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백악관 최후의 날] - '다이하드'와 '사선에서' 중에서 하나만 선택했어야...

쭈니-1 2013. 6. 10. 13:52

 

 

감독 : 안톤 후쿠아

주연 : 제라드 버틀러, 아론 에크하트, 모건 프리먼, 릭 윤

개봉 : 2013년 6월 5일

관람 : 2013년 6월 9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10년이 지나며 우리나라 관객의 인식도 바뀌었다?

 

2002년 12월 리 타마호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007 어나더데이]의 개봉이 우리나라에서 최대 화제가 되었습니다. [007 어나더데이]가 화제가 된 이유는 이 영화가 북한을 제임스 본드(피어스 브로스넌)의 적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007 어나더데이] 안보기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네티즌들 역시 [007 어나더데이]에 대한 거부감을 확실하게 드러냈습니다. 종로의 서울 극장 앞에서는 '[007 어나더데이] 상영을 중단하라'는 시민 단체들의 시위까지 있었으니 [007 어나더데이]에 대한 당시의 분위기는 험악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서울 극장에서 [품행제로]를 본 후 극장을 나섰다가 시민 단체의 시위를 목격한 저는 [007 어나더데이]의 극장 관람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습니다. 다른 영화는 몰라도 [007 시리즈] 만큼은 꼬박 꼬박 극장에서 봤던 저는 당시의 분위기에 휩쓸려 결국 [007 어나더데이]의 극장 관람을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013년 6월 5일 안톤 후쿠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백악관 최후의 날]이 개봉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007 어나더데이]와 비슷한 면이 많았습니다.

북한의 테러리스트가 악당으로 설정된 점이 그러하고, [007 어나더데이]에서 잔혹한 북한군 테러리스트 자오를 연기했던 릭 윤이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도 백악관을 장악하는 북한의 테러리스트를 연기했다는 점까지 똑같습니다.

하지만 [백악관 최후의 날]의 국내 개봉의 화제성은 10년 전 [007 어나더데이]과는 전혀 딴판입니다. 북한이 악당으로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개봉 분위기가 험악했던 2002년과는 달리, [백악관 최후의 날]은 조용히, 아니 관객의 무관심 속에 개봉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관객의 관심은 온통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쏠려 있습니다.

6월 6일 밤,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찬 극장에서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관람했던 저는, 6월 9일 밤에는 텅 빈 극장에서 [백악관 최후의 날]을 봤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는 계속 [007 어나더데이]가 떠올랐는데, 극장의 분위기는 당시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조용하니 10년이라는 세월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습니다.  

 

 

정말 저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007 어나더데이]와는 달리 편안한(?) 마음으로 [백악관 최후의 날]을 극장으로 보러갔습니다. 사실 [백악관 최후의 날]은 단순 액션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백악관 최후의 날]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휴가를 나온 미국 대통령 벤자민 아셔(아론 에크하트)와 그의 경호를 맡은 마이크 배닝(제라드 버틀러)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만찬을 위해 대통령 가족을 태운 차가 눈길에서 아슬아슬하게 달리다가 사고가 납니다. 그리고 마이크는 대통령을 구하지만, 영부인(얘슐리 주드)은 구하지 못합니다. 

사실 이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꽤 흔합니다. 대통령 경호원을 소재로한 볼프강 페터슨 감독의 [사선에서]의 주인공인 프랭크 호건(클린트 이스트우드)은 30년 전 케네디 대통령의 경호원이었으나 그의 암살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밋치 래리(존 말코비치)의 대통령 암살시도를 막으며 명예회복을 합니다. 대통령 경호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의 비슷한 패턴인 셈입니다.

결국 영부인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차사고와 그로인한 마이크 배닝의 죄책감은 그의 캐릭터를 빠른 시간 안에 완성하기 위해 안톤 후쿠아 감독이 선택한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인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너무 안일한 캐릭터 설정에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의 평범한 캐릭터 설정이 아닌, 그로인한 과정입니다.

 

영부인의 죽음은 마이크 배닝의 캐릭터를 손쉽게 완성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이 영화의 전개가 얼마나 허술한지 오프닝씬부터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이 영화의 오프닝씬을 보며, '아니, 대통령을 모시는 차에 스노우 타이어도 장착이 되지 않았나?'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무슨 특별한 암살 시도에 의한 사고가 아닌, 단순 운전 미숙으로 처리된 오프닝의 차사고 장면은 그저 영부인을 희생시키는 선에서 마무리짓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영부인의 죽음은 어차피 마이크 배닝의 캐릭터 설정을 위한 방편일뿐,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너무 허술해도 오프닝씬이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악관 최후의 날]은 계속 이런 식입니다. 북한의 테러리스트인 강(릭 윤)이 백악관을 장악하는 장면은 '우와! 정말 저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오싹함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오싹함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말도 안되'라는 헛웃음만 지었을 뿐입니다.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 상공에 미확인 비행기가 날아올 수 있었다는 것도 말도 안되지만, 민간인을 태운 민간 항공기도 아닌 공격무기까지 갖춘 전투기가 위싱턴 시내에서 난리를 쳐도 미국의 군대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장면은 아무리 액션 영화이지만, 저렇게 비현실적이어도 되는 것인지 걱정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강은 13분 만에 백악관을 장악합니다. 단 13분만에 말입니다. 세계 최강의 군사 대국이라는 미국이, 변방의 이름 없는 국가도 당하지 않을 굴욕을 당한다는 이 설정은 현실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대통령? 아니 무책임한 대통령!

