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제임스 맨골드
주연 : 휴 잭맨, 후쿠시마 리라, 사나다 히로유키, 윌 윤 리, 오카모토 타오
개봉 : 2013년 7월 25일
관람 : 2013년 7월 24일
등급 : 15세 관람가
영원불멸의 삶은 저주일까? 축복일까?
옛날 중국의 진시황은 영원한 삶을 꿈꾸며 신하들에게 불로초를 찾아 대령하도록 명령하였다고 합니다.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은 모든 인간의 꿈이 아닐까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지만 영화에서 불사의 몸은 축복이 아닌 저주의 경우가 많습니다. 1986년 러셀 멀케이 감독의 [하이랜더]에서 주인공인 맥클레인은 불사신입니다. 하지만 맥클레인처럼 불사의 몸으로 태어난 이는 여럿 있지만, 그들 중에서 세상에 단 한명만 존재해야 한다는 규율 때문에 맥클레인은 살기위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하이랜더]에서 맥클레인을 보며 불사의 몸인 그를 부러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을 반복해서 겪어야 하고, 언제 다른 불사의 존재의 습격을 받을지 알 수 없기에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살아야하며,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죽여야하는 지옥도에 갇혀 있습니다. 이건 축복이라기 보다는 무서운 저주에 가깝습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가 1890년쓴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올리버 파커 감독의 [도리안 그레이]에서 도리안(벤 반스)은 자기 대신 초상화가 늙는다면 영혼이라고 팔 수 있다는 맹세를 합니다. 결국 불노의 몸을 갖게된 도리안은 온갖 악행과 쾌락에 빠져들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초상화는 점점 추악하게 변해갑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댓가를 받게 됩니다. 인간이 가져서는 안되는 불노의 몸를 탐한 도리안. 도리안은 신의 영역에 도전한 것에 대한 가혹한 저주를 받은 셈입니다.
여기 또 한명의 불사의 몸을 가진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울버린(휴 잭맨). 그 역시 다른 이들처럼 불사의 몸을 저주라 여기며 매일 같이 괴로워합니다.
한때 그는 평범하지만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여겼고, 케일라라는 평범한 여성을 만나 그 꿈을 이루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울버린의 특별한 능력을 아는 자들로 인하여 케일라는 죽음을 맞이하고, 울버린은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엑스맨 탄생 : 울버린])
이복형인 빅터(리브 슈라이버)에 의해 케일라가 죽자 울버린은 복수를 다짐하며 스트라이커 대령(대니 휴스턴)에게 자신의 몸을 맡깁니다. 결국 울버린은 스트라이커 대령의 생체 실험으로 인하여 더욱 강력한 불사의 몸이 되지만 빅터와의 혈투로 인하여 기억을 잃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돌연변이들이 모여 있는 자비에 교수(패트릭 스튜어트)의 사단에 들어갑니다.([엑스맨 탄생 : 울버린], [엑스맨])
어쩌면 울버린이 기억을 잃은 것은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케일라에 대한 아픈 기억을 잊은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불사의 저주는 그에게 또다른 시련을 안겨줍니다.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진 그레이(팜케 얀센)가 이성을 잃고 폭주를 하자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죽여야 했던 것입니다.([엑스맨 : 최후의 전쟁])
불사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새로운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 두문불출하던 울버린에게 유키오(후쿠시마 리라)가 다가옵니다. 그리고 유키오를 따라간 일본에서 울버린은 뜻밖의 제안을 받습니다. 바로 불사의 저주에서 벗어나 평범하게 죽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야시다(사나다 히로유키)의 제안입니다.([더 울버린])
살아야할 목표가 없을 때 불사는 저주이다.
[더 울버린]은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울버린은 야시다가 너무나도 갖고 싶었던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울버린은 그러한 능력을 오히려 저주로 여깁니다.
누군가는 너무나도 갖고 싶은 신의 축복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주와도 같았던 불사의 능력. 과연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삶의 목표입니다.
야시다는 자신이 평생 일궈낸 야시다 그룹과 여리디 여린 손녀딸 마리코(오카모토 타오)를 지켜야 한다는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늙고 병든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목숨이 안타깝기만합니다. 그런 그에게 울버린이 가지고 있는 불사의 능력은 너무나도 탐이 나는 신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옛날 진시황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수 많은 피로 일궈낸 중국 최초의 통일 왕국 진나라. 그러한 진나라를 지키기 위해 진시황은 불로초를 애타게 찾아 헤맨 것이죠.
