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스티븐 소더버그
주연 :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캐서린 제타 존스, 맷 데이먼, 줄리아 로버츠
개봉 : 2005년 1월 7일
관람 : 2005년 1월 9일
2002년 미국 솔크레이트 동계 올림픽에서 그 유명한 안톤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반미감정이 극에 달했을때 전 공교롭게도 헐리우드 영화 한편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초호화 캐스팅에 빛나는 [오션스 일레븐]입니다.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제게 [오션스 일레븐]은 완벽에 가까운 범죄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범죄 스릴러 특유의 경쾌한 분위기와 관객의 뒷통수를 치는 유쾌한 트릭 그리고 스타급 연기자들의 완벽한 하모니가 돋보이는 [오션스 일레븐]을 저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 [오션스 일레븐]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네티즌들에게 집중 공격을 당했었죠. 그 당시 미국 영화는 보지도 말자는 불매운동이 한참이었는데 하필 그런 민감한 때에 [오션스 일레븐]에 대한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충격이 꽤 컸었답니다. 영화에 대한 제 글을 인터넷에 올린지 처음으로 악플에 시달린 것입니다. 단지 저는 [오션스 일레븐]이라는 영화를 좋아했던 것 뿐인데... 영화를 정치적인 문제와 결부시키는 그들을 저는 이해하지 못했었답니다.
거의 3년이 지나 개봉된 [오션스 일레븐]의 속편인 [오션스 트웰브]를 보니 그때가 생각나는 군요. 악플에 익숙하지 못해서 상처받으며 두려워했던 그때. 과연 제 글에 악플을 달았던 분들은 미국 영화는 절대 보지 않겠다던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을까요? 혹시 단순한 냄비근성으로 잠시 미국 영화 불매운동을 전개했다가 슬그머니 잊어버리진 않았을까요? 영화보기가 유일한 취미인 제겐 국내 개봉 영화중 거의 50%를 차지하는 미국 영화를 안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만약 3년전 그때의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시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 존경하고 싶어질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순간에 끓었다고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으로 끝나신 분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그러한 불매운동과 악플이 적당한 방법이었는지...
완벽했던 범죄 스릴러 [오션스 일레븐]에 대한 추억을 한아름안고 봤던 [오션스 트웰브]는 그러나 상당히 실망스러운 영화였습니다. 속편의 원칙에 따라 전편의 스타들과 더불어 몇명의 스타를 더 투입한 이 화려한 헐리우드 스타 시스템에 의한 영화는 그러나 많아진 스타의 숫자만큼이나 영화의 재미는 오히려 뒤로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속설은 헐리우드 최고의 감독이라는 스티븐 소더버그마저도 피할 수 없는 저주였나봅니다.
1. 전편의 완벽한 팀웍은 모두 어디로 간것일까?
제가 [오션스 일레븐]에 열광한 이유중 하나는 여러명의 스타급 배우들을 완벽하게 조율한 환상적인 팀웍이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영화 한편을 혼자서 이끌어갈만한 능력이 있는 스타급 배우들이 [오션스 일레븐]에서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작은 부품처럼 각자 맡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함으로써 [오션스 일레븐]이라는 거대한 기계와도 같은 영화를 완성해낸 겁니다. 과연 그런 환상적인 팀웍을 어떤 영화에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오션스 트웰브]는 그런 팀웍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큰거 한탕을 위해 모여들었던 각자 특기가 달랐던 11명의 도둑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라스베가스가 아닌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에서 한탕을 계획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시 모인 그들에게 3년전의 팀웍은 없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울(칼 라이너)은 돈이나 다 쓰고 죽겠다며 유럽행을 거부하고, 러스티(브래드 피트)는 옛 애인인 이사벨(캐서린 제타 존스)에 빠져 정신을 못차립니다. 다른 일당들도 갈팡질팡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말죠.
사정이 이러다보니 [오션스 일레븐]에서 완벽했던 그들의 계획은 처음부터 삐그덕거리더니 급기야는 대니(조지 클루니)의 아내인 테스(줄리아 로버츠)마저도 범행에 끌어들이는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를 서슴치않습니다. 물론 테스의 합류로 영화의 제목인 '오션스 트웰브'가 완성되기는 하지만 한명이 늘었다고해도 전편과는 달리 따로 놀며 팀웍이라고는 눈을 씻고봐도 없는 그들을 두고 세계 최고의 도둑이라는 영예(?)를 주기는 힘들것 같습니다.
2. 전편의 완벽한 계획은 시시한 계획으로 대체되었다.
팀웍이 사라진 오션 일당... 물론 그러한 것이 자발적으로 한탕에 끼어든 [오션스 일레븐]과는 달리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의 돈을 갚기위해 억지로 모여든 탓인지도 모릅니다. 3년전 한탕으로 편안하게 살고 싶었는데 졸지에 베네딕트에게 위협을 당하며 위험천만한 범죄에 또다시 가담했으니 [오션스 일레븐]에서와 같은 팀웍을 기대한 것이 무리였겠죠. 하지만 완벽한 계획이 사라진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되네요.