 

액션 영화는 다분히 판타지적입니다. 액션 영화에서 현실성을 원하는 것은 어거지 요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액션 영화라고 할지라도 최소한의 현실성은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화를 보는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악관 최후의 날]은 미국의 백악관이 북한의 테러리스트에게 함락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그 어떤 현실성도 획득하지 못했기에 영화의 충격적인 소재는 전혀 그 충격을 주지 못합니다. '정말 북한의 테러리스트가 저런 방법으로 백악관을 장악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으니 마이크 배닝의 활약에 감정 이입을 할 수가 없는 것이죠.

게다가 우유부단한 미국 대통령 벤자민 아셔의 캐릭터도 영화를 보는 제게 짜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벤자민 아셔는 영화의 오프닝씬에서 마이크 배닝과 권투를 하는 장면을 통해 [인디펜던스 데이]의 전투기를 몰며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을 무찌르는 대통령 토마스 화이트모어(빌 폴먼)와 미국 대통령의 비행기인 '에어 포스 원'을 장악한 테러리스트를 홀로 무찌르는 제임스 마샬(해리슨 포드) 대통령의 뒤를 잇는 강한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우유부단의 극치를 달리는 모습 뿐이었습니다. 

 

사실 테러리스트인 강의 목적이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목적 때문이라면 백악관을 장악하는데 13분이 걸리는 그 강력한 군사력으로 백악관이 아닌 우리나라의 청와대를 장악하는 것이 나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효율적이죠.

하지만 강은 위험을 무릅쓰고 백악관을 장악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의도는 뻔합니다. 바로 미국을 향한 공격 의지입니다. 실제로 강은 핵무기에 대한 미국의 방어 체제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 비밀 코드를 알 고 있는 이는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 그리고 벤자민 아셔 뿐입니다.

강은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을 차례로 위협해서 비밀 코드를 알아내려 합니다. 비밀코드를 말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안위를 위한 일이 아닌, 국가의 안보가 달린 문제입니다. 강이 비밀 코드를 알아내면 미국의 선량한 국민들이 자국의 핵무기 폭발로 인하여 몰살 당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런데 벤자민 어셔는 '내가 절대 입을 열지 않을테니 당신들은 비밀 코드를 말하라'며 오히려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국민의 안위보다는 정부 관료 개개인의 목숨을 더 중요시한 셈입니다. 과연 저런 우유부단한 인물에게 국가를 맡겨도 될런지... 영화를 보며 무기력한 벤자민 아셔라는 캐릭터에 짜증만 났습니다.

 

 

'다이하드'와 '사선에서' 중에서 하나만 선택했어야... 

 

[백악관 최후의 날]의 기획 의도는 명확합니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 중에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다이하드]의 무대를 백악관으로 바꾸고, 마초 형사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을 대통령 경호원 마이크 배닝으로 변경시켜 그의 활약상을 지켜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본 설정만을 중요시하다보니 마이크 배닝의 캐릭터를 일단 얼렁뚱땅 만들어 놓고, 북한의 테러리스트들이 백악관이 장악하는 장면마저 대충 처리합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벌어진 전개의 허술함이라는 단점을 그냥 모르는채 합니다. 그래놓고 백악관의 테러리스트 속에서 홀로 남은 마이크 배닝이 실컷 뛰어 놀수 있게끔 합니다.

영화의 또다른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벤자민 아셔는 '미국은 결코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하지 않는다.'라는 헛소리만 지껄이다가, 국방장관이 위기에 처하면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입을 다물테니 당신의 비밀 코드를 말하세요. 이건 명령입니다.'라는 우유부단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이크 배닝의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려는 장치입니다.    

한국인 캐릭터가 절대 한국인같지 않더라는 기본적인 사항은 딴지를 걸지 않겠습니다. 할리우드의 영화 관계자가 보기에 동양인은 전부 비슷하게 보일테니까요.(저도 서양인은 전부 미국인으로 보입니다.) 북한 테러리스트가 하는 어색한 한국말도 딴지를 걸지 않겠습니다. 이건 기본적으로 한국 관객을 위한 영화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정녕 현실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은 영화 속의 상황과, [다이하드]와 [사선에서]를 어정쩡하게 섞어 놓은 [백악관 최후의 날]의 각본은 딴지를 걸고 싶습니다. 액션 영화에서 그저 영웅의 일당백의 활약과 터붓는 총알이면 관객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은 제발 그만 하시길...

안톤 후쿠아 감독이 조금이라도 이 영화의 현실성을 확보하고 싶었다면 백악관이 저렇게 허무하게 테러리스트에게 장악되는 장면을 연출해서는 안됩니다. 액션의 양을 줄여서라도 백악관이 테러리스트에게 장악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했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는 '백악관에 간 [다이하드]'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사선에서]와 비슷한 대통령 경호원의 실감나는 액션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다이하드] 식의 액션을 포기할 수 없다면 무대를 백악관이 아닌 호텔이나 타국으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백악관 함락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쓸 수 없는 대신 확실한 액션 영화는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백악관 최후의 날]은 [다이하드]와 [사선에서]이 중간에서 둘 다 놓치지 않겠다는 욕심을 부린 끝에 이도 저도 아닌, 그저 근육 덩어리의 묵직한 액션만 돋보이는 뻔한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백악관 최후의 날]이 이렇게 실망스럽다보니 조만간 개봉할 [화이트 하우스 다운]도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의 백악관은 부디 허술하게 함락되지 않기를...

 

 

[백악관 최후의 날]을 보며 계속 들었던 생각...

자국도 지키지 못하는 저런 허접스러운 나라에 우리나라의 안보를 맡겨도 되는거야?

물론 영화니까 미국의 군사력이 허접스러웠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 때문에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