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J.J. 에이브럼스
주연 : 크리스 파인, 재커리 퀸토, 조 샐다나, 베네딕트 컴버배치
개봉 : 2013년 5월 30일
관람 : 2013년 5월 30일
등급 : 12세 관람가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의 추억
수요일 저녁. 우연히 채널CGV에서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이 밤 10시 방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구피는 거실의 TV앞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물론 저는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을 2009년 5월 극장에서 봤습니다. 당시 저희 회사는 외환위기로 인하여 자금 사정이 어려웠고, 결국 정리해고와 함께 연봉 삭감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렇지않아도 쥐꼬리만한 월급인데, 그마저도 삭감이 되고나니 그 여파가 집으로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결국 회사도, 집도, 돈이 없으니 제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구피와의 싸움도 잦아졌습니다. 구피와 10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이혼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졸업 후 맞이한 IMF 만큼이나 당시의 저는 상당히 힘든 하루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심적 고통이 극에 달했던 5월 7일, 저는 몸이 아프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작정 회사에 조퇴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그때 본 것이 [스타트렉 : 더 비기닝]과 [박쥐]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힘이 들때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결국 저는 [스타트렉 : 더 비기닝]과 [박쥐]를 보며 심란했던 마음을 정리했고, 다시 심기일전하였습니다.
그러한 사정이 있었기에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을 볼 때마다 저는 구피한테 미안해집니다. SF 영화를 좋아하는 구피. 만약 이 영화가 개봉했던 당시 구피와 제 사이가 좋았다면 당연히 함께 극장에서 즐겼을 영화입니다. 하지만 저는 혼자 이 영화를 봤고, 구피는 '어쩌다가 내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못봤지?'라고 제게 묻곤합니다.
결국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이 개봉한지 4년만에 저는 구피와 함께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극장이 아닌 거실의 TV를 통해서였지만 그래도 혼자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을 보는 것보다 이렇게 구피와 함께 영화를 보니 더 재미있고, 좋더군요.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을 본 다음날 저는 회사 회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식 자리에서 일찍 박차고 나와 구피와 함께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보러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영화가 시작한 시간은 밤 10시 20분, 영화가 끝난 시간은 새벽 12시 30분이었습니다. 당연히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그래도 구피와 함께 영화를 봐서인지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스타트렉 : 더 비기닝]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과거의 역습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이 흥미로웠던 것은 이 영화가 미래의 역습이라는 소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의 악당인 네로(에릭 바나)는 자신의 별이 스팍(재커리 퀸토)의 임무 실패로 소멸되자 복수를 다짐합니다.
하지만 그는 블랙홀에 빠지게 되고, 블랙홀을 통해 과거로 와서 커크(크리스 파인)의 아버지인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을 죽이게 되는 것이죠.
결국 커크와 스팍이 마주하게 되는 악당인 네로는 미래의 역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 하지만 미래에서 현재로온 네로는 커크와 스팍의 입장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원한 때문에 커크의 아버지를 죽이고, 스팍의 고향인 벌칸족의 행성을 파괴한 것입니다.
J.J. 에이브럼스는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을 잇는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반대의 상황을 만들어 놓습니다. 바로 과거의 역습입니다.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악당인 해리슨(베네딕트 컴버배치)은 과거에 만들어진 유전자 조합 인간입니다. 그는 동면 상태에 있다가 미래(커크와 스팍의 입장에서는 현재)에 깨어난 것이죠. 그리고 자신을 이용하려하는 미래의 인류에게 복수를 감행합니다.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이 블랙홀을 통해 미래의 역습을 그려냈다면,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동면이라는 SF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치를 통해 과거의 역습을 그려냅니다. 미래의 역습을 통해 아버지를 잃은 커크와 고향 행성을 잃은 스팍은 의기투합하여 이번엔 과거의 역습에 맞서 싸웁니다.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이 블랙홀을 통한 미래의 역습을 그리는 동안,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가 뒤섞이며 약간은 복잡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과거의 역습을 그리며 시간이 뒤섞이는 혼란을 최소한으로 줄였습니다. 바로 동면이라는 케케묵은 장치를 통해 시간의 혼동 속에 과거가 현재에 끼어 든 것이 아닌, 과거가 현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작인 [스타트렉 : 더 비기닝]보다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구축한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이제 본격적으로 커크와 스팍의 캐릭터 구축에 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사실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은 복잡한 스토리 라인 속에 커크와 스팍의 캐릭터 등장 만으로도 약간은 벅찬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를 단순화시킨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시리즈를 이끌어나갈 커크와 스팍의 캐릭터 구축 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것이죠.
커크와 스팍은 성장담
[스타트렉 다크니스], 아니 [스타트렉 시리즈] 전체를 이끌어나갈 두 축인 커크와 스팍은 매우 상반된 캐릭터입니다. 그것은 [스타트렉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스타트렉]만의 영화적 재미입니다.
커크는 매우 감정적인 캐릭터입니다. 모든 일에 자신만만하고, 구태의연한 규칙을 지키는 것보다 도발적인 임기웅변을 즐깁니다. [스타트렉 : 더 비기닝]에서도 그랬지만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이된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도 여전히 커크는 반항아인 셈입니다.
