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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 - 초인의 액션에 나약한 인간은 그저 구경만 할뿐...

쭈니-1 2013. 6. 14. 14:26

 

 

감독 : 잭 스나이더

주연 : 헨리 카빌, 에이미 아담스, 러셀 크로우, 마이클 섀넌, 케빈 코스트너, 다이안 레인

개봉 : 2013년 6월 13일

관람 : 2013년 6월 13일

등급 : 12세 관람가

 

 

어릴적 빨간 망토를 목에 두루고 동네를 뛰어다니던 기억.

 

어렸을적 동네 꼬마 아이들의 최고 아이템은 빨간 보자기였습니다. 저는 틈만 나면 빨간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두 주먹을 불끈 쥔채로 한 팔은 앞으로 쭈욱 뻗고, 한 팔은 허리에 고정시킨채 동네를 뛰어 다녔습니다. 바로 '슈퍼맨'을 흉내내면서 말입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인 30,40세대는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당시의 슈퍼 히어로는 '슈퍼맨'이 거의 유일했고, 파란 쫄쫄이 의상에 빨간 팬티와 망토를 두른 '슈퍼맨'은 동네 아이들의 우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안타깝게도 '슈퍼맨'을 극장에서 영화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극장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했는데, 어린 나이의 제가 혼자 가기엔 너무 멀었던 거리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양복점을 운영하셨기에 언제나 바쁘셨고, 누나는 여성이었기에 저와는 달리 '슈퍼맨'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슈퍼맨' 보러 극장에 가자고 조르기만 했을 뿐, 제가 본 '슈퍼맨'은 언제나 안방의 작은 TV에서 뿐이었습니다.

제가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슈퍼맨'은 더이상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크리스토퍼 리브가 주연을 맡은 원조 '슈퍼맨'의 마지막 시리즈인 [슈퍼맨 4 : 최강의 적]이 국내 극장에 상영했던 것은 1990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인 제게 거의 한달 용돈과 맞먹는 극장비는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1990년 [슈퍼맨 4 : 최강의 적]을 끝으로 깊은 잠에 빠져든 '슈퍼맨'. 그 사이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 영화들이 우후죽순으로 제작되기 시작했고, 전세계 영화팬들은 그러한 슈퍼 히어로 영화들에 열광하였습니다.

결국 [슈퍼맨 4 : 최강의 적]을 끝으로 거의 20년간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했던 '슈퍼맨'도 그러한 슈퍼 히어로 영화의 붐 속에서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2006년 6월에 개봉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영화 [수퍼맨 리턴즈]를 통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수퍼맨 리턴즈]는 흥행 실패작입니다. 북미에서 2억 달러의 흥행을 올렸고, 우러드와이드 흥행 성적이 4억 달러에 근접했지만, [수퍼맨 리턴즈]에 투입된 제작비인 2억7천만 달러를 회수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이 '슈퍼맨'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배트맨'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 의해 리부팅되었고, 결국 시리즈의 두번째 영화인 [다크 나이트]는 북미 흥행 역사상 4번째로 높은 흥행을 기록하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들이 이렇게 승승장구하고 있는 와중에 과연 '슈퍼맨'의 부활은 요원한 것일까요? 여기 그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바로 [다크 나이트]의 신화를 이룩한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을 맡고, 잭 스나이더가 감독을 맡은 [맨 오브 스틸]입니다.

 

 

[슈퍼맨 리턴즈]의 색깔 지우기

 

[맨 오브 스틸]의 시작은 [배트맨 비긴스]가 그러했듯이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사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수퍼맨 리턴즈]를 통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닌 오리지널 [슈퍼맨]과의 연결을 중점에 두었습니다. 그 결과 영화의 주요 내용은 지구를 떠나 자신의 고향인 크립톤 행성을 방문한 '슈퍼맨'(브랜든 라우스)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처참하게 잔해만 남은 크립톤 행성에 도착한 '슈퍼맨'은 결국 자신이 유일한 크립톤 행성의 종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지구로 돌아옵니다.

이제 '슈퍼맨'이 돌아갈 집은 지구 뿐입니다. 비록 지구에서 그는 초능력을 가진 이방인에 불과하지만, 지구인의 일원이 되기 위해 '슈퍼맨'은 힘겨운 노력을 합니다. 이렇듯 [수퍼맨 리턴즈]는 오리지널 [슈퍼맨]과 연결됨과 동시에 제2의 고향인 지구의 일원이 되기 위한 '슈퍼맨'의 모습을 정교하게 담았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과 잭 스나이더 감독은 간단하게 리셋 버튼을 눌러 버립니다. 팀 버튼과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을 리셋하고 [베트맨 비긴스]을 시작으로 '다크 나이트 3부작'를 연출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은 [맨 오브 스틸]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이전의 '슈퍼맨'을 모드 지워버린 셈입니다.

