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사랑은 타이핑 중!] - 싱싱한 사랑의 에너지를 얻다.

쭈니-1 2013. 5. 30. 08:58

 

 

감독 : 레지 루앙사르

주연 : 데보라 프랑소와, 로맹 뒤리스

개봉 : 2013년 5월 22일

관람 : 2013년 5월 28일

등급 : 15세 관람가

 

 

독수리 타법의 전설

 

저는 아직도 컴퓨터 자판을 검지와 중지를 주로 사용하는 독수리 타법으로 타이핑을 합니다. 참 놀랍죠? 요즘처럼 컴퓨터가 일상화된 시대에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는 사람도 드물것이며, 제 블로그에 쓰여진 저 수많은 글들이 전부 독수리 타법으로 쓰여 졌다는 것 역시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그러한 제 독수리 타법은 고등학교 시절 때부터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상업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영어, 수학보다 주산, 부기 등을 중요하게 배웠던 세대입니다. (변명이지만 그래서 아직 수학과 영어는 잘 못합니다.)

저희 학교 수업 중에는 타자 시간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타자를 사용하는 곳이 거의 없어서 이젠 타자를 배우는 학교는 없을테지만, 제 고등학교 때에는 컴퓨터보다는 타자를 쓰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저도 고등학교때 컴퓨터를 배우긴 했지만 당시에는 윈도우가 없어서 베이직, 코볼, 포트란 등 어려운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워서 졸업하고나서도 컴맹을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암튼... 저희 학교의 타자 선생님은 곱슬머리의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굉장히 무섭기로 소문이 났던 분입니다. 그 분은 타자의 오타가 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타자는 오타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업 중에 오타가 나면 오타난 갯수대로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았죠. 결국 저는 오타가 나지 않기 위해 독수리 타법으로 한자 한자 신경쓰면서 타이핑을 했고, 그것이 그만 지금까지 버릇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랑은 타이핑 중!]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사실 제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볼 영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민방위 훈련으로 회사에 휴가를 냈는데, 민방위 훈련이 일찍 끝나 시간이 남았습니다.

애초에 계획했던 [비포 미드나잇]을 보고 났는데도 시간이 남아 아직 안본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제가 간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 중에서 안본 영화는 [사랑은 타이핑 중!] 뿐이더군요.

프랑스의 로맨틱 코미디라... 조금은 낯설었지만, 그래도 저는 [사랑은 타이핑 중!]을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특히 영화의 초반 독수리 타법으로 타이핑을 하는 로즈 팡필(데보라 프랑소와)의 모습은 마치 저처럼 느껴졌습니다. 독수리 타법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타이핑을 하는 로즈. 저 역시 비록 독수리 타법이지만 타이핑 속도는 꽤 빠른 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 이야기 하나 쓰는데 5시간은 족히 걸릴 듯)

[사랑은 타이핑 중!]이 흥미로운 것은 로즈의 독수리 타법 뿐만이 아닙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쉽지 않았던 1950년대의 풍경과 당시 하나의 스포츠로 인정받았던 스피드타이핑이라는 소재 또한 색달랐습니다. 

비록 영화의 스토리 라인 자체는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기본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 충실했지만, [아르센 루팡], [하트 브레이커] 등으로 낯익은 로맹 뒤리스와 데보라 프랑소와의 귀여운 연기를 즐기며 기분 좋게 본 영화입니다.   

 

 

비서가 꿈인 여성들

 

[사랑은 타이핑 중!]의 배경은 1958년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러한 시대적 배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유럽을 뒤흔들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 1945년 끝이 나고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은 재건 분위기가 한창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아버지의 잡화점에서 일을 하는 로즈가 보험사를 운영하는 루이(로맹 뒤리스)의 비서로 취직하기 위해 상경하는 장면은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루이의 비서 면접을 대기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비서는 가장 현대적인 직업이었던 것입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타자기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고, 타이핑을 잘하는 여성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스피드타이핑 대회가 여성들 사이에서 최고의 스포츠로 자리를 잡은 배경입니다.

자동차 정비소에 다니는 남자와 정혼하라는 아버지의 강요에 불복하여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되겠다며 집을 나온 로즈. 그녀가 사회적 성공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게에서 우연히 발견한 타자기 덕분이었습니다. 그녀는 홀로 타이핑 연습을 했고, 그러한 그녀의 노력은 루이의 비서로, 그리고 스피드타이핑 대회의 우승이라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교두보가 된 것입니다.

 

로즈가 1950년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의 아이콘이라면 루이는 미국에 밀려 2인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당시의 유럽을 대변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참전으로 연합군의 승리로 마무리됩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이 계획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은 연합군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결국 연합군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당시 초강대국의 대륙이었던 유럽은 황폐화되었고, 이를 계기로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노르망디 출신인 루이와 그의 첫사랑 마리, 그리고 마리와 결혼한 미국인 밥은 그러한 당시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한 미국인 병사 밥에게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빼앗긴 루이. 그로 인하여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그는 2인자 콤플렉스에 시달립니다. 겉으로는 밥과 절친의 관계에 있지만 그에게 밥은 결코 넘을 수 없는 경쟁자가 되는 셈입니다. 어쩌면 루이가 로즈를 앞세워 스피드타이핑 대회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러한 2인자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피드타이핑 대회에서도 프랑스와 미국의 대결이 펼쳐지는데, 2년 연속 세계 스피드타이핑 대회를 우승한 미국 대표 수잔과 로즈의 마지막 자존심 대결은 1950년대라는 당시의 상황에 묘하게 맞물리며 [사랑은 타이핑 중!]의 손에 땀을 쥐는 하이라이트를 장식합니다.

