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철수
주연 : 김수현, 박기웅, 이현우, 손현주, 고창석
개봉 : 2013년 6월 5일
관람 : 2013년 6월 6일
등급 : 15세 관람가
인기 웹툰의 원작은 양날의 검
6월 5일 개봉한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흥행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개봉 첫날 [스타트렉 다크니스], [분노의 질주 : 더 맥시멈] 등 지난 몇 주동안 국내 박스오피스를 호령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가볍게 제치고 압도적인 성적으로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하룻동안 동원한 관객은 무려 49만명. 이는 [스타트렉 다크니스]가 개봉 첫주말에 올린 45만명의 기록을 단 하루만에 넘어선 것이죠. 그것도 모자라 현충일인 6월 6일에는 91만명을 동원하며 한국영화의 일일최다관객 기록이라고 합니다. 기존 기록은 2012년 [도둑들]이 세운 77만명이라고 하네요. 아쉽게도 [트랜스포머 3]가 기록한 일일 최다관객 95만명의 기록은 넘지 못했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기록임에는 분명합니다.
[아이언맨 3]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극장가도 [은밀하게 위대하게] 덕분에 북적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6월 6일 밤 9시30분에 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저녁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가득 채운 인파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이러한 흥행은 여러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일단 Hun작가의 원작 웹툰이 워낙 인기가 있었기에 웹툰의 인기가 고스란히 영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그리고 주연을 맡은 김수현의 티켓 파워도 한 몫을 했다고 할 수있을 것입니다. 김수현은 비록 비중은 작았지만 2012년 최고 흥행작인 [도둑들]에 출연했었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TV 사극 <해를 품은 달>에서 주연을 맡아 이미 톱스타의 반열에 올라선 배우이기도 합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투자 배급사인 쇼박스는 이 영화의 흥행을 모의고사를 마친 10대 학생들이 대거 극장으로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폭발적인 반응과는 달리 관객의 평점은 낮다는 것입니다. 현재 Daum의 네티즌 평점은 7.9점으로 같은 날 개봉한 [무서운 이야기 2], [백악관 최후의 날]보다도 낮으며, Naver의 평점은 8.35점으로 별점 10개와 1개가 오가며 알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개봉 전부터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기대했다가 입소문이 그다지 좋지 않아 관람을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흥행 대박 소식을 듣고 부랴 부랴 극장으로 달려 갔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꽤 좋았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안좋은 입소문은 웹툰으로 인하여 눈높이가 높아진 원작팬들에 의한 것이 아닐까요? 영화가 웹툰을 넘어서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니, 결국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웹툰이라는 양날의 검을 들고 있는 셈입니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김수현이 이토록 매력적인지...
사실 저는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보지 못했습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원작 웹툰을 하룻만에 독파하곤 했는데,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경우는 최근 제가 너무 바빠서 웹툰을 몰아서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나 문방구]와의 표절 시비가 있었던 <미스 문방구 매니저>까지 챙겨서 읽었던 저로서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분명 언젠가는 꼭 읽어야할 웹툰 목록에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웹툰 <위대하게 은밀하게>를 읽지 않고 영화 [위대하게 은밀하게]를 본 것이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영화를 꽤 재미있게 봤기 때문입니다. 만약 웹툰을 읽은 후에 영화를 봤다면, 웹툰에 비해서 이러 이러한 부분이 아쉽다며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았겠지만, 다행히도 저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영화 자체로만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가장 먼저 제 눈에 띈 영화적 재미는 바로 김수현이라는 배우의 매력입니다. 사실 저는 김수현을 스타덤에 올려 놓은 그 유명한 TV 사극 <해를 품은 달>을 단 한번도 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도둑들]에서 김수현의 연기 역시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전지현과의 도발적 키스씬은 인상적이었지만, [도둑들]에는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많았기에 미처 김수현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보니 김수현이라는 배우는 충분히 매력으로 똘똘 뭉쳐져 있더군요. 특히 영화의 초반은 김수현의 매력만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김수현이 연기한 원류환은 북한의 최정예 남파간첩 5446부대의 엘리트 요원입니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한껏 폼을 잡고 그럴싸한 분위기를 풍겼던 원류환. 그런데 살인 병기와도 같은 그의 남파 임무는 달동네 바보입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영화적 재미는 일단 그러한 설정에서 비롯됩니다. 서울의 달동네로 위장한 첫 장면. 김수현의 날카로운 눈빛과 묵직한 목소리의 나래이션이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장면은 바보 동구가 동네 꼬마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김수현의 몸개그까지 겹쳐지며, 오프닝에서 보여준 팽팽한 긴장감이 순식간이 풀리고, 웃음이 저질로 흘러 나왔습니다.
