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주성치
주연 : 주성치, 황성의, 양소룡
개봉 : 2005년 1월 13일
관람 : 2005년 1월 3일
제게있어서 2005년의 첫 영화는 바로 [쿵푸 허슬]입니다. 특히 [쿵푸 허슬]은 2005년의 첫 영화라는 의미외에도 주성치를 비롯한 주연 배우들이 멀리 홍콩에서부터 한국으로 무대인사를 나와 제겐 더욱 특별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물론 주성치의 얼굴 한번 보겠다고 어마어마한 인파를 뚫어야 했으며, 가방 검색과 탐지기를 통해 주성치의 모습을 담기위해 준비해간 디지털 카메라를 빼앗겨야했고, 극장에 들어선 후엔 무려 한시간동안이나 주성치가 오기만을 앉아서 기다려야했으나 주성치를 가까이서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행복했답니다. 암튼 2005년의 시작치고는 꽤 인상적인 극장 나들이었죠. ^^
사실 저는 홍콩의 코미디 영화들을 싫어합니다. 그 대책없는 오버 연기와 억지로 웃기려드는 부자연스러운 상황들. 자연스러운 코미디를 좋아하는 제게 홍콩의 코미디 영화들은 유치의 극치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가 주성치를 싫어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그의 초기작중에서 [서유기 2 - 선리기연]은 꽤 인상깊게 보았지만,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도학위룡]을 외면할 정도로 주성치는 제겐 그저그런 홍콩의 오버쟁이 코미디 배우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제게 2년전쯤 인터넷 VOD로 보게된 [희극지왕]이라는 영화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처음에 제가 [희극지왕]을 선택한 이유는 장백지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파이란]을 보고 감동했던 저는 장백지를 보기위해선 주성치의 유치한 코미디 연기쯤은 참을 수 있다는 굳은 각오를 하고 영화를 보기시작했었죠. 하지만 [희극지왕]을 보며 저는 장백지가 아닌 주성치에게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주성치는 오버쟁이 코미디 배우가 맞습니다. 그리고 [희극지왕]에서도 어김없이 오버하며 관객을 웃기려듭니다. 하지만 그 오버속에 담긴 소시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절 웃게 만드면서도 가슴찡한 감동으로 전율하게 만들었답니다. 과연 그 누가 3류 엑스트라의 삶으로 이처럼 슬프게 웃길 수 있을까요? 코미디의 제왕이라는 찰리 채플린이 아니라면 결코 불가능했을 이 슬픈 코미디를 단지 홍콩의 오버쟁이 코미디 배우라고 생각했던 주성치가 천연덕스럽게 해내고 있었던 겁니다.
그 후 보게된 [소림축구]는 주성치에 대한 제 인식을 완전히 바뀌주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주성치는 제게 오버쟁이 유치찬란 코미디 배우가 아닙니다. 그의 코미디 연기는 대책없이 오버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소시민의 열정과 노력이 담겨져 있으며 영화를 보고나면 작은 희망으로 온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힘이 있습니다. 주성치... 그가 바로 진정한 희극지왕이었던 겁니다.
[쿵푸 허슬]은 완벽하게 [희극지왕]과 [소림축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입니다. 주성치가 연기한 3류 건달 싱은 [희극지왕]의 사우, [소림축구]의 씽씽을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인생의 패배자입니다. 비실비실한 안경잡이한테도 얻어터지는 이 한심한 건달은 상해를 장악한 도끼파의 일원이 되어 폼나게 살기위해 돼지촌을 습격합니다.