 

이전의 '슈퍼맨'을 지우기 위한 크리스토퍼 놀란과 잭 스나이더의 계획은 철두철미했습니다. [수퍼맨 리턴즈]에서도 고수했던 이전 '수퍼맨'의 상징인 파란 쫄쫄이 의상이 새 의상으로 바뀐 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수퍼맨 리턴즈]에서 오리지널 '슈퍼맨'인 크리스토퍼 리브의 젊은 시절을 연상하게 한다는 평을 들은 브랜든 라우스는 물론, 로이스 레인 역의 케이트 보스워스는 당연히 헨리 카빌과 에이미 아담스로 교체되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크립톤 행성에서의 칼엘의 탄생부터 시작했고, [수퍼맨 리턴즈]에서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크립톤 행성의 풍경을 장시간 관객 앞에 선보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맨 오브 스틸]에서의 '슈퍼맨'의 적이 인간이 아닌 같은 크립톤 행성 종족인 조드(마이클 섀넌) 장군이라는 점입니다. '슈퍼맨'하면 자동적으로 생각나는 악당인 렉스는 등장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최후의 크립톤 행성의 종족이라는 사실에 괴로워하던 [수퍼맨 리턴즈]와는 달리,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종족을 무찌름으로서 스스로 최후의 크립톤 행성의 종족이 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지구의 일원이 되기 위한 '슈퍼맨'의 노력을 담아 액션보다는 드라마적 성격이 강했던 [수퍼맨 리턴즈]와는 달리 크리스토퍼 놀란과 잭 스나이더는 드라마를 최소화하고 액션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아예 대놓고 '난 [수퍼맨 리턴즈]하고는 달라!'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맨 오브 스틸]은 완벽하게 [수퍼맨 리턴즈]의 색깔을 지워버린 것입니다.

 

 

두명의 아버지

 

[수퍼맨 리턴즈]에서 크립톤 행성의 마지막 후예인 칼엘이 지구의 일원인 클락 켄트가 되기까지 '슈퍼맨'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슈퍼맨'과 로이스 레인 간에 태어난 아들의 존재로 '슈퍼맨'은 그제서야 진정한 지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슈퍼맨'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던 [수퍼맨 리턴즈]와는 달리 [맨 오브 스틸]은 '슈퍼맨'의 아들로써의 역할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칼엘의 아버지인 조엘(러셀 크로우)은 갖난 아기를 지구로 보내며 크립톤 행성의 미래와 희망을 겁니다. 그는 지구에 새로운 크립톤 행성의 후예를 양성하기 위해 지구인을 말살하려는 조드 장군과는 달리 칼엘이 지구인과 더불어 살며 크립톤 행성의 뒤를 잇기를 원합니다.

지구의 아버지인 조나단 켄드(케빈 코스트너)는 인간의 힘을 초월한 칼엘을 아들로 받아들이고, 그가 지구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립니다. 자신보다 월등한 칼엘의 존재가 밝혀지면 인간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배척할 것이라 걱정한 조나단은 그가 최대한 자신의 능력을 감추며 살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러셀 크로우와 케빈 코스트너라는 듬직한 배우들로 이루어진 '슈퍼맨'의 두명의 아버지는 [맨 오브 스틸]을 든든하게 받쳐줍니다. 사실 헨리 카빌은 [신들의 전쟁], [콜드 라잇 오브 데이] 등으로 우리 관객에게 익숙한 배우이긴 하지만 거대한 블록버스터의 주연을 맡기에 무게감이 부족한 배우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게 부족한 무게감을 러셀 크로우와 케빈 코스트너가 채워준 것입니다.

 

결국 크립톤 행성의 낳아준 아버지인 조엘의 희망과 지구의 길러준 아버지인 조나단의 가르침 밑에서 '슈퍼맨'은 지구의 일원이 되어 훌륭하게 자라난 것입니다.

비록 조드 장군이 지구로 침략하자 '슈퍼맨'을 조드 장군에게 넘겨주려 했던 인간의 비겁함을 알면서도 '슈퍼맨'은 그러한 인간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믿어준 로이스 레인을 비롯한 몇몇 인간들에게 오히려 고마워합니다. 

[맨 오브 스틸]은 이렇듯 공존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슈퍼 히어로와는 달리 '슈퍼맨'은 완벽한 이방인입니다. [수퍼맨 리턴즈]는 그러한 이방인의 외로움을 잡아냈고, 로이스 레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존재로 '슈퍼맨'을 지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거창한 의식을 치뤘습니다.

