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용화
주연 : 성동일, 서교
개봉 : 2013년 7월 17일
관람 : 2013년 7월 21일
등급 : 12세 관람가
의외의 흥행 성적
지난 주말은 저희 가족에게 꽤 바쁜 주말이었습니다. 웅이는 드디어 여름 방학을 맞이했고, 여름 방학의 첫 주말을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며 보낼 수는 없었기에 구피가 김천의 포도밭 체험 여행을 예약하였습니다.
토요일 새벽같이 일어나 관광버스를 타고 김천의 뙤약볕 아래에서(지난 토요일 김천은 폭염 주의보였습니다.) 포도밭에서 포도도 따고, 직지사 관광도 하고, 황토를 이용한 천연 염색도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전날의 피로가 가시질 않아서 저와 구피는 거의 초죽음 상태였지만, 웅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저를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일요일은 웅이와 [미스터 고]를 보러 가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죠. 사실 저도 [미스터 고]를 기대하고 있었기에 김천에서 얻은 피로를 무릅쓰고 극장에 가기 위해 힘겹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야 했습니다.
웅이에게 [미스터 고]는 여름방학 첫 영화로 의미가 있지만, 제게 [미스터 고]는 오랫동안 개봉되기를 기다렸던 기대작이었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스포츠가 프로야구이고, 특히 1982년부터 두산 베어스(창단 당시에는 OB 베어스)의 열렬한 팬이기에 [미스터 고]는 당연히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미스터 고]는 현재 흥행 부진을 겪고 있습니다. 시사회 후에 CG 캐릭터인 링링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며 흥행의 청신호가 켜졌던 것과는 달리 같은 날 개봉한 이병헌의 할리우드 출연작 [레드 : 더 레전드]에게 주말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개봉 3주차인 [감시자들]에게마저 흥행 성적이 밀리며 스크린 확보 전쟁이 진행중인 여름 극장가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고 말았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번 주에 새로 개봉하는 영화들에게 스크린을 대거 빼앗기며 흥행 실패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저는 이러한 [미스터 고]의 흥행 결과가 의외였습니다. 제가 프로야구를 좋아하고, 두산 베어스의 팬이라서 [미스터 고]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기도 했지만,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에서 이야기의 힘을 내세워 영화를 흥행 시킨 김용화 감독의 연출력과 그동안 우려가 되었던 링링의 CG 캐릭터 구축이 성공적이라는 반응까지 감안한다면 [미스터 고]의 현재 흥행 성적이 납득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스터 고]를 봤습니다. 그리고 극장을 가득 채운 어린이 관객 속에서 현재 [미스터 고]의 흥행이 왜 부진한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미스터 고]의 흥행 부진은 '고릴라가 야구를 하는 영화'라는 영화의 소재에 대한 관객들의 편견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고릴라가 야구를? 왜 안되?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 대한 편견은 비단 [미스터 고]를 대하는 관객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 전개 자체가 링링과 웨이웨이(서교)가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홀로 중국의 전통 서커스를 운영하는 15세 소녀 웨이웨이. 할아버지가 남긴 빚 독촉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웨이웨이에게 에이전트인 성충수(성동일)가 접근합니다. 그는 서커스단의 고릴라 링링을 한국 프로야구에 진출시키면 빚을 갚을 수 있는 거액의 돈이 생길 것이라 제안하죠. 그리고 결국 웨이웨이는 성충수의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문제는 과연 인간이 아닌 동물이 야구를 하는 것이 가능하며, 가능하다고 해도 과연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라는 점입니다.
첫번째 의문에 대해서 저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편견입니다. 특히 신체적 기능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훨씬 열등합니다. 야구는 신체적 능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스포츠입니다. 인간의 힘과 비교해서 20배에 달하는 고릴라에게 인간과의 야구는 오히려 인간이 불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링링이 쳤다하면 홈런인 이유는 인간보다 우월한 신체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작전 수행 능력, 수비 같이 머리를 써야 하는 부분에서는 링링이 부족할 수 밖에 없기에 링링은 홈런이 최상의 작전일 수 밖에 없는 만루에서 대타로 밖에 활용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의문인 과연 고릴라가 한국 프로야구에 입단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저는 그것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프로야구는 결국 흥행을 위한 수익 사업입니다. 국내 프로야구의 경우는 구단의 자립이 어렵고 대부분 대기업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러한 지원의 댓가로 대기업의 홍보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고릴라의 프로야구 입단이 돈이 되고, 기업의 홍보가 된다면? 국내 프로야구 구단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링링을 선수로 받아 들이기 위해 두산 베어스는 잠실 야구장의 입장 수익의 반을 타구단에게 넘기기로 약속합니다. 타구단으로서는 돈이 생기는 만큼 링링의 프로야구단 입단을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두산 베어스 역시 고릴라의 입단이라는 화제성으로 인하여 기업을 홍보할 수 있으니 고릴라의 입단은 대환영인 셈입니다.
