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마놀 우리베
주연 : 클라라 라고, 후안 호세 발리스타
개봉 : 2005년 1월 21일
관람 : 2005년 1월 12일
이 영화는 1938년이 배경입니다. 스페인 내전이 막바지로 치닫는 와중에 국제여단소속으로 스페인내전에 참가한 미국인 아버지를둔 캐롤(클라라 라고)은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인 스페인에 오게 됩니다. 이미 불치의 병으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캐롤의 어머니는 고향에서 홀연히 죽음을 맞이하고, 홀로 남게된 캐롤은 할아버지(알바로 드 루나)의 품에서 맡겨져, 장난꾸러기 토미체(후안 호세 발리스타)와의 순수한 사랑을 만들어가며 나름대로 재미있는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이 영화를 즐기는데 있어서 스페인 내전에 대한 기본 지식은 필수요건입니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역사학자들 사이에선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페인 내전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으로 구성된 공화주의자와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파시스트의 갈등사이에서 촉발된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1936년 시작되어 1939년 파시스트의 승리로 끝을 맺었습니다. 내전의 승리이후 프랑코는 1975년 죽을때까지 스페인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였으며, 반대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스페인에 지울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마이러브]에서 캐롤의 아버지가 소속된 국제 여단은 공화주의자의 편에서 전쟁에 참가한 외국 용병이며, 캐롤의 이모부는 프랑코 정부의 핵심인물로 한마디로 캐롤의 아버지와는 적대적인 관계입니다. 캐롤의 할아버지는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영화는 중간중간에 그가 공화주의자라는 사실을 언급하죠.
[마이러브]는 스페인 내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이런 암흑의 시절에 캐롤과 토미체의 순수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것이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입니다. 이념과 사상이라는 하찮은 것들을 위해 동족을 죽이는 어른들의 비열함과 너무나도 순수해서 보는 순간 저절로 미소를 짓게끔 만드는 어린아이들의 사랑을 교묘하게 대비시키며 영화는 관객들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왜 이 아이들처럼 순수할 수 없는 걸까?'라고...
캐롤과 토미체의 순수한 사랑은 스페인 내전이라는 무거운 배경속에서도 관객들에게 부담없이 영화를 즐기게 만듭니다. 사실 우리 관객에게 낯설은 스페인 영화인만큼 내전이라는 무거운 배경은 영화의 낯설음에 대한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은 사정이 다르죠.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은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통할만한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마놀 우리베 감독도 이러한 점을 적절하게 이용합니다. 선머슴같으며 당돌한 캐롤과 장난꾸러기이면서 속이 깊은 토미체의 순진한 사랑은 관객들에게 행복한 미소를 안겨줍니다. 하지만 이마놀 우리베 감독은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스페인 내전의 아픈 과거를 살짝 살짝 드리러냄으로써 관객들에겐 내전으로 인하여 캐롤과 토미체의 사랑이 상처입지나 않을지 걱정하게끔 만듭니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스페인 내전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겁니다.
스페인 사회와 민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영화들을 주로 연출해왔던 이마놀 우리베 감독은 그런 면에서 정말 현명한 선택을한 셈입니다. 그의 전작들을 볼때 그가 어쩌면 진정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캐롤과 토미체의 사랑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는 스페인 내전의 아픔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며 그 방법으로 관객들이 쉽게 동화될수 있는 순수한 사랑을 끌어들인 거죠. 그리고 그 덕분에 이 영화는 유럽 영화에 냉정한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는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 게다가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사랑과 스페인 내전을 비교하며 스페인 내전의 비인간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은 셈입니다.
이러한 이 영화의 정치적인 성향은 영화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나라엔 [마이러브]라는 다분히 사랑을 강조한 제목으로 개봉되었으며, 영화에 대한 홍보도 캐롤과 토미체의 순수한 사랑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막상 영화를 보다보면 영화의 속사정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상업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다면 좀 더 극적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자신의 남편과 여동생의 관계, 그리고 여동생의 자유분방함에 대한 시샘을 노골족으로 드러내는 캐롤의 이모와 그로인해 갖은 구박을 당하는 캐롤의 처지를 '소공녀'형식으로 표현했다면 영화는 조금 더 재미있어 졌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속의 두번의 죽음을 비장미가 가득 담긴 슬픈 음악과 슬로우 모션으로 표현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눈물을 흘릴 시간적인 여유를 주었다면 캐롤과 토미체의 사랑이 조금 더 영화적 재미로 포장되었겠죠. 아니면 캐롤을 위해 적국인 스페인에 몰래 잠입한 캐롤의 아버지와 캐롤릐 스페인 탈출을 후반부에 배치했다면 영화는 조금 더 흥미진진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상업적인 재미를 일부러 포기합니다. 마치 그런 것들에 흥미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 대신 이 영화가 세세하게 그린 것은 스페인 내전으로인하여 작은 마을에 불어닥친 변화입니다. 밤마다 몰래 숙청을 자행하는 파시스트들... 내전의 승리이후 노골적으로 들어내는 그들의 만행은 영화가 끝난후에도 오싹하게 느껴집니다. 이마놀 우리베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사랑마저도 저렇게 잔인하게 짓밟은 비열한 정부밑에서 무려 수십년을 버텨왔다'라고...
이 영화를 본 후 저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스페인 내전에 대한 지식들을 읽었습니다. 스페인 내전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저와 같은 무지한 관객들에게 이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어쩌면 진정한 성공을 거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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