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3년 영화이야기

[미나 문방구] - 추억을 파는 문방구.

쭈니-1 2013. 5. 19. 09:56

 

 

감독 : 정익환

주연 : 최강희, 봉태규, 주진모

개봉 : 2013년 5월 16일

관람 : 2013년 5월 16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오랜만에 찾은 여유의 소중함

 

드디어 회사에 연차 휴가를 냈습니다. 감기로 인하여 거의 한달 가까이 고생했어도 휴가만큼은 내지 않고 버텼는데, 결국 몸보다 마음이 힘드니 주저하지 않고 휴가를 내게 되더군요.

이미 휴가 전날, 외근을 나갔다가 업무를 일찍 끝내고 충동적으로 [고령화 가족]과 [전국노래자랑]을 본 저는, 연차 휴가날 아침 일찍 일어나 극장으로 출근(?)하여 [미나 문방구]와 [몽타주]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를 보고나니 낮 1시. 제가 좋아하는 베트남 쌀국수를 곱배기로 시켜 배부르게 먹은 후, 한낮의 햇볕을 맞으며 여유롭게 목동 거리를 걸으니 기분이 좋더군요. 역시 누구에게나 휴가는 이래서 꼭 필요한가봅니다.

이 여유로운 날, 마음 같아서는 [위대한 개츠비]와 [크루즈 패밀리]도 연달아 보고 싶었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구피와, [크루즈 패밀리]는 웅이와 보기로 약속이 이미 되어 있는 만큼 연차 휴가날은 [미나 문방구]와 [몽타주] 두 편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편의점에서 산 싸구려 캔커피를 홀짝 홀짝 마시며 [고령화 가족]의 영화 이야기를 썼습니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안방 침대로 가서 한동안 뒹굴고, 뒹구는 것이 지겨우면 거실로 가서 TV를 켜서 예능 프로 재방송을 멍하니 보고, 그러다 다시 글을 쓰고...

어쩌면 별것 없는 하루였을지도 모르지만 제겐 이러한 별것 없는 여유가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나니 모든 것이 술술 잘 풀렸습니다. 제게 실망했다는 웅이는 1년간 제가 술을 끊으면 자신도 1년 동안 일기를 열심히 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금요일 석가탄신일 밤에는 웅이와 단둘이 국립과천과학관에 가서 천체 망원경으로 달과 토성을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제게 한번 삐치면 최소 한 달간 냉랭하던 구피도 어찌된 영문인지 일주일도 안되어 제게 미소를 보여줍니다. 괜히 저 혼자만 스스로를 자책하며 자괴감에 빠져 있었던 것이죠. 이제 두번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이 행복은 오래 오래 지속될 듯...

 

 

[미나 문방구] VS <미스 문방구 매니저>

 

기분 좋은 날, 기분 좋게 본 영화 [미나 문방구]의 영화 이야기를 분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미나 문방구]와 웹툰 <미스 문방구 매니저>의 표절 논란부터 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스 문방구 매니저>는 2007년 1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Daum에 연재된 캐러멜 작가의 인기 웹툰입니다. 솔직히 저는 <미스 문방구 매니저>가 연재될 당시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랬다가 최근 [미나 문방구]와이 표절 논란이 생기자 궁금증에 유료화된 <미스 문방구 매니저>를 봤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미나 문방구]와 <미스 문방구 매니저>는 표절 논란이 일어난 것이 이상할 정도로 전혀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20대의 여성이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운영하던 문방구를 맡게 된다는 설정만 같을 뿐, 이야기의 구성도, 주제도 전혀 달랐습니다. 

처음엔 [미나 문방구]와의 표절 논란 때문에 호기심이 생겨 <미스 문방구 매니저>를 보기 시작했지만,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재미 덕분에 저는 거의 하루를 투자하여 <미스 문방구 매니저>를 완독했습니다. <미스 문방구 매니저>는 특이하게도 추리극 형식을 띄고 있더군요. 8년전 아버지가 도굴꾼인 친구에게 건네 받은 골동품을 잃어 버린 하영이 범인을 찾는 과정을 통해 벌어지는 풋풋한 에피소드들이 주요 내용입니다.

 

<미스 문방구 매니저>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귀여운 캐릭터들입니다. 가난하지만 얼굴만큼은 초절정 미남인 정훈남, 훈남의 유일한 친구인 오덕훈, 그리고 스쿠터 매니아이며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 이희주가 하영이 용의 선상에 올려 놓은 고등학생들입니다.

<미스 문방구 매니저>는 대학 졸업 후 아무 것 일도 하지 않으며 빈둥대던 하영이 잃어버린 골동품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용의자들인 고등학생들과 엮으면서 점차 바뀌는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진범이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은 <미스 문방구 매니저>의 재미에 흠뻑 빠져 있던 제 뒷통수를 강하게 내리칠 만큼 치밀했습니다.

하지만 [미나 문방구]는 일단 추구하는 바가 <미스 문방구 매니저>와 전혀 다릅니다. [미나 문방구]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를 미워하던 강미나(최강희)가 시골 초등학교 앞에 있는 아버지의 문방구를 팔기 위해 벌이는 소동극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미나가 옛 초등학교 동창인 최강호(봉태규)와 초등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미스 문방구 매니저>가 추리극 형식을 띄고 있다면, [미나 문방구]는 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가지고 있는 추억을 내세우고 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미나 문방구]와 <미스 문방구 매니저>가 표절이라면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여 인류가 위기를 맞이한다는 설정을 지닌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도 표절일 것이며, 이 세상의 모든 영화들은 표절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기억하기 싫은 악몽

 

아마도 [미나 문방구]와 <미스 문방구 매니저>의 표절 논란은 영화가 공개되기 전에 알려진 기본적인 설정만 놓고 벌어진 해프닝일 것입니다. [미나 문방구]를 직접 보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논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제 <미스 문방구 매니저>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미나 문방구]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나 문방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설정은 성인이 된 후 '미나 문방구'를 다시 찾은 강미나와 최강호의 서로 상반된 표정입니다. 강미나에게 '미나 문방구'는 악몽과도 같은 곳입니다. 문방구집 딸이라는 이유 만으로 별명이 방구였던 그녀는 어머니가 죽은 그 다음날에도 학교 운동회를 위해서 문방구를 열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미나 문방구'로 향해 있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기에 미나의 눈에 비친 '미나 문방구'는 음침한 공간일 뿐입니다.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녀는 '미나 문방구'를 팔아 버리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미나 문방구]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한 '미나 문방구'의 풍경을 통해 미나의 심정을 대변해 줍니다.