그에 반에 스팍은 매우 이성적인 캐릭터입니자. 벌칸족의 특성상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스팍. 어린 시절 인간과 결혼한 아버지 탓에 집단 따돌림을 당했던 스팍은 자신 안의 감정을 더욱 억제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규칙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상반된 성격을 가졌다보니 두 캐릭터는 처음 만남인 [스타트렉 : 더 비기닝]에서부터 앙숙의 관계가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상반된 성격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완벽한 동반자의 역할로 발전합니다. 커크에게 부족한 이성적인 판단은 스팍이 채워주고, 스팍에게 부족한 감정적인 부분은 커크가 채워주며 엔터프라이즈호를 이끄는 것이죠.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오프닝씬이라 할 수 있는 니비루 행성의 화산 폭발을 막는 씬에서 그러한 두 캐릭터의 상반된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니비루 행성에 사는 원시 외계종족을 멸종시킬 수도 있는 화산 폭발을 막는 작업에서 스팍은 스타플렛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무릅씁니다. 하지만 커크는 스타플렛의 가장 중요한 규칙을 깨고 스팍을 구하기 위해 외계종족 앞에 엔터프라이즈호를 드러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의 상황입니다. 해리슨으로 인하여 아버지와도 같은 파이크 함장의 죽음을 지켜본 커크는 복수를 위해 위험한 임무를 떠맡습니다. 그리고 결국 해리슨의 항복을 받아냅니다.
원래대로의 커크라면 해리슨을 그 자리에서 죽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해리슨을 체포하고 지구로 압송하려 합니다.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한 것이죠.
스팍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파이크 함장이 죽는 그 마지막 순간 그의 곁을 지켰던 스팍은 파이크 함장이 느꼈을 감정을 통해 죽음의 공포, 외로움,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스팍은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에 점점 익숙해집니다. 특히 우후라(조 샐다나)와의 사랑은 그를 점점 변화시킨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스팍의 변화는 영화의 후반부 해리슨을 속이는 결정적인 임기웅변으로 진가를 발휘합니다. 원래대로의 스팍이라면 원리원칙대로 일을 처리했을 테지만, 만약 그랬다면 엔터프라이즈의 운명은 해리슨에 의해 파괴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발휘한 임기웅변은 엔터프라이즈호를 구하고 해리슨의 테러를 막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렇듯 커크와 스팍은 점점 성장합니다. 어차피 이 세상 그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부족함을 얼마나 채울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해리슨과의 대결을 통한 경험은 커크와 스팍이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리더로서의 의무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통해 한단계 성장한 커크와 스팍. 스팍의 경우는 애초에 이성적인 벌칸족과 감성적인 인간의 피를 반쯤 나눠가졌기에 가능한 성정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그에겐 우후라라는 완벽한 동반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커크의 성장은 스팍에 비해 동기가 부족합니다. 파이크 함장의 죽음은 분명 커크에게 분노의 감정을 이끌었을 것이며, 그러한 분노는 이성적인 판단을 가로 막는 가장 큰 방해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커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부분을 억제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합니다. 커크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려 노력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한 커크의 노력은 영화의 후반부에 커크가 엔터프라이즈호의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납니다. 모든 것이 자신만만하고, 두려움이라고는 없을 것처럼 보이는 천방지축 커크. 그는 리더로서의 의무 속에 스스로를 성장시킨 셈이죠.
그런데 그러한 커크의 모습은 묘하게 해리슨과 겹칩니다. 해리슨 역시 자신의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이 위험천만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무자비한 테러를 자행하는 것이니까요. 자신은 희생되어도 좋으니 대원들만은 살려 달라고 청하는 커크의 모습과 자신의 대원들을 돌려 받기 위해 스팍과 거래를 하는 해리슨의 모습은 닮은 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커크는 영웅으로, 해리슨은 악당이 될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희생입니다. 커크는 자신의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을 선택했다면, 해리슨은 희생이 아닌 또다른 폭력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이 선과 악의 경계를 만듭니다.
[스타트렉 : 더 비기닝]에서 네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행성의 파괴를 통한 분노를 네로는 복수로 되갚았다면, 네로로 인하여 똑같은 아픔을 당한 스팍은 재건이라는 현실적 방법으로 극복하려 합니다.
결국 네로와 해리슨은 자신의 종족, 혹은 대원들만 중요시할 뿐, 그 외의 존재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연민의 정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커크와 스팍은 자신의 종족인 인간, 벌칸족 외에도 다른 종족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네로, 해리슨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분노와 복수가 아닌 자기 희생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커크는 감정적이지만 않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대원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캐릭터로 진화되었습니다. [스타트렉]의 세계관에서 인류의 위인으로 기록되어 있는 제임스 커크. 엔터프라이즈호의 항해가 계속된다면 그의 성장은 계속될 것입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항해가 계속된다면 커크와 스팍의 성장 역시 계속될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성장을 지켜는 것이야말로 관객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 아닐까?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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