 

 

정직함과 순수함... 그리고 사랑

 

[사랑은 타이핑 중!]에서 1950년대라는 시대는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에 [사랑은 타이핑 중!]은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과 소재는 독특하지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에 딱 맞춰진 영화이기도 합니다. 두 남녀가 처음엔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지고 잠시 헤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엔 다시 이뤄지는 공식을 따라가는 것이죠.

그러한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연 배우들의 매력입니다. 사실 저는 루이 역의 로맹 뒤라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아르센 뤼팡], [하트 브레이커]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아쉽기만 했습니다. 결국 [하트 브레이커]의 리뷰에서 저는 로맹 뒤라스를 '무매력'이라 단정짓기까지 했습니다.

엄밀히 따진다면 [사랑은 타이핑 중!]에서도 로맹 뒤라스의 매력은 그다지 특출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2인자 콤플렉스에 빠진 루이라는 캐릭터에는 그러한 부족한 매력이 딱 맞아 떨어집니다. 마리를 사랑했지만 전쟁 중인 당시의 상황 때문에 청혼을 주저하다가 밥에게 마리를 빼앗긴 루이. 그는 그러한 실수를 로즈에게도 똑같이 저지릅니다. 사랑은 하지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자신이 없어서 사랑 고백을 주저하는 루이의 찌질함. 그러한 찌질함은 제가 느낀 로맹 뒤라스라는 배우의 이미지와 잘 맞았습니다.

 

그래도 루이가 찌질하기만한 캐릭터는 아닙니다. 자신의 고객의 집에서 찾은 고가의 그림을 찾은 루이는 그 값어치를 모르는 고객을 속여 그림을 가로채는 대신 고객에게 그림을 경매에 넘기라고 권유하는 정직함을 보여줍니다.

루이의 아버지는 그런 루이를 '멍청한 놈'이라며 꾸짖지만 로즈 만큼은 루이의 정직함의 매력을 알아본 것입니다.

루이가 찌질하면서도 정직한 캐릭터라면 로즈는 당차면서도 순수한 매력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처음엔 1950년대에 걸맞게 촌스러워 보이는 로즈에게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차 순수한 로즈의 매력에 빠져 드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로즈를 연기한 데보라 프랑소와는 제겐 매우 낯선 배우였지만, 루이를 꾸짖는 루이의 아버지에게 루이의 진정한 가치를 항변하는 당당함과, 메모지를 찾지 못해서 사장의 손바닥에 메모를 하는 엉뚱함, 그리고 사랑하는 루이 앞에서는 한 없이 순수한 모습까지... 매우 매력적인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은 타이핑 중!]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 충실한 만큼 주인공들의 매력 역시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꾸려져 있습니다. 정직함과 순수함 만큼이나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루이와 로즈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보며 흐뭇해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꾸며진 내가 아닌,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

 

[사랑은 타이핑 중!]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 충실한 영화이다보니 스토리 전개 역시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스피드타이핑 대회라는 소재를 제외하고는 꽤 평범한 편입니다. 하지만 로즈와 루이의 관계 발전 만큼은 꽤 흥미진진합니다.

할줄 아는 것이라고는 독수리 타법으로 빠르게 타이핑하는 것뿐인 시골 촌뜨기 로즈와 너무나도 정직한 보험사의 사장 루이.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엔 사장과 비서의 관계에서, 스피드타이핑 선수와 코치의 관계로 발전하고, 결국 연인으로 결말짓습니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의 역할을 바뀝니다. 처음 사장과 비서의 관계에서 로즈는 루이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선수와 코치의 관계가 되면서부터는 루이가 로즈를 뒷받침하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누가 누구를 뒷받침하는 관계보다는 서로 대등한 관계일때 이상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사장과 비서의 관계에서는 로즈가 루이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숨길 수 밖에 없었고, 로즈가 프랑스의 스피드타이핑 대회를 우승하고 나서는 반대로 루이가 로즈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감춥니다. 서로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기에 사랑의 감정 역시 솔직하게 밝힐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루이는 깨닫습니다. 변한 것은 로즈가 아님을... 아무리 관계의 역할이 바뀌었다고해도 로즈는 로즈일 뿐입니다. 그녀가 스피드타이핑 챔피온이라해도 로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만 있다면 두 사람의 사랑은 대등한 관계 속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로즈를 향한 루이의 프로포즈는 꽤 의미심장합니다.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그의 말 속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스피드타이핑 챔피온 로즈가 아닌, 로즈 팡필 그녀 자체를 사랑한다는 고백인 것이죠.

많은 이들이 사랑 앞에서 주저합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어서...'라는 말은 사실 핑계일 뿐입니다. 처음 마리를 대했던 루이도 비슷한 변명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핑계가 아닌, 용기가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핑계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어떤 핑계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로즈와 루이의 행복한 미소로 끝을 맺는 [사랑은 타이핑 중!]를 보며, 오랜만에 사랑이라는 싱싱한 에너지를 듬뿍 받은 것 같아 마음이 상쾌했습니다.

 

오늘도 나는 나의 사랑하는 블로그 이웃을 위해

틱!톡!틱!톡! 사랑의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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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