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롤랜드 에머리히
주연 : 채닝 테이텀, 제이미 폭스, 매기 질렌할
개봉 : 2013년 6월 27일
관람 : 2013년 6월 27일
등급 : 15세이상 관람가
[백악관 최후의 날]보다 좋았다.
올해에만 벌써 두번째로 백악관이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물론 영화에서의 일이긴 하지만, 같은 소재의 영화의 이렇게 연달아 만들어지고, 개봉했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인들이 자국의 안보에 불안함을 느낀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백악관의 수난을 다룬 영화이지만 [백악관 최후의 날]과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미국의 안보 불안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합니다.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 백악관을 공격한 테러리스트의 소속은 북한이었습니다. 이는 국제 사회에서 새로운 트러블 메이커로 부상하고 있는 북한을 이용하여 영화 속의 악당으로 묘사한 것인데, 지금까지 할리우드 액션영화에서 자주 써먹는 방식입니다.
냉전 시대에는 항상 구소련이 악당이었고, 한때는 아랍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악당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외부의 적이 미국을 위협한다는 설정을 통해 그러한 외부의 적을 무찌르는 액션 히어로의 등장으로 관객의 호응을 얻는 방식입니다. [백악관 최후의 날]은 그러한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전통적인 방식을 선택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다른 방식을 선택합니다. 그것은 바로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을 통한 미국의 위기를 그린 것이죠.
중동과의 평화적인 관계를 주장하는 진보적인 미국 대통령 제임스 소이어(제이미 폭스). 하지만 이 세상에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미국의 이념과 반대되는 나라는 무조건 무력으로 굴복해야 한다는 극우주의자와 전쟁을 통해 무기를 팔아먹는 군수업체. 그들에게 있어서 평화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이렇게 전 세계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 미국 내부의 적을 통한 위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정치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백악관 최후의 날]은 보수주의를 표방한 액션영화라면,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진보주의를 표방한 액션영화라고 할 수 있겠죠.
결국 이 두 영화의 승패는 어떤 설정이 관객의 마음에 와닿을까? 라는 점인데... 여러분의 선택은 어떠한가요? 저는 솔직히 [백악관 최후의 날]은 영화적 재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화이트 하우스 다운]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봤으니 제 개인적으로는 [백악관 최후의 날]보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이 더 재미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빵점 아빠... 백점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다.
기본적으로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백악관을 점령한 테러리스트와 이를 막는 존 케일(채닝 테이텀)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백악관 최후의 날]과 닮아 있습니다. 단지 [백악관 최후의 날]의 주인공인 마이크 배닝(제라드 버틀러)은 본능적으로 벤자민 아셔(아론 에크하트)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백악관에 남아 맹활약을 했다면, [화이트 하우스 다운]의 존 케일은 테러리스트에게 인질로 잡힌 딸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영웅이 된다는 설정입니다.
제가 아빠라서 그럴까요? 이렇게 어린 자녀를 위해 목숨을 거는 아빠의 모험담은 제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 마이크 배닝의 모험담에 시큰둥했던 저는 에밀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존 케일의 모험담에는 마음 속으로 응원을 하며 영화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의 첫번째 매력은 바로 그러한 '나는 아빠다'에서 비롯됩니다. 최근에 개봉한 [월드워Z]도 '나는 아빠다'를 내세워 제리 레인(브래드 피트)의 무모한 모험에 제 공감을 불러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결국 '나는 아빠다' 컨셉은 액션 영화를 주로 보는 남성, 그 중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저와 같은 관객에겐 큰 이점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는 아빠다'를 외치는 존 케일의 캐릭터를 좀 더 살펴보죠. 그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빵점 아빠입니다. 아내와는 이혼을 했고, 딸의 장기자랑에는 날짜를 착각해서 참가하지 못합니다. 에밀리는 존을 아빠라고 부르기 보다는 존이라며 이름을 부릅니다. 나름대로의 반항인 셈이죠.
이 세상 모든 아빠들이 그러하겠지만, 자식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것은 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에밀리에게 멋진 아빠가 되기 위해 대통령 경호실에 면접을 보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에밀리를 위해 에밀리의 백악관 출입증도 얻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존의 선택은 오히려 에밀리를 테러리스트의 인질이 되게끔합니다. 만약 존이 대통령 경호실 면접을 보지 않았다면... 아니, 에밀리를 백악관으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그러한 존의 후회는 목숨을 걸고 에밀리를 구하기 위한 모험으로 연결됩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대통령을 구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던 [백악관 최후의 날]의 마이크 배닝과는 달리 존 케일은 대통령을 구하는 것보다 딸을 구하는 것이 더 우선이 됩니다. 그렇기에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 마이크 배닝이 구해주기만을 무기력하게 기다리던 벤자민 아셔와는 달리, 제임스 소이어는 적극적인 액션으로 존 케일을 도와주며, 그가 에밀리를 구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평화주의자 대통령? 하지만 적극적인 액션 대통령
이렇게 존 케일의 캐릭터가 대통령을 구하는 영웅이 아닌, 딸을 구하려하는 보통의 아빠로 설정되면서 제임스 소이어의 캐릭터 역시 적극적이 되었습니다.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 벤자민 아셔는 지하 벙커에서 인질로 잡혀 '미국은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하지 않아.'라며 혼자 멋있는 척, 폼만 잡다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미국의 핵무기 방위체제를 무너뜨릴 비밀 코드를 넘겨줬었습니다.
