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5년 영화이야기

[엘렉트라] - 왜 [캣우먼]의 실패를 거울삼지 못한걸까?

쭈니-1 2009. 12. 8. 17:49

 



감독 : 롭 바우만
주연 : 제니퍼 가너, 윌 윤 리
개봉 : 2005년 1월 21일
관람 : 2005년 1월 18일


[엘렉트라]는 영화를 보기전부터 제게 묘한 기대감을 안겨준 영화입니다. 워낙 코믹스의 영웅들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비록 마블 코믹스의 정식 영웅은 아니지만 [데어데블]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준 엘렉트라가 [데어데블]에서 떨어져나와 개별적인 액션 히어로로써 어떤 활약을 보여줄 것인지도 궁금했고, 작년 9월에 개봉하여 실망감만 잔뜩 안겨줬던 [캣우먼]과는 어떤 차별화된 영화적 재미를 지니고 있을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한다면 [엘렉트라]는 [캣우먼]이 그러했듯이 제 기대감을 완벽하게 배신하며 실망감만 잔뜩 안겨준 영화였습니다.
[엑스맨], [스파이더맨], [블레이드], [헐크]의 고향인 마블코믹스의 전형적인 이중적 영웅 데어데블... 어릴적 사고로 시각을 잃은 그는 그러나 장애를 극복하고 시각 대신 초인적으로 발달한 다른 감각들을 이용하여 악당에게 죽음을 당한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해나갑니다. 비록 영화 [데어데블]은 벤 애플렉이라는 이중적인 영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번듯한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마블 코믹스의 재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영화가 되었지만 영화속 캐릭터들은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데어데블에게 부모님이 살해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위해 복수의 칼날을 갈던 엘렉트라는 [배트맨 2]의 캣우먼을 연상시키면서도 캣우먼과는 달리 비운의 운명을 지닌 캐릭터였습니다. 영화 [엘렉트라]는 바로 그러한 [데어데블]의 엘렉트라를 개별적인 여성 액션 히어로로 발전시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엘렉트라]가 [데어데블]에 의해서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데어데블]과의 단절을 통해 '엘렉트라 영웅 만들기'만 몰두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러한 단절이 잘 되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캣우먼]이 그러했듯이 [엘렉트라] 역시 [데어데블]과의 단절은 영화를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듭니다.


 



