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론 레인저] - 때로는 착한 사람이 마스크를 써야 할 때가 있다.

쭈니-1 2013. 7. 15. 14:44

 

 

감독 : 고어 버빈스키

주연 : 조니 뎁, 아미 해머, 헬레나 본햄 카터, 루스 윌슨, 톰 윌킨슨, 월리엄 피츠너

개봉 : 2013년 7월 4일

관람 : 2013년 7월 14일

등급 : 15세 관람가

 

 

[론 레인저]를 보기 위한 험난한 여정

 

저와는 인연이 닿지 않은 영화가 있습니다. 아무리 보려고 해도 이상하게 상황이 꼬여서 볼 수 없는 영화들. 최근에는 나름 철저한 계획 속에 보고 싶은 영화는 거의 챙겨보고 있어서 그러한 영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론 레인저]가 저와는 인연이 닿지 않은 영화로 등극할뻔 했습니다.

[론 레인저]는 [캐리비안의 해적]의 감독인 고어 버빈스키와 주연인 조니 뎁이 의기투합한 서부 코믹 액션영화입니다. 게다가 2억달러가 훌쩍 넘어가버린 제작비로 올 여름 최고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기대를 모은 영화입니다.

조니 뎁을 좋아하고, 서부극 역시도 좋아하는 저로서는 [론 레인저]는 당연히 기대작일 수 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은 제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의 개봉 즈음에 장인어른께서 입원을 하셨습니다. 구피는 간호를 위해 병원에 있어야하는 상황. 그러한 상황에서 "[론 레인저]는 나도 보고 싶어."라는 구피의 한마디는 [론 레인저]의 관람을 뒤로 밀리게 하였습니다.

장인어른이 퇴원하셔서 드디어 구피와 [론 레인저]를 보러 갈 수 있었지만, 일주일 동안 병원에서 먹고 자던 구피가 피곤하다며 "그렇게 보고 싶으면 혼자봐."를 선언했습니다. 구피와 함께 보기위해 기다렸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 봐야 하는 상황. 결국 지난 수요일에 보려고 밤 타임대에 예매를 했지만, 처남이 여름 휴가를 내고 집에 오는 바람에 또다시 [론 레인저]의 관람은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결국 더이상은 늦출 수가 없다는 위기감에 웅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요일 아침 조조 시간대에 [론 레인저]를 예매를 했지만 이상하게 꼬인 상황은 계속 되풀이 되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에 도착. 차를 주차하고 극장으로 가던 도중 비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걸리적거리는 우산을 놓고 오기 위해 다시 차로 향했습니다.

우산을 차에 놓고 극장에서 대기. 드디어 상영관에 입장 시간에 되어 주머니를 뒤져보니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하는 주차권이 없더군요. 우산을 놓기 위해 차에 가던 도중 주차권이 주머니에서 빠져 버린 것입니다. 부랴 부랴 주차장에 가서 차 내부와 주차장 바닥을 확인한 결과 겨우 주차권을 찾았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주차 확인 도장을 받고 상영관으로 입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차키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주차권을 찾는 도중에 주머니에서 빠져 버린 것이죠. 결국 영화 시작 직전이었지만 상영관을 빠져 나와 차키를 찾아 주차장을 헤맸습니다. 다행히 차키는 제 자동차의 앞좌석에 가지런히 놓여 있더군요. 주차권을 찾는데 정신이 팔려서 차키를 앞 좌석에 놓고, 차를 잠그지도 않고 나온 것입니다.

차키를 찾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상영관으로 뛰었지만 이미 영화는 시작한 후였습니다. 주차권과 차키를 찾기 위해 뛰어 다녔더니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되었고, 숨은 헐떡거렸습니다. 하지만 제겐 음료수 하나 살 시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멍청한 제 행동 때문에 영화의 앞부분을 놓쳤다는 생각에 짜증까지 밀려와 [론 레인저]를 보는 제 상태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이었습니다.

 

 

액션 영화적인 재미가 떨어진다.

 

그래서일까요? [론 레인저]는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영화적 재미가 떨어졌습니다. 일단 제가 기대한 것은 '서부 시대로 간 잭 스패로우의 모험'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어 버빈스키와 조니 뎁의 조합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캐리비안의 해적]이고, [캐리비안의 해적]의 대표적인 캐릭터는 잭 스패로우이기 때문입니다.