1일 3회 이상 넘어지기, 2인 이상이 보는 앞에서 월 1회 노상 방뇨, 6개월에 1회 노상에서 변을 싸기 등등. 김수현의 나래이션과는 정반대되는 원류환의 바보 임무는 영화 초반, 제게 시원한 웃음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실컷 웃다보니 갑자기 국정원 여직원의 악플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북한의 최고 엘리트 남파 간첩이 바보 임무를 맡았듯, 남한의 최고 엘리트 국정원 여직원은 초딩이나 할법한 악플 임무를 맡았습니다. 어쩌면 이리도 영화와 현실이 묘하게 겹치던지...
남성적 매력이 철철 넘치다.
달동네의 바보가 된 원류환, 그런데 5446부대에서 라이벌이었던 리해랑(박기웅)이 달동네에 새롭게 투입됩니다. 게다가 그의 임무는 락가수. 바보인 자신의 처지와 너무나도 다른 그의 폼나는 임무가 의심스럽지만, 번번히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리해랑의 처지 역시 원류환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남파 간첩의 살벌함보다는 조금은 어벙벙한 원류환과 리해랑의 모습은 2012년 9월에 개봉했던 [간첩]과 비슷했습니다. [간첩] 역시 생활밀착형 간첩을 통한 웃음을 전해주었습니다. 하지만 흥행에 실패했던 [간첩]과는 달리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이제 겨우 개봉 3일째이지만 흥행 대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이유는 초반의 웃음을 뒤로하고, 후반에 펼쳐지는 액션의 차이인 듯합니다.
달동네에 원류환과 리해랑에 이어 세번째로 투입된 5446부대의 리해진(이현우). 게다가 김정일의 죽음 이후 남북의 분위기가 화해 분위기로 돌변하자 5446부대에게 자결 명령이 내려집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이 순간부터 웃음끼를 싹 버리고 남성적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액션으로 탈바꿈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한 분위기 전환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초반을 코믹하게 진행되지만, 그러한 웃음 속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해진의 등장으로 그러한 긴장감은 점점 고조됩니다. 작은 임무에도 '죽일까요?'라고 되묻는 리해진. 처음엔 그러한 그의 모습이 웃겼지만, 후반부가 되면서 그의 그러한 태도는 후반의 격한 액션을 예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통해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비평적 평가면에서는 성공했던 장철수 감독은 영화의 후반이 되면서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남성적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액션 영화로 만듭니다.
원류환이 이발을 한 후, 초록색 츄리닝을 벗고 멋진 슈트로 갈아 입는 그 순간, 장철수 감독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라며 관객 앞에서 힘차게 외치는 것이죠.
5446부대의 교관인 김태원(손현주)이 원류환 일행을 직접 처치하게 위해 내려오고, 국정원의 서팀장(김성균)은 상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원류환 일행을 살리기 위해 적극 개입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총격씬은 꽤 진지하게 펼쳐집니다.
