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M. 나이트 샤말란
주연 : 제이든 스미스, 윌 스미스
개봉 : 2013년 5월 30일
관람 : 2013년 6월 2일
등급 : 12세 관람가
이 영화는 과연 윌 스미스의 아들 챙기기 영화일까?
지난 5월 30일 개봉작 중에서 SF 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단연 [스타트렉 다크니스]와 [애프터 어스]를 기대작으로 손꼽았습니다. 일단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개봉 당일날 구피와 함께 보고, 12세 관람가 등급인 [애프터 어스]는 주말에 웅이와 함께 볼 계획을 미리 세워뒀습니다.
그런데 막상 5월 30일이 되자 [애프터 어스]에 대한 악평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어느 문화 전문기자는 '윌 스미스의 착각'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월 스미스의 자식 욕심이 지나쳤다며 악평을 쏟아냈습니다. 제 경우는 영화 평론가, 기자의 글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지만, 글이 워낙 공격적이어서 일반 블로거도 아닌, 기자가 이렇게 주관적인 악평을 써도 되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애프터 어스]를 보신 많은 분들이 '윌 스미스의 착각'의 글과 비슷한 어조로 [애프터 어스]에 대한 실망감을 쏟아냈습니다. [애프터 어스]를 보기 위해 예매까지 해놓은 저로서는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웅이와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인데, 재미가 없다면 대략 난감하거든요.
그래도 다행히 저보다 먼저 회사 동료들과 [애프터 어스]를 본 구피가 "그렇게 형편없는 영화는 아니지만... SF 블록버스터를 기대하면 실망할거야."라고 이야기해줬습니다. 결국 저는 구피의 충고대로 SF 블록버스터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고, 가볍게 보자는 마음으로 웅이와 함께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피의 충고는 매우 정확했습니다. [애프터 어스]는 확실히 SF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다가는 실망할 영화였습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애프터 어스]가 3072년을 배경으로 했기에, 할리우드의 특수효과가 동원된 대단한 영상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는 원시 밀림과도 같은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소년의 모험담만을 담았습니다. 영화의 실망감은 기대했던 재미가 충족되지 않을때 나타납니다. SF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던 분들은 그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으니 [애프터 어스]에 실망하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실망감이 왜 윌 스미스와 제이든 스미스를 향해 있는가? 라는 점입니다. 윌 스미스가 제작을 맡았기 때문에? 윌 스미스의 아들인 제이든 스미스가 주연을 맡았기 때문에? 만약 제이든 스미스가 주연을 맡지 않았다면 [애프터 어스]에 대한 재미가 더 높아졌을까요?
[애프터 어스]는 재미있었지만 제이든 스미스가 주연을 맡았기에 [애프터 어스]가 재미없어졌다고 단언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애프터 어스]에 대한 실망을 윌 스미스의 자식 욕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관점 자체가 틀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고 평가해야지, 영화 외적인 요소로 보고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평가가 아닐까요?
SF 블록버스터의 기대감을 버린 것이 주효했다.
각설하고... 저는 [애프터 어스]가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애프터 어스]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구피의 충고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SF 블록버스터의 기대감을 버리고, 소년의 성장담이라는 드라마적 요소로 영화를 보라.'던 구피의 충고는 딱 들어맞았습니다.
그리고 웅이와 함께 [애프터 어스]를 본 것도 이 영화에 대한 제 평가를 긍정적으로 만든 것 역시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애프터 어스]는 최강의 전사 사이퍼(윌 스미스)가 두려움에 사로 잡힌 아들 키타이(제이든 스미스)와 함께 지구로 불시착하고, 다리를 다친 사이퍼를 대신하여 키타이가 모험에 나서며 전사로 성장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 자체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보기에 딱 알맞았던 것입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지구에서의 모험이 좀 더 스펙타클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류가 떠나고 천년의 세월이 지난 지구.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동물들이 인간이 없는 지구에서 진화하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프터 어스]에서 키타이를 위협하는 동물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들에서 크기가 조금 커졌을 뿐,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과학적으로 천년이라는 세월로는 새로운 동물의 출현이 어렵다고 해도 어차피 SF 영화라면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기발한 동물들을 등장시켰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커다란 독수리가 키타이를 구해주는 장면 역시 상당히 억지스러웠습니다. 사실 독수리가 키타이를 둥지에 옮겨 놓은 것 자체도 이상했지만(새끼들의 먹이를 위해서라면 키타이를 새끼들이 먹을 수 있게 갈갈이 찢어 둥지에 놓아야 했을 것입니다.) 얼어 죽을 위기에 빠진 키타이를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구하는 장면은 헛웃음이 나오기에 충분했습니다.
웅이도 영화를 보고나서 "독수리가 키타이를 구하는 장면이 제일 이상했어요."라고 지적하더군요. 키타이가 여러 위험을 뚫고 임무를 완수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그리다보니 이런 식의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꽤 흥미로운 점이 많이 발견됩니다. 애초에 [애프터 어스]가 지구에서의 모험을 통한 키타이의 성장담을 담은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영화를 본다면 의외로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애프터 어스]의 SF적 재미보다는 키타이의 성장에 대해서 영화 이야기를 진행시키려합니다.
