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5년 영화이야기

[애니씽 엘스] - 노장의 충고를 가슴에 새기며.

쭈니-1 2009. 12. 8. 17:51

 



감독 : 우디 알렌
주연 : 제이슨 빅스, 크리스티나 리치, 우디 알렌
개봉 : 2005년 2월 4일
관람 : 2005년 1월 27일


헐리우드의 살아있는 거장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우디 알렌 감독. 그는 매년 한편씩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의 영화를 국내에서 즐기기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의 영화엔 언제나 헐리우드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료에 상관없이 자진해서 출연하지만 그러한 스타급 캐스팅과는 별도로 영화는 상당히 지루한 편입니다. 그러한 지루함이 바로 우디 알렌과 관객들 사이의 간격을 더욱 넓히는 역활을 하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솔직히 영화를 보기전 영화적 재미를 먼저 따지는 제게 우디 알렌의 영화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숙제와도 같습니다. 그의 영화중 국내 개봉작은 빠지지않고 보곤 하지만 재미있었던 영화는 오직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뿐이었습니다. 특히 최근에 보았던 [스몰 타임 크룩스]는 거의 졸면서 봤었으니 제가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를 좋아할리 만무했습니다.
하지만 [애니씽 엘스]의 시사회에 참가하기전에 저는 다시 한번 이 노장 감독을 믿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메리칸 파이]의 제이슨 빅스와 [아이스 스톰]의 크리스티나 리치라는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두 커플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이 영화는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였으며, 최소한 [스몰 타임 크룩스]처럼 지루함이 끝없이 밀려올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예상대로 재미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럭저럭 우디 알렌의 그 독특한 수다를 즐길만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영화 도중 지루함을 참지못하고 일어서는 관객들 때문에 영화를 즐기는데 상당한 방해를 받긴 했지만 [스몰 타임 크룩스]와 비교한다면 상당히 재미있었던 영화라고 할 수 있겠군요. ^^


 


  
이 영화는 제리(제이슨 빅스)와 아만다(크리스티나 리치)의 사랑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제리는 아만다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지만 독특한 성격을 지닌 아만다는 사사건건 제리를 지치게 합니다. 게다가 도벨(우디 알렌)은 아만다가 바람을 피우고 있을거라며 제리의 신경을 더욱 건드리고, 폭발직전의 제리는 급기야 아만다를 미행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영화의 재미는 제리와 아만다라는 캐릭터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착하기는 하지만 결단력이라고는 찾아 볼 수 있는 소심한 극작가 제리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미스테리한 여성 아만다...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이 두 커플은 시종일관 영화를 이끌어나가며 우디 알렌은 언제나처럼 이 둘의 이야기에 양념을 치는 도벨이라는 캐릭터에 만족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캐스팅은 정말 최적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아메리칸 파이]라는 섹스 코미디로 데뷔한 제이슨 빅스는 [악마같은 여자]를 거치며 정확하게 제리와 비슷한 이미지를 구축한 배우입니다. 너무나도 답답해서 관객의 속을 터지게하는 제리는 제이슨 빅스에 의해서 완벽하게 재현됩니다. 아마 우디 알렌 감독도 이러한 효과를 노리고 그를 캐스팅한 것은 아닌지...
크리스티나 리치의 캐스팅도 최적이었다고 할만 합니다. 비록 [꼬마 유령 캐스퍼]라는 오락 영화로 이름을 알린 그녀이지만 그녀의 출연작을 살펴보면 [아이스 스톰], [라스베가스에서의 공포와 혐오], [버팔로 66], [몬스터] 등 주류 영화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영화들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해왔습니다. 그러한 그녀였기에 남자의 입장에서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아만다라는 캐릭터가 멋들어지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완벽한 캐스팅을 이루어 냈는지 과연 우디 알렌 감독답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우디 알렌의 영화들은 비록 재미는 없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된 스타급 배우들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시키는 능력만은 탁월하더군요.)


 


          
그러나 그뿐입니다. [애니씽 엘스]의 대중적인 영화적 재미는 제이슨 빅스와 크리스티나 리치라는 기가 막히는 절묘한 캐스팅이 주는 재미가 전부입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우디 알렌의 수다는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머리가 아파집니다. 다른 영화들처럼 스토리 라인을 쫓아가다보면 허무함을 맛보게 될것입니다. 관객들에게 서비스하는 다른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 영화를 즐기려한다면 이 영화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하는지 모를 지루한 영화로 전락해버리는 거죠.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는 어떻게 즐겨야만 하는 걸까요? 솔직히 아직 저도 우디 알렌의 영화를 즐기는 법을 완벽하게 터득하지는 못했습니다. 저 역시도 관객들에게 서비스하는 영화에 익숙한 평범한 관객이니까요. 하지만 [브로드웨이를 쏴라], [마이티 아프로디테],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스몰 타임 크룩스] 등 국내에 개봉된 그의 영화를 꼬박꼬박 본 덕분인지 아주 약간은 그의 영화를 즐길 줄 알게 된것 같습니다.
그는 어쩌면 관객들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라고... 뉴욕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결심하는 제리의 모습을 보며 갇혀지내듯이 뉴욕을 벗어나지 않는 이 늙은 노장의 부러운듯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그는 마치 우리들에게 젊은데 무엇을 더 망설이냐고...  남에게 기대려하지말고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해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만다와의 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나 뉴욕을 떠나는 제리의 모습이 영화내내 답답했던 보습과는 달리 상당히 당당해보였던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은 아닐까요?
이번엔 뉴욕을 정말 떠날지 기대를 모았던 우디 알렌이 결국 제리와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노장의 농담같은 수다속에 묻어나는 충고가 꽤 가슴에 와닿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