단, 제가 만약 프로야구단의 감독이라면 링링의 입단을 반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구라는 경기가 팀웍이 중요한 경기입니다. 링링에게 다른 선수들과의 팀웍을 기대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죠. 게다가 만루 상황에서만 쓸 수 있는 선수는 감독 입장에서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한 경기에서 만루 상황은 드문 일이고, 특히 수비를 할 수 없는 링링을 감안한다면 경기 후반의 만루 상황에서만 기용이 가능합니다. 감독의 입장에서 결국 링링은 아무리 홈런 타자라도 반쪽자리 선수일 수 밖에 없습니다. 반쪽짜리 선수를 원하는 감독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 구단에서 감독의 힘은 약합니다. 구단과 대립각을 세우는 김성근 감독의 경우는 SK 와이번즈를 수 차례 우승시키고, 최고의 강팀으로 만들었어도 구단과의 불편한 관계 탓에 감독직에서 사임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속의 두산 베어스 감독 역시 링링이 탐탁치 않아도 기업의 홍보 효과를 노리는 구단주의 선택이기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미스터 고]는 국내 프로야구의 위상을 깎아 내렸다?
[미스터 고]가 개봉하기 이전에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그것은 김용화 감독이 링링이 입단하는 구단으로 먼저 LG 트윈스에 제안을 했지만 거절당했고, 삼성, SK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미스터 고]에서 그들 구단 유니폼이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기사였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기사였습니다. 사실 링링이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였다고 하지만, [미스터 고]가 두산 베어스를 무조건 좋게 표현한 것은 아닙니다. 두산 베어스의 젊은 구단주(김강우)는 캐릭터는 생략된채 링링을 통한 기업의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두산과 라이벌 관계로 등장하는 NC, 넥센, KIA의 소속 투수들은 링링에게 홈런을 맞지 않기 위해 공을 링링의 등 뒤로 던지거나 굴립니다. 혹은 15초 룰 위반을 하는 꼼수를 쓰기도 합니다.
KBO 총재(김응수)는 막무가내, 독불장군이고, 사무총장은 성충수에게 아부하기 바쁩니다. 일본 프로야구단인 요미우리와 주니치의 경우도 우스꽝스럽게 표현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장면들로 인하여 [미스터 고]를 불편하게 보는 시각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를 영화로 보지 못하는 미숙한 마음가짐일 뿐입니다.
야구영화가 꽤 많은 미국의 경우 아무리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영화라고 할지라도 구단의 실제 이름을 씁니다. [외야의 천사들]은 맨날 꼴찌에 해체될 위기에 처하다가 어느 소년의 소원 때문에 천사들이 도와줘 겨우 우승하는 팀으로 LA 엔젤스가 등장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모래알 팀웍으로 꼴찌를 맡아하는 팀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즈입니다.
1869년 설립된 미국 메이저리그는 14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지만 구단은 물론 관객들까지도 '영화는 영화일뿐'이라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구단과 관객들도 그러한 열린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미스터 고]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프로야구 구단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미스터 고]는 이해타산적인 인간과 웨이웨이를 향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링링을 대비시키는 것입니다.
이해타산적인 인간의 대표적인 캐릭터는 성충수입니다. 그는 링링을 두산 베어스에 입단시키는 장본인이지만, 그가 링링을 두산 베어스에 입단시키는 것은 결국 돈 때문입니다.
