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바즈 루어만
주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토비 맥과이어, 캐리 멀리건, 조엘 에저튼, 아일라 피셔
개봉 : 2013년 5월 16일
관람 : 2013년 5월 19일
등급 : 15세 관람가
길고도 길었던 지난주 영화 여정의 마지막
휴~ 드디어 [위대한 개츠비]까지 왔습니다. 지난 4월 28일 [에반게리온 : Q]를 마지막으로 무려 16일 동안이나 극장에 가지 못했던 저는, 15일 [고령화 가족], [전국노래자랑]을 시작으로, 16일 [미나 문방구], [몽타주], 19일 [크루즈 패밀리], [위대한 개츠비]를 몰아서 봤습니다.
사실 저는 왠만하면 영화를 몰아서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고나면 '영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습관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이야기'를 쓰지 못한채 새로운 영화를 보면 왠지 숙제를 하지 않고 놀러나온 어린아이 마냥 찝찝함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보고나면 새로운 영화를 보기 전에 꼭 '영화 이야기'를 씁니다.
하지만 이렇게 영화를 몰아서 볼 경우에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위대한 개츠비]를 본 후, 여운이 남아서 당장이라도 '영화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몽타주]와 [크루즈 패밀리]의 '영화 이야기'를 먼저 써야 하는 바람에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위대한 개츠비]의 '영화 이야기'를 쓰고 나면 지난 주에 몰아서 봤던 영화들의 '영화 이야기'를 겨우 마무리가 되는 셈입니다. 그동안 밀린 '영화 이야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마음이 급했었는데, 이제서야 여유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위대한 개츠비]를 본 후 여운이 꽤 짙게 남았습니다. 고등학교때 필독 도서라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는 구피는 "책을 읽은 다음에도 왜 그냥 개츠비가 아니고 '위대한 개츠비'일까? 라는 의문이 남았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라며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서 미지근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랑을 위해서 스스로 위대해질 수 밖에 없었던 개츠비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비록 영화가 끝나고 구피에게 왜 개츠비가 위대한지 설명은 하지 못했지만, '영화 이야기'를 통해 제가 느낀 그대로 왜 개츠비가 위대한지 글로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영화를 본 다음날인 월요일에 이 글을 썼다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를 최대한 살릴 수 있었을텐데, 영화를 본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려서 제가 쓰고 싶었던 글이 온전히 쓰여 질지는 자신이 없네요.
역시 시험 공부가 당일치기로 하면 성적이 잘 나오지 않듯이, '영화 이야기'도 이렇게 몰아서 쓰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글솜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자! 바짝 긴장하고, 지난 일요일 밤에 [위대한 개츠비]를 봤던 그 느낌을 최대한 끌어내보겠습니다.
이건 바즈 루어만 스타일
일단 저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고전 <위대한 개츠비>를 읽지 않았습니다. 구피는 고등학교때 필독도서였는데 어떻게 읽지 않을 수가 있냐며 놀라더군요. 하지만 저는 상업계 고등학교를 나와서인지 억지로 필독 도서를 읽어야 했던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패로우가 주연을 맡은 1974년작 [위대한 개츠비]도 보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본 셈입니다. 고전이 된 원작 소설과 명작 반열에 오른 1974년 영화를 전혀 모르는채 순수하게 바즈 루어만 감독의 [위대한 개츠비]만 봤으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바즈 루어만의 전작인 [로미오와 줄리엣], [물랑 루즈]를 기대하며 [위대한 개츠비]를 봤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익스피어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에 맞춘 영화라는 점에서, [물랑 루즈]는 19세기 말 파리의 화려함 속에 샤틴(니콜 키드만)과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의 운명적 사랑을 그렸다는 점에서 [위대한 개츠비]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위대한 개츠비]는 제가 기대했던 것을 고스란히 채워준 영화였습니다. 1924년에 쓰여진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2013년에 스크린에 옮기면서 바즈 루어만 감독은 고전적 분위기가 아닌 현대적 감각으로 화려함 속에 재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그러한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한 영화에 아쉬움이 남을테지만, 소설을 읽지 않은 저는 그러한 아쉬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특히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파티 장면은 마치 [물랑 루즈]에서 19세기 말 프랑스 사교계의 정점에 자리한 클럽 '물랑 루즈'의 화려한 쇼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가끔은 너무 지나치게 화려한 장면들 때문에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이건 정확하게 바즈 루어만 감독의 스타일이기에 저는 좋았습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을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한 1992년작 [댄싱 히어로]만 봐도 그렇습니다. [댄싱 히어로]는 제가 바즈 루어만 감독을 처음으로 좋아하게된 오스트레일리아 영화입니다. 댄스 영화답게 화려하면서도 스토리 라인이 꽉 채워진 영화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바즈 루어만 감독의 유일한 흥행 실패작 [오스트레일리아]는 바즈 루어만답지 않은 대서사 로맨스 영화로 그의 스타일에서 살짝 비껴간 영화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스타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영화의 완성도, 흥행성 면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제가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한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최소한 이 영화는 바즈 루어만이 가장 잘하는 그만의 스타일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왜 1920년대 뉴욕이어야 했을까?