잭 스패로우는 해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무시무시한 해적이 아닙니다. 실수 투성이에 코믹한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정의감에 넘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속물적이어서 정의보다는 자기가 사는 길을 먼저 선택하는 그런 인물입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이 전 세계적인 히트 시리즈 영화가 된데에는 그러한 잭 스패로우라는 신선한 캐릭터가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정의감에 불타는 월 터너(올랜도 블룸)와 엘리자베스 스완(키이라 나이틀리)이 빠진 4편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에서 잭 스패로우만으로 영화를 진행시켜도 시리즈 특유의 재미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반까지만해도 [론 레인저]는 그러한 제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분명 톤토(조니 뎁)은 잭 스패로우만큼이나 괴짜인 캐릭터입니다. 인디언인데다가 정의감보다는 복수심에 불타고, 실수 투성이에 약간은 정신이 나간 듯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론 레인저]는 제2의 [캐리비안의 해적]이 될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존 리드(아미 해머)입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에 잭 스패로우가 있다면 [론 레인저]에는 톤토가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캐리비안의 해적]의 월 터너와 같은 역할을 [론 레인저]의 존 리드는 해내지 못합니다.

 

월 터너의 역할은 바로 전형적인 영웅입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잭 스패로우가 영웅이라고 하기엔 독특하고 새로운 캐릭터였기에 그를 뒷받침해줄 전형적인 영웅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론 레인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제목이 '톤토'가 아닌 '론 레인저'인 이유는 독특한 괴짜 캐릭터 톤토보다는 존 리드가 죽음에서 부활후 활약하게 될 '론 레인저'가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걸맞게 존 리드는 정의감에 불타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정의감만 있을 뿐, 전혀 영웅적인 면모를 지니지 않고 있습니다. 거친 서부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주의자에 어리버리하고 실수 투성이에 얼간이 면모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론 레인저]는 두 괴짜의 영웅담이 됩니다. 톤토가 괴짜라면 존 리드는 전형적인 영웅의 면모를 갖춰야 어느정도 균형이 맞는데, [론 레인저]는 둘 다 괴짜로 팀을 짜놓은 것이죠. 그러한 캐릭터의 구성은 액션 영화적 재미를 반감시킵니다.

'론 레인저'와 톤토가 어리버리하다보니 그들은 부치(윌리엄 피츠너) 일행과 대결을 펼칠 때에도 실수 투성이입니다. 만약 부치 일당이 잔소리를 하지 않고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면 '론 레인저'와 톤토는 죽어도 몇 십번은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리버리한 영웅과 싸우다보니 악당들도 액션을 한템포 늦출 수 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을 죽일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악당들은 주인공을 잡아 놓고도 타이밍을 늦추다가 놓치기 일쑤입니다. 그러한 장면이 반복되니 액션 영화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당연히 액션 영화로서의 재미가 반감되는 것이죠. 만약 존 리드가 톤토와는 달리 날렵한 영웅이었다면 악당들도 그렇게 잔소리를 많이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액션 영화의 재미도 이렇게까지 엉망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존 리드가 가면을 써야 했던 이유

 

[캐리비안의 해적]처럼 긴장감 넘치면서 코믹하기까지 했던 액션 활극을 기대했는데, [론 레인저]는 그냥 독특한 캐릭터들의 코믹 액션만 펼쳐진 셈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론 레인저]에 최악의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서부 액션 활극치고는 너무 가벼운 영화의 톤이 문제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의미가 없는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론 레인저]의 영화 장르는 서부영화입니다. 서부영화는 개척기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영웅적인 총잡이의 활약담을 영화들입니다. [론 레인저]는 그러한 개척기의 역사를 영화 속에서 잘 활용합니다. 미국 전역을 연결하는 열차 선로, 그로 인하여 자신의 영역을 침략당한 인디언과의 갈등, 그리고 인디언의 대학살 등은 실제 서부 개척기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이기도 합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조니 뎁은 인디언의 피를 물려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론 레인저]에 적극적으로 매달린 이유입니다. 개척기 시절의 인디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조니 뎁은 바꾸고 싶었던 것이죠. 그러한 조니 뎁의 의지는 [론 레인저]에서 잘 나타납니다.

