠죠. 하지만 제가 분노를 느낀 것은 소송을 걸은 박지만이 아닙니다. 그의 입장으로써는 그러한 항의가 타당합니다. 그는 아버지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반성보다는 경제를 살린 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싶을 겁니다. 나쁜 것은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이기심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그에겐 당연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는 성인군자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대한민국 헌법이 엄연히 존재하거늘 군사독재시절의 그 잔재에 파묻혀 국민의 볼권리를 제약하려는 이 어이없는 판결이 절 분노케합니다. 우리들은 우매하지 않습니다. 미성년자도 아닌 우리들은 스스로 볼것과 보지 말아야할것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법이, 정치인들이 정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왜 아직도 높은 분들은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려하지 않는지 정말 화가 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는 우리가 진정으로 봐서는 안될 영화일까요? 삭제된 장면을 직접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삭제된 장면들이 그때 그 시절의 실제 상황을 담은 다큐필름이라는 군요. 법원의 판결은 그러한 다큐필름으로인해 이 영화가 허구가 아닌 실제 상황을 그린 영화라는 오인을 받을 수도 있다는 아주 순진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입니다. 먼저 이 영화의 그러한 장르를 먼저 주목해야 합니다. 왜 하필 블랙코미디일까요? 분명 그때 그 날의 사건은 코미디적인 요소가 전혀 없거늘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의 방식으로 그 날의 사건을 그려냅니다. 바로 이러한 장르의 선택에서부터 임상수 감독은 이 영화가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허구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대통령 암살이라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그들이 우왕자왕하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내내 '낄낄'거리게 만듭니다. 그것을 보고 관객들이 '그래 실제로 저랬을거야'라고 생각한다는 법원의 생각이 순진하게만 보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는 솔직히 차라리 [화씨 9/11]처럼 다큐로 만들어 논란을 정면 돌파했으면 더욱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임상수 감독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영화의 블랙코미디는 이제 그 시절의 아픔은 웃음으로 훌훌 털어버리자는 화해의 손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과거규명이니 뭐니해서 국회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논란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시절의 희생자에 대한 마땅한 조치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경제가 어려운 요즘 그러한 정치적인 싸움을 할때가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솔직히 군사독재시절 너무 어렸던 저로써는 그러한 논쟁이 어리둥절합니다. 조사할것은 조사하고, 경제 살리기는 한쪽에서 계속 진행하면 될것을 왜 그리들 난리를 치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그때 그 사람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임상수 감독은 충분히 논란이 될만한 영화적 소재를 만듬으로써 그때 그 시절의 아픔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마치 모두 지난 일이라고 말하는 듯이 보입니다. 분명 그때 그 시절 우리는 아픔이 많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 그냥 웃어버리면 어떻겠냐고... 이 어이없는 영화속 상황들을 지켜보며 그냥 '낄낄'거리자고... 그 시절에 희생당한 분들에게는 그러한 웃음에 화가 날것이며, 그 시절을 덮어버리고 싶은 분들은 영화라는 대중적인 매체로 그때 그 시절을 들춰내는 것이 못마땅할 것입니다. [그때 그 시절]은 바로 이렇게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로 인하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그 논란의 중간에 서있는 셈입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이러한 법원의 판결, 정치적인 논란으로 인하여 영화의 완성도에 의한 진정한 판단이 뒤로 밀린 느낌이 듭니다. 저 역시도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다른 영화와는 달리 영화적인 재미 보다는 다른 것들에 더욱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끝내기 전에 모든 정치적인 논란을 잠시 잊고 순수하게 영화 그 자체만 가지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임상수 감독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는 언제나 영화적인 논란을 즐기는 감독이기는 하지만 그 논란의 중심에는 영화적인 재미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완성도보다는 재미를 원하는 평범한 관객인 저에게 그러한 이유로 임상수 감독의 영화는 별로 매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사람들] 역시 영화적인 재미는 결여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백윤식은 다른 출연작과 비교해서 별로 웃기지 않았으며, 한석규는 그의 최고의 연기라는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예전의 그 흥행불패의 면모는 완전히 사라진 아쉬움을 남깁니다. ([이중간첩], [주홍글씨]에 이어 [그때 그 사람들]도 흥행작이 되기엔 애초엔 불가능한 영화처럼 보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생뚱맞고(법원이 삭제 판결때문이라고들 하지만...) 영화의 진행 역시 어색해보입니다. 김부장(백윤식)의 암살계획은 '어떻게'는 있는데 '왜'는 결여되어 있으며, 주과장(한석규)의 동기 역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영화의 결말도 허무합니다. 저런 허술한 계획으로 대통령을 암살했으니 저런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임상수 감독은 여전히 관객들에게 불친절합니다. [바람난 가족]처럼 문소리의 파격 노출씬으로 관객의 관심을 끌어놓고, 그렇게해서 극장으로 끌어들인 관객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다하는 정말 불친절하지만 머리는 좋은 감독입니다. 그러한 그였기에 [그때 그 사람들]의 정치적인 논란은 이미 계산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왠지 그럴듯합니다. 정치적인 논란으로 관객의 관심을 끌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려는 고단수의 계략에 어쩌면 우리는 말려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는 임상수 감독의 다음 영화가 은근히 기대됩니다. 과연 또 어떤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영화적인 재미와는 별도로 관객의 관심을 끌것인지...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능력은 없지만 관객들에게 자신의 영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임상수 감독. 그의 다음 영화 역시 영화 그 자체만으로는 별로 보고 싶지 않을테지만 결국은 극장에 앉아 보게 되겠죠. 그의 다음 계략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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