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레드 : 더 레전드] - 대수롭지 않은 살인에 대한 반감만 없다면 최고의 오락영화.

쭈니-1 2013. 7. 19. 11:25

 

 

감독 : 딘 패리소트

주연 :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메리 루이스 파커, 헬렌 미렌, 이병헌, 안소니 홉킨스, 캐서린 제타 존스

개봉 : 2013년 7월 18일

관람 : 2013년 7월 18일

등급 : 15세 관람가

 

 

2010년 [레드]를 통해 [레드 : 더 레전드]를 즐기는 법을 깨닫다.

 

2010년 11월 저는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레드]를 봤습니다.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헬렌 미렌에 모건 프리먼까지 화려한 노장 캐스팅을 자랑하는 [레드]는 개인적으로 꽤 즐길만한 가벼운 킬링타임용 액션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레드]에 약간의 불편함도 느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살인에 대한 이 영화의 가벼운 태도 때문입니다. 과거 최고의 CIA 요원이었지만 지금은 은퇴한 프랭크 모시스(브루스 윌리스)를 비롯하여 마빈(존 말코비치), 빅토리아(헬렌 미렌)는 맘껏 살인을 할 수 있는 과거를 그리워합니다.

물론 그들의 살인은 '정의'라는 면죄부가 부여된 살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의 정부로부터 면죄부을 얻은 살인이라고 할지라도 그에 의한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까지 장난처럼 웃어 넘기는 그들의 태도가 저는 불편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레드]를 보며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마치 제가 구피는 이해하지 못하는 맥주에 대한 로망이 있듯이 프랭크 일행은 살인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이죠. DC 코믹스, 즉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이고, 가벼운 킬링타임용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살인에 대한 그들의 로망을 가볍게 웃어 넘겨야 [레드]를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레드]의 속편인 [레드 : 더 레전드]에서도 유효합니다.

 

구피와 오랜만의 극장 나들이. [미스터 고]는 웅이와 주말에 보기로 했기에 두번째 기대작인 [레드 : 더 레전드]를 보기 위해 목요일 늦은 밤,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분명 저는 3년 전에 [레드 : 더 레전드]의 전편인 [레드]를 봤지만 제 기억 속의 [레드]는 노장 배우들의 유쾌한 액션으로만 어렴풋이 기억되고 있는 상태. 하지만 저는 이병헌이 출연하여 할리우드의 노장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사실에 막연히 [레드 : 더 레전드]를 기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첫 느낌은 역시 불편함이었습니다. [레드]를 통해 연인으로 발전한 프랭크와 사라(메리 루이스 파커). 그들은 마트에서 여유롭게 쇼핑을 즐깁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 마빈이 나타납니다. 마빈의 등장으로 위험한 모험이 직면한 것을 눈치챈 프랭크는 마빈을 피합니다. 하지만 사라는 지루하다며 마빈과의 모험을 재촉합니다. 그러한 와중에서 마빈은 맘껏 살인을 할 수 있었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사라는 그러한 프랭크와 마빈의 모험을 동경합니다.

빅토리아의 첫등장도 살인과 함께입니다. 하지만 빅토리라의 살인 현장에 도착한 MI6 국장은 "여전히 바쁘군"이라며 별일 아닌 듯이 웃어 넘깁니다. CIA 비밀 요원인 잭(닐 맥도프)은 영문도 모르는 미국 경찰들을 향해 마구 총을 난사하며 "난 살인이 허용된 사람이야."라고 자랑합니다.

이 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이렇듯 대수롭지 않은 살인입니다. 그들에게 살인은 취미, 혹은 재미있는 놀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미 3년전 느꼈던 불편함이기에 [레드 : 더 레전드]를 보면서는 금새 익숙해졌습니다. "맞아, 3년 전에도 그랬지! 그냥 즐기자."

 

 

나이든 것, 오래된 것의 재미.

 

[레드 : 더 레전드]에서 다시금 프랭크 일행이 뭉치게 된 것은 25년전 냉전 시대에 미국이 비밀리에 만들었던 최강의 살상 무기 '밤그림자' 때문입니다. 천재 물리학자인 베일리 박사(안소니 홉킨스)에 의해 맞들어진 이 무기는 베일리 박사의 죽음과 함께 25년간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밤그림자'의 존재로 인하여 미국 CIA, 영국 MI6는 물론이고 러시아까지 행방을 뒤쫓는 상황. 그러한 상황에서 베일리 박사를 안전하게 미국으로 호송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임무에 실패한 프랭크가 '밤그림자'의 행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 지목된 것이죠.

