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강우석
주연 : 설경구, 정준호
개봉 : 2005년 1월 27일
관람 : 2005년 1월 21일
2004년 12월에 시작된 우리 영화의 침체는 2005년이 되어서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관객 천만명 시대를 열었다는 둥, 미국 영화를 제치고 우리 영화가 점유율 50%를 넘겼다는 둥, 호들갑을 떨었던 때가 바로 엊그제같은데 요즘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를 보면 우리 영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결국 그토록 우려했던 우리 영화의 거품이 사라진걸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겨울 한파처럼 밀려들어온 우리 영화의 침체는 바로 우리 영화 스스로 만든 것으로써 관객들이 보고 싶어할만한 영화를 내놓지 못한 것에 따른 단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12월에 개봉되어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역도산]은 그러나 흥행성이 전혀 없는 영화로 판가름되었습니다. [파이란]으로 그 능력을 인정받았던 송해성 감독의 연출력과 국내 최고의 연기파 배우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않은 배우 설경구. 그리고 일본 올로케와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여된 [역도산]은 그 작품성과는 별도로 얼마나 우리 영화가 관객이 좋아할만한 영화를 만드는데 자질이 없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예가 될 것입니다. [파이란]같은 작은 영화에서는 그런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역도산]같은 거대한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송해성 감독은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역도산]뿐만 아니라 최근에 개봉한 다른 우리 영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미디라는 너무 전형적인 장르의 영화들을 통해서 작은 제작비로 큰 돈을 벌어보겠다는 그 얄팍한 상술은 헐리우드의 거대한 블럭버스터들과 재미를 앞세운 홍콩, 일본 영화들의 약진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여고생 시집가기], [신석기 블루스], [몽정기 2], [키다리 아저씨]등 비디오로 봐도 될것만 같은 가벼운 영화들만 개봉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우리 영화를 외면하기 시작했다며 난리를 치는 매스컴들을 보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극장에서 우리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만한 영화가 있어야 볼 것 아닙니까.
그런 상황에서 [공공의 적 2]와 [말아톤]이 개봉되는 1월의 마지막주는 2005년들어서 처음으로 우리 영화가 기지개를 펴는 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블럭버스터급 시리즈를 선언한 [공공의 적 2]와 만만치않은 감동으로 선사할것이 분명한 [말아톤]은 극장에서 볼만한 우리 영화가 없다고 투덜거리던 제게 엄청난 기대감을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공공의 적 2]를 먼저 보았습니다.
[공공의 적 2]는 지난 2002년에 개봉하여 흥행의 마술사라는 강우석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흥행에 성공한 영화 [공공의 적]의 속편입니다. [공공의 적]에서 열혈 형사 강철중(설경구)은 [공공의 적 2]에서는 열혈 검사가 되어 업그레이드된 속편의 위상을 보여주며, 강철중이 상대해야할 공공의 적도 번지르한 펀드 매니저 조규환(이성재)에서 사학재단의 거물급 이사장 한상우(정준호)로 업그레이드되어 강철중과 멋진 한판을 벌입니다.
강우석 감독의 흥행에 대한 감각은 바로 이러한 처음 설정에서부터 발휘됩니다. 그는 속편의 법칙이 전편보다 업그레이드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겁니다. 물론 그러한 속편의 법칙은 분명 알아내기 어려운 비밀은 아닙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상식이죠. 하지만 자본력이 약한 우리 영화들은 그런 상식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전편보다 업그레이드된다는 것은 전편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예로 최근에 개봉된 [몽정기 2]를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사춘기 남성들의 성적인 환상을 그린 [몽정기]는 개봉당시 남성관객들의 추억과 여성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개봉된 [몽정기 2]는 단지 영화의 소재를 사춘기 남성에서 사춘기 여성으로 바꾸었을뿐 전혀 업그레이드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전편의 스타급 배우였던 김선아와 이범수가 빠지고 그들에 비해 인지도 낮은 이지훈이 새로 투입이 되며 전편보다 규모가 작아진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물론 전편보다 업그레이드되었다고 해서 모든 속편 영화들이 재미마저 업그레이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헐리우드 속편 영화들에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업그레이드에 의한 실패가 아닌 업그레이드만 있을뿐 새로운 볼거리를 창출하지 못한 것에 의한 실패입니다.