드라마에서 순박한 소시민을 주로 연기했던 손현주의 카리스마가 폭발하는 후반부의 장면은 바보 연기를 하는 김수현도 멋지지만, 슈트를 입고 액션 연기를 하는 김수현은 더 멋지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참고로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까바 미리 밝힙니다. 저는 남자입니다. ^^)
여기에 박기웅의 껄렁대는 매력과 이현우의 순박하지만 위험한 매력까지 쏟아져 나오면서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후반부는 영화 초반의 소소한 웃음을 잊을만큼 폭발적인 남성적 매력을 안겨줍니다. 저는 영화 초반 편안한 자세로 맘껏 웃으며 영화를 즐기다가, 영화의 후반부에는 자세를 꼿꼿히 세우고 영화의 긴장감을 만끽했습니다.
[간첩]이 코믹과 액션 사이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면,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초반엔 확실하게 웃음을, 후반엔 확실한 액션을 펼치며, 영화의 장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간첩]과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평범한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한 죄
원류환은 말합니다. 다음 생애에 태어나면 평범한 나라에, 평범한 집에, 평범한 아이로 태어나서 계속 평범하게 살다가 죽고 싶다고... 그의 그러한 소박한 소망은 저를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같은 동족끼리 원수가 되어 총과 칼을 겨눠야 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대한민국.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 국가에서 원류환은 그저 가족들과 평범한 삶을 사는 그런 행복을 꿈꿨던 것입니다.
결국 평범한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한 죄로 원류환과 리해랑, 리해진은 죄의 댓가를 톡톡히 치룹니다. 그저 어머니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원류환, 그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리해랑, 그리고 자신을 지금까지 살게해준 원류환의 옆집에서 살고 싶다던 리해진. 그들이 평범한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한 탓에 그들의 꿈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립니다.
저와 함께 영화를 본 구피도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꽤 만족스러웠나봅니다. 특히 저처럼 김수현이라는 배우의 매력이 돋보였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영화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되고 멋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분명 가벼운 웃음과 묵직한 감동 사이를 느낄 수 있는 영화였음에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제게 100%의 만족감을 준 영화는 아닙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영화 이야기 마지막으로 제가 영화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끝을 맺겠습니다.
수 많은 캐릭터들과 에피소드를 나열하며 독자들을 사로 잡을 수 있는 웹툰과는 달리 영화는 시간적인 제한이 있습니다. 2시간 안팎의 러닝타임동안 모든 것을 담아내야 하기에, 영화는 결코 웹툰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비록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읽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참 매력적이지만, 아쉽게 생략된 캐릭터와 에피소드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는 국정원의 서팀장입니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이후 [이웃사람], [남쪽으로 튀어] 등 매력적이고 존재감이 있는 조연 연기를 했던 김성균이 서팀장을 연기했지만, 아쉽게도 서팀장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가장 겉도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러한 사정은 고영감을 연기한 장광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영감의 캐릭터가 거의 설명이 되지 않는 가운데 고영감을 비롯한 달동네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도 대충 넘어간 듯합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좀 더 진행되었다면 살인 병기로 훈련된 원류환이 달동네 사람들과의 정에 매료되어 평범한 꿈을 꾸게 되는 과정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졌을텐데...
원류환과 리해랑 사이에 있었을 에피소드 역시 건너 뛰었습니다. 5446 부대의 라이벌인 그들 사이의 에피소드가 좀더 많이 표현되었다면 초반, 리해랑이 달동네로 투입되면서 벌어졌을 웃음이 더욱 커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랜만에 재미있는 우리 영화를 본 것같아 만족스러운 현충일 밤을 보냈습니다.
P.S. 방금 궁금한 마음에 57화부터 66화까지 유료화된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다음캐쉬로 결제하면서까지 전부 읽었습니다. 놀랍게도 영화와 웹툰이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더군요. 몇몇 에피소드들과 캐릭터 설명이 생략되긴 했지만, 장철수 감독은 최대한 원작 웹툰에 충실하게 영화로 만든 듯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서수혁의 캐릭터가 평면화된 것과 서수혁과 김태원의 악연이 생략된건 조금 아쉽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대한민국.
그렇기에 국가의 안위를 지킬 최고 엘리트 국정원 직원이 선거에 개입하였을 것이다.
나도 평범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아니, 우리나라가 평범해졌으면 좋겠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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