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진목승
주연 : 성룡, 양채니, 사정봉, 오언조
개봉 : 2005년 1월 21일
관람 : 2005년 1월 14일
1월 14일에 주성치의 [쿵푸 허슬]이 개봉된데 이어 21일에는 성룡의 [뉴 폴리스 스토리]가 개봉되는 군요. 90년대 초반까지 휘몰아치던 홍콩 영화 붐이후 한동안 우리 관객들에겐 거의 잊혀진 영화였던 홍콩 영화들이 헐리우드와의 활발한 교류끝에 이렇게 대형 블럭버스터급 영화로 재탄생하여 다시한번 예전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포효하는 듯 보입니다. 암튼 한때는 열렬한 홍콩 영화팬이었던 저로써는 홍콩 느와르의 부활을 목격할 수 있었던 [무간도 시리즈]에 이어, 홍콩 영화의 새로운 파워 주성치와 홍콩 액션 영화의 영원한 지존 성룡의 신작을 이렇게 연달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이번 [뉴 폴리스 스토리]는 성룡이 헐리우드가 아닌 오랜만에 홍콩으로 돌아와 찍은 신작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헐리우드에서의 성룡의 영화들은 제겐 상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헐리우드에서의 최고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워]에서는 성룡보다는 크리스 터커의 시원시원한 입담에 더욱 눈에 띄었고, [턱시도], [상하이 눈], [상하이 나이츠]는 그럭저럭 재미있었지만 성룡의 홍콩에서의 주옥같은 영화들과 비교한다면 한참이나 떨어졌으며, [메달리온],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도저히 성룡의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룡에 대한 기대가 점점 낮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헐리우드에선 신기한 동양의 액션 배우에 불과한 성룡도 홍콩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일단 홍콩으로 돌아온 그의 영화는 헐리우드의 거대 스튜디오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한마디로 성룡 스타일의 영화에 익숙하지 못한 미국 관객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성룡 스타일을 일부러 버릴 필요가 없는 겁니다. 다시말해 성룡이 홍콩에서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은 헐리우드 이전 성룡의 스타일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만큼 [뉴 폴리스 스토리]는 개봉전부터 제겐 상당히 기대가 되는 영화였습니다. 헐리우드에서의 성룡이 실망스러웠던 만큼 홍콩으로 돌아온 그의 활약이 헐리우드에서의 실망스러움까지 모두 만회하기를 바랬던 겁니다. 성룡이 '헐리우드에서의 실망스러운 모습은 내 진정한 모습이 아니었다'라고 선언하기를 원했던 거죠. 그리고 [뉴 폴리스 스토리]는 그런 제 기대에 분명 부흥했지만, 때로는 낯설은 모습으로 절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뉴 폴리스 스토리]를 본 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성룡이 이젠 변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린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선택해야만 합니다.
저를 그토록 당황수럽게 만들었던 성룡의 변화는 영화의 초반부터 나타납니다. 술에 잔뜩 취해 무기력하게 비틀거리는 진국영(성룡)의 모습은 이전 [폴리스 스토리]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가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는 처음부터 웃음을 잃어버린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괴로워합니다. 도대체 그 무엇이 그를 이토록 변하게 했을까요?
진국영이 이렇게 된 사연을 보여주는 1년 후의 사건에서는 변화된 성룡의 모습이 더욱더 확연하게 보입니다. 자신만만한 진국영 반장은 철없는 10대들의 대담한 범죄로 인하여 경찰들이 무기력하게 쓰러지자 3시간안에 그들을 잡겠다고 공언합니다. 하지만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진국영은 오히려 10대 갱단의 함정에 빠지고 그로인해 진국영의 부하들은 모두 처참하게 죽음을 당합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진국영은 울부짖죠. 차라리 자기를 죽여달라고... 그는 무릎을 꿇고 빌기까지 합니다. 제발 자신의 부하들을 살려달라고...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룡의 변화는 이처럼 웃음을 잃고 하염없이 눈물을 짓는 성룡의 모습입니다. 성룡의 눈물... 과연 제가 수많은 성룡의 영화를 보는 동안 그의 눈물을 봤던 것이 몇번이나 될까요? 사실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수는 없지만 확실한것은 저는 [뉴 폴리스 스토리] 이전에 성룡이 눈물을 흘린 영화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만큼 성룡의 눈물은 제겐 낯설은 것입니다. 어쩌면 성룡도 이전의 영화에서 눈물을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기억하고 있는 성룡의 모습은 낙천적인 웃음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웃음대신 눈물을 보여줍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성룡의 눈물은 계속됩니다. 부하들이 죽는동안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그리고 그러한 자책감에 의한 무기력함... 성룡은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웃음대신 눈물로 진국영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합니다. 이 영화에서 성룡의 웃음을 보고 싶다면 마지막 NG장면까지 기다려야 할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변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성룡의 모습과는 달리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는 조(오언조)를 리더로한 10대 5인조 갱은 성룡의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악랄함의 극에 달합니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경찰들을 죽이며 서로 점수를 매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일말의 동정따위는 느끼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저는 성룡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조 일당에게 통쾌한 복수를 해주기만을 바라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조의 범행이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반항이라고 말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순진한 모습뒤에 숨겨진 그 악마적인 범행들... 