하지만 강호의 눈에는 다릅니다. 초등학교 시절 다방집 아들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던 강호는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의 눈에 비친 '미나 문방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아름다운 곳이며, 그곳에 쌓여 있는 잡동사니들은 추억의 소중한 소품이 되어 줍니다.

 

같은 공간을 두고 누구에겐 아름다운 추억의 공간, 누구에겐 기억하기 싫은 악몽의 공간이 된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곳이 없나요? 저는 있습니다. 제게 이발소는 악몽같은 공간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제가 사는 동네에는 이발소가 단 한군데 밖에 없습니다. 굴다리를 지나면 있는 커다란 이발소에는 수명의 이발사가 있었고, 동네 남자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단정하게 만들며 담소를 나누던 곳이었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그곳에서 이발을 하다가 그만 가위에 귀의 살점이 살짝 잘려 나갔었습니다. 큰 사고는 아니었고, 사실 별로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귀에서 흘러 나온 시뻘건 피가 이발을 할때 옷 속으로 머리카락이 들어가지 말라고 목에 두른 새하연 천을 빨갛게 물들였고, 그러한 광경에 겁에 질린 저는 그만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한달 후에 다시 찾은 이발소에서 제 머리카락을 자르던 이발사가 저를 원망하더군요. 그날의 사건 때문에 당시 제 머리카락을 자르던 이발사는 이발소에서 쫓겨났다고... 몇 달간 이발소 청소만 하다가 그날 저를 처음으로 정식 이발사로 등극했지만 너무 들뜬 마음에 실수를 저질렀고, 그것이 그 이발사의 마지막 날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이발소를 가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귀에서 흘러 나온 시뻘건 피에 대한 기억과, 저 때문에 이발소에서 쫓겨난 이발사의 원망의 눈빛이 아른거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이발소, 혹은 미용실 가는 것이 싫습니다. 그냥 그렇게 제게 이발소는 악몽과도 같은 공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나에게 '미나 문방구'가 그랬던 것처럼...

 

 

추억을 파는 문방구

 

[미나 문방구]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미나 문방구'를 싫어하는 미나가 점차 아버지를 이해하고, '미나 문방구'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미나 문방구'를 찾은 초등학생 아이들과의 에피소드와 추억의 놀이들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아버지는 교도소에 갔고, 어머니는 도망가서 할머니와 둘이 사는 바람에 왕따간 된 아이의 사연, '미나 문방구'와는 경쟁 관계인 이웃집 문방구의 두 형제 등등 아역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를 통해 [미나 문방구]는 웃음과 감동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미나 문방구'에서 펼쳐지는 추억의 놀이는 영화를 보는 저를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데려다줍니다. 미나와 강호가 1등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경쟁을 펼치는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오락의 경우는 제가 대학 시절 처음 본 것이라 그다지 추억의 힘이 실리지 않았지만, 동네 문방구에서 쭈그리고 앉아 했던 작은 오락기만으로도 저는 정겨웠습니다.

책받침 따먹기, 지우개 따먹기는 물론 종이 인형과 종이 축구 게임 등등 초등학교 시절 제가 즐겨 했던 놀이들이 영화를 보는 제 마음을 훈훈하게 했습니다. '맞아 그땐 그랬지. 그땐 저러고 놀았지.' [미나 문방구]를 보며 어느사이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미나 문방구]는 그다지 특별한 영화는 아닙니다. 스토리의 구성은 너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행됩니다. 다음 장면은 이럴 것이다... 미나는 이렇게 아버지를 이해할 것이며, 이러한 사건 때문에 다시 '미나 문방구'로 돌아갈 것이다... 라는 제 예상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딱 들어 맞았습니다.

하지만 이 특별한 것이 없는 영화엔 추억이 있었습니다. 저는 [미나 문방구]에서 훈훈한 추억을 한아름 사서 들고 나온 것입니다. 추억이라는 것이 제 기억 속 깊숙히 먼지 속에 처박혀 있는 물건이라면, [미나 문방구]는 그러한 먼지를 털어내고 내게 가져온 것이죠.   

게다가 최강희의 톡톡 튀는 매력은 그녀 자체가 강미나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잘 어울렸고, 오랜만에 본 봉태규의 모습도 반가웠습니다. 아역 배우들은 참 연기를 잘하더군요. 사실 그것만으로도 저는 [미나 문방구]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추억을 파는 문방구... 그런 문방구는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기에... [미나 문방구]가 저는 반가웠습니다.

 

P.S. <미스 문방구 매니저>가 꼭 영화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웹툰을 읽으며 웹툰의 한장면 한장면이 영상화되어 제 머리 속에는 영화처럼 펼쳐지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미스 문방구 매니저>를 머릿 속으로 영상화하며 나도 모르게 하영의 캐릭터에 최강희가 겹쳐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도 다시 예전의 이발소에 한번 찾아가 볼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내게 이발소라는 공간을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만들어준 그곳.

과연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만약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겐 소중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