두려움의 상자에 갇혀 있던 아이
먼저 [애프터 어스]의 설정부터 알아보죠. 환경파괴로 더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게된 인류는 새로운 정착 행성을 찾아 떠납니다. 그 결과 선택된 곳이 노바 프라임이라는 행성입니다. 하지만 노바 프라임에서도 인류의 위험은 도사립니다. 바로 얼사라는 괴물입니다.
얼사는 비록 시력은 없지만, 인간이 공포를 느끼게 되면 발산하는 페르몬을 통해 인간의 위치를 알아내고 잔인하게 공격하여 죽입니다. 만약 얼사 앞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얼사는 인간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사이퍼는 우연히 얼사와 사투를 벌이게 되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 두려움을 초월하게 됩니다. 그 결과 얼사를 처치할 수 있게 되었고, 인류 최고의 전사로 명성을 떨칩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인 키타이는 자신의 눈 앞에서 얼사에 의한 누나인 센시의 죽음을 목격합니다. 그로 인하여 그는 겉으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척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얼사에 대한 공포심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키타이는 센시의 죽음의 대한 죄책감, 얼사에 대한 공포심을 이기기 위해 악착같이 아버지의 뒤를 잇는 전사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시험관은 그를 탈락시킵니다. 아무리 뛰어난 육체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해도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공포심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결코 얼사를 상대로 싸우는 전사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애프터 어스]가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겉보기에는 반항심으로 가득한 키타이.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어렸을 적의 기억 때문에 공포심에 사로잡힌 어린 아이에 불과합니다.
얼사가 공격하자 키타이를 안전한 유리 상자 안으로 숨겼던 센시. 키타이가 지구에서 생사를 건 모험을 하는 와중에 키타이의 꿈에 나타난 센시는 키타이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아직도 상자 안에 숨어 있구나. 이제 그만 상자에서 나오렴.'
키타이가 숨었던 유리 상자는 두려움을 상징합니다. 유리 상자의 안에 숨은 키타이는 얼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센시가 죽는 것을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키타이가 지구에서의 임무를 완수하려면 유리 상자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결국 [애프터 어스]는 두려움이라는 상자에 갇혀 지내던 키타이가 상자 밖으로 나와 두려움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든든한 조력자인 사이퍼는 사실 별 도움이 안됩니다. 키타이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죠. 오히려 사이퍼가 무선으로 키타이를 도와주는 초중반, 키타이의 성장은 지지부진합니다. 하지만 무선 장치가 고장나고 홀로 얼사와 맞서야 하는 상황이 오자 비로서 키타이는 두려움의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키타이가 전사로 성장했듯이, 제이든은 흥행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애프터 어스]는 어릴 적 누나의 죽음으로 얼사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 잡힌 키타이가 지구에서 홀로 모험을 하며 전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영화의 내용과는 달리 키타이 역의 제이든 스미스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을 영화가 될 전망입니다.
북미에서 지난 5월 31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첫주 3위를 기록하는 부진을 맛보았습니다. 제작비가 무려 1억3천만 달러인데, 이 영화의 첫주 흥행 성적은 고작 2천7백만 달러입니다. 어쩌면 앞으로 [애프터 어스]가 뒷심을 발휘할수도 있겠지만, 개봉 첫 주의 성작만 놓고 본다면 분명 흥행 실패작입니다.
2006년 윌 스미스와 함께 [행복을 찾아서]로 데뷔한 이후 2010년 첫 주연작인 [베스트 키드]가 북미 1억7천6백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제이든 스미스로서는 [애프터 어스]는 첫 흥행 실패작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애프터 어스]에 대한 평가 역시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평가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의 평가 역시 미지근하다고 하네요. 영화 배우라면 가질 수 밖에 없는 공포인 흥행 실패를 제이든 스미스는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제이든 스미스는 이 난관을 어떻게 해쳐나갈까요? 이제 모든 것은 제이든 스미스의 몫입니다. 키타이가 처음엔 사이퍼의 그늘에 가려 두려움이라는 상자에 갇힌 반항아에 불과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얼사를 무찌르고 전사로 성장하는 것처럼, 제이든 스미스는 이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인 윌 스미스의 그늘에 가려 영원히 '윌 스미스의 아들'로 남을지, 아니면 배우 제이든 스미스로 당당히 홀로 서기를 할지는 온전히 그의 몫인 것입니다.
객관성을 잃어버린 어느 기자의 글처럼 윌 스미스의 자식 욕심이 지나치다면 그것은 [애프터 어스]가 아닌 [애프터 어스]의 흥행 실패 후 제이든 스미스의 행보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과연 윌 스미스는 사이퍼처럼 아들이 홀로 서기를 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볼까요? 아니면 자식 욕심으로 제이든 스미스가 처한 난관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도와주려 할까요?
[애프터 어스]를 본 후 웅이와 함께 극장을 나서며 나도 모르게 웅이를 우두커니 바라 보았습니다. 만약 저라면 웅이의 홀로서기를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저는 윌 스미스가 제이든 스미스의 난관에 적극 개입하여 도와줘도 '윌 스미스의 착각'이라고 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니까요.
비록 [애프터 어스]는 흥행 실패의 길을 걷고 있지만,
제이든 스미스는 이 난관을 이겨내고
윌 스미스를 뛰어 넘는 훌륭한 배우가 되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한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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