하지만 [화이트 하우스 다운]의 제임스 소이어는 존 케일을 도와 테러리스트를 무찌르고, 테러리스트가 에밀리를 인질로 협박을 하자 에밀리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투항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존 케일의 원맨쇼 액션 영화가 아닌, 마초남 존 케일과 평화주의자 제임스 소이어의 버디 무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제임스 소이어의 적극적인 액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애초에 존 케일의 목적이 대통령 구출이 아닌, 딸 구출이었고, 그렇기에 대통령인 제임스 소이어는 존 케일이 자신을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적극적인 캐릭터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결국 '나는 아빠다' 코드 하나가 존 케일과 제임스 소이어의 캐릭터를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셈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 초반에 보여준 [백악관 최후의 날]의 벤자민 아셔 대통령과 [화이트 하우스 다운]의 제임스 소이어의 모습이 영화 중반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백악관 최후의 날]의 첫 장면은 마이크 배닝과 권투 시합을 하는 벤자민 아셔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제라드 버틀러의 근육과 맞먹는 아론 에크하트의 근육을 선보이며 영화의 초반부터 강한 액션 대통령을 기대하게끔 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벤자민 아셔는 무기력하게 인질이 되어 자신의 보좌관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나약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의 나약함이 결과적으로 미국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에 반에 [화이트 하우스 다운]의 제임스 소이어는 TV에서 중동에서의 군사적 도발을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며 연설을 합니다. 제임스 소이어의 그러한 모습은 액션과는 거리가 먼 평화주의자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초반의 그러한 이미지와는 달리 중반부터는 적극적인 액션 대통령으로 거듭납니다.
[백악관 최후의 날]을 보며 벤자민 아셔의 모습에 실망하고 그의 감성적인 나약함에 분노했던 저는 제임스 소이어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통치권자라면 그러한 모습 정도는 보여줘야죠.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가?
분명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단순한 액션영화에 불과합니다. 그저 내부의 적에 맞서는 존 케일과 제임스 소이어의 액션을 감상하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에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북한의 테러리스트를 내세워 직접적으로 우리 관객에게 어필하려 했던 [백악관 최후의 날]에는 느낄 수 없는 공감을 내부의 적을 내세운 [화이트 하우스 다운]을 보면서는 느꼈으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화이트 하우스 다운]을 보며 우리나라의 상황이 떠오른 것은 영화속 미국과 중동의 관계가 마치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중동과의 평화 협정을 위해 중동의 미군을 철수하자는 제임스 소이어. 하지만 중동과의 전쟁, 혹은 군사적 도발로 인하여 아들을 잃은 이들에게 중동과의 평화는 굴욕적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과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6.25 전쟁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수 많은 이들에게 북한과의 평화적 관계 유지는 절대 불가한 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평화를 원합니다. 전쟁을 원하는 이들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화를 원하면서도 평화를 위한 행동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평화를 맺어야 하는 상대 국가(혹은 단체)에 대한 불신감이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평화를 원하면서 무기를 사고, 군인을 늘립니다.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이고, 그러한 서로간의 불신은 결국 영원히 평화를 이룰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화보다는 다른 무엇인가를 원하는 그들. [화이트 하우스 다운]에서 미국의 군수업자들이 평화보다는 돈을 원하는 암적인 존재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평화보다는 정권을 원하는 이들이 아닐까요?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 전(前) 대통령의 북한과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이용하여 북한에 대한 불신감에 휩싸인 국민들을 더욱 불안에 떨게 하며, 오히려 남북 관계를 긴장 상태로 몰아 넣음으로서 정권유지를 얻으려는 그들.
[화이트 하우스 다운]을 보며 킬링타임용 액션영화에서 우리나라의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저는 그저 영화는 그냥 영화로만 보고 싶은 평범한 관객인데 말입니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에서 평화를 원치 않는 이들의 반란은
존 케일과 제임스 소이어 대통령이 막아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평화를 원치 않는 이들의 반란을 막아낼 영웅이 있을까?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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