하지만 진 그레이를 잃은 울버린에게는 더이상의 삶의 목표가 없습니다. 밤마다 악몽을 꾸며 진 그레이의 허상에 매달리는 울버린에게 사랑하는 진 그레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했다는 죄책감과, 그러한 죄책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불사의 능력은 저주가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야시다가 죽은 이후 울버린에게는 삶의 목표가 생기고 맙니다. 바로 야시다가 지키고 싶어했던 그의 손녀딸 마리코가 울버린의 삶의 목표가 됩니다. 울버린은 자신과는 상관도 없는 마리코를 지키기 위해서 온갖 고통을 감내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살고 싶다는 본능이 아니었을까요?
인간에게, 아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는 살고싶다는 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본능으로 인하여 어떤 동물은 나무를 타게 되었고, 어떤 동물은 빠른 발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은 뛰어난 두뇌를 가지게 되었죠.
울버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목표를 잃고 악몽과도 같은 삶을 살던 울버린. 그런 그가 야시다를 만나고, 야시다의 죽음을 목격하며 본능적으로 삶의 목표를 만듭니다. 마리코를 지켜야 한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치유 능력을 상실한 울버린은 총에 맞고 칼에 베이는 상처에 고통을 느껴야합니다. 하지만 마치 그러한 고통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생전 처음보는 마리코를 위험에서부터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육체적 고통 따위는 삶의 목표도 없이 느껴야했던 심리적 고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던 것입니다.
울버린은 지금까지 새로운 사랑을 한다는 것은 저주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죽을 것이며, 불사의 몸을 가진 자신은 그러한 죽음을 바라보며 괴로워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진짜 저주는 새로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삶에 대한 아무런 목표도 없이 홀로 남겨지는 것. 그것이 울버린에게 주어진 진짜 저주인 것이죠.
목숨을 다해 마리코를 지키며 그녀와 사랑이 싹 트는 동안 울버린은 비로서 진 그레이에 대한 허상을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더 울버린]은 울버린이 불사의 저주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의 목표를 찾아내는 과정이 됩니다.
울버린이 일본에 간 까닭
[더 울버린]은 어쩌면 인간의 욕심에 대한 영화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의학을 발전시키며 생명 연장의 꿈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이뤄낼 수 있는 생명 연장은 한계가 있습니다. 가져도 가져도 더 갖고 싶은 인간의 욕심, 그러한 욕심은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울버린의 불사의 능력에 정조준이 되어 있는 것이죠.
마리코가 위험에 빠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야시다의 모든 유산을 물려 받은 마리코. 그녀가 가진 부와 권력을 탐낸 이들은 끊임없이 마리코를 납치하려합니다. 그러한 인간의 욕심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울버린과 마리코에게 위협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의 후반, 바이퍼(스베트라나 코드첸코바)에게 납치된 마리코를 구하기 위해 울버린은 야시다 가문의 성으로 가게 됩니다. 성의 꼭대기에서 울버린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리코, 성에 가기 위해 닌자의 습격을 뿌리쳐야 하는 울버린. 이 장면은 마치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는 야수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독특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울버린은 마리코를 공주님이라 부릅니다.)
영화의 무대가 일본이라 그런지 [더 울버린]은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그 어떤 슈퍼 히어로 영화와 비교해서도 상당히 이질적인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일본의 사무라이 액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중, 후반부의 액션 장면이 그러하고, 실버 사무라이와 울버린의 마지막 대결 장면 역시 이질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질적인 만큼 새롭기도 했습니다. [엑스맨]에서부터 이어진 돌연변이와 돌연변이의 대결에서 [더 울버린]은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돌연변이와 인간의 전쟁의 한창 진행중인 미국과는 달리 마치 영화 속의 일본은 돌연변이의 위협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처럼 느껴집니다.
그러한 부분은 [더 울버린]이 [엑스맨 : 최후의 전쟁]과 스토리 전개 부분에서 서로 연결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엑스맨]과는 전혀 다른 시대적 배경, 혹은 [엑스맨]보다 훨씬 이전의 배경을 가진 영화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더 울버린]에서 울버린을 제외하고 유일한 돌연변이인 바이퍼의 경우는 울버린과의 한판 대결보다는 오히려 유키오와 대결을 펼칩니다. 유키오는 미래 중에서 죽음을 볼 수 있는 능력자이긴 하지만 [엑스맨]의 다른 돌연변이와 비교한다면 오히려 평범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결국 [더 울버린]은 돌연변이 VS 돌연변이의 대결이 아닌, 인간 VS 돌연변이의 대결이 됩니다. 돌연변이인 울버린과 인간이 만들어낸 실버 사무라이, 돌연변이인 바이퍼와 죽음을 보는 능력이 있지만 돌연변이보다는 보통 인간에 가까운 유키오. 그들의 대결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단순히 인간 VS 돌연변이가 아닌,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탐낸 이들 VS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이들의 대결구도가 됩니다.