'밤그림자'로 인하여 자신은 물론 사라까지 위험에 빠졌음을 알게된 프랭크는 '밤그림자'의 행방을 찾아 프랑스, 영국, 러시아를 경유하는 모험에 나섭니다. 하지만 프랭크를 닮고 싶어하는 잔인한 CIA 비밀 요원 잭과 CIA가 고용한 최고의 암살자 한(이병헌)이 프랭크 일행을 뒤쫓고, 설상가상으로 MI6는 빅토리아에게 프랭크의 암살을 의뢰합니다. 여기에 러시아의 카자 장군(캐서린 제타 존스)은 '밤그림자'를 러시아에게 넘기라며 협박하는데...

냉전 시대의 유물인 살상 무기를 찾기 위한 모험이라니... 과연 나이가 들어 은퇴한 프랭크와 걸맞는 임무입니다. 하지만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프랭크의 액션이 남못지 않게 날렵하듯이, '밤그림자'는 비록 과거 냉전시대의 유물이지만 살상 기능 만큼은 최신무기 못지 않게 막강합니다.

[레드 : 더 레전드]는 이렇듯 나이든 것, 오래된 것에 대한 반격을 통해 영화적 재미를 완성합니다. [레드]에서 근육질의 젊은 CIA 요원 쿠퍼(칼 어반)가 프랭크의 적수가 되지 못하듯이 잭 역시 프랭크를 늙었다고 우습게 보다가 번번히 당하기만 합니다.

 

여기에 [레드 : 더 레전드]는 오랜 세월을 살았던 주인공 만큼이나 얼키고 설킨 과거의 인연을 영화의 중요한 재미 요소로 배치합니다.

한은 한국 최고의 첩보원이었지만 프랭크로 인하여 테러리스트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한 과거의 악연은 한이 프랭크를 그저 단순한 처리 대상이 아닌 과거에 대한 복수로 여기게 됩니다.  이는 프랭크를 향한 시끌벅적한 액션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한의 첫 등장인 암살씬에서 조용히, 그리고 깔끔하게 암살대상을 제거하던 한. 하지만 프랭크를 향해서는 거리 한복판에서 기관총을 난사합니다. 프랭크를 향한 복수심 가득한 한의 이글거리는 눈빛. 하지만 애초에 한이 악당이 아니었다는 복선은 영화의 커다란 재미이자 영화 후반부에 프랭크에게 크나큰 힘이 됩니다. 

프랭크와 카자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이념을 초월한 연인 사이였지만 카자의 배신으로 뒷통수를 맞은 프랭크. 그러한 프랭크와 카자의 관계는 사라와 함께 묘한 삼각관계로 연결되는데, 거친 스파이 세계와는 달리 홀로 민간인 생활을 하던 사라가 카자에 대한 질투심을 폭발시키며 코믹 액션을 선보이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수 많은 세월 동안 많은 인연과 악연을 쌓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레드 : 더 레전드]는 프랭크가 쌓아 왔던 인연과 악연을 통해 영화의 풍성한 재미를 완성하는 기발함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이 든 것, 오래 된 것에 의한 재미입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명배우의 옷을 입다.

 

[레드 : 더 레전드]는 다른 액션 영화들과는 달리 나이든 이들의 유쾌한 반격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연륜은 오랜 세월 동안 연기력을 쌓아 왔던 배우들에 의해서 완성됩니다.

1988년 [다이하드]를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 히어로에 등극한 브루스 윌리스. 그는 액션 히어로 25년차 배우입니다. 25년 동안 [다이하드] 시리즈 5편을 비롯하여 수 많은 액션 영화에서 활약한 액션 히어로계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존 말코비치, 헬렌 미렌이 가세하였습니다. 세계의 수 많은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존 말코비치와 헬렌 미렌, 여기에 [레드]에서 맹활약하던 모건 프리먼의 빈자리를 안소니 홉킨스가 완벽하게 메꾸고 있습니다.

