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오상훈
주연 : 임창정, 이인성
개봉 : 2005년 2월 18일
관람 : 2005년 2월 2일
한때는 제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만능엔터테인먼트로 인정했던 임창정. 지금은 가수의 길을 포기하고 영화배우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혀 더이상 만능엔터테인먼트라고 칭할수 없게 되었지만, 영화배우로의 전념덕분에 요즘들어 그의 편안한 코믹 연기를 자주 접하는 또다른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임창정의 연기는 라면같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고급 음식일 수 없는 인스턴트 식품 라면. 그러나 한동안 안먹으면 먹고 싶고, 오랜만에 먹으면 정말 별미인것이 바로 라면의 특징입니다. 임창정의 연기가 그렇습니다. 그의 연기는 코미디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아직까지 그는 자신이 잘하는 것이 코믹 연기이고, 연기변신을 할 생각이 별로 없음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확실하게 단정지었습니다. 그렇기에 임창정의 영화에서 진지한 면을 찾아 본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릅니다. 혹자는 그런 임창정의 영화들을 너무 가벼운 코미디 영화라고 혹평하지만, 제게 있어서 임창정의 영화는 아무생각없이 웃고 싶을때마다 제 마음이 확트이는 웃음을 안겨주는 그런 영화입니다. 물론 영화를 보고난후 영화 자체는 기억에 오래 남지는 않습니다. 단지 영화를 보는내내 웃었던 기분 좋은 기억만이 남아 다시 임창정의 영화가 개봉하면 그 기분좋은 기억을 되씹고 싶어서 극장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라면같은 임창정의 연기에 변화를 주겠다고 선언한 영화가 있습니다. [위대한 유산]에서 임창정의 코믹 연기를 정확하게 잡아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웃음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안겨주었던 오상훈 감독이 자신의 두번째 영화인 [파송송 계란탁]에서도 임창정을 캐스팅하여 라면같은 그의 연기에 변화를 주겠다며 당찬 모험을 감행합니다. 그러한 오상훈 감독의 모험이 성공을 거둘지... 관객들의 평가가 정말 궁금하네요.
[파송송 계란탁]에서 임창정이 연기한 대규라는 캐릭터는 정확하게 [위대한 유산]의 한심한 백수건달 창식의 연장선안에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오상훈 감독은 상당히 똑똑한 감독입니다. 그는 임창정의 연기 변신을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파송송 계란탁]은 완벽한 코미디 영화이며, 그 영화속의 임창정 역시 예전과 엇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임창정의 편안한 코미디 연기를 즐기며 맘껏 웃고 있을때 오상훈 감독은 은근슬쩍 임창정의 연기변신을 관객들의 눈앞에 제시합니다.
분명 임창정의 영화를 찾는 사람들의 목표는 저와 마찬가지로 가볍게 웃기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짜고짜 임창정에게 슬픈 연기를 맡긴다면 아마도 관객들은 당혹스러워 할것이며 기대와는 다른 이 영화에 실망할 것이 분명합니다. 오상훈 감독은 바로 그러한 관객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어 봤습니다. [파송송 계란탁]이라는 영화의 제목도 그러하고, 철부지 아빠와 어른같은 아들의 여행기라는 영화의 기본 스토리 라인도 정확하게 임창정식 코미디의 외형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규와 인권(이인성)의 여행이 지속되면 될수록 어느새 웃음은 점차 슬픔으로 번져갑니다. 인권의 가슴아픈 사연이 알게된 그 순간부터 임창정의 코믹 연기는 그 자체가 슬퍼집니다. 너무나 슬픈데 그 슬픔을 잊기 위해 억지로 웃으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때때로 카멜레온처럼 급격한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는 배우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배우들을 우리는 연기파 배우들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과는 정반대로 관객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잡아내며 그 속에서 언제나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배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배우들을 욕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있다면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만 보여주는 배우도 필요한 법이니까요. 임창정도 정확히 후자에 속합니다. 그리고 오상훈 감독은 그러한 임창정의 의지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내에서 그의 변신을 이끌어낸것입니다. 겨우 장편 영화 두편을 연출한 것이 전부인 그가 말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돈이 없어서 라면만 사는 대규에게 인권은 자꾸 파와 계란을 사라고 조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혹시 라면에 파와 계란을 넣어서 먹어보신 적 있나요? 제 경우는 파를 싫어해서 라면에 계란만 넣어 먹었었습니다. 그런데 분식점에서 먹는 라면과 제가 끓여먹는 라면의 맛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이유를 분석한 결과 분식점에서 파는 라면위에는 파가 송송 썰어서 엊혀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조금 귀찮더라도 라면에 파를 썰어서 넣어 먹곤 합니다.
이 영화에서 대규의 라면에 파와 계란을 넣으려하는 인권의 노력은 솔직히 너무 인위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장면만큼이나 이 영화의 주제가 잘 표현된 장면도 없습니다. 분명 대규의 인생은 바로 싸구려 라면과도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가수의 꿈을 접고 짝퉁 가요 테잎을 녹음하는 대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면 그 돈으로 자신을 꾸미고 여자 꼬시러 다니기에 전념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싸구려 인생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인생에 9살된 인권이 아들이라며 찾아옵니다. 대규는 그런 인권을 귀찮아하지만 인권은 대규의 인생에 파와 계란같은 존재가 되어줍니다. 귀찮지만 라면에 넣어서 먹으면 라면의 맛을 맛깔스럽게 바뀌주는 파와 계란. 인권의 존재는 그렇게 대규의 인생을 조금씩 바뀌 줍니다.
그리고 대규가 변하듯이 임창정의 연기도 변합니다. 언제나 그의 영화는 웃고 즐기기만 하면 될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선입견을 일시에 날려주는 영화 후반부의 임창정의 연기들. 라면은 라면일 뿐입니다. 아무리 파와 계란을 썰어넣는다고 해서 인스턴트 식품이 고급 요리가 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면 어쩌면 라면도 고급 요리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임창정의 코믹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영화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 그 감동의 순간이 가슴 한켠에 남아 있는 것을 느끼며 라면같다라고 생각했던 임창정의 연기가 그 어떤 연기파 배우의 연기보다도 감동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 맛이 감동스러워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으면 그것이 고급 요리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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