여기에서부터 [쿵푸 허슬]은 모든 것이 [소림축구]를 연상시킵니다. 겉보기에는 꼬질꼬질해보이는 돼지촌의 주민들이 사실은 엄청난 무공의 실력자라는 설정은 인생의 패배자 집단처럼 보였던 소림축구단이 사실은 엄청난 무공을 지닌 소림사의 고수들이라는 설정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돼지촌의 주민들이 도끼파에 맞서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는 결말 역시 소림축구단이 축구협회위원이 이끄는 1류 축구단과의 경기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는 [소림축구]의 결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주성치는 여전히 겉만 번지르한 상류층 캐릭터보다는 비록 가진 것은 없고 겉모습은 보잘것없지만 따뜻한 가슴과 작은 희망을 안고 사는 서민층 캐릭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과시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성치 영화의 힘이며 재미입니다. 제가 [희극지왕]을 보며 주성치식 코미디에 감동을 받은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며, [소림축구]를 보며 그가 진정한 희극지왕이라고 느낀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주성치는 그 서민적인 외모를 통해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서민의 힘을 보여줍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며 힘있고 돈있는 자들에 의해 조종되는 세상에 혐오를 느끼다가도 주성치의 영화를 보면 '그래도 아직 우리 서민들이 세상의 주인공이야'라는 희망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 [쿵푸 허슬]은 헐리우드 자본을 끌어들여 규모를 키웠습니다. 주성치가 동양의 희극지왕에 멈추지않고 세계의 희극지왕으로 등극하기위해 한걸음 나갔다는 의미합니다. 헐리우드의 화장실 코미디가 세계 극장가를 장악한 요즘 주성치의 행보는 분명 반가울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쿵푸 허슬]은 아무리 헐리우드 자본이 개입했어도 주성치식 코미디는 변함이 없을거라는 것을 보여준 만큼, [쿵푸 허슬]은 분명 반갑고도 주성치의 새로운 행보에 기대감을 안겨줄만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쿵푸 허슬]이 단지 [소림축구]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면 어쩌면 저는 약간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주성치가 벌써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닐지 섣부른 걱정을 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쿵푸 허슬]은 [소림축구]의 업그레이드에 머물지 않고 주성치식 코미디에서 주성치식 액션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쾌거를 이룩합니다.
사실 주성치는 전형적인 코미디 배우이지 액션 배우는 아닙니다. 물론 홍콩 영화의 특성상 그의 영화에 액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성치하면 아무래도 액션보다는 코미디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며 그의 영화들 역시 액션 영화라기보다는 코미디라는 장르가 더욱 잘 어울렸습니다. 그런데 [쿵푸 허슬]은 코미디 영화이기이전에 액션 영화입니다. 그의 영화로는 처음으로 액션이 코미디적인 요소를 앞지른 영화인 셈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주성치가 성룡식 정통 액션 연기를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주성치의 고유한 빛깔을 잃었다고 실망할지도 모르죠. 주성치는 [쿵푸 허슬]에서 그만의 고유한 빛깔도 지키면서 액션 연기로써의 도약을 시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버 액션입니다.
분명 [소림축구]에서도 주성치의 오버액션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쿵푸 허슬]에서처럼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주성치는 [쿵푸 허슬]에서 그만의 특유의 오버 코미디 연기를 오버 액션과 절묘하게 연결시키면서도 관객의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완벽한 쿵푸 실력을 과시합니다. 그 웅장한 돼지촌 셋트를 완전히 무너뜨르며 벌어지는 싱과 야수의 한판 대결은 마치 성룡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액션 영화적인 쾌감을 안겨줬습니다. 물론 오버가 넘쳐나는 덕분에 액션의 쾌감속에서도 끊임없이 웃었지만 그것이 바로 주성치의 고유한 빛깔을 잃지않으면서도 주성치식 액션의 가능성을 보여준 증거인 셈입니다.
영화를 보며 오랜만에 끊임없이 웃었더니 영화가 끝나고나니 모든 스트레스가 확 풀려버리더군요. 이젠 주성치에게 희극지왕이라는 칭호에 액션지왕이라는 칭호를 추가해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쿵푸 허슬], 이 한편의 영화로 어쩌면 성급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쿵푸 허슬]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쿵푸 허슬]에서 감독, 주연, 제작, 각본까지 1인4역을 도맡은 주성치는 그만한 칭호를 들어도 될만한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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