사실 저는 [위대한 개츠비]를 보기 전에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적 배경이 혹시 현대는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세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로 옮겨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은 바가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이 중요한 이유는 바즈 루어만 감독의 스타일이 고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 감각을 고수한다는 점입니다. 시대 배경은 그대로 놔두고 감각만 현대적으로 바꾼다면 원작의 시대적 배경과 영화의 현대적 배경이 충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결국 바즈 루어만 감독의 스타일대로라면 [위대한 개츠비]는 현대의 뉴욕으로 옮기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저는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바즈 루어만 감독은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달리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뉴욕으로 시대적 배경을 고수합니다. 영화의 기본적인 내용 자체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이기에,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옮겨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바즈 루어만 감독은 그러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바즈 루어만 감독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1920년대 뉴욕은 그저 단순한 시대적 배경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1920년대 뉴욕은 물질적 풍요가 넘쳐나던 시대입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이 나고, 증시는 매일같이 호황을 누렸습니다. 거리에는 재즈 음악이 흘렀고, 정부는 금주법을 시행했지만 오히려 금주법으로 인하여 불법이 성행하고 밀주로 돈을 쓸어 담은 갱단이 활개를 치게 됩니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끝없이 위로 뻗어난 마천루는 뉴욕의 상징이 되었고, 물질적 풍요로 여유로워진 상류층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는 극에 치닫고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전통적 귀족이 모여 살던 이스트 에그의 사람들과 경제 호황으로 돈을 번 웨스트 에그의 사람들은 서로를 배척하며 경쟁적으로 화려한 파티를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던 시대입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그러한 1920년대 뉴욕이 중요한 것은 개츠비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개츠비. 그는 어릴 때부터 부를 향한 야망이 있었고, 청년 시절 우연히 억만장자인 댄 코디를 만나며 부의 달콤함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댄 코디가 자신의 재산을 가족들에게 남기고 숨을 거두자 그는 다시 무일푼이 되고 맙니다. 게다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던 중에 만난 데이지(캐리 멀리건)에 대한 사랑은 부에 대한 그의 집착을 더욱 부채질합니다.
1920년대 뉴욕의 상황 자체가 개츠비에게 스스로 위대해지라고 재촉하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흥청망청인 그 시절, 돈 많은 귀족 톰 뷰캐넌(조엘 에저튼)에게 데이지를 빼앗긴 개츠비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위대한 개츠비'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죠.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
개츠비의 비극은 바로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시작됩니다. 풍요의 시대, 여성들은 스스로 아름답고 귀여운 바보의 길을 선택합니다. 경제권을 움켜쥔 남성들 틈에서 여성이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는 길은 아름답고 귀여운 바보가 되어 부자인 남편을 만나거나, 부자인 남자의 정부가 되는 길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데이지는 첫번째 방법을 택했고, 톰의 정부인 머틀(아일라 피셔)은 두번째 방법을 택했습니다.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데이지는 이 모든 수모를 꾹 참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경제적인 풍요는 그녀에게도 달콤한 열매였던 것입니다.
이미 경제적 풍요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본 데이지를 톰에게서 다시 빼앗아 오기 위해서 개츠비는 톰 보다 위대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톰과 버금가는 경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매일 같이 화려한 파티를 열고, 자신의 위대함을 과장하여 소문을 냅니다. 그것이 개츠비에게는 데이지의 사랑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개츠비와는 달리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성실히 사는 조지(제이슨 클라크)는 아내를 톰에게 빼앗기는 불운을 당합니다. 조지의 비극 역시 1920년대 뉴욕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남성에 기대어 경제적 풍요를 누르기 위해 스스로 아름답고 귀여운 바보의 길을 택한 여성들, 그러한 여성을 차지하기 위해 어떻게든 위대해져야만 했던 남성들.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가 활발한 현대보다는 1920년대 뉴욕이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으로 어울리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거짓으로 위대해진 개츠비에겐 예정된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데이지는 진정한 사랑보다는 안정적인 경제적 풍요를 선택했고, 과거를 되돌려 데이지를 되찾으려던 개츠비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이제 아무도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이 모든 진실을 본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만은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말해줍니다.
사랑을 위해서 스스로 위대해질 수 밖에 없었던 남자, 그러한 그의 거짓된 위대함은 그의 잘못이 아닌, 1920년대라는 허황된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산물인 것입니다. 결국 개츠비는 시대의 희생양이었고, 닉 캐러웨이가 그에게 '위대한 개츠비'라고 부른 것은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개츠비에 대한 위로인 셈이죠.
겉으로는 근엄함 척, 위대한 척, 허세를 부르지만 데이지 앞에서는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과 같은 모습을 보이던 개츠비. 데이지 앞에서만이라도 위대해지고 싶었던 개츠비.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사랑이 진실됨을 아는 닉은 데이지 대신 '그래, 당신은 정말 위대했어.'라고 위로하는 것이죠.
1920년대 미국의 경제 호황은 1929년 뉴욕 주식 시장의 대폭락으로 대공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 흥청망청 써대던 미국이 그에 대한 댓가로 개국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한 것이죠. 그것은 마치 개츠비의 비극과도 비슷합니다. 아마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으며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개츠비의 비극과 미국의 비극이 묘하게 맞물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화를 보고나서 닉의 도움으로 5년만에 데이지를 만나던 개츠비의 그 소년과도 같은 미소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톰 뷰캐넌의 단 한번의 도발에 이성을 잃고, 결코 돌아오지 않을 데이지를 기다리며 희망을 걸었던 그. 죽음 앞에서도 영원히 데이지를 기다릴 불쌍한 개츠비를 생각하며 저 역시 그를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허황된 거품의 시대에 진정한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개츠비... 당신은 진정 위대했다고..."
[위대한 개츠비]를 보며 나는 개츠비도, 데이지도, 머틀도, 조지도
하물며 톰 뷰캐넌까지도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20년대라는 비정상적인 시대가 안겨준 희생양.
부와 쾌락의 맛을 본 그들은 영원히 그 지옥도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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