그러한 [엘렉트라]의 단점은 이미 [캣우먼]에 의해서 시행착오로 판정된 것입니다. [배트맨 2]와의 단절을 위해서 일부러 주인공을 흑인 여성으로 선정하는 모험을 감행했던 [캣우먼]은 [배트맨 2]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관객들이 익숙히 알고 있던 캣우먼이라는 캐릭터 자체를 변형시킴으로써 스스로 [배트맨 2]에서의 매력적이었던 캣우먼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잔뜩 실망감만 안겨줬습니다. 도대체 낮에는 소심한 여성으로 생활하다가 밤이면 위험한 캣우먼으로 변신한다는 그 엉뚱한 설정이 캣우먼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 걸까요? 그러한 엉뚱한 설정은 캣우먼이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캣우먼이 슈퍼맨과 비슷한 영웅이 되기를 소망한 감독의 어리석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러한 캐릭터의 변형은 [엘렉트라]에서도 이루어집니다. [데어데블]에서 엘렉트라는 복수심에 불타는 여성입니다. 부모님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하나로 스스로 몸을 단련시켜 액션 히어로인 데어데블에 맞서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여성이죠. 비록 데어데블에 대한 오해로인하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지만 [데어데블]의 미국 박스오피스 성공 이후 곧바로 [엘렉트라]가 제작에 착수할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그렇게해서 탄생한 [엘렉트라]는 엉뚱하게도 모든 것을 바뀌버립니다. 엘렉트라의 부모님이 죽은 것은 그녀가 어렸을때로 설정하고, 엘렉트라는 그 범인을 성인이 된후에서야 알게 됩니다. 그러한 엘렉트라는 분명 [데어데블]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엘렉트라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엘렉트라를 단순한 킬러로 전락시켰으니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요.
이렇게 엘렉트라의 캐릭터를 변형시키려다보니 영화는 초반부터 설명조로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캣우먼]과는 달리 제니퍼 가너를 [데어데블]에 이어 [엘렉트라]에도 캐스팅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엘렉트라는 [데어데블]에서의 엘렉트라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야했었죠. 그로인하여 액션 영화로는 치명적인 약점인 지루함이 영화의 초반에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화의 초반을 [데어데블]과는 단절된 새로운 액션 히어로의 탄생을 위해 설명조로 상당 부분 할애한 이 영화는 막상 본격적인 액션이 펼쳐지는 후반부는 미처 화려한 액션을 펼칠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전반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에 대한 부담감이 후반부에 부실한 클라이막스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분명 이 영화속 악당들은 개성이 뚜렷합니다. 최강의 암살자 집단 핸드를 이끄는 최강의 전사 키리기(윌 윤 리)를 중심으로, 돌보다 단단한 근육을 지닌 가공할 괴력의 소유자 스톤, 모두가 두려워하는 무술의 최고 고수 킨코우, 숨결과 손길에 치명적인 독을 숨기고 있는 여인 타이포이드, 몸에 지닌 문신에 생명을 불러 넣어 치명적인 무기로 사용하는 타투는 지금까지 다른 영화에 등장했던 어떤 악역 캐릭터들보다 개성 있으며 매력적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에 기대를 걸었던 부분도 바로 이러한 개성적인 악역 캐릭터들의 액션의 향연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그들은 너무나 서둘러 최후를 맞이합니다. 최강의 암살자 집단이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의 죽음은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도대체 돌보다 단단한 근육으로 엘렉트라의 그 무시무시한 삼지창마저 무용지물로 만들었던 스톤이 겨우 나무에 깔려 죽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치명적인 독으로 한때 엘렉트라는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었던 타이포이드의 죽음은 또 어떻고요. 몸의 문신을 이용한 특이한 방법으로 주인공을 위협했던 가장 매력적인 악당 타투 역시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무술의 최고 고수라는 킨코우의 죽음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허무한것은 키리기의 최후입니다. 이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키리기의 최후는 역대 악당 캐릭터의 최후중에서도 가장 어이가 없습니다.
최강의 암살자 집단이라면 그 최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최후를 마련해줬어야 합니다. 주인공인 액션 히어로가 더욱 빛이 나려면 그에 맞서는 악당이 강해야 하며 그러한 강함은 어떠한 최후를 맞이하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결같이 개성적인 주특기로 기대를 잔뜩 모았던 악당들의 허무한 죽음은 엘렉트라의 위상마저 깍아 내린다는 것을 롭 바우만 감독은 진정 몰랐을까요? 저런 약해빠진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영웅은 제대로된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롭 바우만 감독은 진정 몰랐을까요?


 


  
[엘렉트라]는 정말 실망스러운 액션 영화였습니다. [캣우먼]의 실수를 반복하는 그 우둔함과 매력적인 악당 캐릭터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채 클라이막스를 흐지부지 끝내버리는 이 영화의 어리석음은 아무리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라도 영화 자체가 매력적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보였습니다.
차라리 엘렉트라가 부모님의 죽음이후 복수를 다짐하며 최강의 여전사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었다면 [데어데블]과의 자연스러운 연결과 함께 엘렉트라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위해 초반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며, 후반부의 핸드와의 최후 결투씬도 좀더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데어데블]에서의 엘렉트라는 결국 죽음을 당하는 비운의 운명을 가지고 있지만 [엘렉트라]를 시리즈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면 엘렉트라의 비운의 운명은 오히려 엘렉트라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가 될수도 있었습니다.
[스콜피온 킹]이 B급 액션 영화다운 규모를 지니고 있지만 영화적 재미만은 블럭버스터다운 면모를 지닐 수 있었던 것도 흥행에 성공한 액션 블럭버스터인 [미이라 2]의 후광을 교묘하게 이용한 마케팅 덕분이며, 용감한 영웅이었으나 악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스콜피온 킹의 운명을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 이 비운의 캐릭터에 남다른 애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큰 몫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모든 것을 뿌리치고 엘렉트라를 평범한 액션 히어로로 전락시키는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이 영화에 대한 모든 기대감을 날려버립니다. [캣우먼]보다 [스콜피온 킹]을 관객들이 더욱 좋아한다는 것만 봐도 답이 뻔했는데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