범죄 스릴러는 참 묘한 매력을 지닌 장르입니다. 스릴러 장르가 대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인데 범죄 스릴러만은 다릅니다. 작년에 개봉되어 좋은 평가를 얻었던 [범죄의 재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어두운 영화를 싫어하는 분들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장르이죠. 하지만 범죄 스릴러 영화엔 꼭 한가지 없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범죄에 사용될 완벽한 계획입니다.
[오션스 일레븐]은 개인적으로 범죄 스릴러의 교과서적인 영화라고 할만합니다. 이 영화의 계획은 거의 완벽했습니다. 베네딕트의 성격과 생활 방식까지 완벽하게 꿰뚤어 보고, 내부에 첩자까지 심어놓은 후 라스베가스의 최대 행사라고 할 수 있는 헤비급 권투 챔피온의 경기가 있는 어수선한 시간을 틈타 벌이는 그들의 이 치밀한 범행 계획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습니다. 특히 자신의 금고 강탈에 대처하는 베네딕트의 성격을 이용하여 유유히 카지노를 벗어나는 마지막 장면은 베네딕트 뿐만아니라 제 뒤통수를 치는 아주 완벽한 트릭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션스 트웰브]에서는 그런 계획이 없습니다. 팀웍이 사라진 그들에게 완벽한 계획 따위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전편보다 몸집을 부풀려 제작된 블럭버스터급 속편 영화인 만큼 범죄 스릴러의 필수 요건인 완벽한 계획의 부재는 믿고 싶지않을 정도로 실망스럽습니다.
오션 일당이 밤여우(뱅상 카셀)와의 게임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완벽한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발넓은 오션 일당의 오지랍덕분이죠. 영화가 시종일관 실망스러웠어도 그래도 마지막엔 [오션스 일레븐]에 버금갈만한 완벽한 계획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영화를 끝까지 주시했던 저는 이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허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차라리 오우삼 감독의 [종횡사해]를 떠올리게하는 밤여우의 그 유연한 몸동작에 더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얻은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닌 것을 세계 최고의 도둑이라는 오션 일당이 왜 몰랐을까요?
3. 식구가 많아진다고 재미까지 커지는 것은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오션스 트웰브]는 전편인 [오션스 일레븐]보다 식구를 한명 더 늘렸습니다. 11명의 도둑들도 많은데 1명이 더 늘어 12명의 도둑들이라니... 이에 걸맞게 오션 일당은 전편의 베네딕트 이외에도 유럽 최고의 도둑 밤여우, 그리고 러스티의 옛 애인이며 유럽의 유능한 경찰인 이사벨의 추격까지 당합니다. 이렇게 식구가 많아진 [오션스 트웰브]는 분명 헐리우드 스타 시스템에 의한 볼거리는 전편보다 확실히 키워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볼거리가 영화의 재미와 직결되지는 못합니다.
일단 오션의 12번째 멤버로 가입하는 테스의 경우를 보죠. 그녀의 범행 가담은 이 영화의 최대의 실수입니다. 이미 모든 게임이 끝난 상태에서 과연 테스를 범행에 가담시킨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그녀의 가담 덕분에 관객들은 테스의 '짝퉁 줄리아 로버츠 계획'이라는 기가막힌 볼거리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테스를 연기한 줄리아 로버츠가 짝퉁 줄리아 로버츠가 되어 어색한 연기를 하는 것은 이 영화의 최고 장면중 하나입니다. 특히 브루스 윌리스의 깜짝 카메오 출연이라니...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죠. 하지만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는 범죄 스릴러 영화의 치밀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단지 영화의 재미를 위해 장난처럼 끼워놓은 장면이라고밖에 여겨지지 않네요. 영화의 볼거리를 위해 스스로 범죄 스릴러의 영화적 재미를 포기한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오션 일당에 맞서는 유럽 최고의 도둑인 밤여우는 오히려 너무 매력적이어서 아쉬웠던 경우입니다. 우아하고, 자신만만하며,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인 특유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밤여우는 어눌한 계획과 콩가루같은 팀웍으로 갈팡질팡하는 오션 일당과 비교되어 오히려 관객들이 오션 일당에 대해서 실망하게끔 만듭니다. 관객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주인공들이라니... 그것도 12명의 스타급 배우들이 모였는데 말입니다.
러스티의 옛 애인인 이사벨이라는 캐릭터는 [오션스 일레븐]의 테스의 역할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신선함이 부족한 캐릭터입니다. 물론 캐서린 제타 존스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캐서린 제타 존스와 브래드 피트 커플은 완벽에 가까웠지만 그뿐입니다. 이사벨이라는 캐릭터는 영화의 그림을 더욱 멋지게 해주지만 범죄 스릴러로써의 영화적 재미는 이루내지 못했습니다. 테스가 대니와 그랬던것처럼 러스티와 티격태격 싸우며 사랑을 이루는 것 외에 그녀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오션스 써틴]을 예상케하는 어이없는 그녀의 변심이 절 두렵게 만들더군요. 이제 더이상의 속편은 없기를...
[오션스 트웰브]는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영화였습니다. 전편이 가지고 있는 재미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이 엄청난 스타 군단을 보며, 아무리 화려한 스타 시스템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영화의 재미를 완벽하게 책임지지는 못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여! 또다시 돌아오고 싶다면 다음엔 스타가 아닌 완벽한 계획을 안고 돌아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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