하지만 [맨 오브 스틸]은 두명의 아버지로 인하여 이미 지구의 일원이 된 '슈퍼맨'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써 외로워하지도 않고, 지구의 일원이 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대로 위험에 처함 사람들을 구하고, 그렇게 그냥 훌쩍 또 길을 떠날 뿐입니다. 사람들이 그의 선행을 몰라줘도 상관 없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인간이니까요.

인간들은 여전히 그런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슈퍼맨'은 그다지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인간을 몰살하고 새로운 크립톤 행성을 건설하자는 조드의 제안도 그가 이미 인간이기에 고민의 가치가도 없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이 모든 것은 두명의 아버지의 힘입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액션... 나약한 인간은 그저 구경만 할뿐...

 

조드 장군이 지구를 침략하며 [맨 오브 스틸]은 본격적인 블록버스터 액션에 돌입합니다. 영화의 중후반부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이 영화의 액션은 극장에 앉은 제 입을 쩌억 벌어지게 했습니다.

[맨 오브 스틸]의 액션은 이 영화의 블록버스터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줍니다. 조드 장군의 일행이 '슈퍼맨'과 같은 크립톤 행성 사람들이라 이 영화의 액션은 초인대 초인의 전쟁으로 치뤄집니다.

그들의 액션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저 '슈퍼맨'을 조드 장군에게 넘겨주고, 조드 장군이 로이스 레인 마저 끌고 가려고 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합니다. 인간 문명의 자랑이라는 높은 빌딩들은 힘없이 무너지고, 미군의 초강력 전투기들 역시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는 것 뿐입니다.

이렇게 무기력한 인간들 틈에서 저 역시 '슈퍼맨'과 조드 장군의 액션의 스펙타클에 매료되어 버렸습니다. 도저히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 수 없는 초현실의 벽이 가로막혀 있었지만, '슈퍼맨'이 조드 장군에게서 인류를 구해줄 것을 기도하는 나약한 인간의 마음으로 [맨 오브 스틸]의 액션을 지켜보고 잇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맨 오브 스틸]보다 [수퍼맨 리턴즈]가 더 좋았습니다. 비록 [수퍼맨 리턴즈]는 흥행 실패작이고, [엑스맨]으로 주가를 드높이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몰락이 시작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저는 [수퍼맨 리턴즈]에 더 정이 갑니다.

 

[맨 오브 스틸]은 액션 하나만큼은 대단하지만, 드라마적 요소가 너무 부족합니다. 지구에온 이방인으로서의 '슈퍼맨'은 너무 훌륭한 두 명의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적부터 완벽한 지구의 일원으로 자라났고, 그로인하여 지구에온 이방인 슈퍼 히어로로서의 고뇌 따위는 없습니다.

자신을 조드 장군에게 넘기려는 인간의 비겁함과, 자신과 함께 크립톤 종족을 재건하자는 조드 장군의 제안에 한번쯤은 마음이 흔들릴줄 알았는데, 이 멘탈갑의 청년은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비겁한 인간의 선택에 '그럴줄 알았다'며 쿨하게 넘기고, 크립톤 종족을 재건하자는 조드 장군의 제안 아무런 고민의 흔적이 전혀 없이 단번에 거절합니다.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지구인으로 자랐기에 영웅의 고뇌라는 코믹스 히어로 특유의 재미를 [맨 오브 스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로이스 레인과의 로맨스도 생각보다는 부족했습니다. '슈퍼맨'과 클락 켄트를 오가며 로이스와의 로맨스를 즐겼던 원조 [슈퍼맨]과 다른 남자와 약혼한 사이인 로이스 앞에서 쩔쩔매는 [슈퍼맨 리턴즈]와는 달리 [맨 오브 스틸]에서 '슈퍼맨'과 로이스 레인의 관계는 그저 지구를 지키는 영웅에게 키스를 해주는 미녀 역할 정도입니다.

물론 요즘 여성 캐릭터답게 로이스 레인은 '슈퍼맨'의 도움을 무작정 기다리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조드 장군에 맞서 싸우는 당찬 여성이고 제가 개인적으로 에이미 아담스를 좋아하긴 하지만,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클락 켄트와의 아슬아슬한 로맨스를 기대한 제게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블록버스터의 재미에 충실하여 여름의 무더위를 날릴 수 있는 블록버스터로서는 꽤 만족한 편입니다. 드라마적 요소는 시리즈가 진행되며 구축하면 될 일이고, 클락 켄트와 로이스 레인의 사내 연애와 렉스의 등장 역시 기대해봐야 겠습니다.

 

 [다크 나이트]에서 보여줬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야기 솜씨에는 부족하지만

[300]에서 보여줬던 잭 스나이더의 감각적 액션의 세계는 분명 만족한다.

2편에서는 두가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슈퍼맨'으로 거듭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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