그런데 [공공의 적 2]는 분명 전편보다 규모 면에서 업그레이드가 되었으며 그로인한 새로운 볼거리도 추가합니다. 형사라는 직책으로인하여 상대할 수 있는 적도 한정될 수 밖에 없었던 강철중이라는 캐릭터가 검사로 등장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업그레이드된 위상을 나타냅니다. 강철중이 형사에서 검사로 업그레이드되므로써 영화는 단순한 강력계 사건이 아닌 정치적인 사건에까지 공공의 적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검찰이다보니 검찰청이 새로운 영화의 무대가 되어 새로운 영화적 재미를 선사합니다. 분명 자본력이 뛰어나고 흥행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가진 강우석 감독이었기에 이러한 업그레이드가 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영화도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려면 부족한 자본력만 탓하지말고 적극적으로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일만한 재미를 창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우석 감독처럼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공공의 적 2]는 속편의 법칙에 충실하며 규모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새로운 볼거리를 창출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적인 재미도 그만큼 업그레이드 되었을까요? 일단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관객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틀려지므로 당연히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영화적인 재미가 규모의 업그레이드에 비해서 그리 크게 늘어났다고 할 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물론 [공공의 적 2]는 재미있습니다. 최근에 개봉되었던 너무 가벼운 우리 코미디 영화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전편과 비교한다면 영화적인 재미가 그리 크게 늘어난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편에 비해서 코미디적인 성향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전편인 [공공의 적]은 액션 영화라기 보다는 코미디 영화에 더 가까웠습니다. 저는 [공공의 적]을 보며 자꾸만 [투캅스]가 생각났습니다. 배꼽을 잡을만큼 웃긴 이 코미디 영화는 비록 시리즈의 3번째 영화에서 영화적 재미를 모두 소모해버리고 불명예 퇴직을 하였지만 아직도 제게 가장 웃겼던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투캅스]를 선택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3년전 [공공의 적]을 보았던 제 첫느낌은 '업그레이드된 투캅스'라는 겁니다. 그만큼 [공공의 적]은 코미디적인 요소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공공의 적 2]는 코미디적인 요소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것은 전편에서 웃음을 담당했던 매력적인 조연 연기자들이 대거 빠졌기 때문입니다. 성지루, 이문식, 유해진, 윤문식등 전편에서 관객들의 배꼽을 잡게 했던 그들은 [공공의 적 2]에서는 이문식, 유해진이 마지막 장면에 카메오 형식으로 출연하는 것으로 잠깐 얼굴을 비출 뿐입니다. 전편의 그들의 연기를 보며 맘껏 웃었던 저로써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대신 강우석 감독은 강철중과 한상우의 대결에 촛점을 맞춥니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액션 영화로써의 면모를 갖추며 설경구와 정준호의 제대로된 카리스마 대결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무려 2시간 30여분임을 감안할때 만약 강우석 감독이 전편처럼 코미디적인 요소를 포기하지 못했다면 영화의 러닝타임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졌을 것이며, 코미디적인 요소를 감안하며 러닝타임을 지키려했다면 전편의 설경구와 이성재의 대결이 다소 싱거웠던 것처럼 이번에도 설경구와 정준호의 대결이 싱겁게 끝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 이번엔 강우석 감독은 코미디에서 벗어나 좀 더 제대로된 액션 영화를 찍기를 원했을 겁니다. 그러한 바램이 영화적인 재미가 규모의 업그레이드를 따라가지 못한 인상을 줬지만 영화적인 재미를 조금 잃어서라도 가벼운 코미디가 아닌 좀 더 진중한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강우석 감독의 도전은 높이 사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공의 적 2]에서 우리 영화 최고의 블럭버스터급 시리즈 영화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제가 그토록 기대를 걸었던 [투캅스]가 [투캅스 3]에서 하염없이 무너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봐야했던 저로써는 [공공의 적]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볼 것입니다.
사실 [투캅스]의 시리즈화 실패는 시리즈가 진행되며 캐릭터가 항상 바뀌어야했던 문제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안성기와 박중훈이 [투캅스]를 2편과 3편까지 이끌어갔다면 [투캅스]가 3편에서 그렇게 부질없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것은 시리즈 영화의 특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영화가 시리즈화 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영화가 매력적이었다는 것을 뜻하며 그 매력은 대부분 영화의 캐릭터에서 비롯됩니다. 안성기와 박중훈이 연기한 귀여운 비리 경찰 조형사와 뚝심있는 신참 형사 강형사라는 캐릭터가 바로 [투캅스]의 힘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투캅스 2]에서는 그 힘의 한축이었던 조형사가 떨어져 나갑니다. 물론 강형사가 조형사의 몫을 충실히 해냄으로써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강형사마저 빠져나간 [투캅스 3]는 전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시리즈 영화에서 캐릭터의 힘을 대변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공공의 적]은 다릅니다. 이 영화의 강철중은 분명히 시리즈화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강력하고 뚝심이 있으면서도 귀여운 면모까지 갖춘 강철중은 조형사와 강형사를 합친 것만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매력은 1편에 이어 2편으로 만들어지며 더욱 강력하게 업그레이드됩니다. 게다가 액션 영화의 필수요건인 매력적인 악당의 존재는 이 영화의 시리즈화의 전망을 더욱 밝게해줍니다. 이성재, 정준호라는 전혀 악당스럽지 않은 마스크를 가진 배우들을 악당으로 캐스팅함으로써 다른 우리 액션 영화들과 다른 차별화에 성공한 이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잘생긴 공공의 적을 창출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재미를 갖출 완벽한 외형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설경구라는 배우가 앞으로도 계속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아직은 '강철중 = 설경구'라는 등식이 성립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설경구가 출연을 포기하면 당장 [공공의 적 3]는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십년이 지나도록 배우의 매력이 아닌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의 매력으로 전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하는 [007 시리즈]처럼 우리도 설경구가 아닌 강철중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상품화한다면 충분히 그 가능성은 높습니다.
이제는 우리 관객을 넘어서 세계 관객들을 매료시킬만한 캐릭터와 그로인한 시리즈 영화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제게 [공공의 적 2]는 분명 뜻깊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의 흥행 감독이라는 강우석 감독은 충분히 그런 제 바램을 이루어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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