[더 울버린]은 이렇듯 [엑스맨 탄생 : 울버린], [엑스맨 : 최후의 전쟁]과 내용이 연결되면서도 앞의 두 영화와는 전혀 다른 전개 방식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더 울버린]의 선택은 일본이라는 낯선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울버린이 일본에 간 까닭은 분명 있었던 것이죠.
이건 액션 영화가 아니다.
사실 [더 울버린]을 보며 저 역시 약간의 혼란을 느껴야 했습니다. 무대가 일본이기에 어느정도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이질적인 구성에 혼란을 느껴야 했고, 이전의 영화들과는 달리 상당히 축소된 영화의 액션에 혼란을 느껴야 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더 울버린]은 [엑스맨탄생 : 울버린]과 단순 비교에서도 당혹스러울 정도로 액션의 강도가 낮아졌습니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액션씬이라고는 열차 위에서의 액션과 울버린과 실버 사무라이의 대결 뿐입니다.
그 외의 액션은 마치 저예산 B급 액션 영화를 보는 것마냥 총싸움과 칼싸움 뿐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엑스맨]의 재미는 다양한 능력을 갖춘 돌연변이들의 SF적인 액션의 향연인데, [더 울버린]은 그러한 [엑스맨]의 기본적인 재미를 포기한 셈입니다.
그렇다고 [더 울버린]에서 인상적인 열차 액션씬과 실버 사무라이와의 대결씬이 액션의 부재를 한방에 날릴만큼 대단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열차 액션씬은 1996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에 의해 [미션 임파서블]에서 이미 선보였습니다. [더 울버린]에서는 한층 강화되었지만, 대단하다는 탄성이 나올만큼의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실버 사무라이와의 대결 역시 마찬가지인데, [더 울버린]의 예고편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는 실버 사무라이의 위용과는 달리 영화 속의 액션은 너무 싱겁게 마무리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더 울버린]은 다른 방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분명 액션은 부족했지만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를 위해서 [더 울버린]은 꼭 필요했던 여정인 셈입니다.
[엑스맨]에서 울버린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한 울버린의 기억은 [엑스맨 탄생 : 울버린]을 통해 비로서 공개되지만, 그로인하여 울버린에게는 죄책감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사의 능력에 대한 저주만이 남아 버렸습니다.
[더 울버린]은 바로 울버린이 그러한 것들을 떨치고 일어나 앞으로 슈퍼 히어로의 능력을 떨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마리코와의 짧은 사랑으로 인하여 진 그레이의 허상을 쫓아낼 수 있었고, 바이퍼로 인하여 치유 능력을 상실하고 불사의 능력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하고나서야 자신이 가진 능력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죠. (역시 있다가 없어봐야 소중함을 깨닫나봅니다. 그러게 우리 모두 있을 때 잘합시다. ^^)
진 그레이의 허상이 너무 외롭다며 자신에게 와달라고 애청하지만 울버린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만큼 그는 강해진 것입니다. 더이상 과거의 죄책감에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아도 될 만큼... 일본에서의 모험을 뒤로 하고 울버린은 새로운 모험을 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너무 오랫동안 숨어 지냈던 그가 드디어 기지개를 펴며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의 활약을 예고한 것이죠.
영웅의 귀환. [더 울버린]은 분명 [엑스맨] 시리즈 중에서 상당히 이질적이고 부족한 액션을 선보인 영화이지만, 울버린의 캐릭터를 다시 귀환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여정인 셈입니다. 이제 불사의 저주를 축복으로 만든 울버린. 그의 멋진 활약이 펼쳐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P.S. [더 울버린]의 엔딩 크레딧이 끝나면 히든 영상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극장을 나서는 바람에 히든 영상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더 울버린]에서 히든 영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시던데... 으아악~ 놓친 히든 영상을 보기 위해 [더 울버린]을 한번 더 봐야하나 심각하게 고민중입니다. T-T
삶의 목표가 없다면 그 어떤 능력도 저주가 될 수 밖에 없다.
이제 울버린에게 정의의 수호와 모험이라는 삶의 목표가 생겼으니,
그의 능력은 더이상 저주가 아닌 축복이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영화이야기 > 2013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국열차] - 지배와 피지배의 두터운 벽을 깨라! (0) | 2013.08.01 |
---|---|
[터보] - 정말 중요한 것은 꿈을 이룬 이후이다. (0) | 2013.07.30 |
[미스터 고] - 그들이 맞서 싸워야할 것은 세상의 편견이다. (0) | 2013.07.22 |
[레드 : 더 레전드] - 대수롭지 않은 살인에 대한 반감만 없다면 최고의 오락영화. (0) | 2013.07.19 |
[퍼시픽 림] - 사이즈만 보지 말고 그들의 희생도 보라! (0) | 2013.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