성충수는 인간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가진 에이전트입니다. 그는 수 많은 국내 야구 선수들을 미국, 일본에 진출시킨 장본인입니다.(영화에서 류현진, 추신수가 깜짝 등장합니다.) 하지만 돈을 위해 선수의 부상을 숨기는 등 파렴치한 행각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그가 웨이웨이를 돕는 것은 그녀를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링링은 웨이웨이를 향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풉니다. 사실 웨이웨이는 자신이 링링을 교육시키고, 링링을 지켜줬다고 생각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인 웨이웨이의 이기심일 뿐입니다. 그러나 링링은 그러한 웨이웨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링링과 막걸리를 마신 성충수, 인간의 모든 속물적인 근성을 가진 성충수는 링링과의 교감 이후 남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줄 아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스포츠 경기는 이기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전략을 짜야 하는 경기입니다. 링링을 상대하는 투수들은 인간이기에, 그리고 경기에서 이겨야 하기에 가능한 모든 전략을 짜내 링링을 대결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직한 링링은 그저 공을 쳐서 담장 밖으로 넘기는 것 밖에 모릅니다. 그러한 프로야구 경기 장면은 이해타산적인 인간과 본능 밖에 없는 링링을 대비시키는 하나의 방법일 뿐인 것입니다.
야구하는 고릴라는 애들 영화?
[미스터 고]가 상영하는 극장에는 어린이 관객들이 꽤 많았습니다. 결국 '야구하는 고릴라? 그건 애들 영화잖아?'라는 인식이 [미스터 고]의 초반 흥행 부진을 이끈 것은 아닐까요?
물론 저 역시 웅이와 함께 극장을 찾았지만, 웅이가 영화를 즐긴 만큼 저 역시도 [미스터 고]를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과연 김용화 감독의 이야기 솜씨는 이번에도 빛났습니다. 특히 저는 성충수라는 캐릭터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찌보면 그는 속물 근성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이지만, 우리 모두 성충수가 가지고 있는 속물 근성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요? 그런 면에서 그는 매우 인간적인 캐릭터인 셈입니다.
성충수와 링링이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은 성충수의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명장면이었습니다. 비싼 관상용 나무, 난 등을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혹은 집을 꾸미기 위해 이용하는 성충수와 자연을 자연 그대로 먹는데, 혹은 자는데 이용하는 링링. 성충수와 링링은 그러한 자연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에 번번히 마찰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술이 한잔 들어가고, 서로 교감을 나누며 성충수는 링링이 동물적인 본능을 이해하고 내버려둡니다.(물론 술이 깬 다음에는 비명을 지르긴 하지만...)
[국가대표]에서 스포츠 경기 장면을 다이나믹하게 만드는 능력을 발휘했던 김용화 감독은 [미스터 고]에서도 여지없이 야구 장면의 다이나믹함을 과시합니다. 특히 링링이 홈런을 치는 장면은 속에 '뻥~'하고 뚫릴 정도로 경쾌했는데, 3D로 보면 야구 장면의 생생함이 더욱 살아난다고 하네요.(아쉽지만 저는 3D로 보질 못했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링링의 라이벌 고릴라인 제로즈의 등장도 흥미로웠습니다. 링링이 인간들로 인하여 위기를 맞이하는 설정보다는 같은 동물인 제로즈로 인하여 갈등의 최고조에 오르는 설정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링링과 제로즈의 대결은 아무리 만화와도 같은 설정이라 하지만 긴장감이 최고조에 치달았습니다. 특히 '주워! 뛰어!' 장면. 긴장감이 한순간에 탁 하고 풀리며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를 하며 영화의 마지막을 즐겼습니다.
제로즈가 웨이웨이에게 달려드는 장면의 스펙타클함도 좋았는데, 원작을 보지 않은 저로서는 '이 영화, 이렇게 이렇게 진행될 것이다.'라는 예상이 제로즈의 등장으로 보기 좋게 깨지며 기분 좋게 영화를 마지막까지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미스터 고]가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웨이웨이를 연기한 서교의 매력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일찍 철이 들어야 했던 웨이웨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서교가 우리 말이 서툰 배우이다보니 웨이웨이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그래서 링링의 희생에 감동을 느껴야 하는 장면이 상대적으로 약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미스터 고]가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영화 속의 야구 중계 해설가(마동석)가 링링의 등장에 처음엔 '우리나라 프로야구를 우습게 보는 처사이다.'라며 못마땅해하다가 점차 링링의 팬이 되는 것처럼, 우리들 역시 '야구하는 고릴라'에 대한 약간의 편견만 버린다면 [미스터 고]는 우리나라의 특수효과 기술의 발전을 경험할 수 있는 유쾌한 오락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링링은 나에게도, 웅이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고릴라이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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