그것이 바로 오언조가 표현한 조의 모습이며 웃음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성룡이 맞서싸워야하는 적입니다. 성룡은 예전보다 약해졌는데 그가 맞서 싸워야하는 적은 성룡 영화 사상 가장 악랄한 녀석들이라니 정말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선과 악의 배치는 성룡 영화의 또다른 변화입니다. 성룡의 영화들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기에 적합했습니다. [폴리스 스토리]도 그렇고 제가 개인적으로 성룡의 영화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용형호제]와 [프로젝트 A]도 그렇습니다. 간혹 [화소도]나 [중안조]같은 진지한 영화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일뿐 성룡 영화의 주류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성룡 영화의 특징은 가벼움을 무기로한 액션의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뉴 폴리스 스토리]는 다릅니다. 성룡 영화의 가장 긴 시리즈인 [폴리스 스토리]의 5편째 이야기인 이 영화는 그러나 [폴리스 스토리 5]라는 제목대신 [뉴 폴리스 스토리]라는 제목을 선택함으로써 이전의 [폴리스 스토리]와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될것임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움은 성룡의 적극적인 변화로 극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영화의 그 어디에서도 편안하게 즐길만한 액션은 없습니다. 성룡은 눈물을 흘리고, 악당들은 어떻게 저럴수 있나 할 정도로 악랄합니다. 가벼움이 성룡 영화의 무기였다면 이 영화의 무기는 증오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며 끊임없이 증오를 느꼈고 성룡이 어서 복수를 하기만을 바랬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저의 증오에 화답한 성룡의 대답은 용서입니다. 부하들의 복수대신 더이상의 희생을 막겠다는 진국영의 용서. 그럼으로써 어쩌면 통쾌한 복수로 인한 쾌감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좀더 성숙한 성룡의 액션 철학이 읽혀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성룡의 이전 영화들과 전혀 다른 영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헐리우드에서의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잠시 홍콩으로 돌아온 성룡은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 이전 성룡 영화의 향수를 느낄만한 장면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헐리우드에서의 성룡의 액션에 실망한 성룡 팬들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특히 양채니의 캐스팅은 꽤 깜짝 팬서비스였습니다. 한때 홍콩 멜로 영화의 히어로였던 그녀는 이제는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나 눈물을 흘리는 성룡을 잘 토닥거려줍니다. 분명 양채니가 연기한 가이라는 캐릭터는 [폴리스 스토리]에서 성룡의 애인으로 나와 웃음을 자아냈던 장만옥의 캐릭터와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외모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놀랍게도 양채니와 장만옥이 상당히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나만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폴리스 스토리]에 열광했던 그 시절 장만옥의 모습을 회상하여 즐겁게 양채니의 연기를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뉴 페이스인 정소봉을 연기한 사정봉이라는 젊은 배우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마치 낙천적인 이전 [폴리스 스토리]의 성룡을 보는 것만같은 정소봉이라는 캐릭터는 진국영 대신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겨줍니다. 사뭇 진지해진 성룡에게 실망한 분이라도 사정봉의 웃음으로 어느정도 만족감을 느끼셨을듯...
성룡의 곡예같은 연기도 여전합니다. 벌써 나이가 50대인 그가 위험천만한 액션 연기를 하는 것을 보며 특수효과로 인하여 성룡의 액션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던 헐리우드에서의 아쉬움이 일시에 해소되었습니다. 아무리 성룡이 웃음을 잃은채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액션만은 아직 그대인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사실 그것만으로도 전 [뉴 폴리스 스토리]에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뉴 폴리스 스토리]는 단언컨대 최근 성룡의 영화중 가장 중요한 영화로 평가받을만한 영화입니다. 분명 성룡은 이 영화를 통해 변화를 선언했고, 그러한 변화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진 이 영화를 보며 관객 스스로 평가를 내려야 할것입니다. 성룡의 다음 영화가 [러시아워 3]라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의미있습니다. 코믹스러운 부분은 크리스 터커에게 맡기고 자신은 진지한 홍콩 경찰 리를 연기했던 성룡. 성룡의 진지함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제겐 실망스러운 영화였지만 [뉴 폴리스 스토리]를 통해 변화를 성룡이 선언한만큼 [러시아워 3]는 편견을 버리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젠 저도 성룡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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