안소니 홉킨스는 전설적인 스릴러 [양들의 침묵]에서 역시 전설적 살인마 캐릭터인 한니발 렉터를 연기하며 각종 영화제의 연기상을 휩쓸었습니다. [레드 : 더 레전드]는 그러한 안소니 홉킨스를 잘 이용합니다. 베일리의 첫 등장이 그러합니다. [양들의 침묵]에서도 한니발 렉터는 비롯 엽기적 살인마이지만 지성미를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베일리 역시 마찬가지인데, 비밀리에 정신 병원에 수감된 그의 방에는 온갖 수학 공식들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그러한 노장 배우들의 매력과 연기력이 [레드 : 더 레전드]의 크나큰 힘입니다.  나이 50을 바라보고 있는 메리 루이스 파커는 그렇기에 그들의 틈에서 오히려 귀여워 보이고,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긴 이병헌은 풋풋한 애송이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사실 [레드 : 더 레전드]는 약간의 아쉬운 구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최고의 기밀을 유지하는 시설이라는 베일리를 가두고 있던 영국의 정신병원은 너무 허술하게 프랭크 일행에 의해 뚫리고, 러시아의 크렘린궁 역시 지하에서 여러 차례 폭탄을 터져도 비상벨조차 울리지 않습니다.

이란의 대사관 역시 마찬가지인데, [레드 : 더 레전드]가 치밀함과는 거리가 먼 영화임을 드러내는 단점들이 영화 중간 중간 꽤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족한 치밀함들이 큰 단점이 되지 않은 것은 생생한 캐릭터의 힘입니다. 25년차 액션 히어로 경력을 자랑하는 브루스 윌리스의 여유로운 액션, 한니발 렉터를 연상시키는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력, 그리고 이미 [레드]에서 맘껏 뽐냈던 존 말코비치와 헬렌 미렌의 예상 외의 위험한 매력등이 영화를 이끈 결과인 셈입니다.

여기에 새롭게 [레드 : 더 레전드]로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인 카자 역의 캐서린 재타 존스와 한 역의 이병헌 역시 캐릭터에 의한 영화적 재미에 한 몫 거듭니다. [엔트랩먼트], [시카고], [오션스 트웰브] 등의 영화에서 아름다운 팜므파탈을 연기했던 캐서린 제타 존스는 프랭크를 쩔쩔 매게 만드는 러시아 첩보원 연기를 해냈습니다.

이병헌은 최강의 킬러이지만, 복수심으로 이성을 잃은 프랭크에 비하면 애송이에 불과한 한이 되어 할리우드에서 그가 연기한 다른 캐릭터 중에서 가장 그의 매력을 잘 발산시키는 캐릭터를 만난 것 같습니다. 한이 자신도 모르게 한국말로 욕을 내뱉는 장면에서의 깨알같은 재미는 이병헌을 동족으로 둔 우리나라 관객만이 만끽할 수 있는 보너스입니다.

 

 

불편함을 벗고 가벼움으로 무장한 이 영화, 즐거웠다.

 

솔직히 이성적으로 [레드 : 더 레전드]를 본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살인에 대한 주인공들의 가벼운 인식이 불편할 수 밖에 없고, 치밀함과는 거리가 먼 장면들에서 허술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 그렇게 매서운 눈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다면 요즘의 액션 영화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가벼운 재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제 퇴물 취급을 받는 노장 캐릭터들의 반전 액션과 명배우에 의해 탄생한 그들의 생생한 매력이 돋보이고, 전편을 뛰어 넘는 깨알같은 재미가 군데 군데 숨어 있으니 영화를 보는 내내 가볍게 웃고 즐길 수가 있습니다.

[레드 : 더 레전드]는 마지막까지 가벼운 재미로 일관합니다. [레드]의 조 매디슨(모건 프리먼)이 죽었듯이 [레드 : 더 레전드]에서도 등장 인물 한 명이 죽습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비장함 따위는 없습니다. 애초에 살인을 되돌아가고 싶은 젊은 날의 추억 쯤으로 생각하는 프랭크 일행에게 동료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비장함은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대신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신나게 소리치며 술집의 천장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사라의 모습만이 남습니다. 그들에게 총은 신나는 장난감이고, 살인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일입니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위험은 놀이의 재미일 뿐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놀이를 가벼운 마음으로 동참할 생각만 갖춘다면 [레드 : 더 레전드]는 더운 여름을 날릴 더할나위없는 오락영화입니다.

 

 

늙음에 대한 유쾌한 반격

대수롭지 않은 살인에 대한 반감만 없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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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