어쩌면 뒤늦게 미국 땅을 밟은 백인과 원주민인 인디언은 평화를 유지하며 잘 살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미국은 넓은 땅을 가졌고, 자원이 풍부했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백인은 원주민인 인디언을 학살해서 미국을 독차지했고, 그것도 모자라 아프리카 대륙에서 흑인들을 강제로 끌고와 노예로 삼아 경제를 발전시켰으니까요.

 

[론 레인저]에서도 그러한 상황이 나옵니다. 부치의 잔인한 행동의 원동력은 인디언 땅에서 발견된 은광입니다. 이 은광을 차지하기 위해 부치는 자신을 구해준 톤토의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죠.

전쟁 영웅인 레이텀 콜(톰 윌킨스)은 미국 전역을 열차로 연결하는 것이야 말로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위한 미래? 네, 맞습니다. 그건 백인을 위한 미래가 되죠. 백인의 미래에 걸리적거리는 인디언은 사라져야 할 존재일 뿐입니다.

레이텀 콜은 그러한 인디언 학살을 위해 미국의 기병대를 동원합니다. 인디언 학살에 동원한 기병대 대장에겐 인디언의 위험에서 백인의 안전을 구한다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명분이 가짜임이 밝혀져도 그는 진실보다 거짓을 믿으려합니다. 결국 [론 레인저] 혹은 서부 개척시대에 통용되는 정의는 철저하게 백인을 위한 것입니다. 

영화에서 '때로는 착한 사람도 마스크를 써야 할 때가 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론 레인저'가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아닙니다. '론 레인저'가 마스크를 써도 사람들은 모두 그가 존 리드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마스크를 써야 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시대의 정의를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중반,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부치를 끌고 레이텀 콜에게 간 존 리드는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정의는 개발이라는 허울로 가려진 인간의 욕심과 타인종을 배척한 백인의 미래라는 사실을. 그는 스스로 정의를 행하고 있지만, 어쩌면 많은 이들은 '론 레인저'를 백인의 미래를 가로 막은 악당으로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착한 사람이 마스크를 써야할 때라는 것은 시대의 정의가 결코 올바르지 않음을 시사하는 명대사인 것입니다.

 

 

의미는 있지만 재미는 부족하다.

 

분명 [론 레인저]는 서부영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의미있는 영화입니다. 서부 개척기의 백인 총잡이의 영웅담을 주로 그려냈던 이전의 서부영화에서 [론 레인저]는 악당, 혹은 조연일 수 밖에 없었던 인디언을 전면적으로 부각시켰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통용되는 서부 개척시대의 개발 논리를 교묘하게 비판합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론 레인저]가 미국 흥행에서 철저하게 외면을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술한 영화적 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인 만큼 영화의 스펙타클은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후반부 열차에서의 액션 역시 고어 버빈스키가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보여줬던 액션 영화적 감각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스펙타클하고 후반부의 액션이 짜릿하다고 해서 2시간 30분이라는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이 영화의 모두를 커버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액션 활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얼간이 캐릭터의 조합에 따른 부작용이  제겐 너무 커보였습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잔소리를 늘어 놓느라 주인공을 놓치는 악당들을 욕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이 잔소리를 늘어 놓지 않았다면 이 얼간이 커플 영웅은 결코 악당을 무찌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런 조합의 주인공을 탄생시킨 고어 버빈스키 감독을 탓할 수 밖에요.

이대로라면 [론 레인저 2]를 다시 만날 수는 없겠죠? 죽은 까마귀에게 모이를 주던 톤토의 엉뚱한 매력. 착한 사람이면서 마스크를 써야 했던 '론 레인저'의 처지. 그리고 레드(헬레나 본햄 카터)의 위험을 무릅쓰고 만지고 싶어지는 상아로 만든 완벽한 다리까지...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영화 자체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슴 한 구석이 짠합니다.

 

어리버리 영웅들의 활약담을 본 후

영화를 보기 전에 내가 저지른 어리버리한 실수들을 떠올리니 그저 웃음이 났다.

그래, 이 우중충한 날씨에 이렇게라도 웃을 수 있으니 오늘은 얼마나 행복한 날이던가.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